8월 31일(월) 요한계시록 3:7-13 찬송 502장
7. 빌라델비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거룩하고 진실하사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이 곧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닫으면 열 사람이 없는 그가 이르시되
8. 볼지어다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되 능히 닫을 사람이 없으리라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작은 능력을 가지고서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하지 아니하였도다
9. 보라 사탄의 회당 곧 자칭 유대인이라 하나 그렇지 아니하고 거짓말 하는
자들 중에서 몇을 네게 주어 그들로 와서 네 발 앞에 절하게 하고 내가 너를
사랑하는 줄을 알게 하리라
10. 네가 나의 인내의 말씀을 지켰은즉 내가 또한 너를 지켜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리니 이는 장차 온 세상에 임하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시험할 때라
11. 내가 속히 오리니 네가 가진 것을 굳게 잡아 아무도 네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
12. 이기는 자는 내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리니 그가 결코 다시 나가지
아니하리라 내가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성 곧 하늘에서 내 하나님께로부터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나의 새 이름을 그이 위에 기록하리라
13.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개역 개정)
- 빌라델비아 교회에 보내는 편지 -
요한 당시 아시아 주에 있던 일곱 교회에 보내는 메시지를 통해
오고 오는 모든 세대의 교회들에게 그들이 심판의 주로 오실 재림주를 기다리면서
어떠한 모습으로 존재하고 대처해야 할 지를 보여 주는
본서의 본론 제 1부인 2:1-3:22안에서 여섯 번째 단락을 형성하고 있는
오늘 말씀은 본서의 형식적 수신자인 아시아 주 내에 있는
일곱 교회 중 여섯 번째로 언급되고 있는 빌라델비아 교회에 보내는 내용을 담고 있다.
빌라델비아는 주변의 여러 도시들로 통하는 지리적 요충지였기 때문에
사람의 왕래가 잦은 매우 번창한 도시였다.
게다가 직물·피혁 공업의 발달 및 양질의 포도주 수출로
비교적 부요한 도시 중 하나로 손꼽혔다.
따라서 이 도시 역시 당시 부요했던 부근의 도시들이 그러했듯이
우상 숭배와 사치, 도덕적 문란이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다.
특히 포도주가 주요 산물이어서 이 도시는 술의 신인 디오니소스를 주신으로 섬겼고,
그 결과 방탕과 향락 풍조가 도시 분위기를 지배했다.
게다가 이 도시에는 서머나의 경우처럼
예루살렘에서 도피해 온 유대인들이 적지 않았다.
그리하여 빌라델비아 교회의 구성원들은 서머나 교회처럼
목숨을 위협받는 지경에까지 이르지는 않았으나
매우 어렵고 고통스러운 박해 속에서 인내하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에 놓여 있었다.
게다가 빌라델비아 교회의 교인들은 사회적·경제적·재능적 측면에서 밀려오는
그러한 박해를 능히 극복할 만한 조건을 부여받지 못한 부류의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빌라델비아 교회의 교인들은 그러한 열악한 조건 가운데서도
주님의 이름을 배반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주님의 말씀을 삶 속에서 충실히 지키고 행하였다.(8절)
이것이 주님께 열납되어 그들은 서머나 교회와 함께
책망을 듣지 아니한 영광된 신앙인의 대열에 놓이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주님으로부터 장차 자기들을 핍박하던 자들을 굴복시키고(9절),
마지막 심판의 고통을 면제 받으며(10절),
하나님의 나라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되리라는 축복의 약속을 받았다.(12절)
이로써 이제 그들이 해야 할 일은 자신들이 가진 바 믿음을 굳게 지킴으로
그들이 받은 축복을 잃지 않게 하는 일 뿐이었다.(11절)
한편 이러한 빌라델비아 교회의 모습은 오늘날의 우리에게도
중요하고도 유익한 몇가지 교훈들을 제시해 준다.
첫째, 하나님 앞에서 중요하게 여겨지는 일은 그가 얼마나 큰 일을 했느냐가 아니라
받은 능력의 범위에서 얼마나 최선을 다했는가 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공평하시사 많이 준 자에게는 많은 것을,
적게 준 자에게는 적은 것을 요구하신다.(눅12:48)
그러므로 우리는 크고 위대한 일만 하려고 하지 말고
자기 능력에 따라 최선을 다하는, 모든 것에 성실한 일꾼이 되도록 해야 한다.
작은 일에 충성할 때에 큰 일도 이룰 수 있는 것이며,
또한 능력이 모자라 큰일을 하지 못한다 할지라도 모든 것을 아시는 주님은
우리가 최선을 다했을 때 우리에게 가장 큰 칭찬을 해 주실 것이다.(마25:14-30)
둘째, 충성된 성도는 구원의 확실성 가운데 놓이게 될 뿐만 아니라
그가 상상하지도 못한 크고 영광된 상급을 하나님으로부터 받게 될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지금 눈에 보이는 작고 허황된 이익을 추구하지 보다는
있는 모든 것을 다해 주님을 섬기고 주께 충성함으로
확실하고 영광된 미래를 예비하는 지혜로운 성도가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셋째, 성도는 아무리 확고히 구원의 확신 가운데 거한다 할지라도
교만하지 말고 그것을 빼앗기지 않도록
끝까지 겸손하고 충성함으로 받은 구원을 지켜야 한다.(빌2:12; 3:12-16)
12절) 「이기는 자는 내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리니 그가
결코 다시 나가지 아니하리라 내가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성
곧 하늘에서 내 하나님께로부터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나의 새 이름을 그이 위에 기록하리라」
하반절 말씀을 보면 빌라델비아 교회의 이기는 성도에게 주시는 약속이 있다.
그 약속은 그이 위에 영광스런 이름들을 기록하신다는 것이다.
물론 이 약속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신앙의 승리자는 모름지기 하나님의 소유이며,
동시에 하나님의 왕국의 시민임을 천명하신 말씀이다.
그러면 그 영광스러운 이름들을 살펴보면,
첫째, 하나님의 이름이다.
이 이름이 성도에게 새겨지는 것은
분명히 그가 하나님의 소유임을 뜻하는 상징적인 표현이다.(계7:3-4; 9:4)
그러므로 승리자의 위에 하나님의 이름을 기록하겠다고 함은
그가 하나님의 소유된 자임을 공식 입증하는 행위라고 볼 수 있다.
이와 같은 원리로 마지막 때에 멸망할 짐승은 자신을 좇는 추종자들의
이마 혹은 오른손에 표를 새길 것이라고 한다.(계13:16-18)
그렇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소유된 자인가?
아니면 멸망할 짐승에게 속한 자인가?
자신을 돌아보고 하나님께 속한 자로서의 증거를 나타내야 한다.
주님은 이러한 성도 위에 하나님의 이름을 주실 것이다.
둘째, 하나님의 성 곧 새 예루살렘 성의 이름이다.
이는 그 이름이 새겨지는 성도가 하나님 나라의 시민이라는 사실을 공식화하는 것이다.
그러면 새 예루살렘 성이란 어떤 곳인가?
이곳은 하나님의 의의 통치와 그리스도와의 친밀한 사랑의 교제가 있는 곳이다.
그리고 성령님의 평강과 희락이 충만한 곳으로서
모든 인생이 소망하는 파라다이스(Paradise)이다.
물론 지금 우리의 시민권은 이 땅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늘에 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빌립보 성도들에게
‘거기로부터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빌3:20)라고 교훈했다.
우리는 하늘의 총회 앞에서 공식적으로 새 예루살렘의 시민권을 수여받는
그 날까지 끝까지 인내하고 기다리는 성도들이 되어야 한다.
셋째. 그리스도의 새 이름이다. 이는 아주 독특한 표현이다.
그 이름은 주님 외에는 아무도 모르는 알려지지 않은 이름이다.(계2:17; 19:12)
이렇게 신비한 이름을 성도에게 준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그 성도들이 하나님 나라의 주권자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에게 속하여
그와 함께 왕 노릇하게 될 것임을 상징한다.
이렇게 빌라델비아 교회를 향한 주님의 약속은
그 위에 하나님의 이름과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그리스도의 새 이름을 기록함으로써
삼중으로 성도의 신분과 지위와 소속을 보장하고
보증할 것이라는 귀한 약속임을 알 수 있다.
우리 앞에는 이렇게 귀한 이름과 관계된 약속이 있다.
끝까지 참고 견디어 신분과 지위와 소속이 보장되는 생명의 이름을 받을 것인가,
아니면 세상의 이름만이 다인 줄 알고 허망한 인생을 살다가
멸망하는 짐승의 이름을 받을 것인가?
그 선택과 결단은 우리에게 달려 있다.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그 때에
너희도 그와 함께 영광 중에 나타나리라」 (골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