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시성서 당부마도위 설소묘 발견陕西发现唐驸马都尉薛绍墓
출처: 중국신문망 작성자: 田进 중국 고고학 소스 : 동북아역사문물연구원
2019년 8월부터 12월까지 병원은 시셴 신구 공항 신도시 디장거리 암벽촌에서 4개의 천정과 전후 벽돌 무덤이 있는 대규모 당나라 무덤을 발굴했습니다.출토된 묘지는 묘주가 당태평공주(唐太平公主)의 초대 부마였던 설소(薛绍)로 선룡(神龍) 2년(706년) 정월에 하관된 것으로 확인됩니다.
▲ 동일감묘
묘소는 당 장안성 유적에서 약 23km, 북서쪽으로 당소용 상관씨 묘에서 7.3km 떨어져 있습니다.묘지에 적힌 장지는 옹주 함양현.최근 몇 년 동안 고고학자들은 공항 신도시에 수많은 북주, 수나라, 당나라 고급 묘지를 발굴하고 풍부한 고고학적 수확을 거두어 이곳이 북조 말기부터 수나라 시대까지 북경사 장안 부근에서 가장 중요하고 높은 등급의 귀족 무덤 지역임을 증명했습니다.
▲ 벽감 출토 도용.
산시성 고고학 연구원의 이명(李明)에 따르면 당부마도위 설소묘는 경사묘도 다천정과 소감(小龛)의 쌍실 전권묘로 북향남향으로 남북수평 34.68m, 깊이 11.11m로 봉토, 경사묘도, 4개의 천정, 4개의 통로, 6개의 벽감, 전후 복도, 전후 묘실 등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비탈진 무덤길은 경사가 급하고 동서벽에 원래 벽화가 그려져 있었으나 현재는 백회지전만 남아 먹선으로 그려진 인물상을 관찰할 수 있습니다.
묘지 북쪽 벽에는 문루도가 그려져 있으며 빨간색 직선창의 흔적만 보입니다.4개의 우물은 형태가 동일하며 다음날 우물이 가장 완전하게 보존되어 있으며 위쪽 우물은 남북 길이 1.3, 동서 너비 1.1m입니다.
동굴의 형태는 모두 아치형 토굴로, 두 번째, 세 번째, 네 번째 동굴 바닥의 동서 벽에 각각 1개의 벽이 있으며, 이 벽에서 총 100개 이상의 다양한 토용과 토기 동물이 출토되었습니다.앞 복도의 남쪽 입구에 벽돌을 쌓고 문을 닫아 심각한 손상을 입혔으며 바닥에 벽돌을 세 겹만 남겼습니다.
앞 복도에 석문이 건설되어 파괴되었으며 구성 요소는 복도와 앞 방에 흩어져 있습니다.문틀선에는 화초문양을, 문풍에는 문리(門吏)를 새겨 넣었습니다.두 묘실은 모두 명광벽돌권으로 앞뒤 묘실 사이에 복도가 연결되어 있습니다.묘실 토광은 모두 크고 작은 입을 가지고 있습니다.
▲ 후묘실 청소 현장
리밍은 복도와 묘실이 완전히 파괴되었고 벽돌 바닥과 석관 침대만 남아 있다고 말했습니다.천정과 전 묘실의 메운 흙에서 석인두와 망주정 마네주 조각이 출토되어 묘지 표면에 원래 신도와 석각이 있어야 하며 이 묘가 2차적으로 교란되었음을 나타냅니다.
무덤에서 총 120여 점(그룹)의 다양한 유물이 출토되었으며 주로 채색 도용입니다.묘지는 전실 바닥에 배치하고 완전하게 보관합니다.지문에 따르면 묘주는 당우무위대장군 겸 산기상시, 부마도위, 평양현 개국자 설소입니다.
▲ 천정에서 출토된 석인두
문헌에 따르면 설소(661-689)는 부마도위, 좌봉신위장군 설瓘와 성양공주의 아들이자 태평공주의 첫 번째 부마였습니다.
태평공주는 영륭 2년(681년) 7월에 설소에 출항하여 2남 2녀를 두었습니다.수공(垂拱) 4년(688년) 11월, 설소(薛绍)는 형 제주자사(濟州刺史) 설𫖮 낭야왕 이충모(李冲谋)에 가담했다가 오히려 옥에 갇혔고, 영창(永昌) 원년(689년) 하남현(河南縣)에 굶어죽었습니다.17년 뒤인 신용 2년(706년) 정월에 당 중종은 설소평반(薛绍平反)으로 관작을 회복하고 소사 이례(所司以禮)로 개장하고 장남 설숭윤(薛崇胤)과 차남 설숭간(薛崇简)이 주관하여 안장하였습니다.
▲ 무덤 정사 영상도
리밍은 '설소묘지'에서 '옹주 함양현 하동부군 옛 무덤에 묻혔다'고 했는데, 설瓘와 성양공주 묘도 이 무덤 근처에 있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설소(薛绍)와 태평공주(太平公主)의 둘째 아들 설숭간(薛崇简) 묘, 둘째 딸 만천현주(萬泉縣主) 설씨(薛氏) 묘도 저장에 있으며, 만천현주(万泉縣主) 묘는 태평공주(太平公主)가 직접 안장(安葬)을 주관하고 있으며, 그 규격과 형태는 기본적으로 설소묘와 동일합니다.
설소정 3품 직사관 신분으로는 쌍실전권묘를 쓰기에 부족합니다.만천현주 설씨묘와 조용상관씨묘는 같은 해에 하관되어 신분이 정2품이지만 후자는 단실전권묘만 사용하였습니다.설소묘와 만천현주 설씨묘의 월제의 특징은 분명한데, 그 이면에는 태평공주의 정치적 의도가 숨어있습니다.
▲ 전실묘지 출토 현장
전문가들은 설소가 역사책에 무전(無傳)이지만 당나라 때 친공주의 아들이자 친공주의 부마로 있다가 정쟁에 휘말려 숨진 특수한 신분으로 전형적인 시대적 특징과 대표성을 지니고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당나라 부마도위 설소묘의 고고학적 가치는 후무측천시대에 가장 일찍 매장된 쌍실전권묘로, 동기의 높은 등급의 당나라 무덤과 결합하여 당나라 귀족 무덤의 '신룡 양식'에 반영된 무측천에서 현종 초기 당나라 정치문화의 심층적인 특징을 요약할 수 있습니다.
사진출처: 산시성 고고연구원
분류:고고학 프론티어
본문 라벨:산시 설소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