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병원이 침묵한 대가
박근혜 피습 직후 브리핑한 세브란스와 대조적
전문가, 진실 말해 허위정보 확산 막을 책무
필자는 2006년 5월 사회부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당시 한나라당 대표) 피습 사건을 취재했다. 휴일이었던 토요일(5월 20일) 저녁 같은 팀 기자들과 저녁을 먹다 오후 7시 20분경 피습 소식을 듣고 황급히 달려갔던 기억이 생생하다.
서울 서대문구 신촌 현대백화점 앞에서 공격당한 박 전 대표는 즉각 신촌 세브란스병원 응급실로 이송됐고, 오후 9시 15분경부터 2시간가량 수술을 받았다. 박창일 세브란스병원장과 수술을 집도한 성형외과 탁관철 교수는 수술 직후인 오후 11시 40분경 카메라 앞에 섰다. 이 자리에서 “예리한 흉기로 11cm 자상을 입었으며 상처가 0.5cm만 더 깊었다면 위험했을 것”이란 소견을 밝혔다. 피곤한 표정이었음에도 자정이 넘을 때까지 취재진 질문 20여 개에 답하고 자리를 떴다.
이달 2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피습 소식을 듣고 당시 기억이 되살아났다. 현직 야당 대표가 공격당했다는 점은 같았지만 피습 직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에 괴담이 급속도로 확산된 건 18년 전과 다른 모습이었다.
SNS 보급과 극단주의 확산의 영향이겠지만 괴담이 퍼지는 것에 제동을 걸 기회는 있었다는 생각이다. 이 대표 수술 직후 서울대병원 집도의가 직접 이 대표의 상처와 흉기, 상태를 설명했다면 어땠을까.
하지만 서울대병원은 이 대표 수술 이후 41시간 반 동안 침묵을 지켰다. 수술 당일 출입기자단에 브리핑을 예고했다가 1시간 40분 만에 취소하기도 했다. 결국 언론은 민주당 브리핑 등에 의존해 이 대표 상태를 전해야 했다.
현장에선 혼선이 난무했다. 민주당은 ‘내경정맥’을 ‘뇌경정맥’으로 공지했다가 번복했고, ‘내경정맥 60%가량이 손상됐다’고 했다가 철회했다(이후 다시 맞다고 했다). ‘1cm 열상(피부가 찢겨 생긴 상처)’은 허위정보라며 ‘2cm 창상(칼, 창 등에 의해 다친 상처)’로 불러달라고도 했다. 그러는 동안 일부 극우 유튜버를 중심으로 ‘자작극 아니냐’는 음모론도 확산됐다.
길어지는 침묵에 비판이 확산되자 서울대병원은 4일 오전에야 브리핑을 갖고 이 대표의 상처를 ‘1.4cm 자상’으로 정리했다. 또 “기도 손상이나 내경동맥 손상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었고 난도 높은 수술이었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질문에는 일절 답하지 않고 자리를 떴다.
서울대병원 측은 브리핑이 늦어진 이유를 “의료법·개인정보보호법에 따라 환자 동의 없이 의료 정보를 발표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하지만 전날 민주당이 서울대병원을 향해 “정권 눈치를 보느라 브리핑을 안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던 걸 감안하면 이 대표 측 동의가 없어 브리핑이 늦어졌다는 설명은 납득하기 어렵다. 또 질문을 받지 않은 이유와 10일 퇴원 때까지 추가 브리핑이 없었던 이유에 대해 서울대병원은 뚜렷한 설명을 내놓지 않고 있다.
의료계에선 서울대병원 집행부가 교육부 산하 공공기관이란 입장 때문에 여야 눈치를 보다 침묵을 지키기로 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하지만 서울대병원의 침묵은 본의든 아니든 일방적 주장과 음모론 확산에 기여했다.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연구에 따르면 SNS 보급으로 허위정보는 팩트보다 6배나 빠르게 퍼진다고 한다. 그리고 허위정보의 해악을 막을 가장 빠른 방법 중 하나는 신뢰할 만한 전문가가 직접 진실을 밝히는 것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때 많은 전문가들이 언론에 나섰던 것처럼 말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 피습 때 서울대병원의 침묵은 두고두고 반면교사로 남아야 한다는 생각이다.
장원재 정책사회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