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수호지(水湖誌) - 147
수호지 제62회-2
그때 북경 유수 양중서는 공청에 좌정하고 있었는데, 호랑이나 이리 같은 관원 7,80명이
좌우에 두 줄로 늘어서 있었다.노준의가 공청 앞에 끌려나오고, 가씨와 이고는 옆에 무릎을
꿇고 있었다.대청 위에서 양중서가 크게 소리쳤다.“네놈은 북경의 양민으로서
어찌하여 양산박에 투항하여 도적이 되고 둘째 두령 자리에 앉았느냐?
지금 다시 온 것은 안팎으로 호응하여 북경을 치려고 하는 것이겠지! 이제 잡혀 왔으니
무슨 할 말이 있느냐!”노준의가 말했다.“소인이 잠시 어리석었습니다.
양산박의 오용이 점괘를 봐주는 도사로 변장하여 집에 찾아와 거짓말로 선량한 마음을
선동하여 미혹에 빠지게 하였습니다.그 말에 속아 양산박까지 갔다가 두 달간 연금되었는데,
오늘 다행히 그곳을 벗어나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결코 나쁜 뜻은 없었으니
상공께서는 밝게 살펴 주십시오.”양중서가 소리쳤다.
“그게 말이 되는 소리냐! 네가 양산박에서 그놈들과 뜻이 통하지 않았다면, 그렇게 오랫동안
있을 수 있었겠느냐! 너의 아내와 이고가 제출한 고발장이 여기 있다. 이것이 거짓이냐?”
이고가 말했다.“주인님! 이제 이렇게 되었으니 자백하십시오.
집의 벽에 써 놓으신 반역시가 명백한 증거이니 여러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가씨가 말했다.
“우리가 당신을 해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당신 때문에 우리까지 연루되는 것이
두려울 뿐입니다. ‘한 사람이 반역하면 구족을 멸한다.’고 하지 않습니까?”
노준의가 대청 아래 무릎을 꿇은 채 억울함을 하소연하자 이고가 말했다.
“주인님이 억울하다고 하소연해도 소용없습니다. 진실은 없애기 어렵고 거짓은 쉽게
지워지는 법입니다. 빨리 자백하고 고통이나 면하도록 하시지요.”가씨가 말했다.
“여보! 거짓은 관아에서 통하지 않고, 진실은 막기 어려운 법입니다. 당신이 만약
일을 저질렀다면 제 목숨도 끝장났을 겁니다.사람에게는 정이 있지만 곤장에는 정이 없어요.
당신이 자백하기만 하면 약간의 처벌만 받게 될 거예요.”
이고가 이미 위아래로 돈을 썼기 때문에 장공목(張孔目)이 아뢰었다.
“저놈은 뻔뻔하고 고집이 센 놈이라 맞지 않으면 자백하지 않을 겁니다.”양중서가 말했다.
“그 말이 옳다! 여봐라! 저놈을 매우 쳐라!”
좌우의 관원들이 노준의를 땅에 엎어놓고 다짜고짜 몽둥이로 두드려 팼다.
피부가 찢어지고 살이 터져 선혈이 줄줄 흘러내렸다.서너 번이나 혼절했다.
노준의는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하늘을 우러러 탄식하였다.
“내 운명이 비명횡사하리라는 것이 맞았구나! 자백하겠소!”
장공목은 즉시 진술서를 받아내고, 백 근짜리 칼을 씌워 사형수감옥에 가두었다.
관아 앞뒤에서 지켜보던 사람들은 차마 눈뜨고 보지 못했다.
감옥에 들어가자 또 살위봉 30대를 맞고, 절급 앞에 끌려가 무릎을 꿇었다.
절급이 노준의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넌 내가 누군지 아느냐?”
노준의가 그를 쳐다보았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감옥을 관리하면서
망나니도 겸하고 있는 이 절급의 이름은 채복(蔡福)이고 북경 토박이였다.
실력이 고강하여 사람들은 ‘무쇠팔’ 즉 ‘철비박(鐵臂膊)’이라고 불렀다.
그 곁에는 친동생인 옥졸 채경(蔡慶)이 서 있었는데, 꽃가지 하나를 들고 다니는 걸
좋아해서 사람들이 ‘일지화(一枝花)’라고 불렀다.
채경이 곤봉을 들고 형 옆에 서 있었는데 채복이 말했다.
“넌 이 사형수를 감방으로 데리고 가거라. 나는 집에 잠시 갔다 오겠다.”
채경이 노준의를 데리고 가고, 채복은 일어나 감옥 문을 나갔다.관아 앞 담장 아래에
한 사람이 오고 있었는데, 손에는 밥통을 들고 있었고 얼굴엔 근심이 가득했다.
채복이 알고 있는 낭자 연청이었다.채복이 물었다.“자네가 어쩐 일인가?”
연청이 무릎을 꿇고 두 눈에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절급 형님! 소인의 주인이신 노원외를 가련하게 여겨 주십시오. 억울하게 형벌을 받았는데
밥을 넣어드릴 돈도 없습니다.소인이 성 밖에서 구걸하여 이 밥통 반밖에 얻지 못했지만
이거라도 주인님의 굶주림을 채워드리고자 합니다. 절급형님께서 편리를 좀 봐 주십시오!”
말을 마치자 눈물을 비 오듯 쏟으면서 땅에 엎드려 절을 했다.채복이 말했다.
“나도 이 일을 알고 있다. 자네가 직접 가서 먹여 드리게.”
연청이 사례하고 감옥 안으로 들어갔다.채복이 다리를 건너가자, 다방 점원이 큰 소리로
인사하며 말했다.“절급님! 어떤 손님이 소인의 다방에서 절급님을 기다리고 계십니다.”
채복이 다방으로 들어가 보니 이고였다.인사를 나눈 다음 채복이 말했다.
“이도관께서 무슨 일로 저를 보자고 하셨습니까?”이고가 말했다.
“솔직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소인의 일은 모두 절급님 마음먹기에 달렸습니다.
오늘 밤에 후환을 깨끗이 처리해 주시면 황금 50냥을 드리겠습니다. 윗분들은
소인이 알아서 모시겠습니다.”채복이 웃으며 말했다.
“당신은 관아의 경계석(警戒石)에 ‘아래 백성은 학대하기 쉬우나 위의 푸른 하늘은
속이기 어렵다.’라고 쓰여 있는 것을 못 봤소? 당신이 양심을 속이면서 하는 짓을
내가 모를 줄 아시오!그의 가산을 가로채고 아내까지 빼앗고서는 지금 황금 50냥으로
그의 목숨까지 끝장내려고 하려는 거요! 차후에 감사관이 오게 되면 난 처벌을 피할 수
없을 것이오.”“적어서 불만이시면 50냥을 더 드리겠습니다.”
“이고! 고양이 꼬리를 자르겠다면서 고양이 밥을 빼앗아 내놓는 거요? 북경에서 유명한
노원외가 황금 백 냥 정도의 값어치밖에 안 나가단 말이오?
내가 그를 끝장나길 당신이 바란다면 나도 당신을 속이지 않을 터이니 황금 5백 냥을
내놓으시오.”“일단 이것부터 받으시고 나머지는 곧 보내드리겠습니다.
오늘밤에 일만 잘 처리해 주십시오.”채복은 황금을 받아 챙기고 일어나며 말했다.
“내일 아침 시신이나 들고 가시오.”이고는 사례하고 기뻐하며 돌아갔다.
채복이 집으로 돌아가 막 문으로 들어가려고 할 때 한 사람이 주렴을 들어 올리며
들어와 말했다.“채절급을 만나러 왔소.”채복이 보니 그는 용모가 준수하고 복장도 단정했다.
그가 문 안으로 들어와 채복을 보고 절을 하자 채복도 황망히 답례를 하고 물었다.
“누구십니까? 무슨 일로 저를 보자고 하십니까?”“안으로 들어가서 말씀드리지요.”
채복이 그를 밀실로 안내하여 좌정하자 그가 말했다.“절급께서는 놀라지 마십시오.
저는 창주 횡해군 사람 시진입니다. 대주(大周) 황제의 적파자손으로 소선풍이라 불립니다.
의리를 좋아하고 재물을 가벼이 여겨 천하 호걸들과 사귀기를 좋아하는데, 불행히도
죄를 지어 지금은 양산박에 살고 있습니다.이번에 송공명 형님의 명을 받들어
노원외의 소식을 알아보기 위해 이곳에 왔는데, 그가 탐관오리와 음부(淫婦)・간부(奸夫)의
함정에 빠져 감옥에 갇힌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목숨이 실에 매달린 것 같은데,
오직 족하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그래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특별히 댁으로
찾아온 겁니다. 노원외의 목숨만 살려주신다면 그 큰 은덕을 결코 잊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만약 조금이라도 착오가 생기면, 병력이 성 아래에 당도하여 현우(賢愚)와 노유(老幼)를
막론하고 모조리 참수할 것이오. 족하가 의리를 중시하고 충실한 호걸임을 오래 전부터 들어
왔습니다.여기 황금 천 냥을 예물을 가져왔는데, 만약 이 시진을 체포하고 싶으면 당장
포박하십시오. 눈썹 하나 찡그리지 않겠습니다.”
채복은 그 말을 듣고 깜짝 놀라 온몸에 식은땀이 흘러 한동안 응답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시진이 일어나며 말했다.“호걸이 일을 행할 때에는 주저하지 않아야 합니다. 결
단을 내리시지요.”채복이 말했다.“장사께서는 일단 돌아가십시오.
소인이 알아서 조치하겠습니다.”시진이 절을 하며 말했다.
“이미 승낙하셨으니 마땅히 큰 은혜에 보답하겠습니다.”
시진은 문을 나가 따라온 사람을 불러 황금을 채복에게 건네주게 하고 인사하고 떠나갔다.
시진을 따라온 사람은 신행태보 대종이었다.채복은 어찌해야 좋을지 몰라 한동안 생각하다가
감옥으로 가서 아우 채경에게 좀 전에 있었던 일을 얘기했다.채경이 말했다.
“형님은 지금까지 결단을 잘 하셨는데, 이까짓 사소한 일이 뭐가 어렵습니까?
속담에 이르기를 ‘사람을 죽이려면 피를 봐야 하고, 사람을 구하려면 철저하게 해야 한다.’고
했습니다.이미 황금 천 냥이 있으니 우리가 아래위로 뇌물을 쓰면 됩니다.
양중서나 장공목은 모두 이익을 좋아하는 무리이니 뇌물을 받아먹으면 필시 노준의의
목숨은 살려줄 겁니다.그리고 어디로든 유배를 보내면 그 다음에 그를 구하느냐
구하지 못하느냐 하는 것은 양산박 호걸들의 몫이고 우리가 할 일은 그걸로 끝입니다.”
채복이 말했다.“아우의 말이 내 뜻과 일치하네. 자네는 노원외를 좋은 곳에서 편안하게
쉬게 하고, 아침저녁으로 술과 음식을 대접하여 기력을 회복시키도록 하게. 그리고 이 소식도
전해 주게.”채복과 채경은 상의가 정해지자 몰래 황금으로 위아래를 매수하였다.
다음 날 이고는 아무런 동정이 없자 채복의 집으로 찾아가 재촉했다.채경이 말했다.
“우리가 손을 써서 그를 끝장내려고 했는데, 상공이 허락하지 않고 또 사람을 보내
그를 살려두라고 분부하였소.당신이 위에 뇌물을 써서 명령을 내리도록 부탁하면
우리가 여기서 일을 처리하는 데 무슨 어려움이 있겠소?”
이고는 즉시 사람을 시켜 위에 뇌물을 썼다.중간에 돈을 전하는 사람이 부탁하자 양중서가 말했다.
“그건 감옥의 절급이 할 일이니 내가 손을 쓰기는 어렵다. 하루 이틀 지나서 그가 절로
죽도록 하면 되지.”이렇게 양쪽에서 미루고, 장공목도 이미 황금을 받았기 때문에
문안을 가지고 시간만 질질 끌었다.채복은 또 청탁을 하여 빨리 판결을 내려달라고 하였다.
장목공이 문안을 가지고 와서 아뢰자 양중서가 말했다.
“이 사건을 어떻게 판결하면 좋겠는가?”장공목이 말했다.
“제가 보건대, 노준의는 고발한 사람이 있기는 하지만 명확한 증거가 없습니다. 비록 양산박에
오래 머물렀다 하더라도 그건 잘못 말려든 것이지 진짜 죄를 범했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곤장 40대를 때리고 3천리 밖으로 유배를 보내는 것이 적당할 것 같은데, 상공의 뜻은
어떠하십니까?”“공목의 견해가 아주 명쾌하여 내 뜻과 합치하네.”
즉시 채복을 불러 감옥에 있는 노준의를 대청 앞으로 끌어내오게 하였다.
칼을 벗기고 판결문을 읽어 준 다음 곤장 40대를 때리고 20근짜리 철판 칼을 씌웠다.
동초와 설패로 하여금 사문도로 압송하게 하였다.
원래 동초와 설패는 개봉부의 관원이었는데, 임충을 창주로 압송하던 도중에 임충을 죽이려다
실패하고 돌아가 고태위가 북경으로 유배를 보냈던 것이다.
양중서는 그들이 능력이 있음을 보고 유수사에서 일을 시키고 있었는데, 이번에 노준의를
압송하게 하였다.동초와 설패는 공문을 수령하고서 노준의를 데리고 관아를 나와 사신방에
감금해 놓고 각자 집으로 돌아가 행장을 수습하여 길 떠날 준비를 했다.
한편, 이고는 이 사실을 알고 ‘아이고!’ 비명을 지르며 사람을 보내 두 압송관을 불러오게 하였다.
동초와 설패가 주점으로 들어가자 이고가 맞이하여 자리에 앉아 술과 음식을 대접하였다.
술을 석 잔 마시고 나서 이고가 말했다.
“솔직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노원외는 나의 원수입니다. 지금 사문도로 유배 가게 되었는데,
길은 멀고 그는 돈이 한 푼 없어 두 분이 노자를 낭비하게 될 겁니다.
빨리 갔다 온다 해도 서너 달은 걸릴 겁니다. 제가 다른 건 드릴 게 없고 은덩어리 두 개를
선금으로 드리겠습니다. 먼 길을 갔다 왔다 하지 마시고 한적한 곳에서 그를 끝장내 주십시오.
그리고 얼굴의 문신을 벗겨서 증거로 가져오시면 두 분께 각각 황금 50냥씩을 드리겠습니다.
문서를 적당히 꾸며 유수사로 가져오시면 제가 알아서 처리하겠습니다.”
동초와 설패는 서로 얼굴을 쳐다보며 한동안 생각하다가 동초가 말했다.
“그렇게는 못 하겠소.”설패가 말했다.“형님! 이도관은 호남자이니 우리가 이번 일로
서로 알고 지내게 되면 위급한 일이 있을 때 우리를 도와줄 겁니다.”이고가 말했다.
“나는 은혜를 잊고 의리를 저버리는 사람이 아닙니다. 오래도록 두 분의 은혜에 보답
하겠습니다.”동초와 설패는 은자를 챙기고, 집으로 돌아가 행장을 꾸리고 밤에 길을 떠났다.
노준의가 말했다.“소인이 오늘 형벌을 받아 곤장을 맞은 상처가 너무 아프니
내일 떠날 수 있게 해주십시오.”설패가 말했다.
“좆같은 주둥이 닥쳐라! 이 어르신이 네놈 같은 가난뱅이를 만나다니 운수가 사납구나!
사문도를 갔다 오려면 6천리가 넘는데, 노자가 얼마나 많이 들겠냐!그런데 네놈은
땡전 한 푼 없으니 우리더러 어쩌란 말이냐!”노준의가 하소연했다.
“소인의 억울함을 생각하여 굽어 살펴 주십시오.”동초가 욕을 했다.
“네놈 같은 부자들은 평소에 남을 위해 털 하나도 뽑지 않더니 이제 하늘이 눈을 떠서
응보를 받게 되는구나! 원망하고 슬퍼하지 마라. 못 걷겠다면 우리가 도와줄 수도 있지.”
노준의는 울분을 참고 아무 말 없이 걷기만 했다.
동문을 나오자 동초와 설패는 옷 보따리와 우산을 노준의의 칼에 걸었다.
노준의는 일생을 부자로 살았지만 지금은 죄수가 되어 어찌할 수가 없었다.
때는 늦가을이라 낙엽이 분분히 떨어지고 짝을 이룬 기러기들이 북쪽에서 날아오고 있었다.
어디선가 들려오는 피리소리는 더욱 마음을 울적하게 만들었다.
- 148회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