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tesman 6회
4월 중순에 접어든 천형은 길목마다 참꽃(진달래)과 벚꽃, 연교<連翹>(개나리)가 만발해 여
신 같은 미소를 띠고 있었다. 가지각색의 화려한 미소와 교태를 부리 듯 코끝을 간질이는
산들바람은 오고 가는 사람들에게 융숭한 향연을 베풀었다. 이러한 향연에 걸 맞는 한 남자
가 흑석처럼 까맣고 명주실처럼 가늘고 고운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걸어오고 있었다. 위연하
게 걷고 있는 이 남자는 자신의 저택에 당도해 대문에 들어서는 순간 갑자기 가슴팍에 무언
가 닿는 것을 느꼈다.
“ 오라버니, 죄송해요.”
남자는 자신의 가슴팍에 얼굴은 묻은 소녀의 어깨를 잡고 다정하게 말했다.
“ 조심해야지...현루야.”
“ 헤헤...그러게요.”
“ 어딜 그렇게 급하게 나가니?”
“ 아...잠깐 어디 좀...”
현루는 고르게 난 흰 치아를 보이며 씽긋 웃고 대문을 급하게 나갔다.
“ 나..참 꼬맹이 일 때는 얌전하더니 오히려 나이를 먹을수록 말괄량이가 되가네..”
현루를 따라 다시 대문 밖으로 나 온 남자는 현루의 뒷모습을 보며 봄기운과 같은 따스한
미소를 보이다가 무슨 생각에 빠졌는지 그 자리에 석고상처럼 뻣뻣하게 섰다. 그리곤 그는
멀어져 가는 현루를 보면서 흑백 같은 묘연한 과거를 되뇌기 시작하였다.
하성. 그가 8살 때였다. 여름의 해님 덕인지 어린 하성은 조열한 몸을 이끌고 후원 대청마
루에 벌러덩 누웠다. 인적이 드문 후원은 조용하다 못해 적막하여서 소소한 매미 소리만 더
욱더 크게 들렸다. 그때 후원 뒷문소리가 한가한 적막을 깨고 성(成)의 정상 (靜想)을 무너
뜨렸다. 감고 있던 눈을 뜬 성은 무장을 한 남자가 비단 포대기를 감싸 안고 들어오는 것을
보았고 언제 와 있었는지도 모르게 그 앞에 성의 아버지 하장군이 서 있었다.
“ 장군님 밖에 없사옵니다. 부탁드리옵니다.”
장검을 찬 남자는 묘연한 한 마디만 남긴 채 감싸 안고 있던 포대기를 하장군에게 주고 사
라져버렸다.
“ 형님, 대문 밖에서 무얼 하십니까?”
성의 흑백기억은 그의 둘째 동생인 유(裕)의 외침으로 깨져 버렸다.
“ 아니다. 잠시 날씨가 좋아...”
“ 아버님께서 안채에서 형님을 찾으십니다.”
“ 알았다. 고맙구나.”
성은 유의 머리를 인유하게 쓰다듬으며 언제나 그렇듯 상냥한 미소를 띠었다. 그리고 안채
로 향하였다.
“ 그래, 언제쯤 등용될 것 같으냐?”
“ 비관(備官)원에서의 관리 임용이 언제 실력대로 행해졌습니까.”
“ 허허허 그럼 실력대로라면 지금 충분히 등용될 수 있단 말이구나.”
성은 대답 대신 특유의 정갈한 미소를 보였지만 눈은 지그시 하장군을 응시했다.
“ 무슨 할 말이 있느냐?”
성의 눈빛을 헤아렸는지 하장군은 곧게 뻗은 수염을 어루만지며 물었다.
“ 현루 말입니다. 아버님께선 소자가 어려서 기억이 없는 줄 아시겠지만.....도대체 그녀의
정체는 무엇입니까?”
“ 네가 알고 있듯이 예전 청지기의 먼 친척뻘 되는 아이라 하지 않았느냐?”
“ 하지만 이상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신분에 안 맞는 비단 포대기도 그렇고...잘 쓰지
도 않던 후원 뒷문으로 들어온 것도 그렇고...”
성은 순간 하장군의 얼굴이 당황해서 이지러지는 것을 보았다. 성은 그의 표정만 봐도 그것
은 그에게 있어서 회피하고 싶은 과거임을 알 수 있었다. 이것으로 미루어 자신이 사소한 일로 긁어 부스럼을 만드는 건 아닐 거라 확신했다. 하장군은 헛기침을 한 뒤 앞에 놓여 있는 차탁
위에 찻잔을 들어 왼손으로 받친 뒤 한 모금 마셨다.
“ 그 옛날 일을 소상히도 기억하고 있구나. 그 명석한 두뇌를 왜 쓸데없는 곳에 쓰고 있느
냐. 넌 등용되는것에만 전력을 다해야 할 때가 아니냐? 혹시 등용되지 않는 것도 너의 실력
이 부족해서 그런 것이 아니냐? 그런 잡생각이나 할 시간 있으면 글이나 한 자 더 보거라.”
하장군은 생트집을 내며 성을 몰아붙였지만 성의 결의(決疑)를 더 하게 만들었을 뿐 이였
다.
- 다음 줄거리 -
현루는 유화가의 도움으로 정식으로 학문에 임하게 될 수 있는 기회가 생기는데.....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여기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첫댓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