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서평
미국사를 보는 새로운 시각: 영토territory
노스웨스턴대학에서 미국의 국제관계, 세계사, 지성사 등을 강의하는 소장학자 대니얼 임머바르 교수는 착안점을 달리해서 이 문제를 생각보자고 말한다. 그는 지난해 출간해 센세이셔널한 반응을 불러낸 저서 『미국, 제국의 연대기: 전쟁, 전략, 은밀한 확장에 대하여』(원제: How to Hide an Empire)에서 ‘영토territory’라는 관점을 제시한다. 미국은 두 종류의 영토가 있다. 나쁜 짓을 하면 처벌을 받는 영토와 그렇지 않은 영토, 법적 규준을 준수해야 하는 영토와 그렇지 않은 영토로 말이다. 전자는 북아메리카 미국 본토이고, 후자는 전세계에 점조직으로 퍼져 있는 다수의 미국령 섬과 제도, 기지들이다. 점묘주의 제국 미국은 식민지, 미국령 등에서 다양한 자원을 획득해왔고, 그곳의 사람들을 활용해 다양한 실험을 진행했을 뿐만 아니라, 그것을 기지로 하여 전 세계를 무력으로 제압했다. 그런 영토의 존재가 그간 미국을 얘기할 때는 잊혀졌거나 중요하게 다뤄지지 못했다.
오늘날 미국 지도는 50개주로 구성된 익숙한 모습이다. 실제 영토는 이와는 매우 다르다. 우선 알래스카와 하와이, 괌이 빠져 있다. 이게 전부일까? 당연히 그렇지 않다. 푸에르토리코, 미국령 사모아·버진아일랜드, 태평양과 카리브해에 퍼져 있는 섬들 등 훨씬 많은 영토와 군사기지를 보유하고 있다. 전 세계에 미군 기지는 800개가 넘는다. 영국, 프랑스, 러시아 등 그 외의 모든 나라가 보유중인 기지를 다 합쳐도 30개에 불과한데 말이다.
이 책엔 ‘로고 지도logo map’라는 용어가 자주 등장한다. 북아메리카 대륙으로 미국을 한정시킨 우리가 익히 아는 그 지도다. 그러나 그 다음 페이지에는 1941년 무렵 미국 영토였던 곳까지 포함시킨 확장된 미국 지도가 제시된다. 알래스카, 하와이, 괌, 미국령 사모아, 푸에르토리코, 미국령 버진아일랜드, 태평양과 카리브해의 섬들이 모두 포함된 지도다. 둘의 차이는 확연하다.
미국이 섬들을 점령한 이유는 대부분 군사적 필요 때문이다. 하지만 로고 지도는 대규모 식민지든 아주 작은 섬이든 할 것 없이 모두 배제한다. 게다가 그런 지도는 진실을 호도한다. 로고 지도만 보면 미국은 정치적으로 균일한 공간으로 묘사된다. 각각 동등한 지위를 갖고 자발적으로 편입된 주들로 구성된 연합체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는 사실이 아니며 사실이었던 적도 없다.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획득한 조약이 비준된 그날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미국은 주와 영토의 집합으로 이뤄진 국가다. 각각 서로 다른 법이 적용되는 두 영역으로 나뉜 분할 국가인 것이다. 그러나 미국은 20세기의 중반을 지날 무렵 ‘식민지’들을 포기하기 시작한다. 이 부분은 매우 중요한 것이다. 업그레이드된 눈에 보이지 않는 제국이 이로써 시작되기 때문이다.
영토-농업-산업화-군사력-기술력의 연결고리
이 책은 총 2부로 구성되어 있다. 제1부는 미국 초기 영토 확장의 역사를 다룬다. 앞서 서술한 최초 정착과 원주민 구역의 강탈부터 시작해, 과도한 농지 개발로 손상된 지력을 회복시켜줄 해조분(새똥 비료)을 얻기 위해 여러 섬을 점령하는 과정, 농업을 기반으로 해서 성장한 산업화, 산업화가 키워낸 군사력, 군사력을 기반으로 한 기존 식민 열강들과의 대결에서 거둔 승리, 그를 통해 확보한 자원과 인력을 다시 내지와 연결하는 방식 등을 연대기적으로 서술한다.
그리고 필리핀이라든지, 푸에르토리코 같은 인구 밀도가 높은 식민지를 통치하는 미국 특유의 방식이 어떻게 전개되었는지를 자세하게 풀어낸다. 먼저 필리핀을 3개 챕터를 할애해 다루면서 스페인에서 빼앗은 필리핀이라는 섬나라가 어떻게 미국에 저항하고 복잡다단한 과정을 거치면서 서서히 식민지화되어갔는지가 전개된다. 인종주의와 백인우월주의, 노예제 문제, 의회에서의 의견 대립, 잔인한 토벌작전 등으로 이어지는 모습에서 필리핀에 대해 몰랐던 많은 사실을 알게 된다. 푸에르토리코는 처음엔 하버드대 유학생으로 미국인으로서의 자부심이 강한 청년이었던 페드로 알비수 캄포스가 어떻게 반미 운동의 선봉에 나서게 되는지의 과정을 드라마틱하게 다뤘다. 핵심은 하나다. 필리핀인과 푸에르토리코인들은 미국인이 되길 바랐으나 그렇게 될 수 없었다. 그들은 모든 면에서 철저하게 차별되었다.
https://youtu.be/zLOmq9FSivk
미국, 유럽을 상대로 표준전쟁에서 승리하다
제2부 점묘주의 제국에서는 제2차 세계대전을 기점으로 하여 미국의 탈식민 정책을 쓰면서 전세계를 리모트 컨트럴 하는 점묘주의 제국으로 거듭나는 과정을 다루고 있다. 가장 흥미로운 대목은 바로 ‘표준’을 다룬 부분이다. 제2차 세계대전 후 미국은 특별한 지위에 놓였다. 부유하고 막강한 데다 화학자와 공학자들 덕분에 식민지 건설 없이도 해외 영토를 좌지우지하는 수단을 보유하게 됐다. 이것 말고도 전쟁 덕분에 유리한 입지를 차지하게 됐다. 이는 눈에 잘 띄지 않는 좀더 심층적인 수준에서 진행됐다. 바로 표준에 관한 것이었다. 모두가 표준을 원했다. 각 기업은 자사 방식이 표준으로 채택되도록 하는 데 필사적이었다. 거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표준 전쟁에서 진다는 것은 설비를 교체해야 한다는 뜻이었고, 그렇게 되면 고가의 새로운 기계를 구입해야 했기 때문이다. 미국은 이 싸움에서 결정적으로 유럽에게 승리했다. 표준화의 창시자로 불리는 허버트 후버의 활약이 다뤄진다. 제국의 표준화란 머나먼 땅에서도 식민 지배자의 관행이 지켜진다는 의미였다. 제국은 새로운 법과 아이디어, 언어, 스포츠, 군사 협정, 패션, 도량형, 예의범절, 화폐, 업계 관행 등을 식민지에 고스란히 옮겨놓았다. 실제로 식민지 관리들은 이러한 작업에 상당한 시간을 투자했다. 다시 말해, 영국의 도량형 체계(피트, 야드, 갤런, 파운드, 톤)가 제국주의 체계라고 불리는 데는 이유가 있다. 이러한 도량형은 영국 제도를 넘어 대영제국 전체에 동일한 단위 체계를 확립하기 위해 보급됐던 것이다. 그런데 이 ‘대영제국’의 모든 자리에 ‘미국’이 들어가 모든 것을 미국식 표준으로 대체해버렸다. 일단 표준이 확고하게 정해지면 이를 없애기란 어렵기 때문에, 예를 들어 독립 후에도 필리핀은 미국 중심의 간호 실무에 치중하게 됐다. 이는 한국도 마찬가지다.
왜 루스벨트는 필리핀이란 단어를 뺏을까
이 책엔 1941년 일본의 진주만 기습 직후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의 연설문 초고 사진이 실려 있다. 직접 펜으로 교정을 본 초고에서는 필리핀이 지워져 있고 하와이가 부각되었다. 연설의 내용은 일본의 미국 공격을 규탄하는 것이다. 필리핀을 지워버린 이유는 당시 미국인들은 필리핀을 전혀 자국의 영토로 인식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와이는 달랐다. 미국과 가까웠고, 백인의 거주 비율이 높았다. 실제로는 필리핀이 훨씬 거대한 면적과 인구를 가지고 있었지만 루스벨트는 전쟁에 대한 여론을 고취시키기 위해 필리핀을 없애고 하와이를 부각시켰다. 이것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반복되고 있다. 2017년 허리케인 마리아가 미국의 해외 영토인 푸에르토리코를 덮쳐 큰 피해를 입힌 이후 실시된 여론조사에서 푸에르토리코가 미국 땅이라는 걸 아는 미국인은 절반을 약간 넘는 수준이었고, 30세 이하에서는 37퍼센트에 그쳤다. 그러나 실상은 전 세계가 미국의 영토나 기지에 둘러싸여 있는 형국이다. 이것을 사람들이, 특히 미국인들이 인식하지 못한다는 게 이 책의 기본적인 문제의식이다.
미국 영토 확장의 역사: 왜 식민지를 포기했을까
확장된 미국 영토의 역사는 세 가지 면에서 기술될 수 있다. 첫 번째는 서부로의 확장이다. 국경선을 서쪽으로 넓히는 과정에서 북미 원주민을 쫓아냈다. 두 번째는 아메리카 대륙 외부에서 일어난 일로, 빠르게 시작됐다는 점이 두드러진다. 로고 지도의 모양을 완성한 지 3년이 되자마자 미국은 새로운 해외 영토를 합병하기 시작했다. 1867년에 알래스카를 점유했고 1898~1900년에 스페인의 해외 영토 대부분(필리핀, 푸에르토리코 및 괌)을 흡수하고 스페인령이 아닌 하와이섬과 웨이크섬, 미국령 사모아를 합병했다. 1917년에는 미국령 버진아일랜드를 사들였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까지 그 영토들은 확장된 미국 영토의 육지 면적에서 거의 5분의 1을 차지했다. 이곳 인구의 합계는 1억3500만 명이었다.
그러나 이후 전개 과정은 놀라웠다. 전쟁에서 이긴 후 영토를 포기한 것이다. 최대 식민지였던 필리핀이 독립했다. 미국은 점령지에서 빠르게 철수했고 (인구가 희박한 미크로네시아 군도 중) 단 한 곳만 미국령에 합병됐다. 다른 영토는 독립하지는 못했으나 새로운 지위를 부여받았다. 푸에르토리코는 ‘연방Commonwealth’이 되면서 강압적인 합병이 표면적으로는 동의를 거친 것처럼 보이게 됐다. 하와이와 알래스카는 수십 년간의 인종차별주의적인 결정을 극복하면서 주가 되었다.
이것이 바로 세 번째 측면의 의문을 불러일으킨다. 미국은 왜 권력의 정점에서 식민지 제국의 모습으로부터 멀어지고자 했을까? 저자는 그 질문을 자세히 파고들고 있다. 우선 피식민자들이 저항하며 식민지 제국을 몰아내려 했기 때문이다. 이건 당연한 세계 역사의 추세였다. 또 다른 답은 기술과 관련이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중 미국은 실제로 식민지를 보유할 필요 없이 제국의 수많은 이점을 실현할 수 있는 놀라운 기술들을 개발했다. 플라스틱과 기타 합성소재를 이용해, 열대작물로 만든 기존의 제품을 인공물로 대체했다. 비행기, 라디오, DDT 덕분에 합병할 필요 없이 손쉽게 미국의 상품과 아이디어 및 인력을 외국으로 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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