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2. 21
[막걸리를 빚는 학교]
지난해 안식년을 빼고는 줄곧 과학 수업으로 막걸리를 빚었다. 올해도 시작이다. 초등학교에서 과학과 수학 공부로 발효 막걸리를 빚는 수업은 단순한 요리 활동이 아니다. 술을 떠올리며 어찌 그런 활동을 하는가 물을 수 있다. 더 많은 이야기가 있지만 오늘은 간단하게. 이번 발효수업을 위해 고향에서 찹쌀을 가져왔고, 이화곡(쌀누룩)을 썼다.
발효 수업은 교과서 속 개념이 삶의 현장에서 살아 움직이는 순간을 경험하는 통합 교육의 장면이며, 아이들이 세계를 이해하는 방식을 바꾸는 배움의 과정이다. 아이들은 먼저 쌀을 씻고 불리고, 고두밥을 짓고 식히며 준비 과정을 함께한다. (쌀을 씻고 불리는 과정이 저녁때 이루어질 때는 교사가 앞채비로 먼저 하지만) 이때 이미 과학은 시작된다. 물을 흡수한 쌀의 변화, 뜨거운 증기 속에서 익어가는 고체의 상태 변화, 식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온도의 변화는 물질의 성질을 몸으로 느끼게 한다. 누룩을 섞고 항아리에 담으면 눈에 보이지 않는 미생물의 활동이 시작된다.
며칠 뒤 표면에 올라오는 기포를 보며 아이들은 묻는다. “왜 거품이 생길까요?” 그 질문 속에서 이산화탄소, 효모, 발효라는 개념이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과학은 설명을 외우는 일이 아니라, 관찰하고 질문하고 기다리며 해석하는 탐구의 태도임을 배운다.
수학 또한 추상 기호가 아니라 삶을 조직하는 언어가 된다. 쌀과 물의 비율을 맞추고, 누룩의 양을 계량하며, 시간을 계산한다. 12시간을 불리고 1시간 물을 빼고 며칠을 기다리는 과정에서 아이들은 시간의 흐름을 수로 이해한다. 재료를 나누며 분수와 비의 개념을 적용하고, 온도 변화를 기록하며 평균을 생각할 수 있다. 수학은 문제집 속 계산이 아니라 정확성과 균형을 이루는 도구가 된다.
이 수업의 더 깊은 뜻은 ‘발효’라는 시간의 교육에 있다. 발효는 서두른다고 완성되지 않는다. 적절한 온도와 조건, 그리고 기다림이 필요하다. 아이들은 즉각 결과에 익숙한 일상 속에서, 시간이 지나야 비로소 드러나는 변화를 경험한다. 이는 공부 또한 서두름이 아닌 성숙의 과정임을 몸으로 배우는 시간이다. 쌀이 술로 익어가듯 생각도 서서히 깊어진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또한 막걸리는 우리의 전통 발효 문화이다. 과학 수업을 통해 전통은 미신이 아니라 오랜 관찰과 경험이 축적된 지혜임을 이해하게 된다. 문화와 과학이 분리되지 않고 이어져 있음을 배우는 것이다. 한 항아리를 함께 빚는 과정은 공동체 교육이기도 하다. 일을 나누고 책임을 다하며 협력하는 경험 속에서 배움은 개인의 성취를 넘어 공동의 기쁨으로 확장된다.
초등 시기의 아이들은 구체 경험을 통해 사고를 확장한다. 손으로 만지고, 냄새 맡고, 보고, 기록하는 과정 속에서 개념은 추상이 아니라 실제가 된다. 발효 막걸리 수업은 과학과 수학을 삶과 연결하는 통합 교육의 한 모습이며, 지식을 주입하는 것이 아니라 삶 속에서 익혀 가는 교육의 상징이라 할 수 있다.
공부란 무엇인가? 배움은 어디에서 시작되는가? 여러 차례 발효 막걸리를 빚는 시간은 물질의 변화를 배우는 과학 수업이면서, 질서를 세우는 수학 수업이며, 동시에 삶을 가꾸는 교육의 철학을 실천하는 장면이다. 지식은 외워지는 것이 아니라 시간 속에서 발효되어 스스로 익어가는 것임을 아이들은 그 항아리 앞에서 배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