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차대전 유럽상공의 도륙새
루프트바페의 주익 포케볼프 1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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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륙새 (Butcher bird)라는 별명에서도 알 수 있듯이, one shot one skill을 전문으로 하는 독일의 강력한 이차대전 기종으로 이차대전을 배경으로한 비행시뮬레이션에서도 매우 큰 비중을 차지하는 기종... 얼마전 보게된 월드 워 2의 인트로 동영상에서 포케볼프의 활약상이 다시 생각나는 군요.... 그럼 이차대전 전투기 리뷰 씨리즈 제 2탄 루프트바페의 두 번째 전투기 190에 대해 알아볼까요?
도살새의 개발과정
JG 2의 에이스 지그프리트 슈넬의 Fw 190 A-4 기종..... 카울링에 검은 독수리 머리는 JG 2 비행단의 공통적인 도색이었다고 한다.....
이차대전 중, 총 2만대 가량이 생산된 Fw 190은 Bf 109와 함께 이차대전 독일의 양대 전투기 중 하나로, 날렵하고 화려한 검술의 검객이라기 보다는 일격필살로 상대를 꺽어 버리는 청룡언월도나 대부(큰도끼)를 휘두르는 전사에 가까운 기종이었다. 당시 Fw 190 A 형이 첫 대결 상대로 삼은 것은 영국의 스피트화이어 V형기로 초기 공중전에서 영국기들 보다 한수 우위의 기량을 유감없이 보여 주었다. 또 Fw 190A형은 공냉식 엔진을 사용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공기밀도가 희박한 고공에서 기동이 급격히 떨어지는 것을 제외한다면, 형제기인 Bf 109 보다도 여러면에서 앞선 기체라는게 정설이다. 또 Bf 109 보다 더 다양한 목적으로 사용되어, 전투기로서의 면모 뿐 아니라, 전폭기의 모습을 많이 투영시켜주는 기종이기도 하다.
[사진] 포케볼프 190 A-8 형의 칵크핏내부 모습... 정말 한번 앉아서 조종해 보고싶지 않습니까?... ^.^
Fw 190 전투기가 탄생하게된 원인은 크게 두가지 정도로 생각할 수 있는데, 하나는 독일 공군이 Bf 109 라는 단일 단좌 단엽기만으로는 다가올 전장에서 제공권을 확보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생각때문이었고, 나머지 하나는 서방세계에서 전혀 새로운 기종의 현대적인 전투기를 2 종류 이상 개발하고 있다는 독일정보부의 자료가 그 토대가 되었다. 어떻든간에, 현재 독일 자신이 자랑하는 세계제일의 공군력을 지속하고자 하는 노력의 일환이었다고 볼 수 있겠다. 1937년 겨울, 드디어 독일 공군은 전혀 새로운 개념의 전투기 개발을 위한 준비를 시작하게 된 것이다.
[사진] 포케볼프 190 A-4의 모습.. 아마도 정비를 받고 있는 듯한데, 랜딩기어가 접히는 모습이 인상적이군요...
독일 공군 내에는 수냉식 엔진을 선호하는 추종자들이 많았고, 그들은 Fw 190 에도 수냉식 엔진을 탑재할 생각이었다고 한다. 그들은 공냉식 전투기는, 기체의 기수 부분이 투박해, 대체적으로 유선형 기수를 가지는 수냉식 전투기 보다, 공기 저항이 많이 걸리고, 특히 카울링 부분의 부피가 커서, 이륙시 시야가 좋지 않다는 점 등을 들어 공냉식을 반대했다. 그러나 독일을 제외한 여러 국가에서 이미 공냉식 엔진 전투기들이 성공적으로 개발되는 추세였고, 결정적으로 Bf 109 등 수냉식 엔진을 사용하는 기체의 생산량이 많아지면서, 새로운 전투기에게까지 수냉식 엔진을 공급할 여력이 없었다. 우여곡절 끝에 Fw 190 기에는 공냉식 엔진을 탑재하기로 결정을 보게 된 것이다.
[사진] 포케볼프 190의 설계자 쿠르트 탕크의 모습... 나중에 Fw 190 씨리즈의 마지막 버전은 그의 이름을 따 Ta라는 명칭으로 사용되었을 정도로 뛰어난 항공 설계자였다고 한다.
포케볼프사의 항공기 설계자 쿠르트 탕크(Kurt Tank)가 설계 지휘를 맡아, 드디어 도륙새라는 별명을 갖게 되는 포케 볼트 190이 세상에 첫선을 보이게 된다. 초기 원형기는 공냉식 9 실린더의 BMW 132 형 엔진 두개를 하나로 결합시켜 만든 18 실린더의 BMW 139 형 엔진을 탑재했다. 엔진 자체가 컸기 때문에 조종석에서 시야가 썩 좋은 편은 아니었지만, Bf 109의 DB 601 엔진에 비해 1/4 정도 높은 파워를 얻을 수 있었다. ( 대략 1550 마력 정도의 출력을 낼 수 있었다고 한다.)
드디어 1939년 6월 1일, 대망의 시험비행(Fw 190 V1기)이 이루어졌는데, 포케볼프사의 시험비행 조종사 한스 산더(Hans Sander)가 영광스러운 첫 시승을 하게 되었다. 첫 비행 성능은 꽤 괜찮은 편이었다. 안정적인 비행과 조종성이 돋보였다. 그러나 새로운 공냉식 엔진이 과열되는 현상이 일어났고, 저속 비행에서도, 칵크핏 내 온도가 55 도까지 올라가, 찜통이나, 싸우나장 같은 느낌마저 들었다고 한다. 또 연소된 가스가 칵크핏으로 새어들어 산소마스크 없이는 비행이 곤란할 지경이었다.
[사진] 포케볼프 190을 최초로 시승하여 시험비행을 했던 포케볼프사의 수석 시험비행조종사 한스 산더의 모습
쿠르트 탕크는 엔진의 과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더 많은 공기를 엔진쪽으로 흘러들어가게 만들어야 했다. 그는 포케볼프기의 카울링 앞쪽에 10개의 날로 만든 공기 유입장치(10 blade fan)를 장착했다. (포케볼프기의 카울링에 보이는 사각형으로 튀어나온 금속 조각들) 또 엔진을 개량된 14 실린더의 BMW 801 D-2 형으로 교체했는데, 이전의 BMW 139 형 엔진보다 더 길고, 좀 더 중량이 나갔다. 자연히 BMW 139형에 맞춰 설계되었던 Fw 190의 구조가 변경되어야만 했다. 길어진 엔진 때문에 조종석이 좀 더 후방으로 옮겨졌는데, 이에 따른 부수적인 효과를 얻게 된다. 즉 엔진과 조종석 사이에 간격이 넓어져 조종석내 온도가 상승되는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되었고, 또 전방 카울링 부분에 여유 공간이 생겨 이곳에 여분의 화력 보강을 위한 장소로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또 주익과 수평미익의 면적도 증가시켰는데, 이것은 최고 속도를 10 km/h 정도 떨어뜨리기는 했지만, 상승력을 비롯한 다른 비행특성들을 향상시키는 개기가 되었다.
서부전선의 관문을 지키던 독일 JG 26 비행단의 Fw 190A-6형이 활주로에 대기중인 모습... JG 26은 엘리트 비행단인 만큼... 새로운 포케볼프가 등장할 때 마다 가장 먼저 보급된 비행단이기도 하다.
1939년 가을, V1 원형기의 결점을 개선한 두번째 원형기인 Fw 190 V2기가 만들어졌고, 1940년 1월, 루프트바페 총사령관 헤르만 괴링 앞에서 시험비행에 들어갔다. 이날 괴링은 포케볼프 190의 성능에 반해 버렸고, 될 수 있으면 빨리 본격적인 생산에 들어갈 것을 요구했다. 이렇게 해서 만들어 진것이 Fw 190 A-0형으로 JG 26 제 2 그루페에 공급되어 실전 조종사들에의해 시험비행을 가지게 된다. 여기서 발견된 문제점을 보완하면서, 드디어 Fw 190은 정식으로 대량 생산 체제로 들어 가게 된다.
Fw 190 A형
Fw 190 씨리즈 중 가장 많이 생산된 형으로, 가장 잘 알려진 버전이기도 하다. 이 중 A-1형은 1941년 중반부터 JG 26 전투 비행단에 처음 보급되기 시작했다. 당시 JG 26은 영불해협을 방어하던 독일 최고의 엘리트 전투비행단으로, 영국 전투기들을 상대로 Fw 190를 첫 실전투입했다. 그리고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Fw 190은 영국의 스피트화이어와 허리케인을 압도하는 성능을 유감없이 발휘한 것이다. 이제 도륙새(Butcher bird) Fw 190을 이용해, 북프랑스 연안의 제공권은 독일에게 완전히 넘어가게 된 것이다.
최초로 보급된 Fw 190 A-1형기의 일러스트.... JG 26에 몇대가 처음 보급되어 실전 조종사들에 의해 시험비행을 가졌다. 후속 버전인 A-2형은 A-1형과 외형상으로는 동일하고 무장만 업그레이드 된 것이라 한다.
이때 Fw 190과 처음 조우한 영국 조종사들은 Fw 190을 독일에 포획된 미국 전투기로 오인했다고 한다. 그러나 계속적으로 나타나는 Fw 190기들을 자주 접하게 되면서, 영국 공군은 이제 자신들이 강력한 새로운 적수를 만나게 되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얼마후 Fw 190도 최초로 격추당하는데, 격추시킨 장본인은 다름 아니라, 독일의 지상 대공포였다고 한다. 즉 1941년 8월 29일 덩커크 상공에서 임무 중이던 JG 26 제 6 비행중대 소속 하인쯔 쉔크 중위가 아군의 대공포화에 명중당해 격추되고 만 것이다.
A-1형의 무장
MG 17 7.92 mm 기관총 2정 (각 주익에 한정씩, 주익 안쪽에 위치)
MG FF 20 mm 기관포 2정 (각 주익에 한정씩, 주익 바깥쪽에 위치)
MG 17 7.98 mm 기관총 2정 (카울링 상당에)
JG 2 비행단의 Fw 190 A-3의 모습
A-1 형이 맛보기식으로 소수 정예 비행단에만 공급되었던 것에 반해, Fw 190 A-2형부터는 좀 더 많은 전투 비행단에 주력기로 공급되었는데, 일부 비행단은 1944년까지 이기종을 사용했다고 한다. A-1형과 외형이나 성능의 차이는 없었고 단지 무장만 업그레이드 되었는데, 주익 안쪽(주익의 동체 부착부)에 장착되어 있던 MG 17 7.92 mm기관총 2정을 MG 151 20 mm 기관포로 교체한 것이다.
처음 A-2형이 보급된 비행단은 JG 1, JG 2, JG 5, JG 26 등이었고 1942년 2월 12일 첫 실전 경험을 하게 된다. 즉 이날, 독일의 전함 그나인제나우(Gneisenau)호, 프린츠 오이겐(Prinz Eugen)호, 샤른호스트(Scharnhorst)호가 영국해협을 통과해야 했고, 독일 전투 비행단은 이를 호위하기 위해 출격한것이다. 이날 호위임무는 성공을 거두었고, A-2형은 합격점을 받았다. 최종적으로 A-2형은 총 952기가 만들어졌다고 전해진다.
[그림] 서부전선의 에이스 지그프리트 슈넬의 Fw 190 A-4형기의 모습
포케볼프 190 의 여러 버전 (A,D,F,G형) 중 가장 많이 생산된 버전은 A형이었고, 또 이중에서 가장 많이 생산된 세부버전은 A-3형이었다. A-3형은 최종적으로 약 2166대가 만들어졌는데, 전투기 뿐만 아니라 정찰기, 훈련기, 전폭기 등 다양한 임무로 활용되었다.
모든 전선에서 A-3형을 볼 수 있었는데, 특히 동부전선에 첫 보급된 포케볼프 190 버전이기도 했다. 또 유럽 대륙 본토 항공전을 위해 JG 1, JG 2, JG 11, JG 26 등에 보급되었으며, 일부는 북아프리카와 지중해 전선에도 파견되어 Fw 190의 활동 무대를 전 유럽으로 확산시킨 버전이기도 하다. A-3형과 A-2형과의 가장 큰 차이는 엔진의 변화였다. 기존의 BMW 801 C형에서 BMW 801 D-1형으로 교체했고, 또 추가 출력장치인 MW 50(메탄올과 물 혼합물을 분사하여 추가 출력을 얻는 장치)을 새로이 장착함으로써, 취약점이던 고공에서의 기동이 어느정도 향상되었다. 비록 1942년 중반부터 새로운 A-4형으로 서서히 교체되기 시작했지만, 많은 수가 종전 때까지 창공을 누비며, 제몫을 해냈다.
[사진] 포케볼프 에이스.... 나중에 코만도 노보트니를 이끌게되는 발터 노보트니.... 무스탕의 일격에 착륙도중 전사하고 만다. 그것도 자신의 상관이자 전설의 에이스 갈란트가 지켜보는 앞에서....
Fw 190 A-4형은 동부전선 독일의 전설같은 에이스들이 애용하던 버전으로, 이 에이스들 중에는 나중에 Me 262 제트기 부대인 코만도 노보트니를 이끌게 되는 발터 노보트니(Walter Nowotny), 그린하트 비행단으로 유명한 동부전선의 명문 JG 54의 탑건 오토키텔(Otto Kittel)등이 있었다.
소련의 전투기들은 특히 저공에서 기동이 매우 날카로왔는데, 독일기의 선회능력은 이들에 비해 떨어졌다. 이럴 경우, 에너지 파이팅으로 대처해야 하는데, 이때 적기와 마주치는 짧은 순간에 얼마나 데미지를 입히느냐가 매우 중요하게 된다. 이런 의미에서 메서슈미트 109 보다 강력한 화력을 자랑하는 Fw 190은 이들의 선택이기도 했다.(물론 독일 에이스 중에는 Bf 109만을 애용하는 109 팬들이 더 많기는 했지만...)
[사진] 오토 키텔..... JG 54 그린하트 비행단의 탑건이며, 불의에 전사하고 말지만, 역시 뛰어난 포케볼프 에이스였다.
또 동부전선의 에이스들 중 Fw 190A-4형을 이용해 단기간내에 괄목할 성과를 이룬 에이스라면 JG 51 대원이던 허버트 슈트라쓸(Hubert Strassl)을 들 수 있는데, 그는 1943년 7월 쿠르스크 전투 당시 극히 짧은 기간내에 37기의 격추를 달성해낸다.
자신의 Fw 190 A-4형 검은 4번기를 몰고, 1943년 7월 5일 오후, 4번의 임무 비행을 수행하는 동안 총 15기의 러시아 항공기를 격추시켰고, 다음날인 6일에는 10기 격추, 그다음날인 7일에는 2기 격추, 그리고 8일에는 3기의 러시아 전투기와 3 대 1로 조우하여 3기 모두를 한꺼번에 격추시키는 기염을 토해낸 것이다. 그러나 이날 슈트라쓸 역시 데미지를 입고 낙하산 탈출을 시도했으나, 고도가 너무 낮아 전사하고 말았다. 사실 에이스는 한마디로 자신의 전투기의 장단점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이라 말 할 수 있겠다.
이때 서부전선에서는 Fw 190 A-4형들이 새로운 상대를 만나게 되었으니 그것은 영국의 스피트화이어의 새로운 버전인 IX형이었다. 이전까지는 영불해 상공에서 포케볼프가 압도적 우세를 유지하고 있었으나, 향상된 스피트파이어의 새기종의 출현으로 만만찮은 호적수를 만나게 된 것이었고, 북프랑스의 창공은 점점 우열을 가늠하기 힘든 상황으로 변해 갔다.
에밀 랑(Emil Lang)의 Fw 190A-5형 전투기... 인류역사상 하루 최다 격추기록을 보유하고 있던 동부전선의 에이스였다.
Fw 190 A-8기의 모형
Fw 190 A-1 에서 A-4형까지는 외형상 특별한 변화가 없었으나, A-5형부터는 주목할 만한 외형상 변화가 생겨 난다. 즉 엔진 자체를 앞쪽으로 약 10 cm 가량 옮겼고, 동체 후방도 길이가 조금 늘어, 전체 동체길이가 9.1 m 정도로 길어진 것이다. 무장의 변화는 없었고, A-5형중 일부는 F형과 G형의 초기 형태를 갖추게 된다. A-6형에서는 무장변화가 있었는데, 주익 바깥쪽에 있던 MG FF 20 mm 기관포를 MG 151 20 mm 기관포로 교체한 것이 그것이다.
또 A-7형에서는 카울링 상단의 MG 17 7.92 mm 기관총을 MG 131 13 mm 기관총으로 교체해 막강화력을 자랑하게 되었다. 마치 Bf 109 G형부터 개머리판이 큰 MG 131 기관총을 장착해, 카울링 뒷쪽에 불룩 튀어나온 구조물이 생겼듯, Fw 190 A-7형부터는 카울링에 그와 유사한 구조물이 생겨나게 되었다. A-7형의 세부버전 중 하나인 A-7/R2형에서는 주익 바깥쪽 기관포를 MK 108 30 mm 기관포로 교체하기도 했다( MK 108 기관포를 장착하기 위해, 주익 상판에 불룩한 사각형 구조물이 새로 생겼다) 또 마지막 버전인 Fw 190 A-9형에서는 엔진을 향상된 BMW 801 T형으로 교체해 사용했다고 전해진다.
출격 준비 중인 Fw 190 A-6형의 모습... 캐노피가 열린 모습이 뒤로 젖혀지는 것이 109와는 많은 차이가 있네요...
Fw 190 A-8형의 제원
날개나비 : 10.49 m
동체길이 : 8.84 m
기체높이 : 3.96 m
중량 : 4900 kg
최고속도 : 408 mph (653 km/h)
항속거리 : 900 km
엔진 : 14 실린더 BMW 901 D형 엔진 1700 마력, MW 50 부스터
무장 : 13 mm 기관총 2정, 20 mm 기관포 4정, 혹은 20 mm 2정과 30mm 2정
Focke wulf 19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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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포케볼프의 비행모습.... 그냥 날아가는 모습 자체도 정말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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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케 볼프 190의 여러 버전을 이야기할때 통상 A, F, G형을 한그룹으로 묶고, D형은 따로 설명하는 경우가 많다. 그것은 F형과 G형이 Fw 190 A형의 기본 구조를 유지한 채, 목적에 따라 약간의 구조적 변화만 주어 만들어 졌기 때문이다. 이런 사실은 A, F, G형이 모두 동일한 생산라인에서 만들어진 것 만 봐도 쉽게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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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w 190 F형, G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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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마디로 이야기해, Fw 190 F형은 빠른 속력을 보유한 전술용 전폭기였다. 1942년 초, Fw 190 A기 일부 버전을 지상공격 목적으로 사용하면서, 포케볼프가 대지 공격용으로도 괜찮은 기종이라는 것이 명백해졌다. 이에 포케볼프사는 기존의 Fw 190 A형을 폭격용으로 개조하여 F형이라 명명했다. 1944년 중반 노르망디 상륙작전 전까지 주목할 만한 지상전은 모두 동부전선에서 일어나고 있었고, 자연히 이당시 만들어진 F형도 동부전선 전용이었다 말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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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러 가지 기장 공격용 무기를 시험적으로 장착해보았던 Fw 190 F-8형의 일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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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w 190 A-4, A-5형에서 주익의 기관포를 제거하고, 동체와 주익아래에 50, 250, 500 kg 투하용 폭탄을 탑재할 수 있게끔 만들었으며, 저공에서 적 대공포로 부터 조종사와 엔진을 보호하기 위한 장갑판이 덧씌워진 것이 바로 Fw 190 F-1기였다. 장갑판과 적재 폭탄의 증가로 포케볼프 F은 기동성을 많이 희생해야했고, 화력이 줄어 결과적으로 적 전투기를 상대하기에는 역부족이었으나 저공으로 지상 공격에는 어울리는 기종이었다. 또 주익의 기관포를 아예 30 mm 기관포로 바꾸려는 시도도 있었다. 이것은 다분히 지상 폭격과 함께, 러시아 전차를 목표로 한 발상이었다. 그러나 무게만 늘 뿐 이 기관포가 러시아 전차의 장갑을 관통하지 못한다는 것이 밝혀져, 추가 기관포 계획은 취소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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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형중 가장 많이 생산된 것은 Fw 190 F-8형으로, 이 역시 Fw 190 A-8기의 틀을 기본으로 1944년 3월경부터 생산에 들어갔다. Fw 190F-8기는 250 kg 폭탄 2개와 500 kg 폭탄 1개, 총 1톤의 투하용 폭탄을 적재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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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44년 동부전선에서 독일은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었고, 밀려 들어오는 러시아의 지상군을 막아내기 급급했다. 적의 차량이나 전차 같이 기동이 빠른 목표에 투하용 폭탄은 명중율이 떨어지게 되고, 독일공군은 움직이는 표적을 명중시킬 수 있는 무기가 절실히 필요했다. 그러나 완벽한 성능 검사를 받은 무기가 부족해, Fw 190 F-8형이 여러 종류의 무기를 교대로 장착해 사용함으로써 시험 대상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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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에는 28 cm 구경 W.Gr. 28/32 미사일을 장착해 실전에 써보았으나, 독일 미사일은 궤적의 곡선이 매우 큰 편이라 발사직전에 적 차량을 정확히 겨냥할 수 없었다. 두번째로 PD 8.8 미사일(Panzerschreck 88mm 구경) 미사일을 장착했고 어느정도 성공을 보았으나, 사거리가 137 m로 극히 짧다는 단점이 있었다. 나중에 이를 개선한 사거리 200 m의 Pb 1 (Panzerblitz) 미사일이 개발되어 사용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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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w 190 G형은 장거리 전폭기로 개발된 기종으로 F형과 마찬가지로, A형을 변형하여 만들었다. 이들은 보통 외부 연료 탱크 2개를 달고 다녔는데, 연료무게만도 거의 880 kg이나 되어, 기동성이 많이 떨어졌다. 게다가 이륙시 좀 더 긴 활주로가 필요했고, 이문제 해결을 위해 새로운 비행장을 건설하는 대신, 기체 자체 중량을 줄이는 해결책을 썼다. (주익에 2정의 20 mm 기관포만을 장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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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w 190 D (Dora) 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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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긴 코(Long nose, 기수 부분, 즉 카울링에 해당하는 부분이 길다는 의미)"라는 별명으로 더 유명한 Fw 190 D형은 포케볼프 190 씨리즈 중 가장 뛰어난 기종으로 인정받고 있다. 1943년 독일 공군은 고공에서 몰려 오는 연합군의 대규모 폭격 편대를 상대해낼 전투기가 절실히 필요했는데, Fw 190 A형은 공냉식 엔진을 채택하고 있어, 공기 밀도가 희박한 고공에서는 기동이 만족스럽지 못했다. 이제 독일 공군의 요구에 의해, 포케볼프사의 쿠르트 탕크는 고공 폭격기 요격용 Fw 190 개발에 매진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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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w 190 D-9형이 출격 준비중인 모습...... 포케볼프 씨리즈 중 단연 최고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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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험용으로 BMW 801 공냉식 엔진을 탑재한 Fw 190 B형, DB (Daimler Benz) 603 형 공냉식 엔진을 탑재한 Fw 190 C형, 마지막으로 융커스사의 12 실린더 유모 (Jumo) 213 수냉식 엔진을 탑재한 Fw 190 D형이 만들어졌고 성능시험에 들어갔다. 이중 B형과 C형은 여러가지 문제로 생산에서 제외되었고, 최종적으로 D형이 대량생산용으로 채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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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쿠르트 탕크는 생산량에 문제가 있어 당장은 채택할 수 없어 열외된 DB 603 엔진을 더 선호했고, Fw 190 D형은 DB 603 엔진이 원활히 공급될때까지 임시적으로 유모 엔진을 탑재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계획은 수포로 끝났다고 말하는 것이 옳겠다. 즉 거의 실전에 사용되지 못한 포케볼프의 최종 버전인 Ta 152(쿠르트 탕크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전투기 제조사였던 포케볼프사의 이니셜 Fw 대신 설계자 탕크의 이니셜 Ta를 전투기 명칭에 사용한 것, 이것은 BFW 항공사의 빌리 메서슈미트가 개발한 Bf 109를 그의 이름을 따 Me 109로 부르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에 가서야 그가 계획했던 DB 엔진이 채택되었고, Fw 190 D형은 끝까지 유모엔진을 장착해야만 했던 것이다.
- 역시 Fw 190 D-9형의 일러스트. A형이 공냉식엔진을 썼던 반면, D형은 처음부터 고공 기동을 주 목적으로 했기 때문에 수냉식 엔진을 채택해 사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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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모 엔진을 새로이 채택하면서 포케볼프는 외형상으로 많은 변화를 격어야만 했다. 즉 "긴 코"라는 별명에서도 알 수 있듯이 기수 부분이 훨씬 길어졌고, 비율을 맞추기 위해 동체 뒷쪽의 길이도 늘어났다. A형의 경우, 동체 길이가 약 9 m 였던 것이 D형에서는 약 10 m 정도로 커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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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Fw 190 D-9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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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w 190 D-0 형과 Fw 190 D-1이 1943년 가을 경, 생산되어 실전 조종사들이 시험비행을 해보았고, 실질적인 대량 생산체제는 Fw 190 D-9형이 보급되던 1944년 여름에 가서야 이루어졌다. (Fw 190-2부터 Fw 190-8형 까지는 생산이 취소되었다고 한다) Fw 190-9형은 유모 213A-1형 엔진을 탑재했고, 출력은 1770 마력가량되었으며, 추가 출력장치인 MW 50 분사장치(water/methanol, 한번에 약 10 분 가량 사용이 가능했다고 하며, 총 40분 가량 쓸 수 있는 양의 메탄올을 실었다고 하니, 한번의 임무비행에서 4번에 걸쳐 이 부스터를 사용할 수 있었다.)를 장착하여, 3300 m 상공에서 최고 2240 마력까지 출력을 높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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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본 무장은 주익에 2정의 MG 151 20 mm 기관포와 카울링 상단에 2정의 MG 131 13 mm 기관총과 추가로 500 kg 짜리 투하용 폭탄이 장착가능했다. 고공에서 날아오는 연합군 폭격기에 빨리 접근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상승력이 중요했는데, 3000 m 상승하는데 약 2분, 10000 m 상승에 약 16분이 소요되어, 만족할 만한 성능을 보였다. 또 적 폭격기 편대의 강력한 방어 기총을 고려하여, 조종사를 보호하기 위해 8mm 에서 14 mm 두께의 장갑을 조종석 주변에 새로이 추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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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Fw 190 D-12형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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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44년 8월, 공장에서 갓 출시된 반짝 반짝한 Fw 190 D-9기들이 JG 54 제 3 그루페를 시작으로 전선에 속속 보급되기 시작했다. 처음 일선 조종사들은 D형의 특이한 외형과 유모 엔진의 성능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었다. 즉 그들은 융커스사의 유모 엔진은 폭격기용 엔진이지 전투기에 탑재할만한 것이 아니라는 생각들을 했다. 그러나 이런 비판적인 선입견은 D형을 탑승해 본후 말끔히 가셨다. D형은 그들이 종전에 탑승하던 A형보다도 더 선회력이 뛰어났고, 루프기동과 급강하 능력도 더 빠르고 우수했던 것이다. D형을 타 본 조종사들은 한결 같이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 "이녀석은 우리 공군이 만든 프롭 전투기 중 최고야. 미국의 P-51 무스탕보다도 더 우수한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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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 파파게이 비행대의 Fw 190 D 전투기의 모습.... JV 44의 제트기의 이착륙시 그들을 호위하는 임무를 띠고 있었다. 이들은 지상 대공포 요원들에게 피아구별을 해주기 위해, 전투기 바닥을 붉고 흰줄을 그려넣어 "파파게이(앵무새)" 비행대라고도 불리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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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w 190 D 기가 수행한 임무 중 특이 한것은 Me 262 제트 전투기 부대의 호위 비행대 역할을 한 것을 들 수 있겠다. Me 262는 이착륙시 속도가 떨어지면, 방어가 매우 취약해, 연합군 전투기들은 주로 이런 상황을 공격 시점으로 삼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가장 유명한 제트 전투기 호위 포케볼프 비행대는 갈란트가 이끈 JV 44 비행대 소속 파파게이 비행중대였다. 이들은 또 아군 대공포 사수들이 피아식별을 쉽게 할 수 있도록, 붉은 줄과 힌줄을 동체와 날개 바닥에 도색해, 거의 써커스 비행단 수준의 화려함을 보인 것으로도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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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후 프로펠러 축에 MK 108 30 mm 기관포를 장착한 Fw 190 D-10형이 소량 시험적으로 제작되었고, 또 1945년 3월에는 유모 213F형 엔진과 MK 108 기관포 1정(프로펠러 축),과 MG 151 20 mm 기관포(주익)를 장착한 Fw 190 D-12형이 생산되었으나, 이미 종전이 임박해 활약은 거의 없었다. (1944년 중반이후 부터 종전까지 약 700 대 정도의 D형이 생산되었다고 전해진다. D형의 최종 버전은 D-13 형으로 종전으로 원형기 이외는 생산되지는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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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w 190 D-9형의 제원
- 날개나비 : 10.5 m
- 동체길이 : 10.2 m
- 기체높이 : 3.35 m
- 중량 : 3490 kg
- 최고속도 : 426 mph (685 km/h)
- 항속거리 : 835 km
- 엔진 : 12 실린더 융커스 유모(Junkers Jumo) 213 A-1 수냉식 엔진, MW 50 부스터
- 무장 : 13 mm 기관총 2정, 20 mm 기관포 2정, 500 kg 투하용 폭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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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a 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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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케볼프의 설계자 쿠르트 탕크가 처음 D형을 계획할 때부터, 탑재하려고 했던 DB 603 공냉식엔진을 채택한 새로운 포케볼프가 만들어졌다. 그러나 이미 종전이 코앞에 다가온 시기라 생산량은 미미했고 활약은 거의 전무했다. 이 기종이 바로 Ta 152기로 알려져 있는 포케볼프 D형의 동생벌에 해당하는 기종이다. 종전까지 포케 볼프 항공사의 이름을 따서 Fw 로 명명하던 것을 설계자 탕크를기억하기 위해 Ta라는 명칭을 사용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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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무 늦어 버린 마지막 희망, 포케볼프의 마지막 버전 Ta-152 전투기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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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a 152는 14.5 m 나 되는 주익의 길이를 자랑했고, 755 km/h의 속력을 낼 수 있었으며, 프로펠러 축에 30 mm 기관포 1정과 주익에 20 mm 기관포 2정을 탑재했다고 전해진다. 만약 대량생산이 빨리 이루어졌다면, Me 262에 필적할 만한 폭격기 요격용 전투기가 되었을 거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H형과 C형이 있었다고 하며, 저고도 지상공격용인 C형은 실전에 일부 투입되었다고 전해지며, 생산량은 약 200대 미만이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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