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산도(閑山島. 한뫼, 큰뫼)는,
통영시 한산면에 있는 섬이다.
한산도는
동이순신(李舜臣)의 최대 전승지인
한산대첩을 이룬 곳으로,
이순신의 영정을 모신 충무사(忠武祠)와
한산정(閑山亭).수루 등이 있다.
또한 산봉우리에는 한산대첩기념비가 세워져 있으며,
그 앞에 거북등대가 있다.
동백나무 숲이 울창한 이 섬에는
매년 섣달 그믐날 및 정월 초하룻날에는
승려가 먼저 산신제를 올린다.
오늘은 음력 7월 15일 보름달이 밝은 날이다.
죽고자 하면 살 것이고 살고자 하면 죽을 것이다.
나의 죽음을 적에게 알리지 말라고 한
“이순신정신”을 되새기는 날이다.
우리나라에서에서 뉴라이트(New Right)는
2000 년대 중반 이후에 등장한
기존의 올드라이트(Old Right)와 대비되는
신우파(신우익)를 이르는 말이며
영어의 신(new) +우익(right)의 합성어이다.
뉴라이트는,
기존의 보수와 다른 신흥 우파가 표방하는 이념이며.
주로 좌파 운동권 출신이 전향하여
기존의 진보와 보수에 대한 극복을 주장하고,
실용주의 노선으로 경제, 정치, 역사, 사회적으로
새로운 세력화를 꾀하는 정치적인 계파이다.
절집에서는 매주 한 번씩 총 7회의 법회(49재)를 열어
돌아가신 분들을 추모하면서 극락왕생을 기하며
백중기도(百中祈禱)를 한다.
불자들은 여름 안거 마지막 날,
음력 7월 15일에 맞추어 7 번째 법회를 열고
여름 안거 수행을 마친 스님들께 공양을 올리기도 하고
동시에 방생(放生)으로 포획된 동물을 살리고
자연으로 돌려보내는 법회를 통해
그 공덕을 다시 세상으로 돌려준다.
백중(百中)이라는 애도 기간은
유족들이 비로소 마음속 깊은 곳으로부터
망자를 떠나보내는 진짜 이별을 준비하는 시간이다.
불교에서는 백중을 우란분절(盂蘭盆節)이라고도 부른다.
또한 하안거 해제 일에 마지막 법회가 맞춰져 있기 때문에
이날 여러 스님 즉 백중(百衆)이 모여
여름 안거 중의 그릇된 행동을 스스로 참회하고
서로 경책하는 자자(自恣)를 하고,
아울러 여러 사람들 앞에서
그간 수행이 성취된 바를 알린다는 의미에서
백중(白衆)이라고도 한다.
우란분경(盂蘭盆經)에 부처님의 제자인 목건련은
어느 날 선정(禪定)에 들어
신통력으로 돌아가신 속가 어머니를 찾아보니,
전생의 악업으로 인해
아귀가 되어 목이 타고 굶주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목건련은 어머니를 구제해보려고 시도하지만
어머니의 악업이 너무 두터워 모두 허사였다.
그래서 슬픔에 빠진 목건련이 부처님께 사정을 털어놓는다.
부처님께서는 스님들의 하안거가 끝나는 날에 법회를 열어
안거 수행을 마친 스님들에게 정성스럽게 공양을 올리면
네 어머니가
지옥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방편을 일러주었다.
이처럼 목건련이 "우란분재(盂蘭盆齋)"를 열어
어머니를 구제할 수 있게 된 사연이 백중의 유래이다.
여기까지 언뜻 들으면
목건련이 자식으로서 어머니를 위해
마땅히 할 바를 다 한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그 내막을 알고 보면 사정이 달라진다.
목건련은 출가 전,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돈을 벌기 위해 먼 길을 떠나면서
어머니께 전체 유산의 3분의 1을 드리고,
거기에 더해 자신이 없는 동안 매일 스님들을 초청해
아버지의 극락왕생을 비는 재를 베풀어달라고 당부하면서
어머니께 드리고 남은 유산의 절반을 또 드렸다.
그러나 목건련의 어머니는 재를 지내기는커녕,
그 재산으로 놀기 좋아하는 사람들을 불러들여
방탕하게 놀면서 매일 향락에 빠져들었다.
그런 줄도 모르고 목건련은 어머니를 그리워하며
장사에 전념해 큰돈을 벌고 고향으로 돌아오는데
어머니의 방탕한 생활에 대한 소문이 파다해서
결국 목건련의 귀에까지 들어갔다.
나중에 목건련이 시종을 시켜 소문의 진위를 파악하게 했지만
그마저도 어머니가 매수해서 진실을 알 수 없게 된다.
목건련의 의문에도 시종일관 거짓으로 일관하던 어머니는
만약 자신의 말이 거짓이라면 일주일 안에 자신이 죽을 것이고
지옥에 태어나서 거꾸로 매달리는 고통을 받게 되리라고 하는데,
아닌 게 아니라 자신이 말한 대로,
어머니는 7일 후에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게 되고
지옥에서 고통을 받게 된다.
이후 목건련이 그 진실을 알게 된 후,
어머니를 용서하고 화해하게 된다는 이야기가
"우란분재"의 배경이다.
죽음은 슬픈 일이다.
그러나 때로는 죽음이 현재 삶을 살아내는 우리들에게
통찰과 지혜 혹은 위로를 건네주기도 한다.
백중은 우리들에게 죽음이 단순히 삶의 종식이 아님을 말해준다.
백중은 못다 한 이야기의 장이자,
목건련과 그의 어머니 이야기가 그렇듯이
자비와 용서, 화해의 메시지이기도 하다.
물론 그 전제는
그 죽음에 대해 어떠한 의혹이나 궁금증이 없어야 한다.
그것이 망자가 세상에 남겨진 원한이나 미련이나 집착 없이
이 세상을 떠나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조건이다.
결국 화해와 용서 이전에 진실이 더 우선이다.
사람이 품위 있고 존엄하게 생을 마감하려면
있을 때 진실하고 잘해야 후회됨이 없다.
있을 때 베풀고 칭찬하며 살아야 내가 복을 짓는다.
웰다잉(well dying)은,
몸과 마음의 편안함과 행복을 추구하는 태도나 행동이다.
그러니 사람은 웰빙(well-being)을 잘해야 잘 죽을 수 있다.
사람은 잘 살기도 잘 살아야 하지만 죽기도 잘 죽어야 한다.
하루를 살아도 감사하고 보시(布施)하며 살고
역지사지(易地思之)하며 용서하고 살면
죽음이 모든 게 끝나는 것도 아니며 또한 슬픔도 아니다.
잘 살고, 잘 준비하고, 잘 마무리하는 삶이 필요하다.
내가 오늘 하루를 살면서도
매 순간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면서 살면 답이 나온다.
매일매일 최선(最善)을 다하며 후회 없이 살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을 할 수 있다.
<쇳송. 3387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