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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욕의 절정>
written.·까르
불펌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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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화려하네요."
"제가 나이트사장은 아니지만 칭찬을 들으니까 기분은 좋네요, 이한샘씨."
영호와 한샘이 나이트 안으로 진입한 뒤, 한샘이 처음 내뱉은 말이었다.
한샘은 자기가 여태껏 몸담아 살아왔던 곳과는 다른 나이트라는 곳이 신기하게만 느껴졌다.
그의 나이 22살, 돈이 아깝다는 이유로 여태 들어와본 적 없던 나이트.
한샘에게는 화려하고 재미있는 곳이라는 첫인상이 문득 다가왔다.
영호가 말했다.
"아까 전에 작성했던 종이를 좀 주실래요?"
"조, 종이? 아. 그거요!"
"네. 도장을 좀 찍게요."
"아, 네!"
영호와 한샘이 나이트를 거닐면서 말했다. 한샘은 곧 영호가 원하는 종이를
주머니에서 꺼냈다. 꾸깃꾸깃 접혀져있었지만 영호가 문서를 확인하는 데는 어려움이 없었다.
영호는 문서를 펴들더니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 그리고서 한샘에게 말했다.
"도장을 찍고 올게요. 나이트 안, 한 번 구경해보세요."
끄덕끄덕. 한샘에게서 멀어져만 가는 영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한샘이 고개를 끄덕였다.
한샘은 시선을 화려한 조명, 그리고 거친 음악에 몸을 맡긴 젊은이들에게로 내주었다.
음악과 함께 몸이 자연스레 흘러내려간다. 처음 보는 사람들과도 어울릴 수 있는 젊은이들에게서
젊음의 패기가 느껴짐을 한샘은 몸소 경험했다.
17살 때 상상하던 그대로였다. 때때로 친구였던 재찬과 1학년이 끝나갈무렵 나이트에 대해서,
어른들의 문화에 대해 잘 얘기하곤 했었는데 재찬이 말했던 그대로였다.
많은 테이블, 그리고 그 테이블위의 양주들과 다양한 안주. 그리고 엉덩이를 치켜올리며
자연스레 춤추는 사람들, 음악에 몸을 맡긴 DJ, 이곳 저곳 바쁘게 돌아다니는 웨이터들.
한샘은 빙그레 웃었다.
"손님 한 분이세요?"
한샘이 새로운 문화에 적응해나가고 있을 무렵 갑자기 노랑 머리띠로 앞머리를 모두 깐 웨이터 한 명이
한샘에게 다가와 물었다. 그가 입고 있던 유니폼을 알면 그가 웨이터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었는데
그는 가슴팍에다가 '맘마'라는 명찰을 달고 있었다. 이 호박나이트의 닉네임이었나보다.
한샘이 맘마의 물음에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면서 말했다.
"아니요. 나 손님 아니에요."
"나이트에 있는 사람들 중 웨이터가 아니면 다 손님이지. 손님이 아니시면 여기 왜 오셨어요?"
한샘의 답에 웨이터가 장난스레 말했다. 허나 웨이터 딴엔 장난스레 던진 말이었으나 한샘의 표정은
굳어버렸다. 처음 보는 사람이 왠지 자신에게 따지는 듯한 말투로 말하니 극소심한 한샘으로서는
무진장 긴장될 수밖에 없던 분위기였다.
나이트 안이 워낙 시끄럽고 분주한 터라, 한샘은 웨이터가 그 후로 무슨 말을 하는 듯 입을 벙긋
거렸지만 듣지 못했다. 듣고 싶지도 않았고 잘 들리지도 않은 게 사실이었다.
"이한샘군? 맘마!"
그 때였다. 신랄하게 맘마 혼자 입을 벙긋거리며 한샘에게 무언가를 말하고 있을 때
영호가 한샘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그들에게 다가왔다. 한샘은 마음을 놓았다. 모르는 사람에게
붙잡혀 그 사람의 말을 듣는척한다는 것은 매우 곤혹스러운 일이었다. 그럴 때 나타난 영호는
한샘에게 있어 한줄기의 빛과도 같았는데 한샘은 그런 영호가 너무 고마웠다.
맘마가 영호를 보면서 말했다.
"A-yo!"
"그따위 영어 때려쳐, 맘마. 한샘씨를 데리고 뭘 하는 거야?"
"한샘씨? 저 사람 이름이 한샘이?"
"그래, 내일부터 알바 뛰게 될 신입이야."
"얼라리! 신입?!"
영호와 이야기하던 맘마가 오오!하며 한샘을 바라보았다. 유난히 맘마의 노란머리띠가
거슬리는 한샘이었다. 맘마는 빙그레 웃었다. 그리고선 은근히 자신의 눈빛을 피하는 한샘의
두 손을 꼭 잡고서 말했다.
"우리 나이트에 여직원이 들어오는 건 처음이야. 잘해보자고."
"이봐, 맘마……."
여직원? 한샘은 영혼이 빠져나감을 느낄 수 있었다. 어딜 봐서 자기가 또 여자로 취급을 받아야하는
거지? 한샘은 자신의 정체성에 매우 큰 혼란을 맞게 되었다. 영호는 맘마의 어깨를 툭 치며
'남자야.'라며 귀뜸해주었고 의아해하며 놀라는 맘마를 바라보며 한샘은 맘마가 잡은 두 손을
뿌리쳤다. 그리고 두 손을 탈탈 털면서 말했다.
"여자가 아니라 남자에요. 이 한 샘, 남자라고요."
"남자? 그렇게는 안 보이는데……."
"난 남자야!!"
끄덕끄덕. 한샘의 소리침에 맘마는 억지로 고개를 끄덕였다. 맘마에게 있어서 한샘은 그저
귀여운 여자아이일 뿐이었다. 단지 흠이 있다면 가슴이 없다는 것, 그리고 여자애 치고선
키가 컸다는 것. 그리고 머리카락이 짧았다는 것. 이 세가지를 덮어둔다면 한샘은 무조건 여자였을
텐데. 맘마는 조금 아쉬웠다. 영호가 분위기를 수습하려 입을 열었다.
"아, 둘다 그만하고. 우선 한샘씨 미안해요. 맘마가 장난기가 좀 심해서요. 그래도 이 나이트에서는
귀염둥이로 인정받고 있다구요. 용서해주세요."
"용서 안하는 건 아니에요. 그냥 계속 여자여자 거리길래 그냥."
한샘은 가만히 맘마를 슬쩍 바라보았다. 여전히 한샘을 여자보듯 바라보는 맘마였다.
화를 내볼까도 싶었지만 영호가 용서하라고 부탁하는 바람에 대뜸 화를 낼 수도 없었다.
한번 참아보자. 한샘은 한숨을 내쉬었다.
"고마워요. 용서해줘서. 맘마! 너도 계속 그러면 아주 혼날 줄 알아."
"하지만 진짜."
"너 계속 그럴래!"
"아니요."
피실피실 웃고 있는 한샘을 향해 맘마는 중얼거렸다. '진짜 여잔데.'하면서 말이다.
다행히 그 말을 영호와 한샘이 듣지 못해서 다행이지. 만약 들었다면 맘마의 뼈는 남아나질
못했을 것이다. 한샘도 왕년엔 주먹을 좀 썼다고 이름날렸으니까. 뭐. 지금은 잼병이지만
말이다. 영호가 말했다.
"한샘씨, 우리 자리에 앉죠. 내일부터 한샘씨가 알바를 하러 오시려면 알아야할 게 몇가지 있으니까요."
"네에. 그래요."
"나도! 나 지금 부르는 사람 없으니까 나도 가서 거들래."
영호와 한샘이 뒤돌아서서 조용한 곳으로 자리를 옮기려던 찰나 맘마가 들고 있던 쟁반을
빈테이블 위에 던져놓듯 올려놓고선 그들의 뒤를 따라나섰다. 그러면 맘마를 그닥 좋지 않은
눈빛으로 바라보는 영호. 하지만 맘마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맘마, 사실 그는 한샘이 여자라는
사실에 목숨걸고 올인하고 있었기에 한샘을 더욱 더 지켜보고 싶었다.
영호는 그런 맘마를 바라보면서 우선 한샘에게 양해를 구했다. 맘마의 고집이 황소고집이라는 것,
나이트직원들이 모두 알고 있었기에.
"전 별로 상관없어요."
그렇게 마음이 넓은 한샘의 허락이 떨어지자 영호도 고개를 끄덕였다. 맘마는 히히웃으면서
그 둘을 따라갔다. 영호와 한샘, 그리고 맘마는 지점장실로 들어가 소파에 앉았다.
원래 직원휴게실을 이용하려 했지만 옷을 갈아입고 있는 직원들이 너무나 많아서 그럴 수도 없었다.
영호는 한껏 카리스마를 잡으며 소파에 앉았고 한샘은 쭈삣쭈삣 어색하게 소파에 앉았다.
맘마는 이리저리 지점장실을 살펴보며 곧 지점장들이 앉는 푹신한 의자를 끌어다가 앉았다.
영호가 지적을 주었지만 끝까지 뜻을 굽히지 않는 맘마 덕에 시간만 지체될 뿐이라며 곧 포기하고
말았다. 한샘이 보기론 나이트의 골칫덩이를 꼽으라면 분명 모든 직원들이 맘마를 뽑을 거라고
확신했다.
"이야기한 건 없는데 저 녀석 때문에 시간이 지체되서 죄송해요, 한샘씨."
"네? 아니요. 죄송할 필요 없어요. 전 시간이 많아요."
"그래도 죄송합니다. 그럼 지금이라도 본격적인 이야기에 들어가봐요."
"네. 무슨 말씀을 하시려고 조용한 곳까지 찾아……."
"아참! 쭈꾸미!! 어제 우리 나이트에서 난동부리다가 쭈꾸미 얼굴에 토한 여자분이 아까 전에
쭈꾸미를 또 찾았……."
"맘마!!! 좀 조용해!!"
영호와 한샘의 대화에 또 난대없이 끼어든 맘마를 향해 영호, 쭈꾸미가 소리쳤다.
하지만 맘마는 쭈꾸미의 고함에도 전혀 정신차리지 못한 듯 두 눈을 똥그랗게 뜨고서
한샘을 바라보며 빙그레 웃는 것이었다. 원래 맘마는 그런 성격이니까. 한동안 맘마를 정말
혼낼 눈빛으로 바라보던 영호였지만 곧 인상을 풀고서 한숨을 내쉬며 한샘을 마주하였다.
한샘은 영호가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맘마라는 사람, 왠지 골치아플 것 같다는 생각은
한샘뿐이었던가.
"내가 무슨 말만 하면 저래……."
혼자 조용히 중얼거리는 맘마였다. 그런 맘마가 0.1초동안은 불쌍하게도 느껴졌지만 이내 곧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생글생글 웃는 맘마를 볼 때면 한샘은 정말로 제정신으로 버티기 힘들 정도였다.
영호가 말했다.
"그냥 얼른 말하고 끝내야할 것 같네요. 맘마가 말이 좀 많아요."
"그런 것 같아요. 수다스러워요."
"맘마. 너무 수다스러워서 손님들사이에선 수다왕이라고 불려요. 아무튼간에 한샘씨는
나이트에서 일하는 것 처음이겠죠?"
"네."
"그럼 애초 나이트에서 쓰는 닉네임 정도도 생각해본 적이 없겠네요?"
"닉네임요? 맘마가 쭈꾸미같은?"
"네. 그걸 닉네임이라고 하죠."
"그런 거라면 생각해본 적이 없어요."
한샘이 구렛나루를 글적거렸다. 나이트도 오늘 처음 와본 건데 닉네임을 생각해본 적이
있을 것 같나. 영호가 이런 말을 꺼내는 건 분명 닉네임을 지으라는 말일 것이다. 한샘은
단번에 그것을 알아채고 내 닉네임은 뭐라고 하지하며 고민하기 시작했다. 맘마라는 닉네임도
부르기엔 친근한 것 같아서 좋은데. 쭈꾸미라는 닉네임은 조폭웨이터들이 쓰는 것 같구. 왠지
대머리들만 쓰는 닉네임 같잖아. 한샘은 인상을 찡그렸다. 그 때 그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던
맘마가 말했다.
"쭈꾸미. 내가 추천해줘도 돼?"
"추천?"
한샘이 추천이라는 말을 듣자마자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서 맘마를 바라보았다. 맘마는 그런 한샘을
바라보면서 싱긋 웃었고 한샘도 어색하게 따라 웃었다. 맘마가 고개를 끄덕였다.
"응. 추천. 나이트 안에서도 둥가둥가나, 개념탑재, 그리고 초딩이랑…아무튼 생각이 안나서 그런 거지
내가 많이 이름 지어줬었어."
"……."
"너 보니까 생각나는 이름이 하나 있는데 말해줄까?"
쉽게 한샘은 고개를 끄덕이지 않았다. 맘마가 지은 이름들은 모두 무언가가 정상에서 약간
벗어난 것 같았다. 개념탑재, 둥가둥가, 초딩이라니. 게다가 뭐? 날 보니 딱 떠오르는 게 있다고?
계집, 기생오라비 이런 닉네임은 아닌가? 영호를 바라보며 한샘은 실없이 웃었다.
영호가 말했다.
"말해 봐. 한샘씨가 쉽게 못 결정내리는 것 같은데."
"뽀뽀 어때? 뽀뽀. 이쁘고 귀엽지. 여성스러운 분위기가 넘치잖아. 흘러내려, 아주!!!"
"뽀뽀? 여성스러운 분위기는 안 나는데 귀여운데? 한샘씨 어때요? 한샘씨랑 어울리는 것 같은데.
진짜 맘마 이럴 땐 쓸모 있다니까."
"응응! 나도 쓸모 있는 데가 좀 있다니까~"
맘마가 기대에 찬 눈빛으로 한샘을 바라보았다. 뭐가 여성스러운 느낌이 없다는 거지?
뽀뽀라는 이름, 한샘이 듣기에는 미치도록 소녀같은 닉네임이었다. 하지만 저 눈빛을 보아라.
귀찮다는 듯, 얼른 하고 끝내자라는 말이 이마에 버젓이 써져있는 영호와 당연히 뽀뽀라는 닉네임을
쓰겠지하며 기대에 찬 맘마의 저 눈빛. 도저히 한샘은 맘마를 쳐낼 수가 없었다, 더이상.
그래서 한샘은 이제 다 살았구나 하는 마음으로 말했다.
"뽀뽀할게요."
그러면서 싱긋 웃었다.
그 뒤로 한샘은 영호와 맘마에게서 많은 정보를 들었다. 나이트에서 근무하다보면 9시 이후로는
정말 막나가는 사람들이 많이 오니까 각별히 주의해야한다는 거 하며, 여자손님들이 아무리
본명을 물어도 절대 대답해주지 말라는 것하며, 손님과는 밖에서 사적으로 만나는 것도 금지.
하여튼 그 밖에 많은 것들을 들은 한샘이었지만 피곤했기 때문에 모두 잊어먹은 지 오래였다.
그렇게 투박투박 재찬의 집으로 어렵게 걸어간 한샘.
"나 왔어어."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후들후들 거리는 다리를 겨우 진정시키고 한샘은 현관에 신발을 벗었다.
"어라."
그리고 한샘은 보게 되었다. 가지런히 현관신발장에 놓여있는 노란색 하이힐을.
누가봐도 그 하이힐은 여자의 것이었는데 그것을 보고도 한샘은 별 낌새를 채지 못한 모양이었다.
은근히 눈치없기로 유명한 한샘이 빛을 바래는 순간이었다. 한샘은 하이힐을 살짝 신발장
구석으로 밀어낸 다음 자기 신발을 가지런히 놓았다. 깨끗히 정돈된 신발장은 피곤한 한샘이었지만
희열을 느끼게 하는 요소 중의 하나였다.
"재찬아! 나 왔다니깐! 얘가 뭘 하길래 대답이 없어. 문까지 열어놓고."
한샘이 앞머리를 쓸어올리면서 가방을 소파에 던져두었다. 그리고 재찬의 방문으로 시선을 두었다.
재찬의 방문은 손가락 하나가 들어갈 정도로 살짝 열려있었다. 그리고 방 안엔 재찬이 있는 듯
불이 켜져있어서 어두컴컴한 거실로 빛 한줄기를 내보낼 수 있었다.
그것을 보고 한샘은 피실하며 웃었다. 뭐야. 역시 있었잖아. 재찬이는 자나보다.
한샘은 대충 어림짐작하고선 얼굴에 장난스런 미소를 걸어둔 채로 재찬의 방문으로 서서히 다가갔다.
그리고 아무 생각도 없이 문을 슬쩍 열면서 방안에 있을 재찬에게 말했다.
"자고 있어, 재찬아?"
응? 한샘은 문을 활짝 여는 순간 이상한 낌새를 느낄 수 있었다. 그와 동시에 한샘에게 느껴진
무안함과 당황함 때문이 아닐까 싶었다. 한샘의 눈 앞에서는 19세 이하는 시청금지라는 딱지를
새겨박고 싶을 정도로 선정적인 장면들이 펼쳐지고 있었으니까.
한샘과 눈이 마주친 재찬은 당황한 듯 하하 웃으면서 앞머리를 쓸어올렸다 .
침대 위에 한 여자와 재찬이 있었다. 재찬의 위에 여자가 올라타있었는데 그 여자의 가슴은 풍만하고
탐스러워보였다. 그건 한샘도 인정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었다.
"꺅!"
뒤늦게 여자는 얼굴을 붉히며 이불로 몸을 가려버렸다. 한샘은 당황한 나머지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고 문을 연 채 얼고야 말았다. 재찬은 당황해서 우는 듯한 여자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괜찮다고 속삭이는 듯했다. 그러면서 한샘에게 눈치를 주며 나가라고 했다.
어리둥절함에 고개를 우선 끄덕이고서 한샘은 뒷걸음질쳤다. 야해. 너무나 야해.
학창시절 친구들과 야동은 본 적이 있었으나 눈 앞에서 이렇게 본 건 이번이 처음인 한샘이었다.
당황한 나머지 아예 집에서 뛰쳐나온 한샘은 머리를 식히려 차가운 밤공기에 머리를 묻고
이리저리 흔들어도 보았지만 머릿속에 그려진 그 장면은 쉽게 한샘의 머릿속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행복해보이던 두 사람. 괜히 자기가 방해한걸까?
"신발장에 여자하이힐이 있었잖아. 그걸 보고도 몰랐어?"
한샘은 괜히 자기 머리를 쥐어박으면서 정처없이 길거리를 걸었다. 피곤해죽겠는데.
지금 시간이 10시 30분. 원래 한샘에게 있어서 이 시간은 취침시간이지만 도무지 잠이 와도
재찬의 집엔 오늘 못 들어갈 것 같았다. 악! 또 여자와 재찬이 얼굴이 생각나잖아.
한샘은 다시 괴로운 듯 두 손뼉을 뺨에 가져다대고 발그레 얼굴을 밝혔다.
"재찬이랑 같이 있던 여자, 혹시 재찬이 여자친구인가? 자몽이라던."
그리고서 무의식적으로 내뱉은 말. 자몽이라는 이름. 정말 그 사람이 자몽일까?
큰 가슴에, 육탄적인 몸매에다가 얼굴은 무척이나 청순해보였는데. 짧은 단발이었는데도 불구하고
예뻐보인 건 한샘에게선 처음이나 다름없었다. 한샘은 음음이라며 고개를 두어번 끄덕였고,
바지주머니속에서 핸드폰을 꺼내들었다. 그리고 제니퍼의 번호를 눌렀다.
신호음은 얼마 가지 않았다. 제니퍼의 침울한 목소리가 수화기 넘어로 한샘에게까지 들려왔다.
"왜."
"지금 나 너무 당황해있어, 진경아."
"뭐, 임마."
"기분 안 좋은 일 있어?"
"내일 공연하는데 안무가 좀 이상해서 수정하려고 하거든. 근데 도무지 멋있는 안무가 생각이 안나."
"집이야?"
"응."
한샘과 진경은 동시에 한숨을 내쉬었다. 진경이 물었다.
"넌 무슨 근심이냐, 아까 전에 당황했다는 건 또 뭐고?"
"응? 아. 당황했었지, 응."
"왜 당황했어? 무슨 일 때문에?"
"아, 그게 있잖아."
진경이의 물음에 한샘은 쉽사리 대답할 수 없었다. 그저 누가 볼까 이리저리 살펴보면서
얼굴을 붉히는 것밖에. 진경이가 당황한 이유를 물으니 다시 한샘의 머릿속에는 그 장면이 떠올랐다.
재찬이, 학창시절부터 성숙한 애라는 건 한샘도 알고 있었지만 22살밖에 안된 애가 벌써 성관계를
맺다니. 다시 생각해봐도 재찬은 너무 성숙한 사람이라는 것을 한샘은 깨달았다.
제니퍼가 말했다.
"말하기 곤란한 거?"
"부끄러운 거."
"그럼 말하지 마. 전화한 용건은 뭔데?"
"응? 아. 그저 당황했다는 거 말하려고."
"아! 그래? 너 지금 그럼 밖이니? 집이니?"
"밖이야."
"잘 됐다!!"
응? 한샘은 전화를 받으면서 고개를 갸우뚱 거렸다. 한샘이 밖에 나와있는데 뭐가 잘되었다는 거지?
한샘은 머리를 긁적거리며 제니퍼가 그 다음 내뱉을 말을 주의깊게 들으려 했다.
비가 조금씩 추적추적 구슬프게 내리기 시작했다.
"응. 지금 시간도 시간이잖아. 우리 지금 배가 고프거든."
"그런데?"
"우린 지금 안무 짜기에도 바쁘고, 나갈 시간이 없어. 한샘아."
"아아. 그러니까 뭐 좀 사오란 말이지, 야식으로?"
"응. 그래줬으면 내가 참 좋겠다!"
한샘이 제니퍼의 말을 듣고나서 피식 웃었다. 이럴 땐 제니퍼도 은근히 귀여운 여자라고 생각했다.
한샘은 우선 자기 바지주머니를 뒤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나온 돈은 총 2만원. 나이트를 나올 때
맘마가 한샘을 거지취급하면서 쥐어준 돈이었다. 받아놓은 게 다행이네. 한샘은 싱긋 웃으면서
제니퍼에게 말했다.
"응! 그럼 내가 사갈게. 떡볶이 이런 거 사가면 돼?"
"진짜? 아싸! 얘들아, 내친구가 먹을 거 사온데! 아싸라비아. 한샘아, 그럼 순대도 좀 사오고."
"순대에 간은 넣어?"
"응. 인규가 간 좋아하니까 간 넣고! 떡볶이, 그리고 튀김도 좀 사와."
"알았어. 금방 갈게."
"응. 기다린다!"
한샘은 핸드폰 폴더를 닫은 다음 발걸음을 재촉하기 시작했다. 제니퍼, 10년지기 소꿉친구가
꿈을 위해 도발하는 과정에서 배가 고파하는 것을 볼 수만은 없었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재찬과
자몽의 선정적인 장면이 잠시나마 잊혀졌는 지도 모른다. 홀가분한 마음으로 한샘은 포장마차 집으로
뛰어갔다. 술취한 아저씨들로 빽빽한 포장마차집엔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여학생들도 들어앉아
있었는데 어려보이건만 병나발을 불고 있었다.
뭐 한샘이 신경쓸 애들은 아니었지만 말이다. 한샘은 귀여운 토끼마냥 포장마차 아줌마에게로 가서
떡볶이 7인분, 순대 5인분, 튀김 6000원치, 꼬치 2000원치를 주문했다. 포장마차 아줌마는
한번에 많은 양의 주문을 쏟아부우니 바쁘다는 듯 떨어져있으라고 손짓했고 한샘은 민망해하며
포장마차 가장자리로 가 잠시동안 아무 말 없이 서있었다.
그러길 20분. 제니퍼의 독촉전화로 인한 핸드폰 진동이 한샘의 허벅지로 느껴지기 시작할 무렵,
아줌마는 푸짐한 미소와 함께 검은 봉다리를 한샘에게 건냈다. 2만원과의 물물교환. 한샘은
진경의 전화를 무시한 채 검은 봉다리 두개를 양손에 각각 쥐고서 버스에 올라탔다.
그리고서 추적추적 내리는 비를 가로질러 도착한 제니퍼의 집 앞.
경쾌하게 초인종을 눌렀고, 곧 못 먹어서 뱃가죽이 눌러붙은 것 같은 제니퍼가 환하게 웃으면서
한샘에게 인사를 하긴 커녕 한샘의 두 손에 들린 검은 봉지를 가로채갔다.
뭐야. 한샘은 인상을 찌푸리기도 했지만 우리 진경이 얼마나 배가 고팠으면. 하는 관대한 마음으로
싱긋 웃으며 진경의 집 안으로 들어갔다.
꽤 넓었던 진경의 집안. 건장한 사내 5명이 둘러앉아있으니 꽉 차는 느낌이 들었다.
한샘은 이리저리 기웃거리며 자기가 앉을 자리를 탐색했다. 그러다가
"역시 쥐새끼였네."
희원의 목소리에 반응하였고 곧 한샘과 희원은 눈이 마주치고야 말았다.
*
관람료는 코멘트하나면 됩니다.
글쟁이는 독자분들의 코멘하나로 힘을 내서
다음편을 씁니다.
화요일에 올리기로 해놓고 안올린 점 죄송해요.
목디스크 때문에 오래동안 앉아있지 못하거든요.
한 편 쓰는데 2시간이 걸리는데 그걸 또 수정하려고 하니
목이 아파서 도저히ㅜ.ㅜ 이번소설 화요일에 쓴 건데
지금에서야 올립니다. 안타깝게도 내일 못 올릴 것 같아요.
물리치료 받으러 가느라 시간도 없고 학원 때문에ㅜ.ㅜ
죄송합니다. 하지만 기다려주신다는 분들 때문에 제가
겨우 6편을 수정끝에 올렸습니다. 사랑해주세요.
첫댓글 선코
하앍, 역시 넘 재미있어요! 신편 나왔다고 쪽지까지 직접 날려주시는 작가님의 센스!좋아요 좋아 ㅎㅎ 그런데 목 디스크시라구요 ㅠㅠ 어떡하다 그렇게 다치셨나요.많이 아프시겠어요ㅜㅜ 그런데도 이렇게 소설 올려주시다니 역시 센스쟁이<응? 빨리 나으세요~
으으 아찔했음 ㅋㅋ
삭제된 댓글 입니다.
삭제된 댓글 입니다.
>M< 기대 하길 잘헀군요..
쪽지받고 왔습니다>ㅡ<다음편기대요!
재미있어요! 근데 희원이 등장도 좀 늘었으면.. 다음편도 기대할게요
삭제된 댓글 입니다.
역시 재미있었고요~ 빨리 쾌유하세요~
제가이번엔조금늦었네요?ㅠ재밌어요~다음주까지기달료야되죠?ㅠㅠ
삭제된 댓글 입니다.
꺅.................... 헉. 어떡해여....빨리회복하세여!!!!! 화이팅!
요즘 시험공부하느라 힘드시죠???ㅋㅋ 열심히 하세요...저도 시험공부하다가 겨우 보내요..ㅋㅋ
삭제된 댓글 입니다.
아아...오랜만에 만났네요...
오늘도두시가넘어서야^ ^ ;; 에구 . . 시험때문에피곤해죽겠어요ㅠ그래도 요고만큼은빼먹지않고보겠습니다^ -^ 오늘쫌야해잉> <ㅋㅋ
힘내세요!!전 한국 무용하다 어깨가..ㄷㄷ 시험이 3일 남았는데 이러고 있다는..ㄷㄷ 이번편 역시 재밌습니다!~>_<
꺄넘재밋어여..시험기간인데와서읽고잇는 ..ㅠㅠㅠ
잼있있어요 계속 수고하세용~~^^
삭제된 댓글 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