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지만 이서국(伊西國)의 위상은 대단했다. 제14대 유례왕 14년(297)에 이서국이 신라의 수도, 금성을 공격했을 때 신라는 많은 군사를 모아 방어했다. 하지만 힘겨운 방어전이었다. 그만큼 이서국은 강했다. 그간 역사서에 기록된 단 몇 줄만으로 이서국의 세력을 가늠하기란 어려웠지만 청도에서 유물이 출토되면서 그 베일이 벗겨지고 있다. 신라와 이웃한 7개 부족국가 가운데 대국(大國) 신라를 위협할 만큼 용맹스러웠던 이서국. 가야국을 설립한 김수로왕이 이서국의 출신이었다는 설, 고조선을 이어 천제를 받들었던 설 등 이서국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약 2000년간 알려지지 않은 나라, 용맹스러운 나라, 제사장의 나라였던 이서국의 실체를 알아보자. |
| | | ▲ 경북 청도군 풍각면 성곡리 일부(現 성곡댐)를 수장하기 전 발굴과정에서 이서국과 관련된 유물이 발견됐다. 이서국 문화상을 엿볼 수 있는 유적 가운데 지금까지 발굴조사된 가장 빠른 시기에 해당하는 유적은 풍각초등학교 일대에 위치하는 송서리 고분군이다. (사진제공: 경상북도문화재연구원) |
[글마루=김지윤 기자] 청도군 풍각면 수월리와 마주한 성곡댐이 들어서기 전 3600여 점의 유물이 발굴됐다. 아마 2008~2009년에 이뤄진 발굴조사가 아니었다면 이서국의 실재(實在)는 그저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기록된 대로 ‘신라에 패망한 성읍 국가’라고만 알려졌을 테다. 그 실체가 보일 듯 말 듯한 이서국은 사학자와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이에게 매력적이다. ‘미추왕의 영이 신라군을 수호할 정도로 기세가 위풍당당했던 이서국’이라는 내용만으로도 무궁무진한 상상력을 동원한다. 그래서 약 2000년 전 한반도에 존재했던 부족국가로는 유일하게 21세기에 들어서 재현이 됐다. 지난 2007년에 발간한 정완식(48) 소설가의 <이서국 칼, 지다>가 그렇다. 소설에서도 철기문명을 기반으로 한 이서국의 용맹을 잘 표현되어 있다. | | | ▲ 이서면사무소에는 이서고국이라는 비석이 있다. (사진=최성애 기자) |
“동양의 이스라엘이라 부르노라” 그렇다면 이서국에 대해 ‘용맹’을 빼고는 설명할 길이 없을까. 여기서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했다. 바로 이서국이 고조선의 정신과 문화를 그대로 이어받은, 천제를 지내는 ‘제사장 국가’라는 것이다. 이처럼 고조선의 명맥을 이어온 것과 달리 실크로드를 타고 건너온 이스라엘인들을 중심으로 하여 만들어진 부족국가가 이서국이라는 설도 있다. 다시 말해 이서국이 이스라엘을 뜻한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조국현 도마(Thomas)박물관장은 “(이서국은) 유대 디아스포라 마을을 지칭하는 이름이다. 즉, 동양의 이스라엘(저 서쪽의 국가, 伊西國)인 셈”이라며 “이서국이 실크로드 지역 중 하나”라고 주장했다. 조 관장의 말에 ‘어?’라고 하며 고개가 절로 갸우뚱거리지만 동시대에 만들고 사용한 것으로 추정된 경북 경주의 옛 무덤에서 나온 ‘터키 이스탄불제의 유리잔(로만글라스)’이라든지, 역시 경주에서 발굴된 ‘이스라엘제 유리잔’ 등을 보면 2000여 년 전 한(韓)인들이 외국과 활발한 교류를 펼쳤음을 알 수 있다. 조 관장은 “김해와 청도, 경주를 중심으로 유대인 상인이 중심 세력이 된 부족국가가 생겨났다”며 “청도지역은 동양의 이스라엘이라고 하여 이서국이라고 하고 평야가 좋은 경주는 이스라엘의 샤론평야를 뜻해 사로국이라고 불렀다”고 덧붙였다. ▶ (2)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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