因緣＜제18편 여검사의꿈＞④여검사의 귀향-33

[정안길]

장편소설 因緣

<제18편 여검사의꿈>

④여검사의 귀향-33

“신령님, 즈그가 시킨 대로 허겄어라오!”

돌남은 경숙에게 자세한 말을 들었는지, 시키는 대로 하겠다고 말하였다.

“제 시간에 경숙이 데리러오거든, 함께 올라오게!”

“야!”

그는 돌남의 대답을 듣고, 경숙과 함께 경산의 방으로 들어갔다.

방에는 양지숙과 석순이 경산과 마주 환담을 나누고 있었다.

경산은 예전 옷궤에 머리를 두고, 몸을 한껏 구부리고 있었으나, 그 옷궤는 한켠에 옮겨다 놓긴 하였으나, 이제는 부드럽고 폭신한 보료에 등받이와 팔걸이가 갖춰져서 온종일 꼿꼿이 앉았다가 머리를 뒤로 젖히고, 기댈 수도 있기에, 보기에 한결 편한 모습이었다.

“할머니, 앉아계시면, 어렵지 않으세요?”

그는 경산의 야윈 손을 보듬어 쥐고서 노파심에 묻자, 그가 말하였다.

“내가 예전엔 궤짝에 머리를 두고, 북쪽을 향해 몸을 굽히고, 엎드려서 세월을 보냈으나, 지금은 종일 앉았어도, 어렵지 않구나!”

경산의 말에 양지숙이 입을 열었다.

“할머니께서 말씀도 잘 하시고, 우리 어머니 오면, 말동무도 되면서 재미나게 지내실 거예요. 오호호.”

양지숙이 마포에 사는 금순엄마 조정자가 오면, 경산과 말동무가 되어 재미있게 지내실 거라고 하였다.

그때 옆에 앉았던 석순이 손을 천복의 무릎에 얹고, 손끝으로 살며시 꼬집듯 하였다. 그러자 천복이 그녀가 왜 그러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냥 건너짚고, 그녀의 등을 토닥이면서 말을 거는 거였다.

“양지숙 씨와 석순 씨가 할머니를 잘 모시니, 참으로 고맙소!”

“아니, 이 처자들이 다 너랑 한 몸이라더라?”

천복이 두 여인을 입에 올리면서 할머니를 잘 모시니, 고맙다고 하자, 경산이 불쑥 내놓은 말이었다.

“할머니, 여기 양지숙은 손자며느리지만요. 석순 씨는 지혜 시어머님 되는 분이세요!”

천복이 두 여인과의 관계를 따져서 아뢰자, 경산이 적이 놀라는 빛을 띄우고 있었다.

“아니, 그럼 사돈 아니야? 그런데 따뜻한 물을 떠다가 맨날 내 몸을 씻어주는데, 그런 망발이 어디 있누?”

경산은 펄쩍 뛰었다. 말하면, 사돈할머니인데, 사부인이 온몸을 따뜻한 물로 씻어주고 닦아주니, 예의에 벗어난다는 말이었다.

“할머니, 세상이 예전과 다르대요. 다 그렇진 않겠지만, 저희는 서로서로 외로움을 달래면서 정들여 살아가요. 할머니, 아무쪼록 마음 편히 놓으시고, 한번만 무진대사께서 현몽하셨으면 좋겠어요?”

천복은 경산께 마음 편히 놓으시라고 당부하더니, 예전에 경산의 수명을 십년을 연장한다던 무진대사께서 다시 한 번만 현몽하였으면 좋겠다고 말하자, 경산이 눈빛을 반짝이면서 반박하였다.

“이제 무진께서 꿈에 나타나면, 희소식은 없으리라! 내게 더한 수명마저 다하였으니, 바야흐로 세상을 하직하고, 극락왕생하라실 텐데, 현몽은 무슨 현몽?”

“아하하, 할머니, 십년만 더하시면, 백수를 누리실 텐데요?”

“글쎄, 모르겠구나!”

경산의 모습은 정갈하고, 우아한 후광이 어깨위로 서리고 있었다.

어느덧 저녁때가 되어 모두들 집으로 돌아와 양지숙과 석순은 경산의 밥상을 차리었고, 돌남이는 정읍댁과 거실에 나와서 나란히 앉아 여러 식솔과 조용히 저녁을 먹고 있었다.

천복의 옆에는 경숙과 주점녀가 앉았고. 맞은편에는 두영과 덕배를 거느린 옥희가 그와 마주앉았다.

그가 생각난 듯 주점녀에게 넌지시 묻는 거였다.

“국수집은 정리했나요?”

“동환 씨가니 소개혀서나, 딴 사렘현티 넘겼어유. 그려서 받언 집값 이백만원얼 지흥엄마현티 다 맡겼어라오.”

“지흥엄마가 은행에 잘 예금했을 겁니다.”

“인쟈, 즈근 당슨 으자라오!”

남자는 하나 잃고, 하나 얻었다고 말하려다가, 옥희 앞에서 말하기 찜찜해서 입을 닫았는데, 옥희가 말하였다.

“최정분 씨가 건넨 돈 이백만 원 은행이다 예금혔어라오!”

그제야 천복은 주점녀의 이름이 최정분인 줄을 알았다.

“알았소! 당신도 여러 식구 생활하기 어렵겠소! 그런데 내의 한 벌 사둔 것 있으면, 신당에 갖다 놔요! 자세한 얘긴 이따 당신 방에 가서 하겠소!”

“내의 두 벌 있어라오! 근디, 당슨이 밤이 즈그 방이 올라오?”

[대우]

무진대사도 이승에 없을 것 같은데요

[백마강]

그러니 일찍이 옥황사제의 율사가 되어 사자를 휘하에
두고 있으니 경산의 수명을 좌지우지하나봐요. 그래서
연장한 수명이 다 되었는데도 끄떡 않는걸보면 천복의
소원을 풀어줄것같아요. 그러기에 경산이 그의 현몽을
꺼리는거죠. 연장수명 다되었고 이제 현몽한다면 사자
를 언제 어느 때 보내어 데려간다고 하면 큰일이죠.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