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원역은 서울 동북부에 있는 지하철 4호선과 7호선의 환승역이다. 동북부에 여러 환승역이 있지만 그 중에서 노원역은 핵심 환승역으로 꼽힌다. 혼잡하기로 유명한 4호선 강북 구간과 7호선 강북 구간을 서로 잇는 역이기 때문이다. 특히 주변에는 구청과 백화점도 있고, 북서쪽의 차량기지는 이전된 후 그 부지는 복합 개발될 예정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노해로81길을 중심으로 한 ‘노원 문화의 거리’와 4호선 노원역 남북측에 모여 있는 상권들도 빼놓을 수 없다. 노원역이야말로 이 지역의 명실상부한 ‘만남의 광장’인 것이다.
사거리에서 동쪽으로 떨어져 있는 4호선 노원역©서울시
그런데 노원 환승역이 유명한 또 다른 이유는 환승이 심하게 불편하기 때문이다. 노원역은 한국교통안전공단의 2014년 도시철도 환승역 평가에서 전국 꼴지를 한 적이 있다. 이렇게 노원역 환승이 불편해진 데는 세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고가-지하 환승역이기 때문이다. 서울지하철에 고가 구간은 많지 않은데 마침 4호선 노원역이 고가다. 그래서 지하에 있는 7호선 역까지 높이 차이가 많이 발생했다. 환승거리는 수평환승거리뿐만 아니라 수직환승거리에도 영향을 받는다.
한편 고가-지하 환승역은 노원역 말고도, 당산역, 건대입구역 등도 있는데 유독 노원역 환승이 불편하다는 두 번째 이유는 4호선 노원역이 사거리에서 동쪽으로 좀 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이러다 보니 동일로를 남북으로 관통하는 7호선과 거리가 멀어졌다.
물론 이는 중랑천에 접해 있는 창동차량기지로 연결되는 지하철 4호선의 입출고선 설치 때문에 불가피한 측면도 있기는 했다. 고가에서 지상으로 내려가는 선로의 완만한 기울기를 확보하려면 노원역이 동쪽으로 밀려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노원역 환승통로 ©한우진
그런데 이렇게 한쪽 역이 사거리에서 떨어져 있는 환승역은 신당역, 삼각지역 등도 있는데 역시 노원역이 불편하다는 마지막 이유는 환승통로에 무빙워크(수평 에스컬레이터)가 설치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아마 환승통로가 교량 형식이다 보니 에스컬레이터 장비의 하중을 견디지 못하거나, 에스컬레이터 하부에 공간 확보가 안 되어서 그런 것으로 예상되는데 아쉬운 일이다. 신당역과 삼각지역은 사거리에서 밀려난 역쪽의 지하 환승통로에 무빙워크가 설치되어 있어서 환승 불편을 줄여주고 있다.
노원역 환승통로 폐쇄안내 현수막 ©한우진
이렇듯 노원역은 구조적인 문제로 인하여 환승이 매우 불편한 역이 된 상태다. 그런데 설상가상으로 올해 11월부터는 이 환승통로조차도 임시 폐쇄될 예정이라고 한다.
사정은 이렇다. 최근 지하철역에서 빈발하는 에스컬레이터 사고(예 : 분당선 수내역 에스컬레이터 역주행) 등으로 인해 지하철 에스컬레이터 안전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상태다. 그래서 이용객이 많고 노후한 에스컬레이터에 대한 적극적인 관리가 요구되고 있다. 이에 따라 노원역도 승강기안전관리법(안전장치 설치 의무)을 준수하고, 노후로 인한 사고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선제적으로 에스컬레이터를 교체하려는 것이다.
노원역 에스컬레이터 공사는 2단계로 진행되는데 ▴일부 에스컬레이터의 운행정지 ▴에스컬레이터 6대 전면교체로 진행된다. 일부 운행정지는 이미 지난 6월 7일 실시되었다. 내려가는 방향 2대를 정지시킨 상태이며, 승객들은 이 에스컬레이터를 계단처럼 걸어서 내려가면 된다. 특히 에스컬레이터의 각 발판에 나무판을 설치하여 승객이 좀더 편안하게 걸어갈 수 있도록 해두었다. 이 2대를 먼저 정지시킨 이유는, 승강기법에 따른 안전장치 설치 기한이 나머지 4대보다 먼저 도래하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에스컬레이터 공사의 핵심인 에스컬레이터 6대 전면교체가 이 11월부터 실시된다. 이때는 공사를 위해서 승통로 자체를 폐쇄한다. 그렇다면 4호선과 7호선간 환승객은 어떻게 이동해야 하는 것일까? 역에서 일단 지상의 인도로 나왔다가, 환승할 호선의 역으로 다시 들어가는 식으로 이동해야 한다. 즉, 4호선 노원역과 7호선 노원역이 별개의 역처럼 운영된다는 것이다.
노원역 개집표기 ©한우진
다만 이때 다른 역으로 다시 들어간다고 돈이 더 드는 건 아니다. 원래 버스와 달리 지하철은 개집표기로 나왔다가 다른 역에 다시 들어가면 기본운임을 새로 내지만, 공사기간 중 4-7호선 노원역에 한해서는 기본운임이 추가되지 않게 해준다. 이를 '소프트환승(Soft換乘)'이라고 부른다. 환승통로라는 하드웨어(Hardware)없이 요금 프로그램 수정이라는 소프트웨어(Software)만으로 가능한 환승이라는 뜻이다.
이 같은 소프트환승은 과거 1-9호선 노량진역에 환승통로가 없을 때 시행된 적이 있고, 현재도 경의선 서울역에서 시행 중이다. 그런데 이렇게 역에서 나왔다가 다시 들어간다고 하니 지난 7월 1일부터 서울시가 시행중인 10분 재승차 제도와 유사점을 느낄 수 있다. 이에 따라 두 제도를 표로 비교해 보았다. ☞ [관련 기사] 지하철 잘못 탔다고? 10분 이내면 추가요금 면제
소프트환승과 10분 재승차 제도 비교
소프트환승과 10분 재승차 제도 비교소프트환승10분 재승차
시행 취지 | 환승통로 없는 역간 무료 환승 | 같은 역에서 반대 방향 승강장 이동 |
기본운임 추가되지 않는 조건 | 노선 무관, 같은 역이기만 하면 됨 | 같은 역이고, 노선 번호까지 같아야 함 |
시간제한 | 30분 | 10분 |
환승횟수 차감 | 차감됨 | 차감됨 |
이용 횟수 제한 | 제한 없음 | 1회 |
총 이용 거리 | 해당역 기준으로 재계산 | 해당역 기준으로 재계산 |
1회권, 정기권 | 이용 불가 | 이용 불가 |
시행 역 | 노량진역(과거) 경의선 서울역(현재) 노원역(11월 예정) | 수도권전철 중 서울시 관할 구간에 한함(진접선, 하남선, 8호선 성남 구간 포함, 신내역 제외) |
노원역 비상게이트 ©한우진
다만 노원역 환승통로 공사 중에 소프트환승을 실시하더라도 1회권과 정기권 이용자는 이용이 불가능한 문제가 있다. 이 때문에 비상게이트를 개방해 둘 예정인데, 카드를 찍지 않고 4(7)호선 비상게이트로 나가서 7(4)호선 비상게이트로 다시 들어오면 된다.
이론적으로는 일반 선후불 교통카드 이용자도 비상게이트 이용이 가능하며, 이 경우 30분 소프트환승 시간제한도 없어지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운영사 입장에서 이 방식의 문제점은 부정승차자가 늘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노원역 환승통로 에스컬레이터 ©한우진
노원역 환승통로 폐쇄에서 궁금한 점은 공사를 단계적으로 시행할 수는 없느냐는 것이다. 예를 들어 한쪽 계단은 열어두고 반대쪽 에스컬레이터 공사만 시행하는 것이다. 그런데 노원역 환승통로에는 계단이 없고 에스컬레이터만 설치된 곳이 있다. 대체용으로 쓸 계단 자체가 없는 것이다.
그러면 양방향 에스컬레이터 중 한쪽만 공사하고 한쪽은 운영하는 식으로 가능하지 않겠느냐고 할 수도 있는데 이 역시 어렵다. 에스컬레이터는 겉보기와 달리, 하부 구덩이(피트pit) 속에 대형 구조물과 기계장치가 들어 있는 복잡한 시스템이다. 우리가 겉으로 보는 에스컬레이터의 모습은 일부에 불과하다. 이런 대형 구조물을 전면 교체하는 작업을 하는 데 옆에서 멀쩡히 다른 에스컬레이터를 운영시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노원역 외부 이동 경로 안내 포스터 ©한우진
향후 11월에 노원역 환승통로가 폐쇄되면 7호선 승객은 3번 출구로 올라와서 북쪽으로 갔다가 사거리에서 우회전 후 동쪽으로 이동하여 4호선 2번 출구로 올라가면 된다. 이것이 최단 경로이며 지상 이동 거리는 250m 정도 된다.
다만 이 경로는 2번 출구에 에스컬레이터가 없고, 사거리 남동쪽 인도의 폭이 너무 좁은 문제가 있다. 환승객은 많은데 환승통로가 좁으면 불편은 물론이고 안전사고 위험까지 있다. 따라서 에스컬레이터가 있는 4호선 1번 출구로 내려와 4호선 노원역 남쪽 먹자골목을 관통하여 서쪽에 있는 7호선 4번 출구로 들어가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노원역 주변 문화의 거리©한우진
그러나 이렇게 대안 경로를 제시하고 운임이 추가되지 않는 소프트환승 제도를 시행한다고 해도 역 바깥으로 나가면 불편한 것은 어쩔 수 없다. 무엇보다 더위나 추위, 눈과 비에 노출되는 것이 문제다. 특히 11월부터는 점차 추워지고 길바닥에 얼음까지 생길 수 있는 만큼 어르신들의 낙상 등 추가 안전사고 방지를 위해 관계당국의 세심한 노력이 요구된다.
다만 주변 상인들에게는 희소식이 될 수도 있는데, 환승통로로 지나가던 사람들이 주변 골목으로 퍼지게 되므로 유동인구가 늘어나기 때문이다. 물론 소프트환승 제한시간 30분 이내에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지만, 편의점처럼 고객이 시간을 적게 쓰는 근린상업들에게는 충분히 호재가 될 수 있다.
4호선에서 노원역을 피해 7호선으로 가는 버스 경로(1139번) ©서울시
어쨌든 지하철 승객들은 안 그래도 힘들던 노원역 환승이 더욱 힘들어졌으니 그다지 반가운 일은 아닐 것이다. 특히 작년 봄에 4호선 연장 진접선이 개통되면서 4호선 이용객이 더 늘어난 상태라서 더욱 그러하다. 그래서 승객 입장에서 선택할 수 있는 대책은 아예 노원역 환승 자체를 피하는 것이다. 즉 예전에 '집-지하철-노원역-지하철' 형태로 이용했다면, '집-버스-노원역-지하철' 형태로 이용하는 것이다.
아니면 노원역을 피하는 방법도 있다. 예를 들어 예전에 당고개역에서 4호선을 탄 후 노원역에서 환승하여 7호선 강남 방향으로 가던 승객은, 이것 대신 당고개역에서 1139번 버스를 타고 노원역 한 칸 아래 중계역으로 가서 7호선을 타는 방법을 생각할 수 있다. 물론 이 같은 버스 대체 경로가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노원역 주변 버스들의 노선 수도 많아지고, 배차시간도 단축될 필요성이 있다.
그런데 문제는 노원역 에스컬레이터 공사를 맡은 서울교통공사에서는 서울 버스에 직접 관여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시내버스는 서울시 관할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노원역 환승객들의 불편을 줄여주기 위해서는, 서울시가 특정 구간과 시간대에만 반복 운행하는 다람쥐버스(출퇴근 맞춤버스)를 추가 운행하는 등 보다 적극적으로 노원역 환승객 분산대책을 시행할 필요가 있다.관할과 교통수단을 가리지 않는 종합교통대책이야말로 서울시에 꼭 필요한 것이다.
이번 노원역 환승통로 폐쇄는 여러모로 지난 2018년에 시행되었던 4-5호선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 환승통로 폐쇄를 떠올리게 한다. 당시에도 에스컬레이터 교체를 위해서 환승통로가 폐쇄되었다. 소프트환승을 실시한 것도 같다. 하지만 동대문역사문화공원은 도심지라서 지하철이 그물망처럼 연결되어 있었기에 대체 경로들이 많았다. 심지어 바로 옆의 을지로4가역이 연속환승역이었을 정도였다. 게다가 4-5호선 승강장이 가깝다보니 계단은 막혔지만 엘리베이터는 연결되어 있었다. 이는 보행약자에게 큰 도움이 되었다.
노원역 환승통로 노후 에스컬레이터 교체공사 안내문 ©한우진
반면 주변에 다른 노선도 없고, 두 역사 간의 거리가 더 먼 노원역은 훨씬 어려운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지하철 안전이 무엇보다 중요한 지금 서울교통공사와 서울시, 노원구는 노원역 환승통로 폐쇄에 따른 승객 불편을 해소하기 위해 더욱 큰 관심과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무엇보다 좋은 것은 환승통로 폐쇄 기간 자체를 줄이는 것이다. 실제로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은 예정했던 시기보다 40일이나 일찍 공사를 마치고 환승통로를 재개통하여 승객들의 불편을 최소화하였다. 물론 서두르다가 부실공사가 되어서는 안 되겠지만, 시간이 금인 현대 사회에 공기(工期)를 단축시키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노원역 환승통로 에스컬레이터 ©한우진
고령화시대에 지하철의 에스컬레이터는 선택이 아닌 필수다. 과거 지하철에서는 전동차가 주된 교통수단이고, 에스컬레이터는 보조 장치로 생각되었다. 하지만 승객의 최종 목적지가 지상에 있는 것을 생각하면 이제 에스컬레이터도 전동차와 동등한 ‘교통수단’으로 보는 게 옳다.
내년에 첫 개통 50주년을 맞는 서울지하철은 갈수록 심해지는 노후화로 많은 우려가 되고 있다. 그런 점에서 ‘교통수단’의 반열의 오르고 있는 에스컬레이터를 잘 정비하고, 오래된 것을 교체하는 것은 꼭 필요한 일이다. 이번 노원역 에스컬레이터 공사가 잘 마무리되어 더욱 안전하고 편리한 시민의 서울의 지하철로 돌아오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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