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딱 알맞은 집 신순재 (지은이), 은미 (그림) 노란상상 2024-08-30
“이만하면 우리 둘이 살기에 딱 알맞은 집이야.”
작고 아담한 집을 동물들과 기꺼이 나눠 쓰는 넉넉한 마음
푸근한 인상의 할머니 할아버지가 있어요. 그런데 가만 보니 차림새가 범상치 않네요. 탐험가 복장의 할머니는 지도와 밧줄을 들고 곧 어디론가 떠날 것 같고, 주방 장갑을 낀 할아버지는 갓 구운 먹음직스러운 딸기 케이크를 자랑스럽게 내밀고 있어요. 취미도 성격도 전혀 다른 두 사람이지만, 딱 한 가지만은 의견이 일치해요. 둘의 보금자리인 노란 집이 작고 낡았어도 이만하면 너무 넓지도 좁지도 않은 딱 알맞은 집이라는 거예요.
어느 날부터인가 탐험가 할머니가 밖에 나갔다가 동물들을 데려오기 시작해요. 고릴라, 코끼리, 북극곰…… 대왕고래까지요! 집을 잃고 혼자 크헝크헝 울고 있는 동물들을 그냥 두고볼 수 없어서 데려왔다는 거예요. 할아버지는 집이 좀 좁아지겠지 하며 걱정하지만, 혼자서만 생각하고 절대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아요. “집이 좁으면 우리 둘이 번갈아 자면 되지요.”라며 마지막 달팽이 한 마리까지 내치지 않지요. 점점 북적이는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집은 어떻게 될까요?
고릴라랑 코끼리랑 대왕고래랑 인간이 더불어 살아가는
‘딱 알맞은 집’ 우리 지구의 운명은?
《딱 알맞은 집》의 주인공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마치 최후의 날까지 살아남아 저물어 가는 세상을 지키는 마지막 사람들 같아요. 내일 세상이 끝난다 해도 사과나무 한 그루를 심겠다는 각오로, 집을 잃고 떠도는 멸종 위기 동물들을 하나하나 데려와 기꺼이 돌보는 거예요. 기후 변화와 지나친 남획으로 살 곳을 잃고 홀로 남겨진 동물들은 할머니 할아버지의 집에 와서야 비로소 안식을 찾아요. 비좁은 집이지만 함께 맛있는 음식을 나누어 먹고, 재미난 이야기도 나누고, 신나게 물놀이도 하다가 편히 잠들지요. 어쩌면 딱 알맞은 집도 할머니 할아버지의 넉넉한 마음을 닮아 적당히 늘어나는 마법을 부리는 건지도 모르겠어요.
하지만 찰랑거리는 물잔에 떨어진 마지막 물 한 방울처럼, 자그마한 달팽이 한 마리가 들어오면서 딱 알맞았던 집은 무너져 버리고 말아요. 달팽이라는 존재는 지구가 점점 뜨거워지면서 오늘날 우리가 목도하고 있는 ‘기후 시스템의 티핑 포인트(임계점)’라는 개념을 떠올리게 합니다. 유독 길고 무더웠던 이번 여름에 우리 모두가 겪은 일처럼 말이죠.
다양한 생물이 함께 살아 더 아름다운 지구를
오래오래 지키려는 마음으로 만든 그림책
오랫동안 어린이책을 써 온 신순재 작가는 어느 날 동네 뒷산을 산책하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고 해요. ‘오래전에 지구에서 사라진 공룡들은 정말 영영 사라져 버렸을까? 어딘가에서 우리 인간들 몰래 모여 살고 있는 건 아닐까?’ 그러면서 사람들에 의해 버려진 것이 아니라 오히려 동물들이 지구를 버리고 떠나가는 모습, 멀리서 지구를 바라보며 “우리에게 딱 알맞은 집이었는데.” 하고 회상하는 모습을 떠올렸습니다. 옛이야기와 전래 동요(nursery rhyme)의 반복 및 누적 구조를 가져와 친숙하고 유머러스하면서도 뒤끝이 서늘한 풍자를 풀어내는 작가의 내공이 돋보입니다.
《이상한 나라의 정지오》 등에서 독특한 이미지와 상상력을 펼쳐 온 은미 작가는 원고의 분위기를 살리면서도 개성 넘치는 캐릭터와 콜라주 이미지를 선보입니다. 시공간을 짐작할 수 없는 기묘한 배경에 자리 잡은 자그마한 노란 집은, “집이 조금 좁은 것 같아.” 같은 대사와 대조적으로 거대한 동물들을 품으며 마음껏 확장되어 기막힌 아이러니를 만들어 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지구는 이토록 다양한 생물이 함께 어우러져 살고 있어 더욱 아름다운데, 코끼리를, 고릴라를, 대왕고래를 영영 만날 수 없다면 너무도 쓸쓸하겠죠. 힘겨웠던 여름을 떠나보내며 이 그림책이 사라져 가는 동물들과 우리 지구를 지킬 방법에 관해 이야기 나누는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
[이미지 출처 링크]
http://aladin.kr/p/JqkFJ
첫댓글 생각을 좀 많이 해보게 하는 책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