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당현수막 제한법 시행됐는데… 국회 근처서도 5개 정당 ‘위법’
‘바닥서 2.5m 이상-읍면동별 2개’ 등
법 바뀌었는데 곳곳 난립… 안전 위협
정당 현수막 신고대상 포함 안돼
지자체서 일일이 확인-단속 나서야
“신고제 도입-과태료 규정 마련” 지적
“횡단보도를 건너려는데, 도로 위 차가 잘 보이질 않습니다.”
14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국회의사당 삼거리. 전봇대와 가로수마다 정당 이름이 적힌 현수막이 3, 4개씩 어지러이 걸려 있었다. 어떤 현수막은 횡단보도 바로 옆 눈높이에 맞게 걸려있어, 보행자가 목을 빼고 차량이 오는지 살펴야 했다.
14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국회삼거리에 정당 현수막이 어지러이 걸려있다. 12일부터 정당현수막은 읍면동별 2개 이하로 제한하고 횡단보도 인근에선 바닥부터 2.5m 띄우도록 하는 등 개정 옥외광고물법이 시행됐지만 현장에선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 이한결 기자
12일부터 정당 현수막 설치 시 △읍면동별 2개 이하 △한 가로등당 2개 이하 △바닥부터 2.5m 이상 △어린이보호구역 제외 등을 지키게 한 새로운 개정 옥외광고물법이 시행됐다. 정당 현수막이 난립하자 여야 합의로 통과시킨 규정이지만 서울 곳곳에서는 주말 동안 전혀 지켜지지 않는 모습이었다.
● ‘2개까지만 설치’ 규정, 5개 당이 위반
동아일보 취재팀이 14일 국회 인근과 강남구 등 서울 시내 주요 현수막 설치 장소 38곳을 살펴본 결과 정당 현수막 35개 중 17개(48.5%)가 개정 옥외광고물법상 설치 규정에 맞지 않는 것으로 파악됐다. 특히 한 정당은 국회의사당 삼거리뿐 아니라 약 1km 떨어진 여의도동의 한 사거리에도 똑같은 문구의 현수막을 2개 설치한 상태였다.
‘같은 읍면동 내에는 한 정당의 현수막을 총 2개’까지만 설치할 수 있는 새 규정을 벗어난 것이다. 국회 인근에서 5개 정당이 이 규정을 어겼다. 국회 앞에서 만난 직장인 김모 씨(25)는 “현수막 때문에 사방이 막혀 있고 답답한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강남구 역삼동에선 2개 정당이 이를 위반했다.
현수막을 바닥에서 2.5m 이상 띄우게 한 규정을 어겨서 보행자의 시야를 가리는 경우도 많았다. 강남역 사거리를 지나던 직장인 문모 씨(38)는 “시야가 가려져서 대형차가 와도 모를 것 같다”며 “새 법이 시행됐다고 들어 현수막이 어느 정도 정리될 줄 알았는데 아직 너무 많다”고 말했다. 앞선 2022년 12월 개정 옥외광고물법이 시행되면서 ‘통상적인 정당 활동’에 따른 정당 현수막을 지방자치단체에 신고하지 않고 보름 동안 자유롭게 설치할 수 있게 됐다. 이후 거리마다 현수막이 난립하며 민원이 빗발치자 여야 합의로 지난해 12월 28일 새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안전 위해 정당 현수막도 신고 대상 포함해야”
개정 옥외광고물법이 시행되기 전에 각 정당이 설치한 현수막에는 새 규정이 소급 적용되지 않는다. 이에 각 지자체는 아직 본격적인 단속 활동을 벌이지 못하고 있다.
문제는 법 개정에도 정당 현수막이 여전히 관할 지자체 신고 대상이 아니기 때문에 향후 단속은커녕 설치 현황도 파악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각 정당이 정해진 수량 제한에 맞게 현수막을 설치했는지 확인하려면 지자체가 단속 인력을 동원해 읍면동 곳곳을 다니며 일일이 파악해야 하는 구조다. 인력이 충분하지 않은 지자체에선 사실상 단속이 어렵다.
14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국회 인근에 한 정당현수막이 사람 눈높이로 낮게 걸려있다. 12일 시행된 개정 옥외광고물법에 따르면 정당현수막을 횡단보도 인근에 설치할 땐 바닥부터 최소 2.5m를 띄워 보행자의 시야를 가리지 않아야 한다. 이수연 기자
실제로 강남구는 4명의 인력이 현수막 단속에 배정됐다. 단속 인력 1명당 점검할 면적이 9.9km²나 된다. 서울의 한 구청 관계자는 “단속 가이드라인도 없어서 시행 첫날 각 정당에 ‘현수막을 어디에 설치할지 장소 리스트를 제공해 달라’고 요청했다”고 토로했다. 단속 대상에게 ‘법을 지킬 거냐’고 문의하는 형국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주무부처인 행정안전부는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정당에서 아무 사거리에나 설치하지 않기에 단속할 범위가 더 줄어든다는 이유에서다. 행안부 관계자는 “이번 주부터 지자체와의 논의를 통해 조례 개정 등 법 시행에 필요한 부분을 다듬어갈 예정”이라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정당 현수막을 지자체 신고 대상에서 제외한 옥외광고물법을 이전으로 되돌려야 한다고 지적했다. 자유로운 정치 활동 등을 위해 신고 예외를 둔 취지는 이해하지만, 보행자 안전보다 우선시될 순 없다는 얘기다. 송지은 변호사는 “다시 정당 현수막도 신고하도록 해 단속 인력의 낭비를 막고 단속 시 과태료 등 처벌 규정이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주현우 기자, 여근호 기자, 이수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