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만배기도 육일째입니다.
오늘은 500배를 다하니까 3000번째 부처님 명호가 나오네요.
삼천이란 숫자는 절에서는 의미가 깊습니다.
삼천배, 삼천대천세계, 과거현재미래 삼천불, 부처님의 삼천위의 등등..
우리 절에서는 만배를 목표로 20일을 기도하지만 신도들중엔 5000배만 하겠다는 사람도 있을수 있고 3000배만 하겠다는 사람도 있을수 있습니다.
이제 절도 중반부에 들어서니 새벽기도도 절하는 사람위주로 나오고 사시기도도 절하는 사람 위주로 나오네요..
그렇게 절하는 것에 부담 갖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는데 절을 하기 어려운 사람은 잘 안오시는 것 같습니다.
이런때 정말 귀중한 사람들은 신체상의 이유로 절을 하지 못하는데도 하루도 빠지지 않고 나오셔서 부처님 명호를 외우는 분들입니다.
이분들이야말로 현재는 절하는 사람보다 더 대단한 분들입니다.
절하는 사람이 많으면 좋지만 못하는 사람들은 스스로 위축되어 아예 안나오는데 이분들은 그런사람들에게 희망이며 모범이 됩니다.
법회에 참석하는것이 더 귀중한 것이지 절을 다 하는 것에 목표를 두어서는 안됩니다.
우리의 수행은 생활속에, 이생이 다할때까지, 생생토록 수행하는 것인데 과도하게 하다보면 중도에 탈락하게 되는 경우가 많더라구요.
긑까지 살아남는게 일단은 최고 중요합니다.
그런뒤에야 용맹정진이 필요한거지 몇번 한다가 그만 두어서야 큰 이익이 없는 것입니다.
점점 절하는 숫자가 줄어드는 것같아 안타깝습니다.
작년에는 신입생들도 적극적으로 만배기도에 동참하는 분들이 많았는데 이번 신입생들은 매우 드무네요.
지금이라도 동참하는 분들이 늘어나면 좋겠습니다.
선배들은 작은 힘이라도 보태주시고 후배들이 기도할수 있도록 잘 인도해주면 좋겠습니다.
오늘은 주말이라 사시불공때 인원이 약간 줄었는데 조금 있다가 저녁에는 더 줄어들까뽜 걱정이네요..
주말이라 절도 조용하고 오후에 상담약속이나 밥사모임도 없어서 극장에 갔다왔습니다.
선오브갓이라는 기독교영화를 보고 왔습니다.
저는 예수를 무척 존경합니다.
그의 삶을 영화로 그렸다길래 보러 간 것입니다. 우리 부처님이나 예수님의 저의 스승이지요.
그분들처럼 살고자 출가했으니까요.
영화는 많은 생각을 하게하더군요.
영화에서 그려진 예수님은 꼭 예언가 또는 무속인 처럼 느껴지지, 성자로서 느껴지지는 않았습니다.
자꾸 우리 부처님과 비교하게 되는데요,
모든 생명을 사랑하는 우리 부처님은 작은 생명조차도 귀중히 여겼는데 예수님은 물고기를 잡게하고
제자들을 자비로 교화하여 모두 아라한이 되도록 하셨는데 예수님은 예언하게되어 제자를 죄의식에 사로잡게 만드십니다.
우리 부처님은 할절신체가 되어도 육체의 애착을 초월하여 여여한 마음을 잃지 않으셨는데 예수님은 매우 고통스러워하십니다.
부처님의 마음을 늘 평정하셨는데 예수님은 격정적이어서 결국 십자가에 못박히게 됩니다.
부처님과 예수님은 모두 진보적인 사회관을 갖고 계셨는데 예수님은 마치 선동하는 사람처럼 느껴지게 영화를 만들었습니다.
우리 부처님은 수행을 통해 완성된 인격과 신통력을 지니고 계신데다 80 평생을 교화하시다 가셨으니 널리 알려지는 것은 당연한데 예수님은 젊은 나이에 유명해지고 금방 사라져 버리는데 그럴려면 교주다운 끌리는 힘과 신통과 예언등이 있어야겠죠.
그런 기술적인 것밖에 보여줄수 없었던 것이 애석하네요..
좀더 오래사시고 많은 사람들을 교화했으면 좋았을 것을..
영화 엔딩 자막이 올라갈때 옆에 동영상도 나오는데 예수는 막달라마리아에게서 아들을 갖게 되더군요.,
정말 예수님은 중년이후로 막달라 마리아와 조용히 초야에 묻혀 살았을까요?
비교할수록 우리 부처님은 위대하십니다.
영화는 종교에 관심 없는 사람은 지루할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나름 볼만합니다.
음악이나 스케일, 그래픽 등 많은 자본을 들여서 만들었는데 우리 불교영화는 이렇게 만들지 못하는 것이 안타깝네요.
지금도 상영중인 '노아'라는 영화도 완전 기독교영화입니다.
돌아오는 길에 용화도량에 가서 참배후 사진을 찍었습니다.
용화도량 만들불사가 원만히 성취되길 바랍니다.
첫댓글 용화도량 너무 아름다워요 다음엔 용화도량에서 삼천배를 할수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