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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우 문학회 제1회 해외학술대회 문학기행
도여(道如) 채기병
일정(3박 5일)
가는 날(1월 22일 ,월) 인천 국제공항 출발→치앙마이 국제공항 도착
첫째 날(1월 23일, 화) 치앙마이
메땡 : 뗏목 래프팅→물소마차→코끼리 트레킹
치앙라이
해외 학술대회(문학을 통한 한•태 친선의 밤)→마사지
둘째 날(1월 24일, 수) 치앙라이→황금의 삼각지대(태국-미얀마-라오스 국경일대)
→왓롱쿤(백색 사원)→롱아룬(유황 온천)→치앙마이 시티투어(야시장)
셋째 날(1월 25일, 목) 치앙마이
도이수텝(산상 사원)→싼캄팽 거리(다온→라텍스→우산공예센터→꿀가게)
→마사지→나이트 사파리
오는 날(1월 26일, 금) 치앙마이 국제공항 출발→인천 국제공항 도착
초우 문학 창립 10주년을 앞두고, 초우 문학의 국제적 위상을 높이고, 한 단계 발전을 위해 문학 기행을 해외로 가기로 하고 오랜 기간을 준비한 끝에 드디어 출발을 하게 되었다.
저녁에 출발하는 비행기를 타기 위해 우리 일행은 오후 4시에 인천 국제공항 제2터미널에서 만나기로 했다. 인천 국제공항을 확장하면서 대한항공을 비롯한 4개 항공사가 제2터미널을 이용하게 되었고, 우리는 대한항공을 타고 가기 때문에 이곳에서 출발한다. 시간을 착각하여 집에서 너무 일찍 출발하는 바람에 공항에 도착하니 2시도 되지 않았다. 시간이 나서 3층 내부를 한 바퀴 돌아봤다. 제1터미널보다 규모는 작았지만 새로 지은 공항답게 시설이 깨끗하고 서쪽 끝에는 화분으로 조경을 잘 해 놓아서 사람들이 구경을 하고 사진을 찍는 사람도 있다. 달러와 바트로 환전을 하고, 가벼운 운동도 하고, 일찍 도착하니 느긋하고 여유가 있었다.
만날 시간이 다 되어 모임 장소인 동편 H카운터 창 쪽으로 갔다. 문복희 교수님을 비롯한 일행들이 거의 다 와 있다. 모두투어 노용남 사장을 포함 20명이 간다. 교수님께서 다가오시더니 이번 여행기를 쓰라는 임무를 주셨다. 글을 잘 쓰는 수필가 정병경샘께서 오셨으면 나한테 차례가 오지 않았을 텐데, 정신 차리고 여행을 다녀야겠다는 생각을 하니 마음을 조금 무겁다. 서로 인사를 하고 함께 모여서 백승언샘의 주도로 이번 여행을 무사히 잘 다녀오고 좋은 성과가 있기를 기도했다. 탑승을 위한 수속 절차를 밟고 나니 6시 40분에 출발하는 KE 667편 보딩 탑승 시각까지 1시간여 시간이 남아 면세점 구경을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늘 그렇듯이 오늘도 항공기는 제 시간에 이륙하지 못하고 30여분 지연되어 출발을 했다.
비행기 이코노믹석에서 1~2시간 비행은 괜찮은데, 3시간이 넘어가면 조금 힘들어지기 시작한다. 오늘을 5시간 정도 예상이 되니 많이 힘들 것 같다. 그래도 옆자리에 조형자 선생님과 방영희 선생님, 전옥희 선생님이 계셔서 이런 저린 얘기를 할 수 있어서 좀 나았다. 저녁 시간이 되어 기내식으로 소고기 면국수를 먹고 지루함을 잊기 위해 영화를 1편 보기로 했다. 거의 20년 전에 ‘물랑루즈’란 영화를 봤는데, 참 좋았다는 기억이 오래 남아 있었다. 거기서 나오는 명대사를 제자 결혼 주례를 할 때 인용하기도 했다. 이참에 추억을 되살릴 겸 다시 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영화를 보기 시작했다. 춤을 추는 장면이 많았다는 것 이외에는 스토리가 거의 생각이 나지 않았는데, 오랜만에 다시 보니 한 번 본 영화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새롭다. 이 영화에서 나오는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것은 사랑을 하고 사랑을 받는 것이다(The greatest thing you'll ever learn is just to love and be loved in return)” 라는 대사가 마지막에만 나오는 것으로 기억하고 있었는데, 시작 할 때도 나왔다. 처음 봤을 때의 감동적인 느낌은 아니지만 그런대로 재미가 있다. 아마 영화관에서 보는 것과의 차이일지도 모른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라는 말이 있듯이 몸은 불편하고 허리도 아프지만 시간은 흘러 3,400여km를 비행한 끝에 태국의 치앙마이(Chiangmai) 국제공항에 현지 시각으로 오후 10시 40분경에 도착 했다.
차에서 내리니 열대의 습한 냄새가 확 밀려들어온다. 인천 국제공항에 비해 규모가 작은 공항이다. 한 마디 질문도 없이 입국 수속을 하고 짐을 찾아 나오니 한 태국 아가씨가 초우문학회란 인쇄된 글씨를 펴들고 우리를 맞고 있고, 현지 가이드가 나와서 인사를 했다.
우리 일행은 대형 버스에 탑승을 하고 늦은 시각이라 바로 숙소를 향했다. 버스를 타자 현지 가이드가 인사말과 주의 사항을 말했다. 자기 이름은 강수안(水安)인데 강부장이라고 부르면 된다고 하면서 19년 전에 태국에 와서 생활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목소리도 시원시원하고 성격도 밝은 것 같아서 여행이 한층 재미있을 것 같다는 예감이 든다. 3가지 주의 사항을 주었다. 첫 번째는 중요한 것을 잘 챙겨라, 여권은 가장 중요하니 매일 확인하고, 차량 내부에는 귀중품, 휴대폰, 현금 가방 등을 놓지 말고 늘 들고 다녀라. 두 번째는 아무 물이나 먹지 마라, 여기 물은 석회질이 많아서 좋지 않으니 지정된 물, 즉 호텔이나 음식점에서 유리병이나 페트병에 담긴 물만 먹어라. 세 번째는 차량이 우측통행을 하는 한국과는 달리 좌측통행이니 길 건널 때, 타고 내릴 때 조심하라고 했다. 우리 일행에 연세 드신 분들이 많아서 나는 자연히 뒷좌석에 앉게 되었는데, 차량의 흔들림이 무척 심해서 가이드의 말을 받아쓰기가 힘들었다. 그래서 그 때는 태국의 도로가 아주 좋지 않다고 생각을 했는데, 나중에 보니 도로가 아니라 차량의 문제였다. 이 문제는 해결되지 않은 채 여행 내내 그랬고, 급기야 나중에는 한 분이 항의도 하였지만 해결이 되지는 않았다. 어쨌든 후기를 써야하는데, 차량 이동 중에는 글씨를 쓸 수 없을 정도로 흔들려서 걱정이 된다. 입국 수속 절차를 밟고 이동하다 12시가 넘어서 홀리데이 인(Holiday inn) 호텔에 도착했다. 방을 배정받았는데 2018호다. 2018년에 2018호니 뭔가 좋은 기운이 올 것 같은 막연한 기대가 인다. 방은 두 개의 큰 침대가 놓여있고 꽤 넓은 편이다. 허원회장님과 함께 쓰게 되었다. 원래 여행 일정에는 아침 출발 시각이 오전 8시30분이었는데, 강부장이 5시30분에 모닝콜을 울려줄 테니 일어나서 6시부터 식사를 하고 7시에 출발한다고 했다. 그러면 도대체 잠을 몇 시간 잘 수 있나? 금방 잠이 드는 성격도 아닌데, 걱정이 앞선다.
첫째 날(1. 23. 화, 맑음)
5시 30분 야속한 모닝콜이 힘차게 울린다. 하지만 난 밤에 뒤척이다가 그보다 먼저 일어나서 화장실에 다녀왔다. 허원선생님은 밤에 난 아침에 큰일을 보니 겹칠 일이 없어서 좋다. 6시에 짐을 싸들고 로비에 와보니 몇 분 나오시지 않았다. 먼저 식당에 가서 식사를 했다. 뷔페로 차려진 음식인데, 난 어디가나 먹성이 좋아서 이것저것 골고루 다 잘 먹는 편인데, 허원 선생님은 입맛에 맞는 것이 별로 많지 않은 듯 조금밖에 안 드셨다.
7시에 출발하기로 했지만 6시 50분에 내려오는 분도 있다. 7시에 출발한다는 얘기를 두 분이 다 듣지 못했단다. 가이드가 설명할 때 잘 들어야 여행이 원활해질 수 있다. 그 결과 20여분이 지나서 출발을 했다.
오늘은 정글 속에서 여러 가지를 체험하는 날이다. 가이드가 가는 동안 계속 이야기를 했다. 우선 태국에 왔으니 꼭 필요한 말을 배우면 좋겠다고 한다. 먼저 ‘안녕하세요?’라는 말은 남자와 여자가 다른데, 남자는 ‘싸왓디크랍(Sa_wat_dii khrap)’, 여자는 ‘싸왓디카(Sa_wat_dii kha)’라고 하면서 스님이 인사하듯이 두 손을 모으고 고개를 숙이면서 공손하게 하면 된다고 했다. ‘안녕히 가세요.’도 같은 말을 쓰면 된다. 여기는 게이가 많아서 남자가 ‘싸왓디카’라고 하면 게이라고 생각한다고 하니 조심해서 써야겠다. 이어 ‘감사합니다’라는 말은 ‘콥쿤크랍Khawp_khun khrap)’, ‘콥쿤카(Khawp_khun kha)’라고 하며, 가장 중요한 말은 급할 때 사용할 수 있는 ‘화장실’인데, ‘헝남’이라고 하면 얼른 가르쳐 준다고 했다. 사실 패키지 관광에서 현지 말을 쓸 일은 거의 없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일 것 같았는데, 마사지 받고 나서 ‘콥쿤크랍’이라고 한 것 이외는 쓴 적이 없는 것 같다.
여행이 좋으려면 3가지 복이 있어야 한다고 한다. 날씨 복, 팀(team) 복, 가이드 복이 있어야 한다는데, 오늘 날씨로 봐서는 날씨 복을 받을 것 같고, 팀 복은 같은 초우문학회원들이 왔으니 더 말할 필요가 없다. 거기에다 가이드 복까지 있으면 다 갖춰지는 건데, 이번 가이드를 보니 그 복도 있을 것 같다.
치앙마이에 오면 특별히 5가지를 하고 가야한다고 말해주었다. 첫째는 태국 최고봉(해발 2565m)인 도이이타논(Doi Ithanon) 산에 가보는 것인데, 이 산은 아바타 영화의 영감을 얻은 곳이고 식물군이 뛰어나다. 두 번째는 집라인(Zip line)으로 고도차를 이용하여 한 나무에서 다른 나무로 줄을 매달고 줄타기를 하는 것이다. 세 번째는 시티 투어로 성곽, 해자, 야시장 등을 돌아본다. 네 번째는 나이트 사파리로 초식 동물과 육식 동물이 사는 곳을 야간에 돌아보는 것인데, 특히 초식 동물들은 사람 바로 옆으로 다가온다. 다섯 번째는 안마를 받고 가는 것인데, 태국 안마 기술은 세계 최고의 수준으로 700년 역사를 갖고 있다. 원래는 왕족을 위한 것이었지만 민간으로 전파되어 대중화되었다. 보통 2시간 정도 전신 마사지를 받는다. 그 중에 우리는 일정이 짧아 3,4,5번만 한다고 하는데, 5가지를 다 못한다고 해도 벌써 기대가 되었다.
태국은 면적이 51.3만㎢로 남북한의 2.3배, 남한의 5.1배가 되며 인구는 약 7,000만 명으로 비교적 큰 나라이다. 태국은 제국주의 시대에 동남아시아에서 유일하게 독립을 유지한 나라이다. 지형은 산이 20%, 평야가 80%인 나라로 벼농사가 잘 발달되어 있고, 세계 최대의 쌀 수출 국가이다. 산지가 적은 것 같지만 남한 면적보다 넓다. 치앙마이가 속한 북부 지역은 산악과 삼림 지역이고, 치앙마이는 타이 제2의 도시로 종교·경제·문화·교육·교통 중심지 역할을 한다. 태국의 기후는 열대 기후 지역에 속하며 기상조건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치는 것은 열대몬순이다. 태국의 기후는 세 계절로 뚜렷이 구별된다, 3월부터 5월까지는 매우 무더운 계절이다. 6월에서 10월까지는 우기에 해당하여 기온이 조금 떨어진다. 11월에서 2월은 가장 시원하며 낮에는 덥지만 해가 지면 선선한 날씨를 보인다. 따라서 이 계절에 여행을 하는 것이 가장 좋다.
타이는 1차(농림수산업) 산업과 3차 산업(관광)이 발달된 나라이며 2차 산업은 미약하다. 역사적으로 외국의 지배를 받지 않았고 경제적으로도 크게 의존하지 않고 산다. 경제력이나 국민 소득은 우리보다 낮지만 부자들이 많은 나라이다. 서양인들은 태국을 ‘미소의 나라’라고 한단다. 사람들이 잘 웃고 다니기 때문인데, 태국의 서민들은 먹을 걱정을 별로 하지 않고 산다고 한다. 얼마 전에 사망한 태국 왕은 많은 재산과 사업체를 가지고 있는데, 수익의 50%를 국민들에게 돌려주어서 존경을 받는다고 한다. 초등학교 6학년까지는 의무 교육이라서 애들은 학교에 다니고 있어서 관광지에서 꼬마 거지들을 볼 수 없는 나라이다. 태국은 코끼리를 가장 좋아하는데, 코끼리는 부귀와 건강, 행운을 가져다준다고 한다. 평균 수명이 80세로 야생 코끼리가 거주하는 지역은 따로 있고, 보통은 집에서 기르는데, 젊었을 때는 일을 시키고, 50세가 넘으면 쉬게 하면서 돌본다. 먹고 싸는 양이 워낙 많아서 보통 사람들은 기르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 정글에서 벌목한 나무를 운송하는데 코끼리가 아주 중요하다.
치앙마이에서 다니다 보면 고층 건물도 거의 없고, 아파트 단지 같은 집합 건물은 찾아볼 수 없는데, 태국에서는 모양이 같은 건물을 지을 수 없다고 한다. 그래서 각기 다른 모양의 건물들로 이뤄졌는데, 아마도 관광과 관련된 정책이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도시를 빠져 나오면 전통 가옥을 많이 볼 수 있다. 고온다습한 열대지방의 전통 가옥은 고상식(高床式) 가옥으로 우리나라처럼 바닥에 붙여서 집을 짓지 않고, 기둥을 세운 후 지면에서 낮게는 50cm에서 높게는 수m까지 띄워서 짓는다. 고상식 가옥을 짓는 이유는 기온과 습도의 영향이 크다. 기온이 높기 때문에 지열을 피하기 위해서, 그리고 비가 많이 내리고 습기가 많기 때문이기도 하다. 우리나라보다 건물이나 사원의 지붕의 경사가 급한데, 강수량이 많은 것과 관련이 된다. 거기에다 야생 동물의 침입을 막기 위한 이유도 있다. 치앙마이 일대의 고상식 가옥은 거의 대부분 1m 이내로 보였다. 그러나 농촌 지역도 최근 가옥은 고상식을 하지 않은 집이 많이 보였다.
도시를 벗어나면 농경지가 펼쳐지는데, 대부분 논이다. 논의 풍경은 우리나라와 달랐다. 연중 벼농사가 가능하기 때문에 어느 곳은 금방 수확한 모습이고, 어느 곳은 모내기를 하기 위해 물을 채운 곳도 있고, 어느 곳은 벼가 자라서 파릇파릇하다. 1년에 2~3번 경작이 가능하다고 하니 심고 수확하는 시기가 특별히 없다고 볼 수 있다.
버스로 1시간여를 달려 체험장에 도착했다. 체험장 입구엔 메땡 코끼리 공원(Mae Taeng Elephant Park)이란 간판이 보였다. 어떤 일이 펼쳐질지 가슴이 두근두근 거린다. 도착해서 둘러보니 우리에 갇혀 있는 코끼리가 보였다. 어디든 제일 먼저 하는 일은 화장실 가는 거였다. 태국은 관광 왕국답게 화장실이 아주 깨끗하고 좋았다. 3가지 체험장이 거의 붙어 있어서 당장 가능한 것부터 타기 시작했는데, 먼저 뗏목타기부터 했다. 뗏목은 이 지방에서 자라는 대나무를 재료로 15~20개 정도를 한 줄로 단단히 묵어서 만들었는데, 마무리를 깔끔하게 하지 않아서 뗏목 끝이 들쭉날쭉했다. 대나무는 속이 비여서 물에 가볍게 잘 떠오르는 것 같았다. 거기에 나무 판자로 길게 만든 조잡한 의자를 올려놓고 앉는데, 의자는 고정된 것이 아니고, 탑승 인원수에 맞게 올려놓으면 되었다. 한 의자에 2명씩 앉을 수 있으니 6명이 타면 의자를 3개를 놓는다. 앞뒤로는 사공이 한 명씩 타고 대나무로 저어 가면서 방향을 조절한다. 우리는 6~7명이 한 조가 되어 3개의 뗏목에 타고 출발을 하였다. 1조는 문복희 교수님과 이문희샘, 김옥희샘, 김영주샘, 조형자샘, 허복례샘, 유정숙샘 등 7명이 먼저 떠나고, 2조엔 백승언샘 공한성샘 전옥희샘 방영희샘, 김순해샘, 정혜원샘 등 6명이 탑승을 해서 출발하고, 난 마지막 3조로 노용남사장, 허원샘, 류영자샘, 우금옥샘, 강석자샘, 강복례샘과 함께 7명이 출발하였다. 구명조끼도 안 입고 강을 타고 내려가느냐고 했더니 여러 번 와 보신 노사장님이 이 강은 깊지 않아서 괜찮다고 했다.
가장 연장자이신 허원샘은 의자에 방석도 없다고 한 말씀 하셨다. 그러고 보니 딱딱한 의자에 앉아서 가는 것은 힘드실 것 같다. 그렇지만 배가 출발하니 신이 나셔서 노래를 줄 곳 부르셨다. 처녀 뱃사공부터 해서 아리랑, 오솔레미오, 대니보이(아목동아)등 외국 곡까지 두로 섭렵하셨다. 뱃사공들도 한국 사람들이 얼마나 다녀갔는지, 한국 노래를 꽤 많이 알고 있고, 우리 말도 몇 가지는 안다. 나무 이름도 알고, 물에 둥둥 떠다니는 것을 보고 ‘코끼리 똥’이라고 가르쳐 주기도 했다. 출발하면서 팀을 조금 더 줬더니 더 흥이 나서 재밌게 노를 젓는 것 같았다. 중간에 우리 일행들에게 노 젓는 체험을 하라고 했다. 백승언샘, 강복례샘, 정혜원샘, 김순해샘 등이 실제로 저으면서 무척 기뻐하셨다. 배를 타고 가는 중간에 코코넛을 파는 사람들이 보였는데, 물속까지 들어와서 호객 행위를 했다. 우리는 하나에 20바트씩 4개를 사서 나누어 먹었다. 목이 마르지는 않았지만 전에 필리핀에서 사먹었던 맛과 같았다. 물을 다 먹고 나서 하얀 속까지 파먹었다. 속에 붙어 있는 것이 생각보다 맛있다. 우리 3조는 2조를 추월해서 앞서가고, 1조까지 추월하여 가장 먼저 도착하였다. 빨리 가는 것이 좋은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앞서가면 신이 난다.
메땡(Mae Taeng) 강(메땡 강, 메콩 강 등 메는 강이란 뜻이다. 따라서 강이라고 다시 붙이는 것은 2중 표현인데, 한강을 영어로 Han River라고 하지 Hangang River라고 하지 않듯이 붙이지 않는 것이 맞지만 우리말 표기법에는 그렇게 하게 되어 있다.)을 따라서 4km를 40분 정도 걸려서 탐사를 했다. 이 강은 숲이 우거진 정글 사이를 흐르는 강으로 폭이 넓지는 않고, 깊이도 깊지 않지만 지금은 건기라서 그렇고 우기에는 깊어질 것 같다. 주변 경관이 좋고, 중간에 낮은 폭포도 하나 나타난다. 탐사 초입에서는 코끼리 트레킹 하는 것을 볼 수 있고, 토란 같은 것들이 중간 중간에 자란다. 중간에 코끼리들이 풀을 뜯어 먹는 모습도 보인다. 물은 느린 속도로 흐르는데, 가끔 여울이 나타나서 조금 빨리 흐르기도 한다. 탐사의 끝부분으로 가면 대나무를 많이 볼 수 있는데, 가지가 황금색을 띠고 있다. 내려서 보니 사람 다리통만한 대나무들이 수십 미터 높이로 죽죽 자라고 있었다. 물소 마차를 타기 위해 이동하려고 버스에 오르니 창문 밖으로 대나무 뗏목을 작은 기중기로 들어 올려서 차에 싣는 장면이 보인다. 뗏목 탐사 하나로 여러 사람이 먹고 사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뱃사공, 뗏목 태워주고 내려주는 사람, 뗏목을 차에 싣고 내리는 사람, 운전기사, 기중기 기사 등 관광 산업이 발달하면 일자리가 많아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다음 순서는 물소 마차를 타는 차례이다. 4명이 한 조가 되어 두 마리의 물소가 끄는 마차에 오르면 천천히 이동한다. 물소는 등에 큰 혹이 달려있는데, 흰색, 갈색, 누런색 등 털 색깔은 다양했고 덩치도 소마다 조금 차이가 난다. 두 마리가 같이 끌어야하니까 한 마차를 끄는 소는 색이나 크기가 거의 비슷했다. 나는 누런 소가 끄는 마차를 탔는데, 이소들은 아주 실한 놈이어서 그런지 앞 마차의 바로 뒤에 자꾸 붙어서 마부가 제어를 하곤 했다. 마차 위에는 큰 파라솔을 꽂아 놓아 뜨거운 햇볕을 피할 수 있게 만들었는데, 지금은 기온이 서늘해서 잘 못 느끼지만 한낮이나 더운 계절에는 꼭 있어야 할 것 같다. 태국은 저위도에 위치하기 때문에 연중 기온이 높지만 그래도 북반구에 위치하여 지금이 기온이 조금 낮은 편이다. 열대지방은 연교차보다 일교차가 더 큰 것이 특징이라서 아침과 낮의 기온차가 크게 나타난다. 따라서 오늘도 아침에는 우리나라 10월 날씨처럼 다소 차갑게 느껴지지만 한낮에는 햇볕이 강하여 조금 덥다. 하지만 건기이기 때문에 햇빛만 피하면 기온이 높아도 더위를 크게 느끼지 않는다. 나는 유정숙샘, 노사장, 허원샘과 한 조가 되어 약 30분 정도 주변을 둘러보았다. 주변은 공사 중인 곳이 많아서 어수선하기도 했는데, 노사장 얘기로는 올 때마다 뭔가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 만큼 관광 산업이 발전하고 있다는 보면 될 것이다. 물소들은 똥 받이가 없어서 가다가 아무데나 똥을 쌌다. 그러면 다음 마차가 밟고 지나가고 그러니 똥 냄새가 진동할 수밖에 없다. 처음에는 진하게 났지만 코가 마비되는지 나중에는 냄새를 잘 못 느끼겠다. 코스는 마을을 지나 다시 돌아 나오는데, 낡은 전통 가옥들을 볼 수 있다. 출발지 근처에는 큰 막사 안에서 소들이 쉬고 있다. 계속 사람을 태우고 다닐 수는 없을 것이다. 더운 계절에는 아무리 천천히 다닌다고 해도 소들이 아주 힘들 것 같다.
이제 남은 하나는 허원샘이 전에 태국에 왔을 때 못 타봐서 이번 여행에서는 반드시 타야겠다고 오기 전 미팅에서부터 말씀하신 코끼리 트레킹이다. 코끼리 트레킹은 여러 코스가 있는 것 같다. 안내 프린트에는 리수 마을 생활을 관람할 수 있다고 되어 있는데 우리는 다른 짧은 코스를 선택한 것 같았다. 코끼리 트레킹은 2인 1조가 되어 탄다. 나는 허원샘과 같은 조가 되어 코끼리 등에 올랐다. 잠도 같이 자고, 뗏목, 물소 마차, 코끼리 트레킹까지 같이 하니 무척 친해진 것 같다. 등에 올라가 보니 밑에서 보는 것과는 다르게 아주 높았다. 안전장치가 되어 있기는 하지만 단단히 잡지 않으면 위험할 것 같은데, 아직 한 명도 떨어진 사람이 없다고 하니 안심하고 타기로 했다. 그래도 계단을 내려갈 때는 앞으로 떨어질 것 같고, 언덕을 올라갈 때는 뒤로 넘어갈 것 같고, 걸음을 옮길 때마다 흔들림이 심하다. 강둑에서 강으로 내려와 메땡 강을 따라 뗏목 출발지점을 지나 조금 더 이동하고 나서 다시 강둑으로 올라 산비탈 길을 따라 이동하다가 다시 강으로 내려와 원래 자리로 되돌아온다. 앞에 조형자샘과 허복례샘이 있어서 사진을 찍어드리고, 코끼리 조련사에게 앞에 타신 분들의 나이를 말했더니 깜짝 놀라면서 나보고 몇 살이냐고 물었다. 60이 되었다고 하니 고맙게도 45살 정도로 보인다고 했다. 지금부터 45살로 살아야 할 것 같다. 비탈길 중간에 다른 쪽에서 코끼리 트레킹을 하는 사람들과도 만났다. 가이드 얘기로는 코끼리를 학대하는 것이 싫어서 타지 않겠다는 사람도 있지만 여기 코끼리는 야생 코끼리를 잡아다가 시키는 것이 아니고 사육하는 코끼리를 시키는 것이라서 괜찮다고 했지만 막상 타보니까 그건 아닌 것 같다. 코끼리를 부리는 사람은 안장도 없이 코끼리 귀 바로 뒤 목에 타는데 하나같이 날카로운 쇠꼬챙이를 들고 있다. 큰 코끼리가 작은 사람한테 복종하는 것은 이 꼬챙이의 힘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말을 잘 듣기까지는 얼마나 많이 찍혔을까? 평평한 길은 그래도 괜찮은 것 같은데, 오르막과 내리막에서는 코끼리가 힘들어했다. 특히 내가 탄 코끼리는 좀 약한 것인지, 다 돌고 나서 마지막 강가로 내려올 때는 한 발 한 발 힘들게 내려가는 모습이 등위에서도 느껴졌다. 다음에 혹시 다시 오게 되면 타고 싶지 않을 것 같다. 코끼리를 타고 강을 건너고, 언덕을 올라 비탈길을 가는 중에 아뿔싸 허원샘이 들고 있던 작은 가방이 바닥에 떨어지고 말았다. 이걸 어떻게 하지? 코끼리 부리는 사람이 뒤따라오는 사람에게 뭐라고 했다. 나는 뒤에 있는 코끼리가 지갑을 코로 잡아서 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뒷사람이 언덕 쪽에 코끼리를 바짝 붙이더니 내려와서 5달라라고 농담을 하면서 직접 집어줬다. 돌발 상황에 바로 대처하는 걸 보니 비슷한 일이 가끔 발생하는 것 같다. 즐겁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한 2시간여의 체험 일정이 끝나고 11시경에 점심 식사를 했다. 가야할 길이 멀기 때문에 서두르는 것 같다. 점심은 역시 현지 뷔페식으로 쌀국수, 닭고기, 빵, 스프, 각종 채소 요리, 과일 등이 다양하게 있어서 배부르게 먹었다. 코끼리 공원답게 뷔페 음식 한 가운데도 코끼리 상이 있다. 커피도 한 잔 마셨는데, 커피 맛이 조금 진했다. 이곳은 커피 기계 앞에 설탕과 스푼이 준비되어 있다. 태국 사람들은 설탕을 좋아한다고 하더니 정말 그런가 보다. 하긴 우리도 전에는 커피를 마실 때 쓰다고 설탕을 많이 먹었으니 이 곳 사람들도 그런 것이 아닐까? 이렇게 잘 먹고 다니면 살이 찔 텐데. 여행을 다녀오면 늘 살이 찌곤 했는데 이번에도 그럴 것 같다. 가이드는 우리를 3kg 살찌게 하는 것이 목표라고 한다.
점심 식사 후 12시에 이번 기행의 목적인 해외 학술대회를 위해 치앙라이(Chiang Rai)로 출발 했다. 여기서도 가이드의 설명이 이어진다. 치앙라이로 가는 길은 산악지역으로 한국의 미시령과 같다고 한다. 큰 고개를 몇 개 넘어 3~4시간을 달려야 도착한다고 한다. 태국 사람들은 자연을 보호하기 위해 터널을 뚫지 않는다고 한다. 산길을 굽이굽이 돌아서 가는데다가 우리 버스는 힘이 없는 버스라서 고갯길을 올라갈 때마다 헐떡거리며 힘들어했다. 처음 탈 때부터 알아봤는데, 그래도 에어컨이 잘 나와서 그나마 다행이다.
태국을 비롯한 동남아시아의 숲을 정글이라고 부른다. 정글은 열대우림과 차이가 나는데, 열대우림은 비가 아주 많이 내리는 적도 인접 지역에서 볼 수 있으며 크기다 다른 나무들이 다층(多層) 구조를 이룬다. 나무가 울창하게 자라 햇빛을 막기 때문에 하층 식물이 잘 자라지 못한다. 그에 비해 정글은 열대우림처럼 나무가 많이 자라지 않고, 사바나 기후보다는 건기가 짧고 덜 건조하기 때문에 초원이 나타나지도 않는다. 대신 잡목들이 많이 자라서 숲이 매우 복잡하여 앞이 잘 보이지 않는다. 베트남 전쟁에서 미군들이 고엽제를 많이 뿌린 이유가 산속에 들어가면 정글이 발달하여 앞을 볼 수 없어서 나무들을 모두 고사(枯死) 시켜야 했기 때문이었다. 치앙라이로 넘어가는 산속은 모두 정글이 발달해 있어서 숲이 무척 복잡해 보인다. 열대지방은 기온이 높아서 대부분의 나무는 잎이 지지 않고 늘 푸른 상록 활엽수림이다. 소나무와 같이 침엽수림은 열대지방에서는 많이 보기 힘들며 고산 지역에서 일부 나타난다. 열대 지방의 나무는 티크와 같이 매우 단단하기 때문에 배를 만들거나 가구를 만드는데 이용된다.
2시간여를 달려 휴게소에 들렀다. 잠깐 돌아보니 주변은 대부분 논이고 휴게소 한쪽에서는 채소를 수경재배 하고 있었다. 부드러운 모양이 뜯어 먹으면 맛있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식사 때 나오는 채소가 아주 부드러운 것은 아마도 수경 재배를 한 것 같았다. 이곳은 논이 아주 많이 분포하는 것으로 보아 넓은 분지 지역으로 보인다. 다시 산을 넘어가야 치앙라이라고 했다.
가는 길에 보면 마을의 집집마다, 혹은 농경지 주변에 바나나를 심은 것을 볼 수 있다. 태국은 습한 날씨로 인해 뱀들이 아주 많은데, 그 중에 독이 강한 코브라 같은 뱀은 물리면 사망하기 쉽다. 뱀들이 바나나 나무 냄새를 싫어하기 때문에 집 주변이나 농경지 주변에 심으면 피해를 줄일 수 있다고 한다.
태국은 강 주변으로 늪이 아주 많다. 그 결과 3가지 종류의 파충류가 많이 산다. 하나는 도마뱀으로 손가락만한 것부터 시작하여 아주 큰 도마뱀까지 다양하다. 그 중에는 유익한 것도 있고 위험한 것도 있다. 손가락 크기의 작은 도마뱀은 이빨이 없고 날아다니는 해충을 잡아먹는데, 야간에 불빛 주변에 많이 모이는 유익한 도마뱀이다. 또 하나는 악어이다. 악어는 가죽용으로 많이 기르지만 유럽에서는 악어 고기가 고급 요리라고 한다. 마지막 하나는 뱀이다. 뱀 중 약 40%는 야생 코브라로 독성이 아주 강하고, 30% 정도는 구렁이인데 독이 없는 대신 아주 크고 먹이를 통으로 삼키는데, 악어까지도 삼키는 놈이 있다고 한다. 뱀의 종류가 많고 독성도 다 달라서 뱀에 물려오면 바로 해독제를 놓지 않고, 어느 뱀에 물렸는지 먼저 확인하고 나서 해독 주사를 놓는다고 했다. 태국의 전봇대는 모두 사각 기둥으로 되어 있는데, 그 이유도 뱀이 타고 올라오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다. 둥근 기둥은 뱀이 말고 올라와 전기 합선 등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고 한다. 태국과는 달리 우리나라 전봇대는 모두 둥근데 이는 태풍의 피해를 줄이기 위해서란다. 태국은 태풍이 불어오지 않기 때문에 사각 기둥으로 만들어도 바람의 피해를 입지 않는다.
두 시간을 더 달려서 행사장에 도착했다. 행사장은 치앙라이에 있는 피만인(Pimanninn) 호텔인데, 2층으로 된 지붕이 붉은색을 띠는 아담한 호텔이다. 행사를 미리 준비해 오신 이한기박사와 그 일행들이 행사장 입구에서 우리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우리들은 준비해온 시 족자를 호텔 마당에 걸어 시화전 준비를 하고, 옷을 갈아입고 서둘러 준비를 했다. 4시 40분에 야외 행사장에서 우리 측 임원진과 상대측 임원들의 테이프 커팅으로 행사가 시작됐다. 문복희 교수님께서 전시 족자들을 따라 안내하시면서 설명을 하셨다. 내 작품도 있어서 교수님이 오라고 하시더니 다른 분들에게 소개하고 나서, 은행잎을 노란 눈으로 표현한 작품이라고 설명을 하셨다. 20여분을 야외에서 돌고, 단체 기념사진을 찍고 나서 실내 행사장으로 들어와서 본 행사를 시작했다. 초우 문학회와 아정 문학 동호회 주최로 초우문학회 제1회 해외 학술대회, 문학을 통한 태•한 친선의 밤이 시작되었다.
식장은 8개의 큰 원탁테이블이 준비되어 있고, 정면으로 무대가 설치되어 있다. 유정숙 초우문학회 총무가 사회를 보고, 1부와 2부로 나뉘어 진행을 했다.
1부는 식순과 조금 다르게 진행되기도 했는데, 이한기 교수가 먼저 환영사를 했다. 이 행사를 준비하면서 여러 사람들이 적극적으로 도와줘서 감사하다는 말씀과 함께 어떤 일을 했는지 일일이 호명하면서 감사의 인사를 드렸고, 우리는 힘찬 박수로 화답했다. 이분들은 한국의 전국 각지에서 온 사람들이었다. 다음은 류영자 초우문학회 회장님이 이런 자리를 준비해준 모든 분들께 고맙다는 인사 말씀을 했다. 이어 김정옥 교수가 축사를 했는데, 공간과 시간 그리고 시의 만남이 이 자리에서 이루어졌다는 말씀으로 끝맺음을 했다. 이어 1부의 하이라이트로 문복희 교수의 문학 강좌가 시작되었다.
문복희 교수는 초우문학회의 모토인 ‘생활 속의 문학, 문학의 생활화’의 모델이 되는 시와 시조를 준비했다. 외국에 나가면 누구나 애국자가 된다고 하는데, 거기에 맞는 ‘애국심’이란 주제를 가지고 ‘생활 속의 문학’이 어떻게 전개되는지를 부드러우면서도 아주 또박또박하게 말씀하셨다.
애국자 가족
서담(2017, 시민 공모작)
엄마하고 동생들하고
미용실에 갔다
옆자리 아줌마가 물었다
- 몇 남매 두셨어요?
- 삼남매요
- 애국자시네요
- 그럼요
으쓱해하는 엄마
나도 어깨가 으쓱해졌다
엄마를 애국자로 만든 건
바로 우리들이니까
미용실에서 일상적으로 주고받는 대화를 소재로 하여 일상어를 시어로 변형하여 시가 되었다.
조지훈은 좋은 시의 조건으로 감동, 공감 그리고 신선한 충격이라고 했다. 애국이라고 하면 거창하게 생각하기 쉬운데, 삼남매를 둔 것을 애국자라고 하는 것이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온다. 물론 시대적인 반영이라고도 볼 수 있다. 가족계획이 추진되던 시대에는 삼남매를 둔 것이 부끄러울 수도 있는데, 인구 절벽 시대에 으쓱해하는 엄마라는 표현을 통해 엄마의 품격이 상승되고 자부심이 느껴진다. 마지막 연이 이 시를 시로 만들었다고 볼 수 있다.
다음은 고려, 조선조 전환기에 화답 시조를 통해 애국이라는 것을 생각해 봤다.
태종 이방원의 하여가(何如歌)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만수산 드렁칡이 얽혀진들 어떠하리
우리도 이같이 얽혀 백 년까지 누려보세
포은 정몽주의 단심가(丹心歌)
이 몸이 죽고 죽어 일백 번 고쳐 죽어
백골이 진토되어 넋이라도 있고 없고
임 향한 일편단심이야 가실 줄이 이시랴
이방원(1367~1422)이 새나라 창업에 동참하자는 내용을 담은 하여가(何如歌)에 포은 정몽주(1337~1392)는 고려의 신하로 남겠다는 단심가(丹心歌)로 화답했다. 정몽주의 단심가는 그가 고려의 충신임을 보여주는 대표작이다.
우아한 한복을 입고 강의하는 모습이 군계일학의 모습이다. 멋진 강의에 모두 큰 박수를 보낸다. 강의를 마치고 나서 초우문학회 임원진들을 소개하셨다.
이어 1부의 끝으로 시낭송을 하였다. 3명이 문복희 교수의 시 3편을 차례로 낭송하였는데, 무대 화면엔 전옥희샘이 준비한 화상과 음악이 흘러나오는 가운데, 낭송하는 목소리가 은은하게 울려 퍼졌다. 첫 시는 ‘백목련’으로 조형자 시인이 낭송했고, 두 번째 시는 ‘숲으로 가리’는 방영희 이사가, 세 번째 시는 ‘나비의 발’로 공한성 시인이 낭송을 했다. 조형자샘은 예쁘게 차려입고 나오고 공한성샘은 모자에 안경까지 멋있게 끼고 나왔는데, 조명이 너무 어두워서 아쉬움이 남았다.
2부는 백승언샘의 하모니까 연주로 시작되었다. 빨간 나비넥타이를 매고 무대에 올랐다. 색소폰만 잘 부시는 줄 알았더니 하모니카 실력이 뛰어났다. 큰 박수를 쳐주시면 앙코르 곡까지 하겠다고 하면서 시작했다. 첫 곡은 ‘어메이징 그레이스’ 익숙한 음악이라서 더 감동이 오는 것 같다. 큰 박수에 호응하셔서 ‘강 같은 평화’라는 앙코르곡까지 깔끔하게 마무리하셨다. 이어 변비비안과 7명의 연주자들이 오카리나 합주를 하고, 맨 나중에 변비비안님의 독주로 마무리했다. 노래가 끝나고 문복희 교수께서 오카리나 연주자들에게 당신이 쓰신 시집을 선물로 주시고, 같이 기념사진을 찍었다. 다음은 내 독창 순서, 여러 사람 앞에서 높은 무대로 오르니 가슴이 두근두근 거렸다. 정지용 시인에 대해 몇 마디 얘기를 하고, 채동선의 곡에 붙인 정지용 시인의 ‘고향’이란 가곡을 불렀다. 3~4마디를 하고 나니 차분해져서 노래 부르기가 편안했다. 관객들이 아주 조용하게 응시하고 있어서 빨려 들어가는 느낌으로 부를 수 있었다. 한 곡만 하고 내려오니, 교수님께서 더 준비한 곡이 없느냐고 해서, 박수 한 번 크게 쳐주시면 앙코르 곡을 하겠다고 하고 나서 다시 무대로 올라가 ‘넬라 판타지아’를 1절만 부르고 내려왔다. 4시간여를 차타고 오는 내내 에어컨 바람을 쏘였더니 목기 잠겨서 고음이 좀 불안하게 할 수밖에 없어서 조금 아쉬움이 남지만 나름 최선을 다해 불렀다. 큰 실수 없이 무사히 마칠 수 있어서 기뻤다. 이어 초우문학회원들이 준비한 ‘아리랑’을 합창으로 불렀다. 초록색 스카프를 목에 두르고 백승언샘의 하모니카 연주에 맞춰서 처음에는 느리게, 두 번째는 보다 빠르게 박수를 치면서 관객과 하나 되어 불렀다. 여기 도착하기 전에 버스 안에서 연습을 좀 해서 손놀림은 잘 안 맞았지만 노래는 반주에 맞춰 실수 없이 불렀다. 마지막 무대는 현지 저녁노을합창단의 합창이었다. 이한기교수가 지휘를 하고, 기타에 맞춰 15명의 합창단원들이 여러 곡을 불렀다. 연습을 아주 많이 한 모습이다. 복장도 통일이 되어서 합창단다운 면모가 있다. 이렇게 마무리를 하려는데, 현지에 사는 태국 주민들이 합창을 하겠다고 무대로 올라왔다. 휴대폰 음악에 맞춰서 부르는데, 즉석에서 해서 그런지 음악과 소리가 잘 맞지는 않았지만 앙코르 곡까지 열심히 부르는 모습에 힘찬 박수를 보냈다. 이어 초우문학회에서 준비한 선물을 추천에 의해서 드리고, 태국 사람들에게도 선물을 드렸다.
모든 행사가 계획대로 잘 이뤄지고 모두 나와서 기념 촬영을 하고, 저녁 식사를 했다. 현지 뷔페식인데 음식의 종류는 많지 않았지만 정갈하고 맛은 깔끔했다.
다음 여행 일정 시간에 쫓겨 인사도 하는 둥 마는 둥 하고 출발을 했다. 한국인이 운영하는 타이 마사지집인 한마루(HanMaLu)에 갔다. 계획표에는 한 시간이었으나 가이드가 2시간을 받도록 해 주겠다고 한다. 옵션 선택에 대한 서비스차원에서 하는 것 같다. 옷을 갈아입고 앉으니 마사지하는 여자들이 커피 물이 담긴 세수 대야 같은 통을 가져와서 발을 닦아주었다. 냄새를 제거하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하루 종일 다니다 왔으니 발 냄새가 제일 심하겠지. 이어 발끝부터 종아리, 허벅지, 팔, 목, 어깨, 등까지 손과 팔꿈치로 열성을 다해 마사지를 해 주었다. 받으면서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이 친구들이 앞으로 건강하게 잘 살기를 기도했다. 한국인 사장이 일일이 다니면서 어떤지를 물었고, 특별히 아픈 부위가 있으면 말하라고 해서 달리기를 하면서 생긴 아픈 부위를 말했더니 그 부분을 다시 한 번 더 마사지를 해 주었다. 사장의 성의가 느껴졌다. 고마운 마음에 기본봉사료에 1달러를 추가로 주고 나왔다. 밖에 나오니 따뜻한 차에 수박과 망고가 준비되어 있다.
마사지 집을 출발하여 호텔에 도착하니 11시 30분으로 어제와 비슷했다. 호텔은 2층짜리에다 로비도 없고, 계단으로 바로 올라가서 방을 찾아야했다. 어제보다 격이 떨어졌지만 이곳 일대에서는 제일 좋은 곳이라니 하루 밤 잠자리로는 만족해야겠다.
둘째 날 1월 24일(수, 맑음)
잠이 부족한 상태에서 일어나 다른 곳으로 이동을 해야 해서 캐리어를 끌고 나왔다. 작은 호텔에서 6시에 나와 어제 약속된 장소로 가는데, 그 시간에 나와서 출발하는 사람들이 무척 많았다. 어제 올 때는 너무 늦게 와서 그런지 사람도 없고, 조용했는데 낮에 꽤 많이 온 모양이다. 여기 호텔은 한 건물로 되어 있는 것이 아니고, 호텔 본부가 따로 있고, 2층짜리 건물들이 길을 따라 죽 이어져 있는 것 같다. 6시 조금 지나 식당에 도착하니 이건 완전 도떼기시장이다. 음식 준비는 안 돼 있는데, 사람들은 바글바글하고, 한 쪽 코너에 빵만 먹을 수 있게 해 놓아서 빵을 먹으려고 사람들이 줄도 없이 무질서하게 모여 있었다. 먼저 자리를 잡는 것이 순서인 것 같아서 한쪽 귀퉁이에 겨우 자리를 잡으니 그제야 직원들이 식사 준비를 하고 있다. 순식간에 줄이 길게 늘어났다. 다른 분들 먼저 가시라고 하고 나는 짐을 지키고 있다가 한 분이 오셔서 줄을 서려고 보니 이쪽은 아주 긴데 다른 쪽은 짧아 보여서 그쪽으로 가서 식사를 두 접시에 한 번에 담아 와서 먹었다.
출발 예정 시간보다 조금 늦은 7시 20분경 출발을 했다. 오늘 오전은 메콩 강 주변 태국, 미얀마, 라오스 세 나라의 접경지대에 있는 황금의 삼각지대(Golden Triangle)를 돌아보는 코스이다.
먼저 미얀마에 있는 사원을 구경하려고 국경을 넘었다. 어제 가이드가 여권을 걷어서 준비를 해 두었기에 우리는 출입국 관리소를 급행으로 바로 넘어가고 넘어올 수 있었지만 보통 사람들은 줄을 서서 한참을 기다리고 있다. 미얀마는 남한 면적의 6.7배이며 인구는 약 6,000만 명 정도 되는데 매우 가난한 나라 중 하나이며 수도는 네피도이다. 버마족이 주를 이루지만 산족과 카렌족을 비롯한 135개의 소수민족이 있는 나라이다. 태국과 마찬가지로 불교 국가로 90%가 불교 신자이고 많은 사원과 불탑이 있다.
태국의 국경 도시인 메싸이(Mae Sai)에서 관광버스로 갈 수가 없어서 걸어서 다리 하나를 건너니 미얀마 땅이다. 조금 걸어 나오니 로터리에 붉은 색으로 CITY OF THE GOLDEN TRIANGLE라고 써있지만 이 국경 도시는 따치렉(Tachilek)이다. 가이드의 얘기를 들어서 그런지, 태국에 비해 거리에 활력이 적어 보이고, 건물도 초라해 보인다. 국경으로 넘어가면 태국 가이드는 올 수 없어서, 미얀마 현지 가이드가 나왔다. 여기서 사원으로 가기 위해 10명 정도가 세로로 탈 수 있는 덮개만 있고 창문이 없는 쏭떼우(Song Thaew)라는 택시(City Taxi)를 2대에 나눠 탔다. 쏭은 숫자 2를 뜻하고, 테우는 줄을 뜻하여 앉는 자리가 2줄로 된 택시를 뜻한다. 택시를 타고 200여m쯤 갔을까 일행 중 한 명이 안 온 것을 확인하고 차를 세운 다음 현지 가이드와 노사장이 찾으러 갔다. 태국에서 화장실 다녀오다가 국경을 넘을 때 합류하지 못한 것 같다. 잠깐 택시가 서 있는 동안 주변을 둘러보니 사람들의 얼굴에 하얗게 분 같은 것을 바르고 있다. 이것이 햇살이 강한 곳에서 피부를 보호하는 ‘다나까’라고 불리는 천연 썬 크림이다. 모두 걱정을 하고 있는데, 한참 후에 저쪽에서 잃어버린 백승언샘이 찾으러 간 분들과 같이 오고 있다. 이렇게 짧은 에피소드를 남기고 다시 사원을 향해 출발했다.
미얀마 최대 도시 양곤에 있는 추웨따껑 사원을 본떠 만든 황금사원에 들어갔다. 사원을 들어갈 때는 신발을 벗고 들어가야 하는 것이 이곳의 예법인가 보다. 이번에 운이 조금 나쁜 편이다. 사원이 공사 중이라 시설물이 중앙 탑을 감싸고 있어서 모양이 아름답지 않다. 황금사원은 거대한 종모양이라는데, 알 수가 없고 탑 주위에는 20개 정도의 작은 종탑이 둘러싸고 있다. 사원에 들어서자 아침 8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라 덥지도 않은데 우산(양산)을 펼쳐들고 다가오는 여자들이 있었다. 우산을 씌워주고 돈을 받으니 그럴 의사가 없으면 확실히 거절하라는 태국 가이드의 말이 떠올라서 거절을 했다. 사원 옆으로 황금빛 대형 불상을 모신 사당이 따로 있었는데, 우리 일행 중에 불교 신자들이 부처님 앞에서 예불을 올렸다. 사원이 꼭대기에 있어서 주위를 둘러보면 전망이 확 트여 가슴을 시원하게 한다. 저 아래로 따치렉 시가지가 내려다보인다. 사원 둘레를 천천히 한 바퀴 돌면서 사진을 찍었다. 사원 둘레를 따라 예쁜 시설물들이 있어서 사진 찍기에 좋다. 공사 중이라서 사원 내부의 멋진 모습을 볼 수 없는 것이 아쉽다.
사원을 나와 다시 쏭테우를 타고 왓타이아이 사원을 보러갔다. 왓티이아이 사원은 미얀마 소수민족인 타이아이족의 전통 사원이다. 사원과 그 주변 경관이 예쁘고, 부처님이 모셔진 사원 안에는 사람들이 앉아서 예불을 하고 있고 어떤 사람들은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1시간의 짧은 미얀마 관광을 마치고 다시 태국으로 넘어왔다.
다시 관광버스를 타고 치앙센(Chiang Saen)에 도착하여 메콩 강 선착장에 가서 배를 타고 라오스 땅으로 넘어갔다. 이 곳 메콩 강 유역은 태국과 미얀마, 라오스 세 국가가 접하는 곳으로 황금의 삼작지대라고 불린다. 선착장에는 여러 척의 배가 대기하고 있는데, 우리는 그 중에 한척에 탔다. 구명보트는 두꺼운 스티로폼을 넣었는데, 많이 낡아 있다. 배를 타고 메콩 강을 건너는데 하구에서 상당히 많이 떨어진 중류쯤 되는 곳인데도 메콩 강이 워낙 길고 큰 강이다 보니 수량이 풍부하고 강폭도 아주 넓었다. 바람이 불지 않아서 강물은 잔잔한 편이었다.
메콩 강(Mekong)은 세계에서 10번째로 유량이 많고, 12번째로 긴 강으로 길이가 약 4,200km이다. 중국 칭하이 성에서 발원하여 미얀마, 태국, 라오스, 캄보디아, 베트남을 거쳐 남중국해로 흐른다. 계절에 따른 유량의 변화가 심하다. 토착 언어로 콩 강이란 모든 강의 어머니 즉 젖줄과 같은 강을 뜻한다. 태국 쪽 강안(江岸)에는 큰 건물들이 많이 있고, 한 쪽에는 거대한 배 모형의 사원 위에 높이 솟은 황금 불상이 강이 흘러가는 쪽을 바라보며 앉아 있다. 부처님이 배를 타고 있는 모습의 이 사원은 ‘치앙센 사원’인데, 아마도 메콩 강을 오르내리는 사람들에게 사고가 나지 않도록 지켜주는 수호신의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20여분 정도 배를 타고, 라오스의 돈사오(Donsao-홍목련이 피어 목련도라고도 한다)란 곳에 들어갔다. 이 곳은 라오스 경제 특구(Golden Triangle Special Economic Zone)로 중국에서 90년을 임대하여 8조원을 투입하여 개발하는데, 세금은 없고, 카지노 시설이 들어서 있다고 한다. 경제특구를 나타내는 큰 간판과 많은 깃발이 여기저기서 나부낀다. 태국에서 넘어오는 관광객을 상대로 제법 넓은 시장이 열린다. 우리는 여기서 가이드가 사주는 맥주, 코코넛과 용안이란 과일을 먹었다. 라오 맥주(Beerlao)는 맛이 좋았고, 용안(龍眼)은 용의 눈같이 생겨서 붙은 이름인데, 얇은 껍질을 벗겨 먹는다. 맛이 좋아서 많이 먹었는데, 크기가 작아서 배가 부르지는 않았다. 시장 앞쪽 노점에는 여러 과일들이 판매되고 있다. 시장에는 다양한 크기의 뱀술이 많이 전시되어 있는데, 함부로 마시면 위험하다고 한다. 그 외에도 옷이라든지, 가방 등 공산품들을 많이 볼 수 있고, 한쪽으로는 음식점들이 있다. 조경에도 신경을 써서 선착장에서 시장으로 들어서는 곳에는 꽃을 많이 심어 놓았다. 인상적인 것은 큰 나무에 빨갛게 피는 목련꽃이다. 우리나라 목련 나무보다 훨씬 큰 나무의 가지 끝에 빨란 목련이 예쁘게 핀 모습이 파란 하늘과 어울려 한층 아름답게 보인다. 라오스 땅에 30여분 정도 머물다가 다시 배를 타고 태국으로 돌아왔다. 라오스쪽 선착장은 뜬다리 부두로 되어 있다. 뜬다리 부두는 우리나라에서는 군산에서 볼 수 있다. 군산의 뜬다리 부두는 황해안의 조차가 커서 강 하구의 수위 변화에 대처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시설인데 비해, 이곳은 유량의 계절차로 강물의 수위 변화가 크기 때문에 수위 변화에 따라 선착장이 오르내릴 수 있도록 만들어져 있다.
어느새 점심시간이 가까워져서 선착장에서 멀지 않은 Golden Iyara Resort 식당에서 점심 식사를 하였다. 음식은 역시 뷔페인데, 가이드가 수타면 국수와 코코넛 밀크로 만든 풀빵, 과일을 썰어서 만든 생채 같은 것을 먹으라고 해서 세 가지는 꼭 챙겨 먹고, 다른 것까지 먹었다. 지붕이 높고 밖이 잘 보이는 열린 식탁에서 먹으니 맛이 더 좋다.
오늘 탐방한 황금의 삼각지대(黃金의 三角地帶, Golden Triangle)는 태국, 미얀마, 라오스 세 나라가 접하는 메콩 강 유역의 산악지대이다. 소수 민족이 주로 살고 있으며 한 때 양귀비를 재배하여 세계 헤로인 생산의 60~70%를 공급하던 곳이다. 그 중에 태국은 국왕의 적극적 농업 정책과 단속으로 양귀비 재배가 거의 사라졌고, 대신 커피나 차, 꽃 등의 농작물 재배를 하는데, 생산된 농작물은 국가에서 관리를 해주기 때문에 안정적인 삶을 살고 있다. 태국은 현재 국가가 필요한 만큼만 재배하는 수준이다. 라오스도 감소 추세이나 미얀마에서는 여전히 많이 재배하고 있는 실정이다. 현재 치앙라이를 비롯한 태국 쪽은 치안이 안정되어 있고, 관광 산업이 잘 발달해 찾아오는 외국인들이 늘고 있다.
1시간여를 달려 오후 1시 30분경 왓롱쿤(Wat Rong Khun)이라는 흰색 건물로 된 백색 사원(White Temple)에 도착했다. 찰럼차이(Chalermchai)라는 온갖 사고를 치고 다닌 한 소년이 있었다. 이 소년을 한 스님에게 보내게 되었는데, 그 스님 밑에서 교육을 잘 받아서 이 불량소년은 스님이 되었고, 프랑스로 유학까지 다녀오게 되었다. 돌아가신 어머니가 지옥에서 고통을 받고 있으니 사원을 지어 구해 달라는 꿈을 꾼 후 어머니를 위해 1998년부터 이 사원을 짓기 시작했다. 6~7년 동안 짓다가 이 스님의 어렸을 때와 비슷하게 생활하는 청소년을 보고서는 그 청소년들을 데려다 교육 시키고, 그들과 사원을 같이 짓게 되었다. 이렇게 20년이 지난 지금도 계속 짓고 있는데, 찰럼차이는 훌륭한 청소년 교육자가로 알려져 많은 후원을 받고 있다고 한다. 백색 사원의 흰색은 부처님의 지혜를 뜻한다.
중심 사원과 부속 사원들의 대부분은 지붕, 벽 등 온통 흰색으로 되어 있고, 용과 봉황을 비롯한 각종 장식이 지붕과 벽, 그 주변을 화려하게 장식하고 있는데 햇빛을 받아서 눈부시다. 그야말로 화려함의 극치라 할 수 있다. 모양도 모양이지만 어떻게 이렇게 하얀색을 깨끗하게 잘 유지하고 있는지 신기하다. 황금색을 띠고 있는 건물도 일부 보이는데, 하나같이 건물이 예쁘다. 지금까지 돌아본 곳 중에 가장 관광객이 많이 있는 곳이었다. 50 바트짜리 입장권을 받아서 관광을 시작했다. 중심 사원인 우보솟 사원 관광은 지옥계를 지나 현상계를 거쳐 극락계로 나오게 되어 있다. 입구에 있는 지옥계에는 수백 개의 절규하는 듯한 손이 밑에서 올라오는 모양으로 만들어져 있는데, 어떤 손은 단지를 들고 있어서 물을 달라고 호소하는 것 같다. 뭔가를 갈구하는 지옥계의 모습이 애처롭게 느껴진다. 현상계에 들어서는 입구에는 사천왕으로 보이는 역사들이 큰 칼을 들고 지키고 있다. 주 건물인 우보솟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신발을 벗어야 했다. 건물 안에는 불상이 모셔져 있어서 거기서 예불을 올릴 수 있는데, 사진 촬영은 금지되었다. 현상계를 지나면 극락계가 펼쳐진다. 사원 주변 회랑 천정에는 소원을 비는 얇은 철판 쪽지를 매달아 놓았는데, 빽빽하게 걸려있는 것이 무슨 장식품 같다. 이렇게 멋진 사원 앞에서 다들 정신 놓고 사진 찍기에 바쁘다. 햇빛이 강하게 비춰서 건물 사진이 아주 예쁘게 나올 것 같다.
백색의 특이한 사원을 뒤로 하고 치앙마이로 이동했다. 태국에는 32,000여개의 사원이 있는데, 사원은 병원과 학교, 장례식장의 역할을 한다. 화장터가 있는 사원이 10,000여개가 있는데, 아침에 화장하여 저녁에 모신다고 한다. 이곳 사람들은 장례식 때 울지 않는다고 한다. 좋은 곳으로 갔기 때문에 오히려 노래하고 춤을 춘단다. 사원은 고아원을 운영하여 전국의 고아들은 사원으로 보내져, 그 곳에서 기르고 가르친다. 그 중 여자아이들은 사춘기(13~14세)가 되어 2차 성징이 나타나면 수행에 방해가 된다고 하여 절에서 나와야 한다. 이들은 생계를 유지할 수 없기 때문에 안마 기술을 가르쳐서 살아갈 수 있게 해준다. 절에서 나오면 1~2년 동안 전통 안마를 전수받고, 와포 사원에서 1년 과정을 더 받으면 안마 자격증이 나온다. 이렇게 태국 정부 기관이 인증한 자격증을 갖게 되면 안마 시설에 가서 마사지를 하며 살 수 있다. 이것이 중국이나 다른 나라에 비해 태국 안마사의 95%가 여자인 이유이다. 안마사 중에는 남자도 가끔 있는데, 이런 경우는 와포 사원에서 수련생을 뽑을 때 고아 출신들이 부족하게 되면 일반인을 받는데, 이때 남자도 지원할 수 있다고 한다.
태국 사람들은 현생에 대해 크게 불평하지 않는다고 한다. 불교의 교리에 따라 내세에는 다르게 태어날 수 있기 때문에 부자라고 가난한 사람을 업신여기거나 함부로 대하지 않고, 가난한 사람이라고 절망하거나 좌절하지 않는다.
20분 정도 평지 길을 달리니 다시 산길이다. 어제 넘어온 길을 다시 반대로 구불구불 넘어간다. 중간에 도로 확장 공사를 하는 곳이 있다. 나무를 베어 내고, 사면을 포클레인으로 긁어내서 단면이 노출된 곳이 보인다. 노출된 단면을 보면 붉은색 토양이 나타나는데 이 토양이 열대지방의 적색토이다. 열대지방은 비가 많이 오기 때문에 흙이 많이 씻겨 가는데, 가벼운 입자들은 씻겨나가고 철분이나 알루미늄 성분이 포함된 흙이 많이 남아있게 된다. 이 토양이 산화되어 산화철이나 산화알루미늄이 되면 토양은 적색으로 바뀐다. 이런 토양들은 별로 비옥하지 않다. 여기도 우리나라처럼 도로변에는 과일 노점상이 있는데, 많지는 않고 어쩌다 보인다. 산간 지역이라도 기온이 높고 강수량이 많아서 그런지 평탄한 곳은 대분은 논으로 이용된다. 가끔 산비탈에 불을 질러서 나무을 태우고 화전을 하는 곳이 있는데, 주로 바나나 같은 과수를 심었다. 소를 방목하는 곳도 가끔씩 나타나기도 한다.
중간에 올 때 들렀던 휴게소에 잠깐 들르긴 했지만 거의 4시간을 달려서 6시가 다 되어 롱아룬 온천에 도착했다. 이곳 유황 온천은 유황 성분이 강해 계란 썩는 냄새가 강하다고 하더니 차에서 내리니 코끝에 유황 냄새가 확 들어왔다. 온천 앞에는 뜨거운 물이 분수처럼 솟아나오기도 하고, 부글부글 끓어 올라오기도 한다. 액세서리는 유황물에 닿으면 변색이 되기 때문에 다 빼고 탕 속에 들어가란다. 수건 한 장을 받고 온천에 들어가니 우리처럼 대중탕이 아니고 욕실 같은 독립된 개인 독탕이 죽 이어져 있다. 들어가서 옷을 갈아입고, 욕조를 찬물로 씻은 후 찬물과 더운물을 받아서 온도를 조절하여 탕에 들어갔다. 40분의 시간이 주어졌지만 혼자 탕에 들어 앉아 있으니 심심하다. 묵주기도 한 번 하면 얼추 시간에 될 것 같아서 기도를 하고, 몸이 불어서 벗겨내고 나와 보니 다른 분들은 거의 다 나와 있다. 뜨끈뜨끈한 온천물에 몸을 담그고 나오니 피로가 확 풀리는 것 같다. 집에서도 가끔 온천물을 아니더라도 뜨거운 물에 몸을 담그면 좋을 것 같은데, 잘 되지 않는다. 시원한 음료에 온천수에 삶은 달걀을 먹었다. 류영자샘이 한 개 더 먹으라고 해서 더 먹으니 저녁이 걱정이다. 꼴찌로 나온 줄 알고 미안해했는데, 나보다 늦게 나오는 사람들이 몇 분이 더 있었다. 이럴 땐 면책을 받는 것 같아서 안도감이 든다.
이곳의 차량은 우측통행을 하는 우리나라와는 다르게 좌측통행을 한다. 얼마 전 뉴질랜드 여행 때 차량이 좌측통행을 해서 차를 빌려 운전을 하고 다닐 때 조금 어려움이 있었다. 그 때 좌측통행하는 나라는 영국과 일본, 영국의 식민 지배를 받은 오스트레일리아와 뉴질랜드 정도만 있는 줄 알았는데, 식민 지배를 받지 않은 태국도 특이하게 좌측통행이었다. 가이드의 설명에 따르면, 중세 시대 마차가 운행될 때는 우측통행이었다. 마부가 오른손으로 채찍을 휘두르기 때문에 좌측통행을 하면 마주 오는 사람이 채찍에 맞을 수가 있어서 우측통행을 하게 되었다. 세계에서 가장 먼저 차를 만든 나라는 독일인데, 우측통행에 맞게 운전석은 왼쪽, 타고 내리는 것은 오른쪽으로 하게끔 만들었다. 차를 먼저 만들지 못해 자존심이 상한 영국은 2등이 싫어서 오른쪽에 운전석을 두고 좌측통행을 하게 만들었고, 그 결과 영국은 좌측통행을 하게 되었다. 태국 왕 중에 라마 3세와 라마 4세 때 영국과 수교를 하고, 영국과 친분이 깊어지게 되면서 영국의 영향을 받아 차량이 좌측통행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7시에 온천에서 출발하여 50분을 달려서 식당에 도착했다. 식당 간판에 크게 샤브샤브(Shabu Shabu)라 쓰여 있다. 드디어 뷔페가 아닌 음식을 처음 먹어본다. 저녁타임에 맞는 메뉴가 나왔다. 우리나라에서 먹는 샤브샤브와 크게 다르지 않다. 육수에 채소를 가득 넣고 끓이면서 얇은 고기와 새우, 어묵 등을 넣어서 먹으면 된다. 나중에 쌀국수를 넣어서 먹고, 최종적으로는 죽을 끓여서 먹는데, 어묵, 채소 등을 추가해서 배부르게 먹었다.
식당에서 1시간 가까이 보내고 야시장 관람을 위해 다시 출발하여 9시쯤에 칭앙마이의 나이트바자(야시장)에 도착했다. 우리는 그 중에 밤 12시까지 여는 아누산 마켓(Anusarn Market) 쪽을 돌아봤다. 진열대가 3라인 정도로 세로로 길게 뻗어 있는데, 가이드가 이 길을 갔다 오면 된다고 했다. 남대문 시장이나 동대문 시장과 비슷한 분위기였는데, 호객 행위는 전혀 하지 않아서 편하게 구경할 수 있었다. 어떤 특정 상품이 전문화 되어 있지는 않고, 옷과 장신구, 기념품 등 관광객을 상대로 여러 가지 상품들이 판매되고 있다. 한쪽으로는 음식 거리도 있어서 많은 사람들이 음식을 먹고 있고, 어떤 음식점에서는 한국인들이 많이 있는지 아리랑 노래가 흘러나오기도 한다. 지나가다 보니 닭 옆에 큰 거위 훈제가 매달려 있는 모습이 이색적이다. 일부 쇼핑을 하신 분도 있지만 대부분은 그냥 구경만 한 것 같다. 한 바퀴 돌고 오니 가이드가 망고주스를 2명당 큰 컵으로 1컵씩 사왔다. 방 친구끼리 먹으라고 해서 허원샘을 찾아보니 안 계셔서 한참 기다린 후에 드렸더니 한 모금만 드시고 다 먹으라고 해서 나머지를 다 마시니 배가 많이 부르다. 망고주스는 당도가 높고 맛이 좋았다.
야시장에서 출발하여 10여분 만에 첫날 묵은 홀리데이 인 호텔에 도착했다. 오늘은 호텔에 10시 조금 넘어서 들어갔으니 일찍 들어간 편이다. 첫날과 같은 방은 아니고, 2021호인데, 첫날 잔 방과 같은 크기지만 구조가 반대라서 약간 생소한 느낌이 들었다. 호텔에 들어오면 와이파이가 돼서 하루 종일 못 본 소식들을 보기 바쁘다. 그래도 오늘은 일찍 도착하여 좀 더 여유 있게 일을 볼 수 있다.
셋째 날 1월 25일(목, 맑음)
태국 여행의 마지막 날이 밝았다. 우리 일행은 3일 내내 아침 5시30분에 일어나서 6시에 식사를 하고 7시에 출발하는 강행군이다. 한국에서도 이렇게 부지런하게 살지 않았는데, 여행 와서 참 부지런하게 다닌다. 오늘도 약간 지체되어 7시 20분에 호텔에서 출발하였다. 오늘 첫 번째로 갈 곳은 왓 프라 탓 도이수텝(Wat Phra That Doi Suthep) 사원으로 해발 약 1600m의 도이산 자락 약 1200m 지점에 자리 잡은 산상의 사원이다. 프랏 탓은 왕실지정이란 뜻이고, 수텝은 신선이 노니는 곳이란 뜻이라고 가이드가 말해준다. 1383년 사원 건축이 시작되어 처음에는 7m 높이로 탑을 만들었으나 1540년에 16m로 높이를 올리고 전체 사원의 틀을 갖추게 되었다. 탑의 꼭대기에는 애기 주먹 크기의 다이아몬드가 박혀있다고 한다.
사원으로 가는 도중에 치앙마이 시내에 일부 남아 있는 성곽과 잘 조성된 해자(垓字)를 보았다. 치앙마이의 성곽은 벽돌로 쌓았는데, 길이가 8km이고, 성곽 주위에 적이 침입하기 어렵게 해자를 팠다. 남아 있는 성곽을 보니 성곽의 높이는 3~4m 정도로 그리 높아 보이지 않았고, 해자의 폭은 한 10m가 넘어 보이진 않았다. 성곽은 일본 제국주의가 동남아 지역을 침입하던 시기 버마(미얀마)를 침입하기 위해 성을 부숴서 다리를 만들 때 파괴되었다고 한다. 일본인들이 여러 나라에서 나쁜 일들을 많이 한 것 같다. 해자 주변엔 나무를 심고, 곳곳에 분수를 만들어서 시민들의 산책 및 휴식 공간으로 이용하고 있다.
도이수텝 사원은 부처님의 진실사리가 모셔져 있는 곳이다. 부처님의 열반 후에 뼈 조각을 8개로 나눠 인도의 8개 주요사찰에 모셨는데, 인도에서 불교가 쇠퇴하면서 이 8군데 있던 것을 다 모아서 다시 84,000개로 조각을 내어 아시아 전역으로 보내어 모시게 하였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부처님의 진실사리를 모신 곳을 적멸보궁(寂滅寶宮)이라고 하는데, 대표적인 5대 적멸보궁으로는 양산의 통도사, 오대산 상원사, 설악산 봉정암, 사자산 법흥사, 태백산 정암사이다.
버스로 1시간을 달려 도이수텝 사원에 도착했다. 산 밑에서 꼬불꼬불한 길을 따라 한참을 올라왔다. 승용차도 많이 가는데, 자전거를 타고 가는 사람들도 가끔 눈에 띈다. 주말에는 관광객뿐 아니라 현지 주민들도 많이 참배하러 올라가기 때문에 버스는 다닐 수가 없다고 한다. 자전거로 가거나 걸어 올라가는 사람이 많이 있어서 위험하기 때문에 승용차만 다닐 수 있나 보다. 입구에서 사원까지는 대략 300개의 계단으로 갈 수 있는데, 엘리베이터를 이용해서도 갈 수 있어서 우리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갔다. 엘리베이터는 경사로를 따라 올라갔다. 시간이 많으면 계단으로 가는 것이 더 좋을 것 같다. 사원에는 개들이 많다. 엘리베이터 입구에도 마치 제 세상인양 누워있는 개들을 볼 수 있고, 누군가 일부러 눈썹을 그려준 개도 보인다. 사원에는 개들이 많은데, 그 이유는 스님들이 탁발해온 음식이 남으면 두었다가 다음날 먹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남는 것을 개에게 주기 때문이란다.
사원에 도착하여 우선 주변을 조망했다. 치앙마이 시내가 한 눈에 내려다보이는데, 시계(視界)가 아주 멀지 않아서 조금 흐릿하게 보였다. 시계가 먼 날은 아주 잘 보인다고 한다. 여긴 이른 아침인데도 사람들이 참 많았다. 사원 주위 나무에는 보라색 계통의 예쁜 꽃이 많이 피어 있다. 야외에 서 있는 구리 색 불상은 기단 위에 용무늬와 조형물과 꽃으로 장식되어 있다. 황금 도금을 한 사원은 햇빛을 받아 황금빛으로 빛났다. 사원 주변을 한 바퀴 돌아오니 사원 입구에 흰색 코끼리 상이 있다. 옛날 란나 왕조 시절 흰 코끼리 등에 부처님의 진실사리를 싣고 절을 지을 터를 찾는데, 이 코끼리가 3일 동안 산속으로 이동하다가 현재의 자리에 도착한 후 죽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 자리에 사원을 짓고, 부처님 사리를 안치하였으며 코끼리 상도 세웠다고 한다. 코끼리 상 앞에는 큰 나무가 두 그루 서 있다. 사원에 들어가기 위해서 신발을 벗어 신발장에 넣고, 몇 개의 계단을 올라 사원 안으로 들어갔다. 안은 온통 황금색으로 도금한 중심 탑과 부속 장식들로 가득했다. 마르코 폴로가 찾던 황금의 나라에 온 것 같다. 탑 안팎으로 여러 불상이 있고, 편안하게 누워있는 불상도 있는데, 사람들은 불상 앞에 꽃을 바치고 향을 피우면서 예불을 하고 있다. 류영자샘과 정혜원샘은 작은 불상 앞에서 기름을 부어 불을 밝히셨다. 사원에는 스님들이 잘 보이지 않는데, 여기서는 몇 분이 지나가시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관람을 끝내고 다시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오는데 조형자샘이 보이지 않았다. 노사장님이 급하게 올라가서 모시고 왔는데, 화장실에 다녀오는 동안에 우리가 다 사라져서 깜짝 놀라셨다고 한다. 단체 관광은 이런 일에 늘 조심해야 한다.
9시30분 경 도이수텝 사원을 출발하여 싼캄팽(Sankamphaeng) 거리에 있는 여러 전시장과 공예품점 등을 다녔다. 10시 20분에 다온(Daon)에 먼저 도착했다. 다온은 건강식품을 파는 곳으로 피를 맑게 한다는 사포닌이 홍삼의 7배라는 흑삼(The Black Ginger), 나무에 매달린 벌집에서 채취한 목청, 돌에 붙어있는 벌집에서 채취한 석청 등을 파는 곳이다. 판매원은 한국인으로 열심히 홍보를 한다.
30분쯤 있다가 라텍스를 파는 곳으로 갔다. 라텍스는 파라고무나무와 같은 꽃피는 식물의 세포에서 발견되는 백색 유액(乳液)이나 고무, 플라스틱으로 이루어진 여러 가지 수성 유탁액(乳濁液)을 말한다. 태국은 고무나무가 많이 자라는 곳으로 라텍스 산업이 발달되어 있는데, 라텍스는 의상, 매트리스, 베개 등으로 이용된다. 이곳 라텍스 매장은 요와 이불, 베개, 방석 등을 판매하는데, 장소가 꽤 넓다. 역시 판매원은 한국인이다. 이곳에서는 고가이고 물건이 커서 사는 분이 많지는 않은 것 같다.
12시에 라텍스 매장에서 나와 점심 식사를 하러 한국 식당으로 갔다. 식당에 들어서니 입구에 “소주 가지고 오시면 안돼요!!!! 저희도 소주 팔아요^^”라고 한글로 써 있다. 상호가 강남 식당인데, 그곳에서 제육볶음을 먹었다. 한국에서 먹는 맛과 같고, 김치, 된장국 등과 같이 먹으니까 고향 맛이 난다. 고기도 리필해주고 쌈을 많이 줘서 태국에 와서 가장 배부르게 먹은 것 같다. 다른 음식을 잘 못 드시던 허원샘도 많이 드시는 것 같다.
식당에서 1시간을 보낸 후 가까이에 있는 망고(Mango) 카페에 가서 커피와 말린 과일을 먹었다. 말린 과일이 비싸지 않아서 선물용으로 망고와 코코넛 말린 것을 몇 개를 샀다. 여기서는 사는 사람들이 많았다. 망고 커페에서 30분 정도 머문 후에 우산 공예품을 만들고 파는 곳에 갔다. 간판에 Umbrella making Centre라 쓰여 있다. 앞에는 코끼리 상이 있는데, 코끼리를 숭배하는 문화가 발달했는지 귀 양쪽으로 장식을 하고, 바나나를 비롯한 몇 가지 과일을 앞에다 놓은 것을 볼 수 있다. 매장 주변은 온통 색색의 우산으로 장식되어 있는데, 우산이 이렇게 예쁜 줄은 미처 몰랐다. 크기와 모양이 다양하고, 색이나 그림 장식 등이 다양한데 무척 화려하다. 매장 안에는 판매되는 우산이 전시되어 있다. 매장 뒤쪽으로는 실제로 우산을 수공예로 만들고 있는데 그 과정을 볼 수 있다. 맨 처음엔 한 남자가 먼지가 많이 나는지 마스크를 쓰고 우산 손잡이를 기계로 깎고 있고, 옆에는 깎아 노은 손잡이가 바구니에 가득했다. 그 다음엔 떡메 같은 것으로 나무줄기를 찧고 있고, 그 옆에는 그 찧은 것으로 우산에 붙일 종이를 직접 한지를 만들 듯이 뜨고 있다. 그 다음에는 대나무로 우산살을 만드는 사람이 있는데, 살만 붙인 우산도 여러 개를 전시해 놓으니 그 자체로만도 예술품 같다. 그 옆에는 우산살에 물들인 종이를 붙이는 사람, 다음엔 우산 겉에 그림을 그리는 사람 등으로 일이 분업화되어 있다. 이 과정을 거치면 화려한 우산이 만들어진다. 우산이 참 예쁘긴 한데 실용성보다는 장식용이고, 관광 상품으로 만들고 있는 것 같다.
약 30분 정도 구경을 하고 나서 이번에는 꿀을 파는 가게(The Honey House)로 갔다. 여기도 역시 한국인이 판매를 하는데, 꿀물을 한 컵씩 주고 연고도 발라주었다. 여기는 프로폴리스와 화분, 로열젤리를 주로 팔며, 벌독 연고와 프로폴리스 연고도 판다. 난 비싼 제품은 못 사고, 벌독 연고가 근육과 관절의 통증을 완화시켜준다고 하여 달리기를 하고 나서 바르면 좋을 것 같아서 작은 것으로 한 통 사고, 프로폴리스 연고가 습진 등 피부에 좋다고 하여 한 통을 샀다. 이렇게 몇 군데 쇼핑센터를 돌고 나니 오후 3시가 넘었고, 우리 일행은 마사지를 받으러 출발하였다.
20여분을 달려서 시암 란나 마사지(Siam Lanna Massage)에 도착했다. 남자는 아래층 여자는 위층으로 안내되었다. 이틀 전과 마찬가지로 여자 안마사가 마사지를 시작했다. 수건으로 발을 씻긴 후 전과 비슷한 순서대로 전신 마사지를 하는데, 이번 마사지사가 실력이 더 좋은 것 같다. 마사지를 한 후에 약물을 묻힌 뜨거운 수건으로 온 몸을 다 문질러 주었다. 2시간여 동안 열성적으로 해줘서 감사했고, 감사의 마음으로 여기서도 기본 봉사료에 1달러를 더 얹어 줬다. 지난번 마사지가 좋았다는 사람도 있지만 오늘이 더 좋다는 사람이 더 많은 것 같다.
마사지하는 곳을 출발하여 조금 이른 시간에 식당에 도착했다. 시내로 이동하니 퇴근 시간이라서 차량이 조금 많다. 오토바이가 베트남처럼 많지는 않지만 여기서도 중요한 교통수단으로 보인다. 식당 입구엔 돈을 내면 연주를 해준다는 예쁜 악사가 앉아 있다. 이곳 칸톡 식당(Khantoke Vieng kaew)은 공연을 하면서 식사를 할 수 있는 곳으로 닭고기 튀김이 주 요리였고, 찹쌀밥도 나왔다. 닭고기 튀김을 주로 먹었는데, 음식이 그리 좋지는 않다. 식사 중에 악기를 연주하기도 하고, 단체로 나와 노래와 무용을 하기도 한다. 식사를 마치고 강변에 나오니 저녁노을이 아주 아름다웠고, 새 소리가 요란하게 들렸다.
식당에서 1시간 정도 보내고 이번 일정의 마지막 코스를 향해 출발하였다. 약 40분 후에 도착한 곳은 치앙마이 야간동물원(Chiangmai Night Safari)이다. 가는 도중에 문교수님 사회로 이번에 참가한 사람들이 돌아가면서 인사를 하고 여행 소감을 말했다. 류영자샘, 허원샘 등 몇 분이 먼저하고 나서 돌아가면서 하는데 시간이 모자라서 10명만 소개를 하고 나머지는 나중에 한다고 했지만 결국 하지 못하고 말았다. 차에서 내려 어둑어둑한 길을 걸어 들어갔다. 부처님이 보리수나무 아래서 깨달음을 얻었다는데, 큰 보리수나무들이 밑에서 쏘는 조명 빛을 받아 신비롭게 보이고, 조금 더 들어가니 흰 코끼리상과 그 주위에 몇몇 동물상이 환하게 빛나고 있어서 이곳이 동물원임을 말해주고 있다. 매표소에서 표를 사고 들어가니 먼저 간 곳은 사자 호랑이 공연장인데, 우리가 조금 늦게 갔는지 공연 중이었고, 공연장엔 사람들로 가득차서 들어갈 곳이 없었다. 중간 통로의 난간에 겨우 매달려 공연을 봤다. 사자 공연은 거의 끝나가는 듯 조련사가 하는 대로 몇 가지 묘기를 보이고 나서 사자는 들어가고 호랑이 5마리가 나왔다. 조련사 목을 감기도 하고, 통을 굴리기도 하고 여러 묘기를 선보였다. 먹는 게 뭔지 묘기 하나를 끝낼 때마다 꼬챙이로 고기를 주면 그걸 받아먹고 그 다음 묘기를 하곤 했다. 이런 맹수를 길들여 쇼를 시킬 수 있는 인간의 능력이 대단하긴 하지만 맹수의 정체성은 사라진 것이 아닌가 하는 동정심 같은 것이 일기도 한다. 공연이 끝나고 본격적인 동물원 탐방이다. 이곳 동물원은 넓은 산 속에 위치하는데, 산 속 넓은 곳에 동물을 사육하며, 육식 동물과 초식 동물로 나누어 관람을 한다. 처음엔 육식 동물 사육장 주변을 서울대공원 코끼리 열차 같은 것을 타고 한 바퀴 돈다. 사자, 호랑이, 곰, 하이에나, 늑대 등의 맹수들이 있는데, 차로 지나가면서 빛을 비춰 동물들을 보여준다. 육식동물은 매일 있는 일이라서 그런지 그리 관심이 없다. 육식 동물을 보고 나서 열차를 갈아타고 초식 동물을 보는데, 초식 동물은 우리에 갇혀 있지 않은 것이 많아서 가까이에서 볼 수 있고, 하마와 얼룩말, 캥거루, 사슴, 양, 기린 등을 볼 수 있다. 사슴이나 기린 등은 바로 앞에 와서 사람이 주는 당근 같은 것을 받아먹었다.
마지막 일정도 다 끝나고 이제 치앙마이 공항으로 향했다. 9시 40분에 공항에 도착하여 그동안 정들었던 강수안 가이드와 포옹으로 이별을 하고, 현지 가이드에게도 남은 바트화를 팁으로 주고 감사의 인사를 했다. KE 668 대한항공 비행기는 예정시간 보다 조금 늦게 출발하여 어느새 26일이 되었다. 비행기에서 잠을 자야 하는데, 좀처럼 잠이 오지 않는다. 미래 세계에 대한 다큐멘터리와 지나간 스포츠 경기 등을 보다가 잠이 드는 둥 마는 둥 하는데, 식사를 하라고 깨운다. 좌우에 앉은 허원샘과 허복례샘 양쪽 허씨들은 식사를 하지 않는다고 그냥 주무시고, 난 열심히 챙겨 먹었다. 태국보다 2시간이 빨라서 도착하니 아침 6시 30분이다.
치앙마이 공항과 비교하니 인천 공항은 참 좋기도 하다. 이른 시간에 도착하기도 했지만 신청사는 수속 절차도 빨라서 밖으로 나오니 짐이 나오질 않는다. 비행기에서 내려 컨베이어벨트로 운반하는 시간이 꽤나 걸리는 모양이다. 짐을 찾는 시간이 길어져 짐이 나오기 전에 백승언샘의 감사 기도를 끝으로 악수와 포옹을 하며 헤어졌다.
태국을 2번째 다녀왔는데, 지난번에는 남부에 있는 방콕과 해안 지역을 돌았다면 이번에 치앙마이를 중심으로 북부 산악지역을 다녔다. 중복되지 않아서 같은 나라지만 다른 나라를 다녀온 느낌이다. 언제 다시 태국을 가게 될지 알 수 없지만 좋은 이미지를 갖고 돌아왔다. 이번엔 그냥 관광만 한 것이 아니라 문학 교류라는 뚜렷한 목적을 가지고 갔고, 또 같은 문학 단체원들이 함께 했기에 더욱 편안하면서 친근한 여행이었다. 좋은 기회를 마련해 주신 초우문학 문복희 교수님과 준비하느라 애쓰신 모든 분들께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첫댓글 도여 채기병 선생님, 너무너무 수고가 많으셨습니다.
이렇게 기행 일정을 자세하고 생생하게 써놓은 기행문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정말 논문 수준의 멋진 글입니다. 20페이지 분량으로 훌륭한 태국기행문을 작성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교수님 맘에 드시면 다행입니다.
그동안 많은 기행문을 읽기도 하고 접해도 보았으나 이번 기행문은 거의 소책자 한권 분량입니다.
이렇게 소상히 기록한 걸로 봐서는 이번 여행이 채기병쌤에게는 즐거운 학습 노동의 시간이었겠어요..
버스만 좋았어도 노동까지는 아니었을 것 같습니다. ㅎㅎ
채기병선생님!
여행을 다니면서 기대와 설렘,
다니면서 느끼는 이미지,
돌아오면서 갖는 상념들,
모두 소중하였던 순간들 이었지만
다녀와서 회상하는 선생님의 기행문은 너무 훌륭하십니다~
존경합니다~ 선생님!
있는 내용 쓴 거로 너무 그러시니 송구합니다.
읽는 데만도 꼬박 한 시간이 넘게 거리는 이 기다란 여행기를 쓰시느라
도여 선생님 고생이 많으셨겠습니다. 덕분에 우리는 태국 여행을
다시 한번 하는 것과 같은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러셨다면 다행입니다. 감사합니다.
고칠 것이 있다면 말씀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