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워싸임과 트임' 다 갖춘 도넛원형 경치좋은 휴식처 팔공산 최대한 담아내 아기자기한 건축기교 머물고 싶은 공간
자연석으로 된 기단부는 땅의 연장이다. 그 위의 원형건물은 외부로의 확산과 내부로의 중심성을 획득하기 위한 기하학적 건축의 기본형이다.
적절히 배치된 휴게공간과 복도는 중앙의 외부공간에 면해 있으며, 때론 두개 층이 하나로 되어있다.
중정은 대지경사의 흐름을 적절히 이용한 계단을 의도적인 축에 따라 배치하면서 높이를 적절히 조절하여 에워싸임과 트여있음의 중성성을 확보하고 있다.
오존층의 파괴로 예전보다 점점 더 뜨겁게 느껴지는 여름이다. 공해가 심각해지면서 전세계가 탄산가스 줄이기에 안간힘을 쏟고 있다. 자동차 시대가 되면서 큰 변화를 가져왔던 피서법은 토요휴무제로 피서의 패턴마저 바뀌고 있다. 이제는 피서를 위한 장소가 단지 산 좋고 물 맑은 곳만 아니라 가족애를 인식하기에 적합한 펜션이나 잊혀가는 전통건축에서의 생활체험 등 건축과 연관되는 휴가를 많이 찾고 있다. 대구의 팔공산은 특히 더운 날 도시에서의 탈출지로 이미 유명해진 곳이다. 웬만한 숲은 물론 순환도로변까지 자리 깔고 피서지를 만드는 새로운 공간 창조술이 탄생되고 있다. '외부공간의 계획수법'이란 건축이론서의 첫 부분에 나오는 건축적 외부공간이 자연의 외부공간과 가장 다른 점을 설명한 예로, 돗자리공간에 관한 글이 실감된다. 거기에서 자연은 무한정한 외부공간을 가지지만 건축적 외부공간은 장소를 한정하는데서 시작된다며 돗자리를 펼쳐 까는 순간에 그 영역의 크기만큼 남과 구분되는 하나의 장이 탄생된다는 것이다.
팔공산은 설명이 필요 없는 멋진 휴식처이다. 일부에 너무 많은 위락시설과 모텔 등이 건설되어 자연을 난개발하는 것에 많은 아쉬움을 느끼지만 그래도 전원주택과 휴식시설의 입지로는 대구근교에서 여전히 소중하게 여겨지는 곳이다. 조용하게 독서와 사색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추천하고픈 가깝고도 좋은 장소가 있는데 그곳은 대구은행 연수원이다.
#자연을 배경으로 자연 속에서 자연을 담고 있는 건축
대구은행 연수원은 기하 도형의 대표적 예인 원형으로 된 건물이다. 물론 건물의 저층부는 육면체가 양옆으로 붙어있고 전면에도 하나의 가벽이 직면을 만들고 있으나 그것은 대지와의 자연스러운 연결을 위한 하나의 장치로, 이 건물의 큰 특징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경사가 제법있는 대지흐름에 순응하여 기능을 배치시킨 정공법을 쓰고 있는 계획수법은 도심과 별로 멀지 않은 위치 때문에, 그리고 주변에 이미 들어서있던 마구잡이 위락시설들을 의도적으로 무시하면서 좋은 자연경관을 최대한 담기위한 방법으로 원형의 연수원을 채택한 듯하다.
또한 대구의 대표적 우량기업으로서의 자신감과 연수원이란 기능을 위해 밀도 있는 내적공간구성은 필연적이다. 원형은 흔히 모태적 공간이라 한다. 도넛형의 원형은 가장 작은 표면적으로 균질공간을 만들며 내적으로는 강력한 중심공간을 확보할 수 있는 계획방법이다. 흔히 비어있는 외부공간이 건물의 중심에 있을 때 그 공간은 에워싸임으로 인해 하늘로만 열려있어 때론 폐쇄감마저 느끼게 한다.
그러나 이 건축의 중심 외부공간은 대지 경사의 흐름을 적절히 이용한 계단을 의도적인 축에 따라 배치하면서 높이를 적절히 조절함으로써 에워싸임과 트여있음의 중성성을 확보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중정에 면한 건물벽면을 계단과 발코니로 적절히 분절하여 벽면의 요철, 재료의 차별화, 그리고 몇 가지의 아기자기한 건축기교를 통해 중성성에 생동감을 부여하여 머물고 싶은 공간으로 만들고 있다. 계단은 원형건물의 하부에 위치하면서 높은 곳부터 낮은 곳까지 원래 그곳에 있던 지형에 잔디 대신 목재와 자연석으로 하였을 뿐 눈에 거슬리지 않게 편안하게 놓여 있다. 그곳에서 야외강의나 파티가 열리는 것은 너무도 자연스러운 것이다.
강력한 중심성을 확보한 일차적 의도와 내적 충만을 원하는 공간설계 의도는 적절한 트임과 막힘, 그리고 분절과 변화를 통해 인공물인 건축을 역설적으로 인공적 자연을 끌어들임으로써 극복하고 있다.
#건축답게 되어 자연 속에 담기는 수법
이 건물에서 원형벽면의 형태와 재료는 더 이상 자연을 고려한 흔적이 없는 듯하다. 격자 틀로 곡면을 이루고 각각의 격자를 방의 창이나 베란다로 막고 비우는 수법으로 일관하고 있는 상부 2개 층과 그 밑의 수직프레임만으로 된 연속된 수평창 그리고 그 하부에 노출된 기둥 등은 모던건축의 전형적 수법으로 볼 수 있다. 또 층간 허리 벽에 부착된 알루미늄 판의 문양은 오히려 자연적인 재료와 대치되는 수법으로 볼 수도 있다. 건축의 형태 구성기법과 의장적 수법에서 다분히 어떤 의도됨을 느낄 수 있다. 그것은 필자 개인의 견해일 수 있겠지만 우리의 전통건축의 형태특성을 현대적으로 변화시켜 적용한 건축가 개인의 의지일 것이다. 야간에 조명이 켜졌을 때 특히 강조되는 건물 최상부의 처마선이 그 생각을 잘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자연 속에 당당히 자기모습을 가진 건축이다.
그러나 아무리 훌륭한 건축이라도 자연과 비교할 수는 없다. 건축이 자연에 동화될 수는 있으나, 어떤 규모 이상이 되면 그것도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병산서원은 건축이 자연 속에 동화되어 하나의 일체가 된 멋진 곳으로, 건축에 조예가 깊지 않은 사람들도 감탄하는 곳이다. 거기에는 자연과는 별개로 서원건축의 당당함과 멋을 지니고 있다. 기품 있는 건축으로서의 자태는 필자가 다녀본 세계의 어느 건축과 비교해도 뒤지지 않는 한국 고유의 특성을 담고 있는 것이다. 개인적인 작은 소망은 어떤 건축가도 다 희망하는 것이겠지만 자연과 일체가 되는 건축 작품을 하나라도 남기고 싶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