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람의 군대 장관인 나아만은 엘리사의 사자를 통해 듣게 된 엘리사의 전언, 곧 요단 강에서 나병이 걸린 몸을 일곱 번 씻으라는 말에 대해..
실상은 그 엘리사가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선지자이기에 좀 더 정확하게는 엘리사를 통한 하나님의 그와 같은 뜻, 말씀이라 할 수 있는 것이고, 바로 그러한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처음에는 화를 낸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그 이유는 그러한 하나님의 말씀이 자신의 생각이나 세상적인 관점, 또한 자기 기분이나 감정에 부합되지 않았기 때문인 것인데..
어쨌든 분명한 것은 만일 그 나아만이 다시 돌이키지 않은 채 어떤 이유로든 끝까지 그러한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이면서 그 말씀 그대로 하지 않았다면 결코 아래 본문 이후에서와 같이 그의 나병이 깨끗하게 낫게 되는 역사는 있을 수 없었다는 사실인 것입니다..
실상 우리 인생들은 여러 모양의 이유들로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화를 내기도 하고 외면하기도 하며, 또는 말씀들을 대적하기도 하고 폄훼하기도 하며, 거역하기도 하고 멀리 하기도 하며, 아예 제쳐 두기도 하며 완전히 무시하기도 하는데..
진정 그러한 자들에게도 하나님으로 인한 하늘의 힘과 역사들, 응답과 복들 등이 마찬가지로 생생하거나 같을 수는 없는 것입니다..
심지어는 하나님으로부터 큰 은혜와 능력과 복들을 경험한 하나님의 백성들이라도 피곤하거나 바빠서, 또는 생업에 지치거나 세상적인 염려들에 빠지는 등으로 인해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하지 못하고 아예 작은 우선순위에도 두지 못하는 경우들이 있곤 하는데 참으로 그러한 자들에게도 마찬가지로 계속해서 하나님으로 인한 놀라운 힘과 응답과 이적들 등이 풍성하고 넘칠 수는 없는 것이고..
또한 어떤 이들은 한 주에 한두 번도 개별적으로 작심하면서 말씀을 가까이하지 못하기도 하고, 심지어는 한 달에 한두 번도, 더 나아가 일 년에 한두 번도 그렇게 하지 못하는 경우들도 있는 반면 다른 어떤 이들은 매일 주야로 말씀을 사모하고 가까이하며, 뿐만 아니라 수시로 그렇게 하고, 게다가 모든 일들에 있어서 최우선을 두며, 심지어는 그 어떤 상황과 문제들, 결코 작지 않은 사정과 심각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더 나아가 손해와 조롱들, 위기들까지도 있을 수 있게 됨에도 불구하고 가장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우선으로 하는 이들도 있는데 분명한 것은 그들에 있어 하늘의 힘과 은혜들, 복과 역사들 등이 모두 다 똑같을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결코 복잡하거나 조금이라도 어려울 수 없는 것으로 그 위치와 역할 상 온 세상 천지만물과 모든 인생들의 주인이시고 생사화복과 흥망성쇠의 주재자이시며 선악 간 심판주이시고 전지전능하심으로 모든 하늘의 힘과 구원의 일들을 상상도 못할 사랑과 은혜와 능력과 함께 창세 전부터 뜻하시고 계획하시며 약속하시고 예정하시며 준비하시고 진행하시면서 그의 시간에 따라 하나하나 나타내시고 경험케 하시며 성취해 나가시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바로..
근본적으로는 말씀으로 존재, 창조, 통치하시는 분이기 때문에 다름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께 있어 그 무엇보다 말씀의 신앙이 중요하시고, 어느 정도의 말씀대로의 믿음, 말씀의 열정인가가 생각 이상으로 직결되고 합당하며 절대적인 기준과 관건이 아니실 수 없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와 같은 하나님 아버지, 곧 사랑과 은혜와 긍휼의 하나님이실 뿐 아니라 공의와 형평과 질서의 하나님 또한 아니실 수 없는 하나님 아버지로 인한 일반 은총이든지 특별 은총이든지 간에 어쨌든 모든 하늘의 힘과 역사들에 있어서, 특히 믿음으로 인한 값없는 은혜와 공짜와 같은 선물인 역사들에 있어서 모든 값과 대가들을 대신 다 치르신 구주 예수님..
다시 말해 온 세상과 전 인류, 모든 시간과 공간보다 더 크신 성자 하나님이시자 구원자이시고 중보자시며, 특히 하나님 아버지와 우리 인생들 사이의 길과 통로와 접점 등의 위치와 역할의 구주로서 십자가에서 그 목숨값으로 우리 인생들에 있어 이 세상에서 뿐 아니라 세상 끝 날과 부활과 영생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대속과 대신, 나음과 화평 등을 위한 값과 대가들을 대신 다 치르심과 함께 시대와 나라들을 넘어 모든 구원을 다 이루신 구주 예수님께서도 본질적으로는 바로 말씀이 육신이 되신 분이고 말씀대로 모든 구원을 다 이루신 분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게다가 직접적, 현실적, 경험적인 면에 있어서 그 위치와 역할에 따라 처음부터 하나님 아버지의 영이시자 구주 예수님의 이름에 약속되신 분이며 시공을 넘는 전지전능의 하늘의 힘으로 하나님 아버지의 모든 뜻과 약속과 말씀들을 다 실행하시고, 특히 그 한가운데 계신 구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그 목숨값으로 다 이루신 구원의 일들을 시간과 공간들을 초월해서 믿음과 함께 말씀대로 모두 실제가 되게 하시는 성령님께서도..
단적으로 말해 말씀의 영이시고 것이고, 사실 그러한 말씀이 이 세상에 존재하고 우리 인생들이 접할 수 있게 하신 직접적, 실질적인 힘이신 분인 것일 뿐 아니라 우리 인생들이 그러한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알고 믿으며 실천하고 증거하며 누리고 성취되어 질 수 있게 하시는 실제적, 경험적인 힘인 분이 아니실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듯 근원적으로 우리 인생들이 이 세상에서, 또한 세상 끝 날과 영생에 이르기까지 경험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하늘의 힘과 구원의 일들의 중심, 근본, 실체이신 분인 것일 뿐 아니라 삼위일체라는 그 존재와 개념 상 구약과 신약 시대, 오늘날 우리들, 모든 인류 역사들, 심지어는 천지창조와 창세 전, 세상 끝 날과 영원에 이르기까지 잠시라도 분리, 별개, 변개이실 수 없는 반면 언제나 함께 이시고 그 역할에 따라 완벽하게 조화되시며 완전히 하나되시어 한 뜻을 이루시는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본질적으로는 그 자체가 바로 말씀이신 것이고, 오직 말씀으로 하나되시어 말씀과 함께, 말씀대로 모든 것을 실행하시고 다 이루시는 분이 아닐 수 없는 것이기에 말씀의 신앙, 말씀대로의 믿음, 더 나아가 치열하고 뜨거운 말씀의 열정이 중요하고 또 중요하며, 긴급하고 또 긴급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한편으로는 그와 같은 말씀의 신앙이 되는 것, 곧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고 사모하고 가까이하고 실천하며 최우선에 둘 수 있는 등과 같은 말씀의 신앙, 말씀의 열정이 될 수 있는 것부터 원론적으로는 아무나 할 수 있거나 아무렇게나 가능할 수 있는 것은 아닌 것으로 가장 먼저는 하나님 아버지의 창세 전부터의 뜻과 약속과 섭리 안에서 구약의 믿음의 선배들과 권속들과 같이 하나님 아버지께서 아담과 하와 때부터 구주 예수님에 대해 미리 보이신 예표와 모형과 그림자들, 약속과 계시와 상징들 등을 통해 말 그대로 오실 메시야를 믿고 의지했든지, 또는 오늘날 우리들과 같이 오신 메시야를 믿고 의지하고 있든지 간에 어쨌든 반드시 오직 한 분 구주 예수님을 믿음으로 값없이 구원에 참예케 되고 마치 목욕하듯 통째로 하나님의 것이 되며, 직접적, 경험적인 면에 있어서는 그 위치와 역할에 따라 하나님 아버지의 영이시자 구주 예수님의 이름에 약속되신 성령님의 시공을 넘는 전지전능의 하늘의 힘과 실제로 인해 정말 천국과 부활과 영생의 백성으로 거듭나게 되고, 본질적으로는 말씀이신 하나님의 것, 말씀의 나라인 하나님 나라의 백성, 곧 말씀의 백성으로 뒤바뀌게 되는 것이 모든 우선이자 전제가 아닐 수 없는 것이고..
게다가 악한 세력들이 가득한 이 험악한 세상에서 연약한 육신의 몸을 입고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이 세상에 살아가는 동안에 자기 자신의 힘과 의, 세상적인 능력과 방법들로는 그 누구라도 약해질 수 있고 유혹될 수 있으며, 때때로 시험에 들 수 있고 걸려 넘어 지게 됨과 함께 죄악과 세속과 정욕들 등으로 병들고 죽은 듯한 신앙이 될 수 있는 것이라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처음에 믿음으로 구원에 참예케 된 사랑, 이치와 마찬가지로 하나님 아버지의 창세 전부터의 뜻과 약속과 섭리 안에서 날마다 순간마다 오직 한 분 구주 예수님의 십자가를 자랑하고 붙잡으며 그 이름으로 기도하고 찬미하면서 바로 그 이름에 약속되신 성령님의 시공을 넘는 하늘의 힘과 은혜를 덧입어 죄악들과 싸우고 범하게 된 죄악들에서는 자복하고 돌이키면서 주야로 더욱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고 가까이하며 읽고 들으며 묵상하고 실천하며 증거하는 등과 같은 결단과 몸부림들로 나아가고 또 나아갈 수 있는 것이며, 뿐만 아니라 그와 함께 온전하게 될 수 있고 효력들이 생생하게 나타나게 될 수 있으며 그로 인한 능력들이 강력하게 될 수도 있는 것이고, 특히 가면 갈수록 직접적으로는 말씀의 영이신 성령님으로 더욱 충만하게 되고 근원적으로는 말씀으로 하나되신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의 기뻐 역사하심으로 인한 하늘의 힘과 구원의 일들, 특히 온갖 응답과 승리와 복들 등이 더욱 더 풍성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특히 아래 본문의 이방 아람의 나아만 장군 같은 경우는 굳이 따지고 유추해 보자면 아래 본문 전에 증거된 대로 이스라엘 땅에서 포로로 잡혀 간 어린 소녀, 곧 하나님 아버지께서 구주 예수님에 대해 미리 보이신 다양한 예표와 모형과 그림자들, 약속과 계시와 상징들 등을 통해 말 그대로 오실 메시야를 믿음으로 구원에 참예케 된 구약의 수많은 믿음의 선배들과 권속들 중 하나라 할 수 있는 포로로 잡힌 어린 소녀를 통해 전도되었다고 볼 수 있고, 또한 오실 메시야에 있어 예표와 그림자, 약속과 상징 등의 역할로 쓰인 엘리사 선지자를 통해 하나님의 말씀이 정말 하나님의 말씀이 될 수 있었다고 볼 수 있는 것인데..
조금 더 구체적으로 다시 한 번 더 말하면 사실상 그 어린 소녀와 같은 구약의 믿음의 권속들은 하나님 아버지께서 아담과 하와 때부터 오실 메시야를 믿고 구원에 참예케 될 수 있는 것일 뿐 아니라 죄악들과 싸우고 범한 죄악들에서는 자복하고 돌이키면서 주야로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고 가까이할 수 있는 살아 있는 믿음이 될 수 있도록 미리 구주 예수님에 대해 보이시고 안내하시며 연결될 수 있게 하신 여자의 후손에 대한 계시, 다양한 피 제사와 희생 제물들, 특히 유월절 어린 양과 모세를 통한 장대 위의 놋 뱀, 회막과 성전, 제사장과 선지자들 등과 같은 예표와 모형과 그림자들, 약속과 계시와 상징들 등을 통해 말 그대로 오실 메시야를 믿고 의지하며 오늘날 우리들과 근본적으로는 동일한 하늘의 힘과 은혜와 역사들을 여러 모양으로 생생하게 누릴 수 있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며, 실제로 그 외에는 구약 시대에 있어서의 믿음으로 인한 구원에 참예함과 누림들에 있어 다른 방법이나 여지들이 거의 보이지 않거나 아예 찾기가 힘든 것입니다
"엘리사가 사자를 그에게 보내 이르되 너는 가서 요단 강에 몸을 일곱 번 씻으라 네 살이 회복되어 깨끗하리라 하는지라
나아만이 노하여 물러가며 이르되 내 생각에는 그가 내게로 나와 서서 그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고 그의 손을 그 부위 위에 흔들어 나병을 고칠까 하였도다
다메섹 강 아바나와 바르발은 이스라엘 모든 강물보다 낫지 아니하냐 내가 거기서 몸을 씻으면 깨끗하게 되지 아니하랴 하고 몸을 돌려 분노하여 떠나니"
(열왕기하5:10~12)
*양범주목사의 '21세기 두란노서원'/2024년 1월 12일(금)1/사진 조연진사모, 이미지 박원영집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