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래 글 중에 대통령과 부동산의 관계에 대한 글이 있네요.
그래서 제 개인적으로 본 대통령과 부동산에 대한 글을 올려 보려고 합니다.
그냥 재미 삼아 읽어 보시길 바랍니다.
먼저 대통령 재임기간을 살펴 보겠습니다.
노태우(1988~1992) : 1988년 1차 베이비 부머가 주택시장 진입, 주택 200만호 건설, 1기 신도시 계획
김영삼(1993~1997) : 1997년 말 IMF 사태, 1기 신도시 본격 입주
김대중(1998~2002) : 2차 베이비 부머가 주택시장 진입
노무현(2003~2007) : 2003년 카드 대란, 행정수도, 혁신도시, 2기 신도시 계획
이명박(2008~2012) : 2008년 금융 사태, 2기 신도시 입주 시작, 보금자리 주택 실시
박근혜(2013~2017) : 행정수도, 혁신도시 본격 이주, 2기 신도시 본격 입주, 보금자리 주택 입주 시작
먼저 위에서 붉은 색 이름을 가진 대통령 때에는 아파트 가격이 폭등한 시절입니다.
대략 2~3배 정도 올랐다고 보면됩니다.
반면 푸른 색 이름을 가진 대통령 때에는 아파트 가격이 하향 안정된 시절입니다.
지역에 따라 차이가 있겠지만, 수도권은 약 20% 감소한 시절입니다.
(1) 노태우 대통령(1988~1992)
노태우 대통령 때는 우리나라 1차 베이비부머(1955년~1963년생) 들이 본격적으로 결혼을 하여 주택 시장에 들어 왔던 시절입니다.
30~35세 인구가 5년간 30~40만 씩 늘어나다가, 1985년에서 1990년 사이에는 110만명이 늘어납니다.
(자세한 내용을 보시려면, http://hkpark.netholdings.co.kr/web/manual/default/manual_view.asp?menu_id=101181&id=1049 클릭)
이런 이유로 아파트 가격은 폭등하게되고, 급기야 노태우 대통령은 주택 200만호 건설 계획을 만들게 됩니다.
물론 주택 200만호 건설 계획에는 1기 신도시(분당, 일산, 평촌, 중동, 산본 등 5개) 건설이 들어 있습니다.
노태우 대통령은 이 계획을 발표하면서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습니다.
"나는 주택을 많이 지은 대통령으로 기억되고 싶다."
(2) 김영삼 대통령(1993~1997)
노태우 대통령의 주택 200만호 건설로 가장 수혜(?)를 본 대통령이 바로 김영삼 대통령이었습니다.
계획과 착공은 노태우가 했지만, 아파트 입주는 대부분 김영삼 대통령 시절에 했기 때문입니다.
전국의 아파트 값은 1991년 4월을 기점으로 1997년 IMF가 올 때까지 내렸습니다. 1991년 4월은 1기 신도시 중 최초로 분당 시범 아파트가 입주하였습니다. 1991년 강남의 집값은 2.3% 내렸고, 1992년 4.4%, 1993년에도 3.5% 가 내렸고, 이후 고점 대비 약 30%정도까지 내렸습니다.
IMF 당시 은마 아파트 이야기하나 덧붙이겠습니다.
1997년 저도 아파트 하나 사려고 은마 아파트를 가봤습니다. (당시에는 부동산에 대해 하나도 몰랐고, 투자나 투기 등은 생각도 안하던 시절이었습니다.)
당시 가격이 2억이 조금 넘었습니다. 전세는 1억 6천 정도 였고요.
(김영삼 시절에도 아파트 가격은 내리고, 전세값만 올랐습니다.)
아파트 계약하려는데, IMF사태가 터졌습니다.
제가 살던 연립주택 전세금이 나와야 이사를 하겠는데...
매매나 전세가 전혀 되지 않아, 전세금을 뺄 수가 없었습니다.
결국 이사를 할 수 없어서 은마를 살 수 없었습니다.
제가 살던 연립 주택에는 10가구가 살았는데... 내린 전세금 일부를 돌려 달라고, 주인집에 찾아가 데모를 한 적도 여러번 있었습니다.
하나 덧붙이면, 제가 다니던 회사 직원 중 한명이, 은마 아파트에 1억 6천에 전세를 살고 있었는데, 아파트 가격이 1억5천만원까지 떨어졌습니다. 그래서 주인에게 찾아가 돈 1천 만원과 아파트를 넘겨달라고 싸우기도 했습니다.
(3) 김대중 대통령(1998~2002)
IMF 사태가 터지고 바로 김대중 대통령이 되면서, IMF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으로 주택 정책에 대해서는 전혀 노력을 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와중에 2차 베이비 부머(1968~1974년생)들이 주택 시장에 서서히 진입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만약 당시 아파트 공급에 조금만 노력하였다면, 노무현 시절의 폭등은 없었을 겁니다.
하지만, 당시 경제상황이 너무나 좋지 않았고, 경제 살리기에만 주력하였습니다.
하지만, 임기 후반 2차 베이비 부머의 진입으로 아파트 가격이 점차 높아져 갔습니다.
IMF 당시 1억 5천 하던 아파트가 3억 이상으로 올랐습니다.
(4) 노무현 대통령(2003~2007)
노 대통령은 취임 초부터 "하늘이 두 쪽 나도 집 값만은 잡겠다"며 국민들의 기대를 잔뜩 높여 놓았습니다. 대통령은 전쟁을 치르듯 온갖 정책을 쏟아냈지만 주택가격은 대통령의 말을 비웃기라도 하듯 계속 치솟았습니다. "정부는 믿으면 믿을수록 손해", "정책이 집값을 올린다"는 비판이 나올 정도였습니다. 당시 은마아파트는 10억 이상으로 올랐습니다.
아파트 가격을 잡기 위해 다주택자에 대한 징벌세나 종부세가 이 당시에 생겼습니다.
(종부세에 대해 잘 모르시는 분들을 위해 잠깐만 설명을 덧붙이겠습니다.
주택이 아무리 많이 공급되어도 돈있는 몇몇 사람이 다 사버리면 주택 공급 효과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주택 가격 상승을 막기 위해 2채 이상을 가진 사람에게 중과세를 부과하면 집값이 안정된다고 생각한 노무현 대통령도 그런 사람 중에 한명입니다. 그래서 만든 제도가 종합부동산세, 속칭 종부세입니다.)
하지만, 늘어나는 인구에 맞추어 주택을 공급해야함에도 불구하고, 주택보급률이 100%를 돌파하였으니까 더이상 주택은 필요없다고 생각한 노무현 대통령이나 경실련과 같은 좌파들의 정책이 결국 아파트 가격을 폭등하게 만들었습니다.
(참고적으로 당시의 주택 보급률은 '주택수 / 2인 가구 이상 수'로 계산하였습니다.)
즉, 다주택자만 없애면 주택이 남아돌거라는 말도 안되는 생각을 한 분이 바로 노무현 대통령이었습니다.
(이 카페에서 여러번 밝혔듯이, 개인적으로 저는 노사모 회원이지만, 부동산 정책에 대해서는 노대통령의 정책에 절대로 찬동하지 않습니다.)
아래 표를 보면 2차 베이비 부머(1968~1974년)들이 본격적으로 주택 시장에 들어오는 김대중, 노무현 시절의 주택 공급 수가 김영삼 정부보다 적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노무현 이야기는 여기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결국 주택 공급과 지방 분산 정책을 시도하게 됩니다.
즉 2기 신도시 건설 계획을 수립하고, 세종시 건설과 혁신도시 건설 등으로 수도권 인구를 분산하여 아파트 가격을 잡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5) 이명박 대통령(2008~2012)
노태우 대통령이 만든 주택 200만호 건설 계획의 결과를 김영삼 대통령이 누렸듯이, 노무현 대통령의 이런 정책의 결과는 이명박 대통령이 누렸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은 "아파트 값을 반드시 잡겠다"고, 여러 번 공언하였지만, 사실 그의 속마음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저는 잘 압니다.
하지만, 임기 초반인 2008년 9월 19일 9.19 대책을 발표합니다. 이 대책을 요약하자면 향후 10년간 주택 500만 채를 건설하겠다는 것입니다.
주택 500만호를 건설하면 가장 신나는 사람은 건설업자입니다. 하지만 주택 500만호는 인구 1천만명~1천5백만명이 살 수 있는 규모입니다. 향후 우리나라에서 늘어나는 인구가 1백만 전후라고 본다면, 터무니 없는 숫자입니다.
만약 10년간 500만호를 정말로 짓는다면, 우리나라 주택 가격이 폭락할 게 뻔합니다. 이명박 대통령이 "아파트 값을 반드시 잡겠다"고 한 약속을 지키게 되는 것입니다.
이명박 대통령은 이런 정책의 일환으로, 보금자리 주택 계획을 만들게 됩니다.
다 아시다시피 보금자리 주택은 싼 그린벨트 땅을 풀어 아파트 지어, 주변 아파트 보다 싸게 공급하는 정책입니다.
이런 정책 덕분에 이명박 대통령 재임시에는 아파트 가격이 안정을 보였습니다.
반면, 노무현 대통령이 만든 지방 분산 정책은 지방의 개발 붐과 함께, 지방의 아파트 가격 상승으로도 이어졌습니다.
최근, 몇년간 아파트 가격이 가장 많이 떨어진 곳이 과천시이고, 땅값이 가장 많이 오른 곳이 세종시라는 것만 봐도 알 수 있겠지요.
또, 혁신도시 건설로 수도권에 있는 공기업이 본격적으로 이주하는 올해와 내년에는 이런 현상이 더욱 가속화 될 것으로 믿습니다.
(6) 박근혜 대통령(2013~2014)
박근혜 대통령 시절은 이명박 대통령 시절의 연장 선상에 있다고 봅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계획하였던, 2기 신도시, 세종시, 10개의 혁신도시, 5개의 경제자유구역, 4개의 도청 이전 신도시, 새만금, 송산그린시티, 충남 아산, 탕정 신도시 등등이 아직 진행중이기 때문입니다. 입주율로 본다면, 아직 절반도 채 되지 않습니다.
이런 와중에 우리나라 경제는 점차 성장엔진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고령화와 생산 인구의 감소가 그러한 원입니다.
물가는 20개월 넘게 1%대의 성장율을 보이고 있고, 경제 성장율도 2%대로 주저 않았습니다. 재경부 장관은 디플레이션을 걱정하고, 잃어버린 20년의 일본을 따라간다고 하며, 그저께는 부동산을 살리기 위해 수많은 정책들을 내어놓았습니다,
저의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수요는 줄어드는데, 공급은 아직도 많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수요라는 것은 생산 인구(돈을 버는 인구)를 말합니다.
또 공급을 얼마나 많은지는, LH공사의 부채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현재 LH공사의 부채는 140조 정도입니다. 하루에 이자만 100억(백억)입니다.
LH공사의 부채가 왜 이렇게 많은지 궁금하지 않으세요? 전국에 아파트 지을 땅을 샀기 때문입니다.
간단히 말해 세종시 2000만평이 모두 LH 공사 것입니다. 위에서 말한 혁신도시나, 기업도시 등이 모두 LH공사 것입니다.(물론 이미 분양된 것 일부만 제외하고)
LH공사는 이 땅을 모두 팔면 280조가 생긴다고 합니다.(LH공사 부채를 걱정하시는 분들이 있는데, 땅이 모두 팔린다면, 걱정할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LH공사가 가지고 있는 땅은 아파트와 산업공단을 만들 겁니다. 자신들의 계획대로만 된다만, 대한민국은 아파트로 뒤덮힐 겁니다.(자세한 내역을 보시려면, http://cafe.daum.net/kseriforum/7ofT/16390 클릭)
제가 항상 하는 말이 있습니다.
"판단과 선택은 자신의 몫입니다."
긴 글 끝까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첫댓글 집값으로만 따지자면 김영삼대통령이 가장 많이 내렸으니 최고의 대통령...어차피 집값은 경제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으니...IMF 불러왔다고 김영삼대통령을 비판하면 모순
차라리 집값이 떨어지니 외환위기가 왔다는 식으로 비약을 하는 것이 나을 것입니다.
말씀하신대로 "집값이 경제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으니"
김영삼은 이건희의 세계화 놀음에 놀아나 금융규제 완화로 외환위기를 자초했던 것입니다.
더군다나 IMF당하고도 김대중과의 구원으로 임기말 밤 12시까지 청와대를 비켜주지않겠다고 꼬장을 부리는 바람에,
당시 김대중의 IMF와 재협상을 "국제신의를 저버린"
짓으로 비난하면서 막은 좆쓴일보 쓰레기들에 불과합니다
외환위기 대처의 골든타임을 김대중에 대한 사적 감정으로 망친 놈일뿐
@gingery 집값만 내리면 됐지...정치,경제못했다고 비난하면 뭘 어쩌자는건지?...이 카페사람들이 원하는게 뭐야?...경제는 폭등하고 집값은 폭락하고?...이렇게 논리적 모순이 있으면 단합이 안됨...목표는 단순명쾌해야...근데 명박이와 7푸니는 동정이 안 감
@색즉시공 내가팔고 내리고 내가 사서 오르고.
이것이겠지요?
이광요처럼 공공주택 사회주의를 지향하면 모를까?
후편이 기대됩니다.
금융 쪽 변수도 살펴봐야 할 듯 싶습니다. 90년대까지는 저축으로 집을 샀지만, 2000년대부터는 해외 매각된 은행들이 가계 대출에 전념합니다. 그 결과 아파트 가격이 은행의 대출 공급량에 종속되었습니다. 이는 정부의 의도적인 정책 때문이기도 합니다. 현재는 주택 담보 대출의 50% 이상이 주택 매입 아닌 다른 용도로 사용되는 것으로 추정된다는 기사가 있었습니다. 대출 경제의 문제점은 금리를 아무리 낮춰도 부실채권이 그 이상으로 늘어나면 정책 효과가 없다는 거죠. 언제나 그랬듯이 이번 정책도 실패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면 결국 국가부도밖에 더 있겠읍니까?
위에 답글로 단 것처럼.
@라일락향기 ㅎ 이문세의 라일락 꽃향기~
좋지요.
제가 씨부린다고 될 것도 아닌고로 그리 염려하시지 않으셔도 됩니다
@라일락향기 최소한 이 포럼에서 없어지면 이 포럼은 잘 돌아갈텐데 말이죠.
@냠이 ^^
@냠이 ㅎ 가관이군요
@시드기 동종교배는 열악화일 뿐
@라일락향기 순리와 역리는그 지남을 통해 확인하실 수 있읍니다.
정히 그 순리를 궁금해하신다면 2012년 남아있는 글로 평가를 하시면 되실 터. ㅎ
@라일락향기 ㅎ이미 당시 반대했더이다.
이명박의 유일한 잘한 것은 저금리
88년 주택임대차보호법은 임차인들의 주거안정을 위해 기본계약을 2년으로 연장했던 좋은 의도의 입법이었읍니다.
한데 시장은 그 늘어난 기간을 임대료 인상으로 반응했읍니다.
그래서 90년 보증금 1백만원이 없어서 자살한 소녀가장의 기사가 기억납니다. 대충 십여명 되는 생명들이 오른 보증금이 없어 자살하셨읍니다.
90년 깡통계좌 정리시 "천당위에 분당"이라면서 주식에서 손해난 것을 분당당첨으로 보상한다고 위로하던 분들도 기억합니다.
수요에 있어서
87년 7월의 노동자대투쟁으로 인한 노동소득분배율의 개선덕으로 마이카 시대가 열렸던 것처럼 주차를 위한 아파트라는 주거형태의 변화에 대한 욕구들이 분출된 결과로 봅니다
인간적으로 노통을 좋아하지만 부동산에 대해서 만큼은 그다지 높은 점수 주기 어려네요. 당시 전세계적인 부동산 거품이라는 대세와 소득상승등. 빛을 질 여려도 있었다고 하지만.
노통 당시야 무슨짓을 해도 오르는 시기..... 임기 말쯤 종부세.. 보유세 등 ... 으로 잡히려는 찰나에 명바기가... 해제 시키 버려 ... 더 올랏던 기억이 나는데... 기억을 못하시는 분들도 있는듯 하군요...새눌당이 .. 별짓을 다했던....
잘 보았습니다
부동산 폭락하면 은행도 망할려나
박홍균님치고 의외인 부분도 몇몇 보입니다.
다른 측면에서 본다면, 물론 분배의 문제나 양극화의 문제도 있지만 노무현 대통령 정권에서 가장 큰 폭의 1인당 국민소득 증가와, 주가 지수 상승이 있었기에 부동산 가격 상승도 가장 큰 폭으로 나타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잘 아시다시피, 일본 부동산 가격 상승이 가장 극명하게 나타났던 1983--->1991년까지 일본 1인당 GDP : 10216 달러-------> 28541 달러 : 2.79배 상승했고, 같은 기간 도쿄 아파트 가격도 거의 그 정도로 상승했습니다.
한국에서도 마찬가지로 1인당 국민소득 1만달러 대에서 2만 달러 대로 진입하던 시기, 즉 김대중대통령 정권 말기 2002년 12093달러 ----> 노무현 대통령 정권 말기 2007년 21590달러로 상승하던 시기에 서울 부동산 가격도 거의 2배 가까이 상승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