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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10.19.일요일 끝자락.
《야구선수 박휘운》 by.브라보쿤
“우리들은 원한다, 우리들은 원한다, 박! 휘! 운!”
“네, 쳤습니다!!! 홈런, 홈런입니다!!! 정말 박휘운 선수, 실망시켜주지 않습니다!!”
구장에 와서 그를 보는 것이 얼마만이던가. 입가에 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내게 홈런 하나를 선물하겠다던 그의 약속이 지켜지는 순간,
나는 그대로 정신을 잃었다. 손에는 그의 목걸이가 꼭 쥐여져 있었다.
‘기다리고 있어. 꼭 홈런 하나 선물해줄게.’
자신의 배트로 나의 머리를 톡톡 건드려주고는 구장이 제일 잘 보이는 자리에 날 앉혀주었다.
몸을 풀고 있는 선수들도 가장 잘 보이는 자리였고, 그가 홈런을 쳤던 그 순간도 가장 잘 보였다.
스물 여덟. 젊은 나이에 나는 가지만, 그의 이름은 영원했으면 좋겠다.
박휘운. 그를 사랑하는 순간에 갈 수 있어서 다행이다.
★
《야구선수 박휘운》
그를 처음 만난 건 작은 구장에서였다. 그는 아직 뜨지 못한 선수였고,
나는 우리 아버지와 닮은 그를 열렬히 응원했다.
그리고 그는 승리하였고, 구장에서 나올 때 두리번거리며 자신을 응원했던 목소리를 찾았다.
“박휘운! 박휘운!”
그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난 그의 이름도 몰랐다.
박휘운이라는 멋진 이름도 구장관계자에게 물어물어 알아낸 이름이였다.
사람은 30명 남짓 모였을까, 조그만 구장에서도 내내 웃음을 잃지 않으며 야구를 즐기려고 노력하는
그런 그의 모습이 끌렸던 것 같다. 게다가 그런 그의 모습은,
구장을 떠나던 순간에 씁쓸하게 웃음짓던 우리 아버지의 모습과도 조금은 겹쳐보였다.
“저…”
“네?”
뒤에 있던 한 남자가 말을 걸어왔다.
그 말인즉슨.
“제가 휘운이 친구라 응원 차 온거거든요.”
“아, 예.”
“이것 좀 보세요.”
그가 나에게 들이민 것은 무전기같은 핸드폰에 쓰여진 문자였다.
「A석 쯤에서 나 응원하는 여자분한테 감사하다고 전해줘
구장 밖에서 기다리고있는다고도 전해주고」
모든 경기가 끝나고 설레는 마음으로 구장을 나섰는데 아직 유니폼차림인 그가 보였다.
후줄근한 유니폼. 내가 디자이너가 된다면 꼭 야구선수들의 유니폼을 한 번은 디자인해줘야지.
굳은 결심을 다지며 그에게 환하게 웃어보였다. 그 또한 환히 웃어줬다.
그리고는 감사하다며 고개숙이는 것을 잊지 않았다.
“응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 저. 이런 정규 시합은 처음이여서…”
웃는 모습이 멋지다. 18살, 어린 나이에 그를 왠지 좋아하게 될 것 같은 기분좋은 예감이 들었다.
그는 나를 작은 분식집으로 초대했다. 지금은 돈이 없어서, 라며 순박하게 웃는 그에게
내가 먼저 손을 내밀었다. ‘우리 친하게 지내요’, 라며.
★
“어디 가?”
“응? 오늘 휘운씨 시합있는 날이야. 이 시합 중요하댔어, 꼭 응원오랬거든.”
“그 말수 적은애가 꼭 오란말까지 했음 진짜 중요한가보네.”
“언니도 같이 갈래?”
“됐네요. 끝나고 니네 데이트할 게 불보듯 뻔하구만, 내가 거기서 속만 태우다 오라고?”
그와 나는 급속도로 친해져 결국은 연인사이로 발전하였다. 사귀기 시작한 게 스무살.
그리고 오늘은 그가 프로구단에 입성할 수 있을지, 없을지가 결정되는 중요한 시합이였다.
프로구단 감독들 중 5명이 관람한다는 시합. 그의 후광이 나에게만 보이는 것이 아니면 좋겠다.
“박휘운!!”
예전에는 전 구장을 탈탈 털어봐도 박휘운을 외치는 사람은 나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제는 아니다. 구장의 모든 사람들이 휘운씨가 나서자마자 그를 외쳐댔다.
내 목소리가 묻힐 정도로. 그는 배트를 위로 흔들어보였다. 나에게 하는 인사였다.
이 큰 구장에서 나를 찾을까는 의문이였지만 최대한 크게 팔을 흔들어주었다.
“우리는 원한다, 우리는 원한다, 박! 휘! 운!”
몇 개월 전 누군가가 부르기 시작했던 휘운씨의 단독 응원가.
휘운씨도 그걸 흥얼거리며 연습하던 게 기억에 선하다.
그가 나선지 2분이 채 지났을까. 그는 역시 박휘운이였다.
“홈런, 홈런입니다!!!!”
★
“네?”
배가 아려와 그의 홈런과 프로구단 입성조차도 축하해주지 못했던 게 미안했다.
그래서 그는 푹 쉬라고 두고 혼자 병원에 찾아온 참이였다.
“암……, 입니다.”
“암, 이라뇨?”
“글쎄. 워낙 소리소문없이 오는 게 간암인지라 저희도 뭐라 말씀을 드릴 게 없네요.”
“화, 확실한 거 맞아요?”
암. 어떻게 해야 할까. 가족들에게는 알려야 할까.
그리고 그에게는? 그는 무슨 말을 하며 무슨 표정을 지어보일까.
내가 암이라는데도 그 순박한 웃음을 잃지 않는 건 아닐런지.
한숨뿐이였다. 뭔가 세상의 사람들이 엄청 빨라진 느낌이 들었다.
나 혼자 느릿느릿 가는 기분.
“여보세요?”
「응.」
“휘운씨……”
「울어?」
한창 단꿈에 젖어있다 깨어난 목소리였다.
그런 그를 깨운 것이 미안했지만 누구에게는 숨겨도 그에게만은 숨길 수 없었다.
그라고 날 이 병의 손길에서 떼어내줄거라 생각하진 않았다.
하지만 난 그에게 무엇이던지 숨기고 싶지 않았다. 숨기는 게 더 좋은 것일지라도.
“여기 한강이다. 별 이뻐.”
「아직 집 아니야? 시간이 몇 신데. 거기 어디야?」
걱정하나보다. 말이 많아졌다.
베시시 웃어버렸다. 흘러가는 강물이 예쁘기만 했다.
언제부턴가 서울 하늘에는 별도 없구나. 강물에 비치는 별이 없다는 게 울적했다.
별 걸 가지고 다 울적하다. 몸을 좀만 관리할 걸.
내가 언제부터 그 커다란 암덩어리를 몸에 키우고 있었지.
“…휘…운씨?”
“하아. 걱정했잖아! 왜 운거야?”
달려온 숨소리다. 나를 끌어안는데 그의 등도 땀에 젖어있다.
모르는 사람에게는 더러운 땀냄새겠지만 적어도 나에게는 샤넬 향수보다 향기로웠다.
나 하나를 위해 먼 거리를 달린 사람의 땀이라. 꿀보다도 달콤했다.
“…말 해도 될까?”
“뭘?”
“……나 암이래.”
내 말과 함께 뒷짐을 지고 있던 그의 손에서 케이스 하나가 굴러떨어진다.
그리고 그 충격으로 뚜껑이 열린 케이스 속에는 커플링 한 쌍이 예쁘게 자리잡고 있다.
“휘, 휘운씨.”
“어? 어, 미안해. 내가 지금 잘못 들었나 싶어서.”
“이거…”
그가 떨어진 케이스를 줍더니 툭툭 털어낸다.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하다.
무슨 남자가 이렇게 잘 우냐, 입을 샐쭉 내밀고 그의 손에 들린 케이스를 뺏어들었다.
예뻤다. 정말 빈말이 아니라 너무 예쁜 반지.
이걸 찾으러 얼마나 많은 귀금속가게를 돌아다녔을까. 그의 노고가 느껴져,
그의 볼을 잡고 입에 짧게 입맞춤을 남겨주었다.
“미안. 나 몸이 아프대.”
“그럼… 뭐, 어떻게 되는…거야?”
“죽는대.”
“어?”
그가 상처입을 거 정도야 알았다. 하지만 그는 내색하지 않겠지.
속깊은 그는 내가 더 힘들거라는 것도 알테니까.
“언젠간 죽는대. 물론 다들 죽지만 그사람들보다 조금 더 빨리 하늘로 갈거래.”
“이거 가져.”
“뭐?”
“울지말구. 이 반지도 가지고 내 것도 가져.”
“……”
“그냥 나를 니가 가진 셈 치자.”
그 날 그의 품안에서 지독히도 많이 울었다.
죽음이라는 놈은 역시 나 혼자 태연히 받아들일 수 있는 놈이 아니였나보다.
“울지마. 고칠게. 내가 고칠게.”
“괜히 나 때문에 야구 그만두거나 하지 말고! 바보같이!!”
분명히 그 생각을 하고 있었음이 틀림없다. 그가 움찔하는 걸 보아하니.
그에게 눈을 흘기며 뚝뚝 떨어지던 눈물을 닦아냈다. 그만 울어야겠다.
지금 당장 죽을 것도 아니며 의사선생님도 치료할 의향이 없다면 간호만 잘해준다면
꽤 오래 살 수 있을거라고. 물론 정상인 처럼은 아니지만.
“아, 안그만둬.”
“응. 그리고 프로구단 들어갔다며. 축하해. 반지는 나눠끼자, 휘운씨.”
휘운씨와 같은 반지를 낀 손이라. 휘운씨는 저 손으로 배트를 잡고 연습을 하겠지.
이런 저런 생각에 미소가 떠오른다.
“결혼하자.”
“……어? 휘운씨 지금 뭐라고…”
“결혼, 해줘.”
★
그는 내가 아프다는 걸 알면서도 내게 청혼해왔다.
내가 곧 죽어서 평생 동반자가 되어주지 못할 걸 알면서도 결혼을 하자고 했다.
그는 아이도 갖고 싶어했지만, 내가 만류했다. 그 아이에게 일찍이 엄마가 죽는 고통을 주긴 싫었으니까.
그는 그것에 어느정도 동조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는 연습과 간호를 병행했다.
“꼭 최고가 될거야.”
“……”
끙끙거리며 침대에 앓아누운 나에게 그가 웅얼거리던 말이다.
최고가 될게, 최고가 될거야, 정상이 될거다.
그는 나에게 항상 최고였다.
★
“오늘 시합 보러 와.”
“응.”
비록 휠체어에 몸을 맡겨야 하는 꼴이지만, 오늘 그의 시합을 꼭 보고싶었다.
그는 나의 입에 짧은 입맞춤을 해주고는 새벽연습을 하기 위해 나섰다.
난 언니에 손에 맡겨져 이것저것 옷을 챙겨입었다.
“……언니. 내가 오늘 무슨 꿈 꾼 줄 알아?”
“무슨 꿈 꿨는데?”
“할머니. 우리 외할머니.”
언니의 표정이 눈에 띄게 일그러졌다.
역시 누군가의 기분을 상하게 할 말 같아서 그에게는 하지 않길 잘했다.
언니는 그 말을 휘운씨에게 하지 말란 말을 거듭하며,
내 가디건의 단추를 꼼꼼히 채워줬다.
구장에 도착했을 때 그는 어떻게 알았는지 저 멀리서 부리나케 달려왔다.
그리고는 내 볼에 짧은 입맞춤을 하곤 힘들테니 관중석에 앉아있으라 했다.
“기다리고 있어. 꼭 홈런 하나 선물해줄게.”
그는 자신의 배트로 나의 머리를 살짝 두드렸다.
“그리고 이거.”
직업상 항상 반지를 하고 다닐 수 없던 그가 고민하다 고안해낸 방법이다.
반지로 목걸이를 만들었다. 그는 목걸이를 내 손에 꼭 쥐어주더니.
“내가 홈런 치면 세상에서 제일 기뻐해라.”
그의 웃음. 그리고 그의 뒷모습. 남은 그의 목걸이.
나는 그를 사랑할 수 있어서 행복하다. 행복하다. 행복, 했다.
“고마워, 휘운씨……”
그 날 난 그의 홈런과 함께…, 눈을 감았다.
★
경기를 마치고 바로 그녀에게 달려간 휘운이 본 건,
싸늘해진 그녀였다. 그녀의 언니는 고개를 돌린 채 눈물을 꾸역꾸역 삼키고 있었다.
그녀의 손에서는 목걸이가 꼭 쥐여져 있었고, 언니의 말론
그녀가 끝까지 중얼거리던 말이 ‘고마워, 휘운씨’ 랬다.
“홈런 치는 건 봤…어요? 보고 갔어요?”
8년동안 결혼해 살면서 한 번도 긴장을 늦춘 적이 없었다.
그녀가 언제 갈 지 몰라. 최고의 선물을 해주어야 해.
“응. 그거 보고 바로…흡, 눈…감더라.”
그게 너에게 최고의 선물이였길.
그녀의 손등에 입맞춰주었다. 행복해.
내 삶에서 너를 사랑했다는 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일이였어.
〈야구선수 박휘운, 돌연 은퇴선언! 야구를 할 의미가 사라졌다〉
〈박휘운 은퇴! 박수칠 때 떠나는 건가〉
〈아내의 사망과 관련이 있는가?〉
〈박휘운, 기자회견에서는 아내와 관련하여 단 한 마디도 언급하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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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흡한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번외는 없을 겁니다...
쓰게된~ 동기는 제 꿈에서 김광현 선수와 강민호 선수가 말다툼하는 모습이 나와서이구요.
그들의 모습을 보다가 갑자기 그냥 쓰고 싶어서 써봤습니다..(참고로 김광현선수 사랑해요)
첫댓글 으힝 너무 슬퍼요ㅠㅠㅠ글너무 잘쓰세요 ㅎㅎㅎㅎ
으으ㅠㅠ슬프다뇨 이 미흡하고 어색한 소설을ㅠㅠ감사합니다~
우와..^^ 잘 읽고 가요
다행이네요^.^ 감사합니당
삭제된 댓글 입니다.
ㅋㅋㅋㅋㅋ동깈ㅋㅋㅋㅋㅋㅋㅋ...감사함닼ㅋ
ㅋㅋ야구로 눈팅족이던(죄송요..) 저의 손을 단번에 올려놓게 만드신~ ㅎㅎ 엄청 잘 쓰시네요ㅋ 잘 보고가요~ 저는 두산 팬이랍니다 ㅎㅎ
우왕ㅠㅠ두산팬이셔요? 전 딱히 어느 곳의 팬은 아니니까ㅎㅎ
디게 슬퍼요 ㅠㅠ 다른 소설들도 기대할게요~
어이쿠 처음에는 해피를 하자 하고 썼는데 다들 슬프다고하시네욬ㅋㅋ..읽어주셔서 감사드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