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0만원 현상공모
2025년 제4회 이충이문학상
제4회 이충이문학상 심사과정
• 원고마감: 2025년 9월 30일(화)
• 총 응모자
- 시부문: 36명 응모(작품집 36권)
• 예심 및 본심 심사위원: 이문재 나희덕 장병환
[이충이문학상 예심]
• 예심일자: 2025년 11월 6일(목)AM 11시
• 예심 심사위원: 이문재 나희덕 장병환
<예심통과작>
- 심강우, 『사랑의 습관』 외 5명
『사랑의 습관』 심강우 시집
『종이 사막』 김양숙 시집
『여름을 생각할 때 겨울은 시작되었다』 최혜돈 시집
『귓속의 이야기』 오광석 시집
『오징어게임』 이창식 시집
『기분을 다 써버린 주머니』 황려시 시집
[이충이문학상 본심]
• 본심일자: 2025년 11월 6일(목) PM 2시
• 본심 심사위원: 이문재 나희덕 장병환
<본심 통과작>
- 심강우 『사랑의 습관』
<본심결과 수상작>
- 심강우 『사랑의 습관』
자기만의 감각과 의미를 끌어내는
사랑의 시선과 따뜻한 연민
계간 『시와산문』이 주최하는 2025년 제4회 이충이문학상 현상공모에는 작년보다 응모작이 다소 늘어서 총 36권의 시집이 응모했다. 이 중에서 오광석의 『귓속의 이야기』, 황려시의 『기분을 다 써버린 주머니』, 이창식의 『오징어게임』, 김양숙의 『종이 사막』, 최해돈의 『여름을 생각할 때 겨울은 시작되었다』, 심강우의 『사랑의 습관』, 이 여섯 권의 시집을 예심통과작으로 정하고 좀 더 자세히 살펴보았다. 여섯 권 모두 독특한 개성과 일정 수준 이상의 밀도를 지니고 있었지만, 논의 끝에 김양숙, 최해돈, 심강우의 시집으로 후보작이 좁혀졌다.
김양숙의 『종이 사막』은 현대인의 삶의 현장을 ‘종이 사막’에 비유하면서 그곳에서도 ‘한 송이 꽃’을 피워내려는 의지를 보여준다. 2부에는 제주 4.3을 다룬 여러 편의 시가 있고, 이태원 참사에 대한 애도를 담은 「그 골목의 책장 풍경」이나 최근 12.3 계엄을 다룬 「11월의 폭설」에 이르기까지 시대적 고통과 어둠에 관한 시들이 묵직하게 다가왔다. 일상과 자연, 예술에 관한 후반부의 시들도 발랄하고 유니크하게 읽혔다. 다만, 산문적이고 설명적인 진술들이 좀 더 압축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최해돈의 『여름을 생각할 때 겨울은 시작되었다』는 군더더기 없이 속도감 있게 시상을 전개하면서 운문성과 산문성을 적절하게 조율하고 있다. 생각의 끝을 계속 물고가면서 문장의 반복과 변주를 통해 리드미컬하게 시의 구조를 구축해 내는 솜씨 또한 뛰어나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너는 변주하는 단어였다」 「장마」 「비의 유턴을 읽는」 「흙」 「사람들 사이의 변주곡」 등처럼 시적 밀도가 높은 작품과 그렇지 않은 작품 사이의 편차가 크다는 것이다.
심강우의 『사랑의 습관』은 얼핏 익숙해 보이는 인물이나 풍경을 열고 들어가 그 속에서 자기만의 감각과 의미를 이끌어내는 시집이다. 어느 한 편 허투른 시가 없이 작품의 수준이 고르고, 시적 대상을 형상화하는 데 있어서 절제된 태도와 숙련된 솜씨를 보여준다. 시집 외에도 여러 권의 소설과 동화를 쓴 이력 때문인지 서사적 인물이나 상황을 실감 나게 그리면서도 시적 긴장을 잃지 않는다. 조금씩 어긋나거나 기울어진 존재들과 그 간극을 참신한 은유로 표현하거나 간결한 아포리즘으로 압축해 내기 때문이다.
특히 사랑에 대한 성찰을 보여주는 시들이 인상적이다. “우린 저 강물과 같아서 / 서로의 수심水深을 두려워하지 않을 때 / 비로소 유속이 생긴다”(「사랑」)라든가, “첫눈, 환한 웃음으로 혹은 눈물이 그렁한 얼굴로 눈을 뭉쳐 던지는 저 행위는 누가 가르치지 않아도 아는 사랑이다”(「사랑의 습관」) 등처럼 이 시집은 사랑의 다양한 얼굴을 보여준다. 그러한 사랑의 시선과 습관 속에는 무엇보다도 따뜻한 연민이 흐르고 있다. 심강우의 『사랑의 습관』, 이 치열하고 아름다운 시집을 수상작으로 선정하는데 심사위원들은 흔쾌히 합의했다. 심강우 시인의 수상을 진심으로 축하드린다.(나희덕)
- 심사위원: 이문재 나희덕 장병환
사랑의 습관
심강우
사랑은 울었다. 사랑이 달랬다. 사랑이 울음을 그쳤다. 그러나 사랑이 보이지 않으면 사랑은 또 울었다. 사랑은 하던 일을 멈추고 달려왔다. 사랑의 사랑스런 손길에 사랑은 비로소 환하게 웃었다. 사랑이 사랑에게 이럴 거면 합치자고 했다. 사랑은 좋아서 사랑의 목을 껴안았다. 한 몸이 된 사랑은 웃음과 울음을 함께했다. 슬픔에 겨운 사랑이 고뇌할 때 기쁨에 벅찬 사랑이 환호할 때 사랑은 한쪽이 출렁거리거나 반대쪽에서 바람 새는 소리가 들렸다. 혼자 울고 싶을 때가 있었다. 비 오는 밤이나 멀리서 종소리 사운거리다 갈 때 사랑은 사랑에 들키지 않고 울 수가 없었다. 하물며 웃을 수도 없었다. 너무 많은 시간이 뒤섞이고 엉켰으므로 티눈과 우주만큼이나 사랑은 분리하기가 쉽지 않았다. 지친 사랑이 침묵할 때 그 사랑의 등에 기댄 사랑이 노래를 불렀다. 지나간 사랑을, 다시 올 수 없는 그리운 순간들을. 사랑의 진실이 스며든 사랑이 노래를 따라 부르자 비로소 사랑의 몸이 분리되었다. 이제 사랑은 혼자서 마음 놓고 운다. 다른 사랑마저 운다면 달래줄 사랑이 없다는 걸 안다. 사랑은 혼자 있을 때 사랑의 의미를 알 나이가 되었다. 멀리서 사랑이 아파할 때 사랑의 심장 박동 소리는 가장 크다. 사랑이 웃어도 그게 온전한 웃음이 아니란 걸 아는 사랑은 울다가 웃다가 그렇게 사랑과 놀다가 사랑이란 이름으로 세상을 하직했다. 사랑 속에 무덤을 썼기에 남은 사랑은 혼자서 웃거나 울어도 외롭지 않다. 남은 사랑마저 세상을 떠나고 어느 날 사랑은 눈이 되어 내린다. 가장 맑고 선연한 빛으로 다시 한 몸이 된 눈이 소복이 쌓인다. 첫눈, 환한 웃음으로 혹은 눈물이 그렁한 얼굴로 눈을 뭉쳐 던지는 저 행위는 누가 가르치지 않아도 아는 사랑이다. 알아서 해 보는 투정이다. 오래도록 전해 오는 사랑의 습관이다.
단추
송곳니를 윗단추로 쓰는 사자는 완고한 재단사임에 틀림없다. 물소는 조여드는 오늘을 벗어버리고 싶다. 치수를 재는 앞발과 거부하는 뒷발이 가위표로 재단된다. 쌀자루나 풍선처럼 어떤 것들은 한사코 채우면 터지는 법이다. 늘 목을 내놓고 다니기 버릇해 온 물소가 단추를 풀기 위해 용을 쓰느라 눈 속의 실핏줄이 터져 뇌우雷雨가 쏟아질 기세다.
들판 가득 수 놓인 색색의 꽃들이나 산중의 아름드리나무, 망망대해 곳곳에 박힌 섬들 또한 하나하나 채워 풍경을 여민 것이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어깨 짚어 시침질하는 속 깊은 궁량. 하늘이 겉옷이라면 숲은 어긋난 바람을 단속하는 방한 조끼쯤 되려나. 아무리 어두워도 새들은 길을 잃지 않는다. 나무를 나누어 채우는 저 수많은 단추들은 이유 없이 흔들리는 걸 싫어하는 경향이 있다.
차라리 지퍼처럼 단순하면 어떨까. 사자는 단추를 끝까지 채우려 들겠지만 물소는 마지막 남은 단추를 채움으로 새끼에게서 떨어져 나간다.
빗물에 반지하 방문이 잠긴 것, 거기 사는 일가족이 수장된 건 억지로 채워진 것이다. 치수가 맞지 않은 옷을 입은 것과 같다. 이곳에도 노회한 재단사가 많다. 마치 열렬한 사랑처럼 물소를 부둥켜안는 자세를 곧잘 흉내 내곤 한다.
떨어져 나간 단추와 같은 단추가 없어 다른 단추들마저 버려진다. 버려진 단추들은 그때 비로소 눈을 뜬다. 실밥을 부둥켜안고 운다.
파본破本
시를 쓴다고 방을 나가지 않은 날이 많았다
걱정하는 사람의 말이 달개비 꺾이는 소리로 번졌다
더러 흩어 놓은 말들이 구름을 이루고 떠돌다
한낮의 소나기로 다녀갔으나 처마가 깊어 젖지 않았다
한갓되이 울 밖의 소문에 귀를 담그지 않으리
온몸의 감각세포가 문풍지가 되어 달빛만이 우련했다
문고리 거는 기척에 모시나비 한 마리 기웃거리다 가고
내 속을 훑은 기억들이 뒤란의 동백으로 붉어질 때
삿갓을 닮은 섬에서 글을 썼다는 사람을 생각하곤 했다
그이 역시 붓을 들었을 때는 풍향風向을 묻지 않았으리
그이의 호흡을 필사한 후박나무가 푸른 소매를 흔들고
바늘땀 뜨듯 골무꽃은 자색 무릎걸음으로 안부를 물었으리
주위에서 파도 소리가 들린 건 우연이 아니었다
오랜만에 문지방을 넘어선 순간 다리가 후들거렸다
벼랑 끝이었다 출렁이는 수평이었다
좀 더 수직을 유지하기로 했다
내가 버린 단어들이 수평의 검은 수위를 높였다
물살이 되어 아프게 철썩거렸다
이대로 섬이 잠겨도 좋다고 생각했다
먼 훗날 파도가 그치고 바다가 육지가 되고
내가 살던 방이 검은 지층이 되었을 때
우연히 닿은 어떤 인연이 퍼렇게 박힌 파본破本 한 구를
발견해도 좋다고 생각했다
상처가 아문 자리는 빛의 채도를 회복한다
빛과 그늘은 서로에게 빚지고 산다. 그늘이 있어 빛은 선명하다. 빛이 있어 그늘은 웅숭깊다. 빛을 절대 명제라거나 정언명령 그 자체라 주장하는 이들이 있는데 산山이 온축한 게 빛인지 그늘인지 묻고 싶다. 우리는 산속의 그늘을 걸으며 빛에 데였던 상처를 씻어낸다. 상처가 아문 자리는 빛의 채도를 회복한다. 반대 현상 또한 예사롭다. 그늘이 깊어 얼었던 마음자리에 볕뉘가 깃들고 마침내는 서서히 온기를 넓혀 말랐던 물기를 회복한다. 요컨대 그늘은 빛을, 빛은 그늘을 함의하고 있다. 누군들 그늘과 빛이 없겠는가. 그늘이나 빛 둘 중 하나만을 온전한 것으로 혹은 숙명으로 간주하는 자세를 경계할 따름이다.
두 번째 시집 <사랑의 습관>에 수록된 시편은 대부분 그늘에서 가져온 것들이다. 가령 상실과 가난은 그늘에서 흔히 보는 잎사귀들이다. 더러 책갈피에 끼워지는 경우도 있으나 대개는 발에 밟히거나 태워진다. 어쩌면 시인은 그러한 잎사귀 하나하나에 의미를 부여하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벌레 먹고 찢긴 잎사귀들. 많으면 많아서, 적으면 적어서 눈길을 끌고 시심을 자극한다. 시인은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 잎사귀들 또한 빛의 구간을 지나왔다고. 그늘은 빛의 무덤이 아니라 쉼터 혹은 정류장 같은 거라고. 글썽거리는 마음은 그늘에서 더 잘 보인다. 내 시는 대부분 그늘 태생이라 빛을 눈부셔 한다. 나는 조심스레 그늘을 벗기고 시詩의 외피를 입힌다.
데데하고 허술한 시집을 추켜 주신 이문재, 나희덕 두 분 심사위원께 고맙다는 인사 전한다. 다만 주저앉지 말고 여일하게 써 나가라는 뜻으로 새긴다. 아울러 『시와산문』을 창간한 이충이 시인의 정신을 견지한 <이충이문학상>의 위상이 더더욱 공고해지기를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