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을 대표하는 명주 - 한산 소곡주
술 익는 마을이 우리에게 있다. 충남 서천군 한산면 일대이다. 이곳에서 빚어지는 술은 한국 사람이면 대부분 다 알고 있듯이 소곡주(素穀酒)다.
소곡주는 누룩이 적게 들어간다. 누룩이 적게 들어가니 빚는 법이 어렵고 누룩냄새가 덜 나는 고급술이다.
역사적으로도 꽤 오랜 내력을 가진 술이기도 하다. 일설에는 백제시대부터 빚어졌다고 한다. 나당연합군에 의해 멸망한 백제의 유민들이 망국의 한을 소곡주를 빚어 마시며 달랬다는 것이다. 확인할 길이야 없지만 수많은 설화와 이야기를 가진 소곡주는 그만큼 우리 역사 속에 오랫동안 숨 쉬어 왔다는 뜻일 것이다. 또한 <산림경제>, <동국세시기>, <규합총서>, <음식디미방> 등 조선시대의 많은 문헌에도 등장하여 전국적으로 빚어졌던 술이다.
밀주단속과 시세에 밀려 지금은 한산지역에서만 빚어지는 소곡주의 이런 명성은 아직도 건재한 술익는 마을이 있어 유지되고 있다. 가양주를 밀주로 몰아 술익는 마을이 전국적으로 사라졌음에도 불구하고 한산면 일대는 아직도 수백가구의 주민들이 소곡주를 빚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술을 마을마다 빚는 거의 유일한 고장인 것이다.
술익는 마을 - 서천군 한산면
서천군 문화원에서는 2006년에 서천군 한산면 일대에서 소곡주 실태를 조사했었다. 이 자료에 의하면 한산면 일대에 거주하는 1,500여 가구 가운데 500여 가구 가까이가 술을 빚고 있다. 전체가구의 약 1/3이 술을 빚고 있으니 두 집 건너 한 집이 술을 빚고 있는 셈이다. 술을 빚는 가구들은 대체로 부모나 시부모 혹은 조부모에게 술 빚는 법을 배웠다고 한다. 누룩 또한 2/3이상이 직접 디뎌서 사용하고 있으며, 빚는 방식 또한 현대적인 방식이 가미되지 않은 원형을 간직하고 있다.
소곡주는 일명 앉은뱅이 술이나 백일주로 불리기도 한다. 입에 감기는 맛에 취하는지도 모르고 앉은뱅이가 될 때까지 마신다는 소곡주는 재미있는 일화를 가지고 있다.
조선시대 한양으로 과거를 보러간 선비가 이 술을 먹고 취하여 과거를 보러가지 못했다거나 남의 집에 들어간 도둑이 소곡주를 마시고 취하여 일어서질 못했다는 이야기다.
입에 착 달라붙는 감칠맛이 있어 마시는데 역하지 않지만 소곡주는 알콜 도수가 상당히 높은 술이다. 그래서 그 맛에 끌려 나도 모르게 취하여 앉은뱅이가 되어버리지만 깨고 나면 뒤끝이 깨끗하다. 그것은 오랫동안 발효의 과정을 거치기 때문일 것이다. 소곡주는 보통 백일의 발효과정을 거친다. 그래서 또 다른 별칭이 백일주다.
충남 무형문화재 제 3호 한산소곡주의 명맥을 잊는 나장연씨의 경우는 발효 항아리를 땅속에 묻어 발효시키고 있다. 그 이유는 저온에서 장기간 발효시켜 맛과 향이 뛰어난 소곡주를 생산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소곡주의 원료는 대체로 찹쌀을 사용한다. 소곡주 실태조사에 의하면 소곡주를 빚는 농가의 95%이상이 찹쌀을 사용한다. 부재료(첨가물)로는 콩과 엿기름, 고추, 솔잎, 숯 등을 넣는다. 콩과 엿기름은 발효를 촉진하는 역할을 한다. 고추와 솔잎은 소곡주의 맛과 향을 더욱 풍부하게 만들며 숯은 잡냄새를 정화하는 역할을 한다.
한산면 사람들은 소곡주를 제수용으로 빚기도 하지만 판매용으로 주로 빚는다. 한산이 고향인 사람들은 자신의 고향에서 소곡주를 구입하여 주변사람들에게 선물을 한다. 주변 사람들은 소곡주의 맛에 반해 그 명성이 계속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것이다.
그렇지만 현재 소곡주는 무형문화재 지정을 받은 술 이외에는 밀주형태로 남아 있다. 따라서 소곡주 제조를 양성화 시켜 우리민족을 대표하는 술로 만들어야하는 과제가 남아 있다. 또한 소곡주가 빚어지는 마을은 우리 술 문화의 원형이 살아 있는 전통주 특구 지정 등의 조치도 검토해볼만 하다.
<충남 지방무형문화재 한산소곡주 기능보유자 우희열씨의 소곡주 빚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