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산동성 임치부근에 왜[倭]라고 불리는 정치집단이 있었다...
해상무역과 어로에 능했고...낙랑해 ..도서지역에 살았다...
과연 임치주변이였을까?
재미있는 기록이 우리측에 있습니다
왜국 동북방 1000리에 용성국이 있다 ....석탈해에 관한 내용이지요 ...
임치에서 해로로 동북방 1000리를 가면...요서의 중심지 조양시[朝陽]가 나오는데...
모용씨의 연나라가 들어선 3세기 이후 ..그곳은 용성[龍城]으로 불렸습니다....
그곳이 산동성 왜족의 주요 거점이였을 증거의 단편들은 ...여러곳에서 보입니다
단석괴의 왜인과 갈석산의 왜인 ...왜산....여러사서의 왜인에 관한 기사가 ..조양시 부근으로 나온다는 점입니다
산동성 해상세력의 확인된 주요거점은 가야지역입니다
두개골 변형 발치 구함구등 ..산동성 예족의 문화를 예상할 고고학 자료가 많습니다
그리고 타밀인도 예상이 되고 사천성 보주태후.. 파족 허씨도 예상이 됩니다 ....
가야지역에 나타난 석탈해..속에 타밀인이 있다고 한다면 ...요서의 용성의 해안가..어딘가 ..
타밀인과 왜족의 거점이 있었다는..추론도 가능합니다
그렇다고 한다면....대동강하구의 조선 천독의 내용도 .설득력을 얻겠네요
석탈해 내용에서 어머니쪽이 ..적녀국[積女國]이다..라는 대목이..있습니다
.... 예상이라면 그들은 사천성 파족 허씨...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사천성 파족[巴]의 주요 이동로는 양자강..그 지류중에서도..민강입니다..
그곳은 .삼성퇴와 관련되고..청동기를 먹는 맥[貊]의 전승이 있는곳 ..
전승에 의한다면 ... 그들의 조상은.. 감숙성 제가문화 청동기 세력과 관련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민강을 따라 적녀국이 존재할까요 ...
당나라때까지 ...동녀국[東女國]의 존재가 확인이 됩니다 ...현재도 그 후손의 일부가...고립된 지역에서 살고 있다
당나라 기록을 보면..80여개 성 동서 2000천리 남북 1000리 ...산간지역이기는 하지만 ..상당히 넓은 지역이다...
석탈해의 장법이 ...특이합니다 ..수장[水葬]..
그런데 수장[水葬]이 사천성에도 있는 장법이다..는 이야기가 있군요
후대의 문무대왕도 동해에 수장[水葬]을 했기에 ....전통이 있다...
용성국의 다른 이름으로 완하국 화하국..도 기록에 보입니다 ..
화하는 ...감숙성 제가 문화 청동기세력의 조상의 국가 이름..그렇다면 .역시 파족[巴]과 관련이 있습니다
신화에서 허황옥이 타고온 배는 ..돌로 만든 배입니다....역시 파족 시조 늠군의 신화에서 차용한 부분
가야에 산동성 예족과 타밀인.. 사천성 파족이 ..공존한 것처럼....
요서의 조양시부근 ...그들의 거점이 있었고....... 대동강 하류.에도 그들의 거점이 있었다 ...
예상할 수 있습니다
마고신화는..거인 반고계 신화.... 인도에서 온 것으로 학자들은 보고 있습니다
타밀인을 따라 ..중국남해안을 거쳐 ...발해만까지 그 신화가 올라갔다...
마고신화는 엄청난 크기의 거인신이 주인공 ...동북아에는 ...낮선 신화입니다
평양지역에서 마고족과 단군족의 갈등과 융합의 전승이 있기에...
산해경의 조선 천독은....신화면에서는 상당히 근거가 있는 부분입니다 ....
재미있는 것은 마고신화가 사천성에서도 보인다는 점입니다
사천성 .. 청성산....마고신화...
타밀인의 발길이 닿아 있었다...
단군신화는 그들 족단 이동로가...감숙성 돈황과 섬서성과 하남성 태백산..
태백산은 한강[漢江]이 발원지 ...
...한강[漢江]은 양자강의 지류.....
그리고 전승에 의한다면 감숙성 섬서성의 청동기집단의 주요성씨인 팽씨와 동행 했음이 예상됩니다
단군신화에서 대홍수와 관련한 전승이 있고 ...그 기억에 북방으로 들어온 흔적이 없다고 한다면 ...
그들은 내몽고 육로가 아닌 ..누군가의 배을 빌려 타고 양자강을 따라서 ...황해를 통해 대동강으로 들어왔을 것이다 ..
단군족과 타밀인과 사천성 파족의..만남은...양자강에서 이미 이루졌다...예상합니다
평양의 마고전승이라고 한다면 .. 단군족의 연대는 마고족보다는 올라가기 힘듭니다
마고족이 타밀인의 신화라고 한다면 ..그들은 이 땅에 타밀인보다도 늦게 들어왔다....
늦게 들어온데다...곧이어 기자족에게 ...밀렸다면 ...후손을 남길 여지는...많아 보이지 않습니다
그것이 현재 단군 후손 성씨가 ...전혀 없고 ..단군의 무덤도 하나만 있는 이유가...아닌가 ....
당나라는 당시에 8개의 소수민족부락을 민산협곡에서 다두하쪽으로 이주시키는데, 이 8개의 부락안에 바로 동녀국의 여왕이 이끄는 부락이 포함되어 있다고 한다.
사천성사회과학원역사연구소의 연구원 겸 사천강장연구중심 부주임인 임신건은 오랫동안의 연구와 현장답사를 통해서 현재의 사천 감자주 단파현에서 도부현에 이르는 일대가 <<구당서>>에 기재된 동여군(東女國)의 중심이라고 한다.
동여국이 전설중의 여인국인가? <<구당서>> 제197권 <<남만서남만전>>에 따르면,
"동여국(東女國), 서강(西羌)의 별칭이다. 서해중에도 여국이 있어서 예로부터 동녀라 부른다. 습속이 여자를 왕으로 한다. 동쪽으로는 무주, 당항과 접해 있고, 동남으로는 아주와 접해 있다. 경계는 나녀만과 백랑이를 사이에 두고 있다. 그 경계는 동서로 9일을 걷는 거리이고, 남북으로 22일을 걷는 거리이며, 크고작은 80여개의 성이 있다"
임신건의 해석에 따르면, <<구당서>>의 기재에 의할 때, 동녀국은 남북의 길이기 22일거리, 동서의 길이가 9일거리인데, 과거에 하루에 말을 타고 40킬로미터, 걸어서 20킬로미터를 갔던 것에 비추어보면, 동녀국은 남북으로 440킬로미터 내지 880킬로미터, 동서로 180킬로미터 내지 360킬로미터가 된다는 것이다.
사서의 기재에 따르면, 동녀국의 건축은 모두 조루(탑과 같은 건물)이다. 여왕은 9층짜리 조루위에 살고 있고, 일반 백성은 4,5층으 조루에서 살고 있다. 여왕이 입는 것은 청보모령의 비단의 긴 치마이고, 치마는 땅에 끌리며, 금으로 꽃을 수놓았다. 동녀국의 최대의 특징은 여자를 중시하고 남자를 경시한다는 것이다. 국왕과 관리는 모두 여인이고, 남자는 조정에서 관리를 할 수 없으며, 단지 밖에서 병사가 될 뿐이다. 궁중여왕의 뜻에 따라, 여관이 바깥에 전달한다. 동녀국에는 여왕과 부여왕이 있고, 종족내부에서 추천받은 사람이 담당한다. 여왕이 죽으면, 부여왕이 승계한다. 일반가정에서도 여자가 가장이 되며, 부부관계는 없다. 가정에서도 모친이 귀하며 가장의 재산을 장악하고 분배하며 일체의 집안일을 주재한다.
석씨(昔氏)의 시조이며 왕인 탈해(脫解)가 태어난 나라이다. 『삼국유사(三國遺事)』에는 일명 정명국(正明國)ㆍ완하국(琓夏國)ㆍ화하국(花廈國)이라고도 하였으며, 『삼국사기(三國史記)』에는 다파나국(多婆那國)으로 기록되어 있다
용성국의 함달파왕(含達婆王)이 적녀국(積女國)의 왕녀를 왕비로 맞았는데, 왕비가 오랫동안 아이가 없다가 기도하여 큰 알을 낳으니, 그것을 궤 중에 넣어 칠보와 노비와 함께 배에 실어 바다에 띄웠다. 알에서 깬 탈해는 먼저 김해 지역에 상륙했다가 거기에 정착하지 못하고 신라로 들어갔다.
용성국의 위치에 대해서는 왜국의 동북쪽 일천리에 있었다고 기록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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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다파나국은 서역(西域)의 소국이며 함달파는 불교의 음악신이므로 용성국은 서역에 있었다고 한다. 탈해와 연관이 있는 수장(水葬) 풍속이 동남아시아와 쓰촨성[四川省], 그리고 서역지역에 퍼져 있음은 이 학설을 뒷받침한다
[중요] Q&A 한과 왜의 기원에 관한 가설(선비족 단석괴의 오후진수)
증평군 두타산 단군시대에 백성들이 홍수를 피한 산
사천성 청성산에 있는 마고동(麻姑洞)과 마고지(麻姑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