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인생의 영화-라쇼몽<1950,구로사와 아키라>
최근 인터넷 웹사이트 뉴스인 '오마이 뉴스' 에서 '유신랑에게서 친일파의 모습이 보인다'
라는 기사를 흥미롭게 읽은 기억이 있다. 기사의 내용인 즉슨 드라마 <선덕여왕>의 김유신이
자신의 본국인 가야의 부흥을 포기하고 자신이 새로이 몸담은 신라에 충성을 다하는 모습에서
일제시대때의 조선의 독립을 포기하고 일본제국주의를 위해 충성을 바친 친일파들의 모습이
보인다는 내용인 것이었다.
그러면서 이 글의 필자는 신라시대 당시의 국가관을 현재 우리의 국가관의 주를 이루는 민족주의
정서에서 재단하여서는 안되며 당시 신라사람들의 입장에서 객관적으로 시대상황을 이해하고
평가해 주어야 한다는 냉정한 판단을 하고 있었다.
나는 이 기사에서 주장한 진실에 대한 객관화된 접근방식이란 명제를 곱씹어 볼수록 군대를 갓
제대한 시절에 접했던<라쇼몽> 이란 작품이 떠오른다.
한 사무라이의 죽음을 서로 다른 증인들의 서로다른 증언들을 토대로 재구성하고 있는 형식의 이 영화는
하나의 사건을 두고 자기본위적인 시선으로 사실을 왜곡해서 기억하거나, 거짓증언으로 그런
자기자신의 기억을 정당화 시키는 인간의 이기적인 인간본성을 그린 작품으로서
위 기사의 현대 우리의 관점에서 천년하고도 수백년전의 신라인의 가치체계를 주관적으로
판단할 수 밖에 없는 사실판단의 왜곡심리와 맞닿아 있다고 여겨진다.
그럼 이제 <라쇼몽>에 대해 더 잘 알아보자.
영화는 추리극의 형식을 하고 있지만, 결코 범인이나 진실을 특정하지 않는다.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주인공이나 당사자들이 관아에서 심문을 받을때
심문관의 모습이나 말소리가 나오지 않는것은 감독이나 작가의 가치판단이나 의도를 배제한채
사건에 대해 최대한 객관적으로 청자들을 몰입시키게끔하는 장치이다.
그리고 이 사건은 여러 이해 당사자간의 각각의 증언을 통해 객관화 되어 가는데 진실이나 범인을
끝까지 숨김으로서 이 작품이 단순히 일본의 헤이안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활극이나 명탐정 셜록홈즈가
나오는 추리극이 아닌 등장인물들의 심리와 행태를 사회과학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는 작품이라는
메시지를 강화시키고 있다.
재미있는것은 이러한 감독의 의도를 더욱 돋보이게 하기위해 쓰인 활극이란 소재와 추리극이란 요소이다.
이야기의 당사자인 도적과 사무라이의 대결은 서로의 주장 안에서 맹목적인 자기애로 미화되지만
나무꾼의 증언에서 그냥 단순한 서로 죽기를 두려워한 개싸움에 불과했다는것이 드러남으로서
인간의 객관적이지 못한 자기정당성이란 영화의 주제를 더욱 부각시키고, 또한 추리극의 요소를 넣음으로서
관객이 더욱 쉽게 극에 몰입하고 빠져들게 한, 특히 한 사건을 서로 다른 증언으로 재구성 하는 형식은
유명한 추리극 작가인 아가사 크리스티의 <오리엔탈 특급살인> 에서 살인사건의 증언자가 모두 공범이였다는
설정을 차용한 것이 아닌가 할 정도지만,
<라쇼몽>의 같은사건에서 다른증언으로 연결되는 논리구도와,
<오리엔탈 특급살인>에서 같은사건에서 같은증언으로 연결되는 논리구도의 차이점은
이러한 소재의 차용이 단순히 소재의 자가복제와 같은 단순한 모방이 아닌
정형화시킨 소재를 도구화한 예술적인 승계가 아닐까 한다.
<라쇼몽>은 촬영기법 또한 뛰어나다. 무성한 숲을 배경으로, 인물을 아래에서 위로 촬영하는 구도는,
무성한 나뭇잎 사이로 적당히 산란되어 들어오는 햇빛을 더욱 돋보이게 할 뿐만 아니라, 흑백영화라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역동적인 영상미를 보인다.
이른바 처음 도적이 낮잠을 자면서 말을 타고가는 여자를 보는 시점은 여자의 신비롭고 요염한 모습을
더욱 더 부각시켜주고, 그런 여자를 강간하기 위해 사무라이를 포박한 후 여자에게 뒤어가는 도적의 모습은
더욱 더 도적의 감정을 잘 표현해 주고있다.
아울러 현재와 과거를 넘나드는 편집기술또한 전혀 위화감 없이 복잡한 갈등구조와 시점변화를 소화함으로서
1950년대의 영화로는 도저히 믿기힘든 세련된 영상미를 과시하고 있다.
이야기의 마지막 증언자이자 가장 진실에 가까운 증언을 하는 나뭇꾼마저 자신의 이해관계를 위해
거짓 증언을 했다는 것이 드러나는 것은 이 영화의 결말이자 주제이기도 하다.
하지만 처음에 말했듯이 이 영화가 탐구하는것은 범인이 누구인가를 묻는것이 아니라 그들이 왜 하나같이
왜곡된 진실을 이야기 하는가인 것이다.
그렇기에 특정되지 않은, 혹은 특정될 수 없는 범인과 진실을 밝히지 못한체 끝난 이야기를 우리는 납득할 수 있다.
아울러 이 <라쇼몽> 이라는 영화가 던지는 메시지를 더 곱씹을 수 있는 기회를 가지는 것이다
<라쇼몽>에서 말하는 인간이란 때때로 객관화 되지 않은 사실에 노출되어 있고,
자신의 입장에서만 현실을 재단한다.
자신만의 이익을 위해 특정 정당을 지지하는 것이나, 반대편의 의견을 묵살하고,무시하는 것은
어쩌면 이러한 인간의 이기주의적인 시선의 시작점이자 부산물일지도 모른다.
또한 다른시점에서 예를 들어보면 어쩌면 우리나라와 일본간의 역사교과서나 영토문제, 또는
중국 등과의 동북공정 문제에 있어서 우리의 주장이 우리의 입장에서 우리의 기억속의 왜곡된 망상이
조금이라도 반영된 것이 아닐까 자문해 보면 이유모를 섬뜩함이 엄습해온다.
어쨌거나 <라쇼몽>에서 보여준 인간의 본성, 내지는 어두운 단면을 타산지석으로 삼아 인생의 교훈으로
삼는다면 이 작품이 인생 최고의 영화로서의 가치는 충분히 하고도 남을 것이다.
그것이 내가<라쇼몽> 보다 더욱 재미있는 영화가 많음에도 인생최고의 영화로 꼽은 이유이다.
물론 진실을 사실을 통찰하는 능력뿐 아니라 진실된 사실을 지키고,
그 진실된 사실이 정의가 될수 있도록 실천하고 행동해야 된다는 교훈 또한 잊으면 안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