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에서 라이따이한 문제를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이 김영관 목사다.
호치민에서 휴메인 직업기술학교를 운영하고 있는 김영관목사는 베트남의 라이따이한을 파악하고 그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준 한국인이다. 그는 "1990년부터 지금까지 모두 1천4백명의 라이따이한을 확인하고 전산처리를 완료했다"고 밝혔다.
김 목사는 신문과 전화번호부 등에 광고를 내서 라이따이한들이 휴메인 직업기술학교에 등록하도록 했다. 이 학교에 등록한 라이따이한들에게는 영어와 한국어 컴퓨터 등을 가르치고 생활비 일부를 지원했기 때문에 베트남에 사는 대부분의 라이따이한 숫자가 파악됐을 것이라는 것이 김 목사의 설명이다.
하지만 호치민을 떠나 베트남전쟁 당시 한국군이 주둔했던 동부 해안선을 따라 나쨩에서 퀴년까지 다니며 라이따이한을 만날 수 있었고, 그들은 김 목사의 '리스트'에 파악되지 않았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김 목사도 "호치민의 라이따이한은 거의 모두가 파악됐을 것으로 보지만 중부지역에는 파악되지 않은 라이따이한들이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김영관목사는 1990년대 초 베트남에서 활동하면서 라이따이한들을 만났으며,눈물없이는 볼 수 없는 그들의 현실을 접하면서 라이따이한을 위한 직업기술학교에 대한 비전을 가졌다. 기독교 대한감리회 베트남복지선교회 등의 도움으로 설립된 휴메인 직업기술학교는 라이따이한들에게 영어와 한국어 컴퓨터 등을 가르치면서 그들이 내일에 대한 희망을 가질 수 있도록 했다.
휴메인 직업기술학교는 호치민시 인민위원회와 공동으로 운영하면서 베트남 정부로부터 인정을 받았으며, 한국으로부터 도움을 받아 호치민 시내에 교사도 마련할 수 있었다. 1992년 한국과 베트남의 국교가 정상화되면서 휴메인 직업기술학교는 라이따이한이 아버지의 나라를 방문할 수 있도록 길을 마련하기도 했다.
라이따이한이 처음 한국을 방문한 것은 1993년. 여섯명의 라이따이한으로 구성된 모국방문단은 아버지의 나라를 찾는 것으로 그동안 응어리진 한을 풀 수 있었다. '내이름은 라이따이恨'에 소개됐던 쨘다이송도 1994년에 모국방문단에 포함돼 아버지의 나라를 찾았고 거기서 송주일이라는 한국 이름을 얻게 된 것이다.
1990년대 초반 베트남의 라이따이한들을 도와온 휴메인직업기술학교에는 지금 라이따이한이 없다. 그들은 모두 졸업을 하고 이곳을 떠나 베트남의 기성세대로 자리를 잡고 있는 것이다. 라이따이한 대신 베트남의 젊은이들이 직업기술을 교육받는, 베트남의 젊은이들을 길러내는 교육기관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것이다.
김영관 목사는 베트남에서 남다른 특권이 있다.
선교활동이 즉, 복음이 금지된 이곳에서 정식으로 목사 호칭을 달 수 있다고 한다. 그 배경은 베트남의 어려운 청소년들을 위해 오래도록 봉사해왔던 공력이 베트남 정부로부터 인증된 결과였다.
그를 마주하면 거대한 에너지가 느껴진다. 목회자들이 공통적으로 갖고 있는 기세이기도 하지만, 그의 기운은 유독 돋보인다. 천성일수도 있지만, 대체로 기가 센 자들은 사회적 성향이 강하다는 공통점을 보게 된다.
김영관 목사는 수교 전 적십자 멤버로 베트남에 왔고 줄곧 한인 2세들을 위해 봉사하며 살아왔다. 우선 ‘라이따이한’이라는 거북한 호칭을 ‘코리안 비엣남스’라는 새 용어로 대체한 장본인이기도 하다.
그는 NGO 프로젝트 자선사업의 일환으로 97년도에 한인 2세들을 위한 건물 2동 규모의 기술학교를 세웠다. 2002년에는 3년제 정식 기술학교로 승인, 무려 30.000명의 졸업생을 배출하기도 하였다. 또한 경남대와의 자매결연을 채결하여 수백 명의 한인 2세들에게 한국에서의 기술연수 기회를 마련키도 하였다. 국가와 제도가 나서서 할 일을 민간이 뚝심 있게 해왔던 것이다.
김영관 목사와의 미니 인터뷰 내용이다.
▲ 그 동안의 베트남 생활을 말하자면?
베트남에서 20년을 지내다 보니 강산이 변하는 가운데 베트남 사람처럼 살았다. 베트남이 마치 내 나라 같고 영락없는 제2의 고향이었다. 타국에서의 생활에 왜 어려움이 없었겠냐만, 이때껏 살아왔던 마음으로 뼈 묻을 때까지 살고 싶다. 더도 말고 향후 10년간, 지난 20년 세월만큼의 고난만 와주었으면 좋겠다. 더불어 지난 20년간 건강히 살아남은 걸 하나님 은혜로 받아들인다.
▲ 지면을 통해서 교민 여러분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은?
서로가 서로를 인정하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상대를 인정할 때 협동의 사회가 되고 비로소 리빙 투게더(living together)가 된다. 또한 한국인으로서 베트남에서 법적 보호 대상은 불과 만 명 정도다. 당장 눈앞에 당면한 비자문제만 해도 그렇지 않은가. 나 역시 이 땅에서 20년을 봉사하며 살았지만 결국 비자에 발이 묶인 6개월 인생이 되어 버렸다. 이 같은 모순에 대해 실마리를 풀어가고 싶다. 한인사회에 대한 정체성이나 그런 것에 대한 포커스에 초점이 흐려져선 곤란하다.
그는 감리교 목사야말로 사회성이 강하다고 말한다. 사회가 변화해야 복음이 되기 때문이라고 한다.
베트남 희망 찾기 휴맨 직업기술학교
김영관 설립이사장
2013년 계사년(癸巳年) 희망찬 새해가 밝았다. 연말연시 어려운 이웃을 생각하고 가족과 친지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전하면서 "아직도 세상이 살만하고 따뜻하구나."라는 훈훈함과 따뜻함이 느껴지는 요즘이다.
꼭 지금이 아니더라도 우리 주위에는 솔선수범하는 이웃이 많다. 사랑의 집을 짓고 학교를 짓고 오지를 찾아 의료봉사를 하는 일부터 옆집의 아이를 돌봐주고 거리를 청소하는 봉사활동까지 크고 작은 선행이 우리 사회를 '살만한 사회에서 살고 싶은 사회'로 만들고 있다. 그래서 라이프플라자에서 준비한 야심 찬 새 코너 '칭찬합시다.'에서 정이 넘치는 우리 이웃을 소개하고자 한다. 칭찬 주인공이 다른 칭찬 주인공을 추천하는 릴레이 형식으로 진행되는 이번 코너의 첫 번째 주인공은 라이프 플라자가 선정한 이 시대의 어른 휴맨직업기술학교 김영관 설립이사장. 열정 넘치는 그의 목소리를 통해 오늘도 베트남 최고 기술자를 양성하고 있는 휴맨직업기술학교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보자.
베트남 교민이라면 한 번쯤은 들어봤을 이름 김영관(70) 휴맨 직업기술학교 설립 이사장은 1990년 베트남에 도착하여 현재까지 한인 연합 감리교회 목사, NGO 협의회 초대 회장, 전 한국학교 이사장과 휴맨직업기술학교 설립이사장 등 많은 직함만큼 베트남 사회에서 많은 일을 해오고 있는 분이다.
행복합니다. 베트남에 22년 동안 열심히 살았지만 돌아보면 별로 한 일이 없는 사람인데 '칭찬합시다.'라는 아름다운 마음이 담아있는 코너에 첫 번째로 테이프 를 끊으려니 설렙니다. 여전히 교민 여러분이 저를 사랑해 주시는 것에 감사드리 고 제가 하고 있는 작은 일들이 인정을 받고 있는 것 같아 뿌듯합니다. "앞으로 아 름답게 남은 삶을 헌신하고 봉사해야겠다."라는 다짐을 새기며 여러분 말씀에 귀 기울이고
책임감을 가지고 교민사회가 건강한 사회가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휴맨직업기술학교 설립, 라이따이한 합동결혼식, 부스러기 사랑나눔회 활동 등 많은 활동 중 가장 보람되고 애착이 가는 일을 한 가지만 뽑아 주신다면?
무엇보다 휴맨 직업기술학교 설립이 가장 뿌듯합니다. 제가 처음에 베트남에 라 이따이한을 위한 학교를 설립하겠다고 했을 때 모두 다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 했습니다.
1990년 당시만 해도 베트남에는 사립학교법 자체가 없어서 개인이 학교를 설립한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고 학교 설립을 위한 허가서 준비에만 1년이라는 시간이 소요됐습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베트남 사람들 과 더불어 사는 삶을 살겠다는 꿈을 가지고 마침내 영어와 한글을 가르치는 학교 를 만들었고 현재는 휴맨직업기술학교가 베트남 학생들이 디자인, 컴퓨터, 전기 기계 등을 배울 수 있는 명실공히 호찌민 최고의 기술학교로 자리 잡았습니다. 매년 수많은 졸업생을 배출하고 그들이 사회 구성원의 한 명으로써 그들의 몫을 해 나갈 때 무엇보다 행복하고 보람됩니다.
앞으로의 계획과 교민 여러분께 당부의 말이 있으시다면?
제가 올해 71이지만 제 인생은 영원한 49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루하루 놀라운 경 제성장을 이루는 베트남처럼 저도 변화하고 발전하는 삶을 만들기 위해 앞으로 의 10년을 또 열심히 지낼 생각입니다. 돌이켜보면 지난 20년간의 베트남과의 인연이 참 각별했던 것 같습니다. 제가 휴맨직업기술학교를 그리고 많은 일을 성공적으로 해낼 수 있었던 것은 베트남 사람과 한국 사람이 함께 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늘 '리빙투게더'를 강조합니다. 국적에 구애 받지 않고 서로 존중하며 베푸는 삶을 살 때 더불어 잘 살 수 있다고 생각하고 교민 여러분도 넓은 마음을 가지고 함께 노력했으면 좋겠습니다. 아울러 2013년도 건 강하시고 뜻하시는 모든 일 이루시길 바랍니다.
첫댓글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언제가 베트남에
아주 작은 것 일 지라도
나눔을 실천 할 수 있었으면 좋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