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우시절(2009)
“나 하루 더 있다 갈까?”
(<봄날은 간다>에선 ‘라면 먹고 갈래요?’라는 대사였지...)
사건보다 감정선 따라잡기라는 독특한 스타일리쉬를 보여준 허진호 감독의 5번째 러브 로망이다. 전작들의 엔딩은 대체로 대놓고 웃기가 좀 민망한 곳에 서있을 때와 같은 ‘흐림’ 이었다면 이 영화는 여주인공의 맑고 환한 미소처럼 여름날 여우비 뒤에 나타난 ‘맑음’ 같은 산뜻한 느낌이다.
두보초당을 스케치하던 오프닝에서 대나무 숲의 ‘쏴아’하는 소리를 들은 탓인지 영화 내내 감독의 전작인 <봄날은 간다>와 오버랩이 되었다. 어쩌면 <봄날은...>에서 버겁기만 하던 은수(이영애)로 인해 한층 성숙한 상우(유지태)가 이젠 제대로 자세를 갖추고 필드에 나타난 듯하다.
대사가 전부 영어로 이루어진 탓에 모국어가 주는 살가움이 다소 떨어지긴 했지만 전작들에서 느낄 수 없었던 클로즈업으로 처리된 ‘감정의 숨 막힘’을 담은 장면들은 서사를 강화시키며 비주얼 효과까지 동반했다. 물론 한껏 수줍음을 담은 앵글은 결코 싸구려로 감을 경계하면서 말이다. 다 보여주지 않아도 보여준 것 이상으로 전달 효과도 충분하다.
詩 쓰기를 포기하고 지냈던 동하(정우성)가 다시 詩를 쓰게 되고, 자전거 타는 법조차 잊었던 메이(고원원)가 다시 자전거를 타면서 서사의 결론을 은유하는 방법도 참신하게 느껴진다.
그리고 동하와 메이의 재회감정이 그렇게도 급진전 될 수밖에 없었다면 단지 사진 몇 장과 대사나 전화 내용으로 관객을 설득하는 것보다 회상장면이라도 한 시퀀스 넣었으면 하는 생각을 해봤다. 그들이 애틋하게 헤어질 수밖에 없었던 과거를 이을 수 있는 끈 같은 장면 말이다. 물론 늘어나는 분량에 제작비까지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말하면 할 말은 없지만 말이다.
웃을 때 잔뜩 올라가는 입 꼬리가 인상적인 깨끗한 이미지의 고원원, 조금은 터프하게 보이는 정우성을 만나 시너지효과를 일으키는 듯 로망스영화의 포인트를 더 강하게 찍었다. 그녀의 데뷔작이기도 한 <북경자전거>에서 스마트한 여고생의 이미지가 인상적이었는데 역시 ...
“봄이 오니 꽃이 피는 걸까 꽃이 펴서 봄이 오는 걸까?”라는 메이의 말에
“무슨 뜻이야?”라고 되묻는 동하... 이내 눈시울을 적시며 급히 집에 가겠다던
그녀의 맘을 당신이 읽을 수만 있다면...
이 영화에 빠질 충분한 이유가 되지 않을까. 가을이기에 더욱. ^^
첫댓글 언제 단체로 카페 문화교실 한번 가야겠네요~~좋은 영화 소개 감사해요^^
다음에 만나면 영화 이야기 해줘요~~ㅎㅎㅎ
밤 세울걸요..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