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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일본,중국 역사왜곡대응 건국과 멸망년도가 다른 임나는 가야가 될 수 없다
수구리 추천 0 조회 46 25.01.03 20:05 댓글 8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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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25.01.18 12:38

    첫댓글 "임나는 BC 33년 이전에 건국되었고(일본서기 기준)," => 일본서기 숭신 65년은 서기 115년입니다. 숭신-수인조의 권력교체에 발생한 사건은 그 배경이 삼국사기 신라본기에 자세히 나오므로 연대 비교가 가능합니다. 설마 한일고대사 연구의 가장 기초인 일본서기 연도를 못 읽는 것은 아니겠지요? 모르면 다시 배워야 합니다.
    "(금관)가야는 AD 532년에 멸망했다(삼국사기, 삼국유사 기준)" => 삼국유사 어디에 금관가야가 532년에 멸망했다고 나옵니까?
    그런데 저 지도의 대마도가 광개토왕의 5만 대군이 간 임나인 것은 맞습니까? 고대건 지금이건 섬은 島라고 하지 어디가 막혀있네 같은 표현은 안 씁니다. 대신 당시에는 반도라는 단어가 아직 없어서 그때 썼습니다.
    일본서기가 일본 내에 국가를 인정합니까? 전혀 않지요. 마치 처음부터 모두 천황가의 영토인 것처럼 놓았습니다. 일본서기에 나오는 백제, 고구려, 임나, 신라는 모두 한반도의 국가입니다.

  • 작성자 25.01.18 14:28

    ■ 년도가 틀리고, 백제왕 명도 틀려서,
    많은 오류와 윤색, 과장이 있는 일본서기는 위서(엉터리 역사서) 로 봐야 합니다.

    1) 년도를 맞추기 위해 일본서기는 어거지 이주갑인상설을 주장해야 하고,
    2) 일본서기 초고왕을 삼국사기 근초고왕,,
    일본서기 귀수왕을 삼국사기 근구수왕으로 주장해야 합니다(틀린지도 모르고)

    따라서
    1) 일본서기 이주갑(120년) 인상설은 일제 식민사학자들이 만든 식민사학이고
    2) 일본서기는 엉터리 역사서인 위서(엉터리 역사서)가 됩니다

  • 작성자 25.01.18 14:31

    ■ 일본서기 "이주갑인상설(120년 인상설)"은 백제왕의 년도만을 오로지 고려한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가 있는 주장이기에 궤변으로 사이비 역사다

    1) 논리적인 비약과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는 논리적인 오류로
    논리학이 없었던 조선시대에나 가능한 주장으로 논리학을 공부하면 궤변임을 알 수 있다
    2) 논리적인 사고방법은
    논술고사를 준비하는 고3 수험생에게 물으면 쉬운 설명을 들을 수 있을 것이다
    3) 궤변을 쉽게 설명하면
    사기꾼들이 사기치는 방법으로 이해하면 될 것 같다

    ■ "이주갑인상설(120년 인상설)"이란? (두산백과를 참고해서 작성함)

    일본서기 백제왕의 연대(年代)가 삼국사기 백제왕의 기년(紀年)보다 약 120년 빠르기에(이주갑인상이기에)

    한국 학자 중에는 일본서기를
    사서(史書, 역사서)가 아니라 사서(詐書,거짓말 역사서)라고 평하는 이도 있다

  • 작성자 25.01.18 14:32

    ■ "이주갑인상설(120년 인상설)"이란? (두산백과를 참고해서 작성함)

    일본서기 백제왕의 연대(年代)가 삼국사기 백제왕의 기년(紀年)보다 약 120년 빠르기에(이주갑인상이기에) 한국 학자 중에는 사서(史書, 역사서)가 아니라 사서(詐書,거짓말 역사서)라고 평하는 이도 있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1) 일본서기 AD 200년 신공황후 부터 AD 310년 응신까지 년대를 일괄적으로 120년 내려서
    AD 320년 신공황후 부터 AD 430년 응신시대라는 주장이 이주갑인상설이다

    2) 이주갑인상설에 따라

    신공황후 즉위전인 AD 200년 이키섬의 신라(분국) 정벌이 AD 320년으로 둔갑하고

    신공 49년(AD249)년의 관서 중부 오카야마 지역의 7국 평정이
    근초고왕 시기 AD 369년으로 둔갑했다

  • 작성자 25.01.18 14:33

    3) 백제왕의 기년이 120년 차이가 난다고
    3~4세기 일본서기 기년을 일괄적으로 120년 내려서 4~5세기로 주장하는 것은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로 논리적인 오류이니 궤변으로 학문적 주장이 될 수 없다

    ※주) AD 700년에 일본서기를 편찬할때
    기년이 정확하지 않은 백제기, 백제신찬, 백제본기 내용을 일본서기에 추가하면서
    오류가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이때에는기년이 정확한 삼국사기가 없었다)

    따라서 백제왕의 일본서기 기년에 오류가 발생한 것으로 보는 것이 합리적인 주장이다

    ■ 삼국사기, 중국 고대사사와 교차검증하면
    신공황후는 2세기 후반(AD150년 이후) 부터 3세기 중반 (AD 250경)까지의 인물이다

    1) 삼국사기 신라본기 " 아달라 이사금"에
    AD 173년(아달라 이사금 20년)에 왜 여왕 비미호(신공황후)가
    사신을 보내왔다는 내용이 있다(二十年 倭女王卑彌乎遣使來聘)

  • 작성자 25.01.18 14:34

    2) 후한서 "왜"열전에
    환제(AD146~167년)와 영제(AD 167~189년)의 치세에 왜에 대란이 발생하여 왕이 없었는데
    신녀 비미호(신공황후)가 왜의 여왕이 되었다는 내용이 있다

    3) 삼국지 "왜"열전에
    정시(正始) 8년(AD 247년)에 왜의 여왕 비미호(신공황후)는
    구노국의 비미궁호(궁월군)의 불화로 왜의 여왕 비미호(신공황후)가 사망했다는 내용이 있다

    4) 동국여지승람 "초선대" 내용으로
    김수로왕의 딸인 신녀(묘견공주)가 일본열도가 건너가 신공황후가 되었다는 주장도 있다

    ☞ 동국여지승람 초선대 내용

    王子諱仙[見], 興神女乘雲離去, 王欲登江石島岩, 招仙銘影, 故王招仙臺.

    왕자 휘는 선[견]인데,신녀와 더불어 구름을 타고 떠나갔다
    [거등]왕이 강의 석도암에 올라 [왕자]선을 부르면서 [왕자 선의] 모습을 돌에 세겼다

  • 작성자 25.01.18 14:38

    ■ 삼국지와 진서의 "왜'열전 사신파견 기록을 교차검증하면
    "이주갑인상(120년 인상)"하지 않은 일본서기 본래의 기년(년도)는 거의 정확하다

    ※주) 대방고지의 부여[비류백제] 내용을
    고대 중국인들이 후한後漢, 위魏 또는 진晉나라로 역사왜곡시킨 것으로 보인다

    1) 신공39년(AD239) "위(魏)에 사신을 보냈다"는 내용은 삼국지의 경초(景初) 3년(AD239)이다

    2) 신공40년(AD240) "위(魏)가 사신을 보내옴" 내용은 삼국지의 정시(正始) 원년(AD240)이다

    3) 신공43년(AD243) "위(魏)에 8명의 사신을 보냄" 내용은 삼국지의 정시(正始) 4년(AD243)이다

  • 작성자 25.01.18 14:38

    4) 신공46년(AD246) "갑자년에 백제인 구저등 3인이 탁순국에 옴" 내용은
    삼국지의 정시(正始) 6년(AD245)으로 보인다(대방고지의 백제를 삼국지에서 위 魏로 바꾸었다)

    5) 신공47년(AD247) "백제의 구저(久氐) 등과 신라가 공물을 바침" 내용은
    삼국지의 정시(正始) 8년(AD247)으로 보인다(대방고지의 백제를 삼국지에서 위 魏로 바꾸었다)

    6) 신공 52년(AD252) "백제가 구저를 통해 칠지도를 보냄" 내용은
    "칠지도 명문"에 "태O 4년(泰O 4年)" 이니 태시( 泰始) 4년(AD268)으로 보인다

    7) 신공66년(AD266) "왜의 여왕이 진(晉)에 공헌함" 내용은
    진서( 晉書)의 태시년간(泰始年間,AD265 ~274년 ) 초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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