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오나, 눈이오나 오지산행은 계속된다. 2000년대 초반 강원도를 초토화 시킨 태풍 루사가 있다. 그때 나는 지금의 와이프와 분당에서 저녁을 먹고 나오는데 서현동 광장 벽에 걸려 있던, 간판들이 강한 바람에 크게 휘청대는 것을 보고, 무언가 큰 것이 온다는 것을 몸으로 느꼈었다. 당시 루사로 인해 200 여명이 사망하거나 실종되었고, 강원도에 크나큰 상처를 남겼었다. 당시 강원도 계곡 근처에 있던 집들은 다 쓸려갔거나 완파 또는 반파되었다고 보면된다. 지금 강원도의 정비된 계곡과 깨끗한 집들은 태풍 루사로 인해 다시 정비되고 새롭게 지어진 것들이다. 국가에서 큰 지원을 했던 것으로 안다. 그 태풍 루사속에서도 오지팀은 강원도 어딘가에서 등산을 했다고 한다. 하산시 계곡물이 너무 불어 도저희 건널 수 없어, 다시 능선 하나를 올라 내려왔다고 한다. 나는 없었지만, 그 긴박한 상황은 상상만으로도 충분히 그려진다.
오늘은 비가 오는 날이다. 토요일 이른 새벽까지 이어진 술자리로 인해, 머리는 흐릿하고 몸은 무겁다. 비도 내린다. 와이프에게 부탁해 삼성역까지 셔틀서비스를 받고, 강변역으로 향한다. 생각해 보니 비에 대한 대비는 전혀하지 않고 왔다. 산행에 참여하든, 혼자 오대산 인근을 거닐든, 무조건 오지버스에 오른다. 오랜만에 수미님, 산정무한님 보니 반갑다. 조용히 뒷자리에 찌그러져 눕는다.
계속 내리는 빗속을 달린 오지버스는 진부역에서 상고대님을 태우고, 오늘의 들머리로 향한다. 얼핏 지도를 보니, 진부면 서쪽 끝에서 용평면 동쪽 끝으로 동에서 서로 가로지르는 12km 정도 나름 부드러운 코스이다. 어느 정도 정신이 돌아오고 해서, 빗속에 팀원들 따라 같이 나선다.
흠뻑 젖을 비는 아니지만, 엄청난 습기로 인해, 온 몸이 이내 땀으로 젖는다. 편안한 들머리구간 얼마 지나지 않아, 본격적인 오지코스에 이른다. 각오하고 오른다. 땀에서 알코올 냄새가 나는 듯하다. 흐르는 땀을 몇번 훔쳤더니, 눈 주변이 벌써 따끔하다. 잠깐 힘든 구간을 지나니, 경사가 조금 완만해 지며, 호흡도 편해진다. 이제 몸이 완전이 오지모드로 전환되었나보다. 쭈~~욱 오른다.
무불은 오랜만에 라면을 끓인다. 아직 이른감은 있지만, 그래도 비내리는 산에서 먹는 라면은 언제나 맛있다. 영희언니가 여분으로 싸온 밥을 라면에 말아 호로록 먹는다. 당분간 자연님이 오지에 못 올 것 같으니, 영희언니가 여분 도시락 준비해 오시겠다고 하신다. 안그래도 영희언니에게 빌 붙을 생각이었는데. 헤~~~ 감사합니다.
올 해는 유독 산에 파리들이 많다. 지난주 봉화 산행시 엄청난 양의 파리들과 함께 산행을 했는데, 오늘도 꽤 많은 파리들이 달라 붙는다. 기후 변화인지, 아니면 일정 해에 많이 생겨서, 생존율을 높이는 생존전략 때문인지는 모르나, 8월 온 산에 파리때가 몰려다닌다. 연신 벌레 기피재 뿌려댄다. 오늘은 특히 사계님이 파리때를 몰고 다닌다.
1100 미터 기준으로 부드러운 오르막 내리막을 반복한다. 오전 부터 내리는 비는 부르럽게 내리다 그치다를 반복한다. 등산화에 아직 물이 안 찬것을 보면, 분명히 산행에 도움이 되는 비다. 물기나 비에 과하게 민감하던 나는, 우중산행을 심하게 싫어했었다. 상상만으로도 불편하고, 신경이쓰였다. 지금도 신경이 쓰인다. 하지만 막상 빗속에 들어가면, 오묘한 안정감과 행복감을 느끼곤 한다. 오늘도 전혀 불편함 없이, 평온히 산행한다.
비오는 날이라, 조망 없어 아쉽지만, 습기로 가득한 다소 무거운 공기를 가르며, 연신 땀흘리며 나아간다. 부드러운 능선을 쭈~~ 욱 내지른다. 거친숨 몰아쉬다, 가끔 소리도 질러보고, 앞사람 찾다 뒷 사람 찾다, 하늘보고, 나무보고, 숲도 보고, 가끔 멍 때리기도 하며 산길을 간다. 비오는 산행에 대한 걱정은 사라지고, 온전히 산속에서 충만한 행복을 느낀다. 오늘따라 팀원들이 더욱 사랑스럽게 보인다. 술이 덜깼나보다.
비맞은 나뭇잎들은 더욱 진한 녹색으로 보인다. 오늘 따라 더덕 줄기와 잎들이 유독 도드라진다. 후덥한 숲속의 향기가 더욱 진하게 다가오고, 눈에 보이는 녹색들은 더욱 더 강렬히 느껴진다.
이제 하산을 시작한다. 줄그은대로 가려나 보다. 하산종료 예상시간을 4시 30분에 맞추어 서둘러 내린다. 산정무한님이 선두에서 독도하고 나머지는 따라 내린다. 완만한 경사로 500미터 내리면 된다. 하산 선두와 후미 사이에 공간이 꽤 생겨서 슬 걱정이 된다. 대부분 이 공간에서 길을 잃기가 쉽다. 내 뒤에 수미님이 잘 따라오는지 염려되었으나, 상고대님이 함께 있어, 내 걱정만 하며 그냥 쭈욱 내달린다. 한참을 내려 날머리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 산정무한님과 일보님을 만난다. 얼마지나지 않아, 영희언니, 수미, 상고대님이, 우리 보다 더 편한길로 내려온다. 설봉님께 하산위치 보내고, 하이파이브하고 배낭털고, 등산화 닦는다.
항상 그렇지만, 힘들어도 강변역에서 오지버스를 타면, 그때 부터는 저절로 흘러간다. 오늘도 그렇게 흐르고 있다.
진항 숲향기와 무거운 공기속에서 즐거운 하루를 보내고, 진부로 씻고 먹으러 간다. 비 맞은 산행 후에 목욕은 그야말로 천상의 호사이다. 뭉친 근육이완하고, 촉촉한 피부로 맛있는 저녁을 더덕주와 함께한다. 다른 술은 못 마시겠지만, 더덕주는 또 들어간다.
첫댓글 와 후기 짱이다...잘봤습니다...^^
잘 보셨다니 다행입니다. 가을산행 같이 하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