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 덕분에 며칠간 너무나 잘 쉬었습니다. 잘 쉰 것이 아니라, 장마를 즐긴거죠. 북동분교 뒷산 지킴이 발림산을 오르내리는 수증기 머금은 구름을 바라보면서, 또는 학교 마당에 쏟아지는 소나기를 내려다 보면서, 풀어놓은 닭들은 비가 오면 막걸리 마시는 화무십일홍 주막으로 비를 피해서 내 발치에서 웅크리고 있답니다.
병아리를 내가 북평장에서 사와서 그런지, 저를 전혀 피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발림산이라는 이름이 수상하죠?
맞습니다. 이름처럼 음탕한 전설이 숨어 있습니다. 발림산의 원래 이름은 벌림산이랍니다.
음탕한 전설은 이렇습니다.
“북동리 사기막 마을 앞산이자 북동분교 영화마을 뒷산을 마을 사람들은 발림산이라고 부르고 있다.
그 유래를 살펴보면, 북동리 사기막 마을에 부자가 살았는데, 그 딸이 대단히 미인이었고 과년하여 시집 갈 때가 되었다.
마을 청년 두 명이 부자의 딸을 흠모하여 부자에게 딸을 달라고 애원하였는데, 부자는 두 청년 모두가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고심 끝에 산 정상에 딸을 세워두고, 한 청년은 남쪽에서 한 청년은 북쪽에서 출발하여 먼저 도착하는 사람이 딸과 결혼하기로 하였다.
그러나, 결과는 두 청년이 같이 도착하였다. 처녀는 난처했다.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처녀는 두 남자가 모두 마음에 들었고 게다가 같이 도착을 했으니, 어쩌지도 못하게 생겼다.
그런데, 마을 사람들이 처녀에 대해 모르는 사실이 있었다. 처녀는, 몹시도 음기가 강하여 남자를 무척이나 좋아했다.
그래서, 처녀는 고심 끝에 두 남자와 번갈아 가며 몸을 섞기로 했다.
두 남자는 혈기왕성했고, 처녀 또한 남자들 보다 더하면 더했지 뒤지지 않았다. 처녀의 고운 마음씨와는 별개로 처녀는 음탕한 여자였던 것이다.
처녀와 두 남자의 그런 소문이 마을에 떠돌기 시작했고, 급기야는 아버지 귀에 까지 들어갔고, 부자는 어쩔 수 없이 자신의 딸을 죽여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두 남자 역시 마을에서 영영 떠나야 했다.
마을 사람들은 처녀의 원혼을 달래기 위해 산 위에 돌무덤을 쌓아 주었고, 그 산 이름을 벌림산이라고 지었다가
상스럽다고 여겨 지금에 이르러 발림산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발림산 밑에는 지금도 처녀의 음수에 해당하는 샘물이 흐르고 있고, 그 물을 남자가 먹으면 정력이 강해진다는 믿음이 마을에는 전해지고 있다.”
감자를 아직 캐지 않았는데, 주문이 자꾸 들어오는군요. 비가 와서 아직 감자가 없다고 해도 기다린다는 소비자의 말이 고맙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하고.
씨감자 세 박스를 심었더니 감자가 제법 잘 되었습니다. 혼자서 며칠을 두고 슬금슬금 캐려고 했더니, 비가 무서워서 동네 아줌마들 두 명 고용해서 하루만에 훌떡 해치워야겠습니다.
감자가 끼여들었으니, 감자 이야기를 안할 수가 없네요. 감자는, 강원도의 대표적인 구황작물이지요. 쌀이 모자라는 겨울 봄까지 굶지 않고 버틸 수 있는 저장 식물이었습니다. 덕분에 다른 지방의 농민들은 굶는 사람들이 많았다는데, 강원도는 감자 덕분에 굶는 사람이 없었답니다.
그런, 저장 식물의 대표적인 감자가 이제는, 저장도 못하고 순식간에 팔려나갑니다. 감자가 나오기도 전에 대형마트에서는 감자 코너를 마련해놓고, 햇감자가 나오면 키로그램당 가격표를 붙혀놓고 소비자들을 유혹합니다.
감자는 이제 구황식물이 아니라, 기호식품이 된 겁니다.
그래서, 농산물유통공사에서는 감자 가격이 수시로 오르락 거립니다. 감자는 강원도 농민들에게는 팔 수 있는 식물이 아니었는데, 이제 강원도 농산물의 대표적인 상품이 되어버렸습니다.
물론, 우리 북동생태농장에서도 대표 선수가 되었구요.
그런면에서는 절임배추도 마찬가지입니다. 김치는 겨울내내 서민들에게 비타민을 공급해주는 역할을 했는데, 이제는 김장을 하기 싫어하는 도시민들에게 팔 수 있는 상품이 되어 버렸습니다.
탄수화물을 공급하던 감자와 비타민을 공급하던 김치라는 저장식품이, 상품으로 변해가는 과정이 우리 농업이 제조업이 되는 과정과 같은 길인거죠.
나는 농삿꾼이 아니라 제조업자를 빙자한 장삿꾼이 된 거죠.
발림산 사진을 자세히 보면, 느끼는 것이 있을 겁니다.
양쪽 산 사이에 불쑥 튀어나와 있는 봉우리가 뭐 같이 보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