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너희는 믿음 안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는 버림 받은 자니라 6. 우리가 버림 받은 자 되지 아니한 것을 너희가 알기를 내가 바라고 7. 우리가 하나님께서 너희로 악을 조금도 행하지 않게 하시기를 구하노니 이는 우리가 옳은 자임을 나타내고자 함이 아니라 오직 우리는 버림 받은 자 같을지라도 너희는 선을 행하게 하고자 함이라 8. 우리는 진리를 거슬러 아무 것도 할 수 없고 오직 진리를 위할 뿐이니 9. 우리가 약할 때에 너희가 강한 것을 기뻐하고 또 이것을 위하여 구하니 곧 너희가 온전하게 되는 것이라 10. 그러므로 내가 떠나 있을 때에 이렇게 쓰는 것은 대면할 때에 주께서 너희를 넘어뜨리려 하지 않고 세우려 하여 내게 주신 그 권한을 따라 엄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고후 13: 5-10)
♥† 또 다시 가장 중요한 질문으로 †♥
저는 어디 가서, 다시 만나지 못할 것 같으면, 꼭 설교하는 부분이 있어요. 그것은 믿음의 확신이고요. 구원의 확신이에요. 재작년인가요? 제가 라오스에 있는 현지 신학대학에 가서 강의를 하면서, 기도 가운데 제가 이들을 다시 만나지 못할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마지막 강의 시간에 작정하고 전하기 시작했지요.
정말 진지하게 물어 보았어요. Are you really Christian? (너 정말 예수 믿니?) Do you really believe in Jesus? (너 정말 네 안에 예수가 있니?) Not your learning, studying, (너의 배움, 너의 공부가 아니라) but your heart (정말 네 가슴에 예수가 있니?) 라고 진지하게 물어 보았어요.
네 안에 정말 예수가 있다면, 네가 교회에서 목회할 때, 네 가슴(your heart)에 있는 그 예수만 전하면 된다. 머리로 배운 예수가 아니라, 네 가슴에 있는 예수를 전하면 돼. 어떻게 하면 네 안에 있는 예수를 전할까를 고민하고 기도하면, 교회를 세울 수 있고, 정말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목회를 할 수 있다! 그렇게 강의를 했지요. (저도 그 과정 가운데 있구요)
여러분, 우리가 교회 다니는 문명한 목적은요. ‘구원’받기 위해 다니는 것인줄 믿습니다. 여러분 이것은 사실이에요. 인정하셔야 돼요. 분명 교회 안에도 구원받은 성도가 있고, 구원받지 못한 성도가 있어요. 그래서 교회는 구원을 선포해야 하고, 구원받은 성도들을 끝까지 찾아, 주의 자녀로 만드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 됩니다.
여러분, 급한 일이 있고, 중요한 일이 있어요. 여러분에게 중요한 일일 있고, 급한 일이 있다면, 여러분은 무엇을 먼저 하겠습니까?. 중요한 일을 먼저 합니까? 아니면 급한 일을 먼저 합니까? 구원의 문제는 중요하고도, 급한 일이예요. 교회는 둘 다 해야 해요. 중요하고도 급한 일을 해야 합니다. 우리에게 정말 중요한 일은, 우리의 영혼이 구원받는 거예요.
신학교에서 공부할 때, 교수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목회할 때 분기에 한 번씩은, 네가 목회하는 교회의 성도들이, 한명도 구원받지 못한 자들이 앉아 있는 것처럼, 그들 앞에서 구원에 대해서 점검하는 설교를 해야 한다고 하셨어요. 가장 미련한 설교는 이곳에 앉아 있는 사람 모두가, 구원받았다는 생각으로 설교하는 목사가 가장 미련한 목사라고 말씀해요.
저희들이 개척한지 3년6개월이 지났어요? 3년 정도 지났으면, 그래도 교회를 다니는 이유와 분명한 목적은 알고 있어야지요. 여러분 예수 믿는다고 하면서, 가장 불행하고 비참한 일은 무엇일까요? 좀 리얼하게 말씀드려 볼게요. (이해하시고 들어 주세요)
지옥에 간 부인이 지옥에서 남편을 만나는 일이구요. 지옥에 간 남편이 지옥에서 아내를 만나는 일이구요. 지옥에게 간 부모가 지옥에서 자기 자녀를 만나는 일이구요. 지옥에 간 목사가 지옥에서 자기 성도를 만나는 일이, 가장 불행하지 않을까요? 이것처럼 불행하고, 비참한 일이 어디 있을까요?
여러분, 가장 큰 축복은 천국에서 이런 만남이 있기를 축원합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저에게 맡겨 주신 성도가 10명밖에 안되었는데, 10명 모두 천국에서 만난다면 저는 목회를 성공한 사람일까요? 성공한 사람이지요.
그런데 저에게 맡겨주신 성도가 백 명이었는데, 천국에서 만나는 성도가 10명이었다면요? 저는 실패한 목사이지요. 여러분, 교회가 영이 살아나지 않는 일을 하고 있다면, 우리는 지금 헛된 일을 하고 있는 거예요.
여러분, 성경은 천국에 가는 길은 좁은 문이라고 말할까요? 넓은 길이라고 말할까요? 만약에 구원받는 절대조건이, 교회 와서 세례 받는 것이라 한다면, 천국에 가는 길을 좁은 문이 아니고, 넓은 문일 거예요.
그런데 성경은 좁은 문이라고 말하고 있다는 거지요. 좁은 문이라는 것은, 들어가기 힘들다는 것을 의미하는 거예요. 구원받는 사람보다, 구원받지 못한 사람이 더 많다는 거예요. 낙타가 바늘구멍으로 들어가는 것처럼, 정말 어려울 수 있어요.
jtbc 8시 뉴스를 보면, 여자 아나운서 중에 ‘안나경’ 이라는 아나운서가 있어요. 아나운서 시험을 보는데, 경쟁률이 2,000대 1이래요. 2천 명 중에 한사람이 되는 것이지요. 다 떨어지고 11명만 남았어요. 아나운서 최종 면접 때, jtbc사장 손석희씨가 11명에게 물어 보았다지요.
‘어려운 경쟁을 뚫고 이제 11명까지 왔는데, 이번 jtbc 아나운서 시험에 떨어지면 무엇을 할꺼냐?’ 그때 안나경 아나운서가 이런 말을 했다는 거죠. ‘존경하는 jtbc 선배님들과 일을 함께 할 수 있는 또 다른 방법을 강구해 보겠습니다. jtbc에서 청소라도 하겠습니다’
그리고 떨어졌구나 했대요. 당시 약국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는데, 아르바이트를 하는 중에 최종 합격했다는 소식을 듣게 되고, 집에서 너무 기뻐서 가족하고,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고 합니다. 이천대 1일 뚫고 합격을 한 거예요.
여러분, 예수님은 좁은 문으로 들어가는 사람은 적다고 분명히 말씀하세요. 그런데 오늘날 교회 안에 마치 구원받은 사람들이 많은 것처럼 말하고, 많은 것처럼 설교하고, 많은 것처럼 위로 받아요.
그런데 성경은 좁은 문이래요. 하나님이 그 숫자를 정해 놓은 것은 아니지만, 몇 명을 뽑겠다고 말씀 하신 것은 아니지만, 구원 얻고, 그 길을 가는 것은, 만만치 않다는 것을 우리는 기억하셔야 합니다.
우리는 어쩌면 너무 쉽게 이야기해요. 마치 교회만 다니면 구원 얻는 것처럼, 세례만 받으면 구원 받은 것처럼, 오늘날 교회는 넓은 문처럼 이야기하고, 구원을 남발하고 있다는 것이지요.
왜냐하면, 그래야 사람들이 모이고, 사람들이 좋아하고, 위로 받으니까! 그러니까 어떻게 보면, 우리는 성경대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말하고 있다는 것이지요.
여러분, 구원 얻는 길은 좁은 문이래요. 들어가기 정말 힘들대요. ‘아무리 열심히 해도, 못 들어갈 수 있어요’ 라고 말해야 하는데, 못하는 거죠. 그런데 속고 있는 거예요.
우리는 성경으로 돌아가야 해요. 성경은 구원 받는 사람보다, 구원 받지 못하는 사람이 더 많다는 의미를 이야기하고 있어요. 우리는 명심해야 합니다.
여러분, 휴거 있잖아요. 그냥 일상 생활하다가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 들림 받는 것을 말하죠. 이런 것 생각해 보셨어요? 예수님이 재림하셨어요. 휴거가 일어나요. 정말 영화에서 보는 것처럼 옆에 사람들이 일하다가 뿅뿅하고 사라져요.
그런데 우리 주변에는 아무 현상도 일어나지 않아요. 똑같이 일어나 밥 먹고, 일상생활하고, 교회가고, 아무도 휴거가 일어나지 않아요. 여러분, 이것처럼 불행일은 없어야지요. 어쩌면 구원은 좁은 문인데, 우리는 착각하고 있을 수 있다는 거예요.
우리 오늘 말씀 중에, 5절 말씀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시작) 사도바울은 교회들을 방문하고, 초대교회를 세워나가면서 모든 교회가 하나님 안에서 온전하기를 원했어요. 사도바울이 원했던 그 온전함,
그리고 온전한 교회는 어떤 교회인지, 그리고 또 우리가 온전한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해서 어떠한 삶을 살아야 되는지, 사도바울은 오늘 고린도후서 마지막에서 우리에게 말하고 있어요.
그 온전함이 너는 과연 오늘도 네가 믿음 안에 있는지를 살펴보라는 거예요. 그것이 5절 말씀이지요. 너 자신을 시험해 보라는 거예요. 점검해 보라는 거예요. 정말 내가 믿음 안에 있는 지를요.
진짜 믿는지, 네가 정말 예수 안에 있는지를, 네 자신을 시험하라는 거예요. 그리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무슨 말일까요? 정말 믿음 안에 있다면, 너 스스로 그것을 증명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이죠.
여러분, 여러분을 누가 가장 잘 알까요? 하나님이 가장 잘 알겠지요. 그리고요. 그 다음은 자기 자신 이예요. 하나님 다음으로 본인이 제일 잘 알아요. 본인은 안다는 거예요.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다른 사람은 몰라도 자신은 안다는 거예요. 내 안에 정말 있는지 없는지. 어쩌면 미안해서 감추고 있는 것이지요. 어쩌면 그동안 교회 다니는, 세월이 너무 길어서 말을 못할 뿐이지, 본인이 제일 잘 알아요.
여러분, 교회 다니는 가장 불행한 사람은 누구일까요? 예수가 없으면서도 있는 것처럼 사는 사람이 가장 불행한 사람이지요.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내가 구원받았는지, 안 받았는지 증명해 낼 수 있는 길은, 여러분 자신 밖에 없어요. 그것을 교회 안에서든, 교회 밖에서든, 스스로 증명해 낼 수 있느냐?
그리고 증명해 내야 한다는 거예요. 누가? 너 스스로가! 예수가 내 안에 있다는 것을, 전해들은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공부하고, 전해 들어서 알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계속 듣고 쇠내 된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진짜 믿느냐라는 거십니다.
어떤 분이 목사님을 찾아왔어요? ‘목사님 정말 제가 구원받았는지 안 받았는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라고 목사님에게 질문 했다는 것이죠? 목사님이 뭐라도 답변했을까요? 그 목사님 왈, ‘오늘까지 구원받지 못했습니다’ 라고 말씀하시는 거예요. 왜냐하면 본인이 정말 예수 믿고 구원받았다면, 이런 질문하지 않았을 것이 라는 거죠. 내 안에 확신이 있어야 하고, 내가 정말 내 놓을 수 있는 믿음의 증거가 있다는 거예요.
여러분은, 무엇으로 예수 믿는 것을 증명할 수 있을까요? 여러분, 우리가 예수를 정말 믿어도, 우리는 얼마나 약해요? 쉽게 유혹받고요. 쉽게 넘어지고요. 우리도 화나면 화내요. 우리가 혼자 차안에 있으면 분노하고요. 우리도 사람 안 보는데서 휴지도 버리고, 자동차 교통위반도 쉽게 해요. 정말 어떨 때는 내가 믿는 사람 맞는가? 정말 나 같은 사람도 예수 믿는 사람 맞는가? 우리는 다 약한 부분이 있어요. 실수투성이예요.
그러나 여러분, 중요할 때는 예수잖아요. 결정적일 때는 예수잖아요. 여러분, 예수 믿고 성화되는 것은 사람마다 달라요. 그 방법도 하나님은 사람마다 다 다르게 하세요. 과정도 달라요. 성화되는 시간도 달라요. 그런데 그 안엔 예수예요. 그 안에 예수가 있으면, 어떤 일이 있어도 예수가 나와요. 여러분, 중요할 때, 예수가 나오고요. 급할 때 예수가 나오고, 마지막 때 예수가 나오는 줄 믿습니다. 아무리 약해도, 예수 믿는 냄새가 난다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가 읽지는 않았지만 4절 말씀에 보시면, ‘그리스도께서 약하심으로 십자가에 못 박히셨으나, 하나님의 능력으로 살아계시니, 그 다음이 중요해요. 우리도 그 안에서 약하나, 너희에 대해서 하나님의 뭐요? 능력으로, 그와 함께 살리라(아멘) 약하나 예수예요. 약하나 정말 믿는 자는 예수로 결론을 내요. 여러분, 약하나 예수의 능력으로 사는 줄 믿습니다. 우리가 약하나 하나님의 능력으로 살아갈 때, 내 믿음을 확증해 나가는 거예요.
그래서 저와 여러분은 날마다 내가 믿음 안에 있는지를 살펴보고, 그리고 스스로 그것을 증명할 수 있어야 구원받은 사람이라는 거십니다.
또 여러분은, 무엇으로 예수 믿는 것을 증명할 수 있을까요? 사도바울은 자신의 온전함을 위해 끝까지 자신을 점검하고, 확증하는 작업을 하고 있었어요. 그것은 8절 말씀에 있어요. 자신의 온전함을 위해서, ’오직 진리를 위해서‘ 사도바울은 지금껏 달려 왔다고 말하는 거예요.
당시 고린도교회는 사도바울의 사도권에 대해서 부인하고, 사도바울에 대해서 공격하고 있었지요. 그게 뭐예요? ’네가 정말 예수 믿는 사람이냐?‘ 라는 거예요. 예수 믿는 사람을 잡아 때리고, 가두었던 너 사도바울!, 정말 예수를 믿는 사람이냐? 라는 거예요.
거기에 대해서, 사도바울은 고린도 교회에 마지막으로 편지를 쓰면서 고백하는 것이, 나는 진리를 위해서 살아왔고, 그 진리의 말씀을 드러내려고 노력했고, 진리 가운데 지금껏 사역을 해 오고 있다! 여러분, 뭐예요? 말씀이 나를 증명하고 있다는 거예요. 내가 알고, 내가 배우고, 깨달았던, 그 진리가 내 안에 들어오고, 그 진리가 내 안에서 다시 나 올 때, 내가 확증하고 있다고, 고백하는 것이죠.
내 안에 그 진리를 위해 싸우며 살아가는 사람은요, 비록 그것이 연약해 보일지라도, 세상이 보기에는 그것이 연약하고 부족해 보일지라도, 진리를 붙들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하나님 안에서 참된 자유가 있습니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요 8:32)
사도바울은 그렇기 때문에 수많은 핍박과 어려움 속에서도 자유롭게 삶을 살았고, 자유롭게 복음을 전했고, 어디에도 억매이지 않고 진리만을 위해서, 푯대를 향하여 달려갈 수 있었던 것이죠. 이것이 구원받은 사람의 특징이라는 거예요.
그래서 교회는, 그래서 목회자는 계속해서 그 진리를 넣어 주는 거예요. 그 진리가 그 안에서 소화되어 다시 나오게 그 진리를 계속 집어 넣어주는 거예요. (우리는 말씀 안에 있는 것입니다. 매일 말씀을 내 안에 집어넣고...., 그리고 요즘 시편강독 – 나는 약해도 내 안에 예수로 인하여 삽니다!) 말씀이 나를 증명하는 것이다.
여러분, 나는 못해도 말씀이 그렇게 하라면, 그냥 순종하는 것이 우리이지요. 나의 생각과 이해로 그것이 힘들어도, 하나님의 말씀이 그렇게 하라면, 우리는 순종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것이 바로 내 안에 있는 진리가 나를 증명해 주는 것인 줄 믿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진리를 위해서 살아가고, 약하고 힘들고 어려워도, 진리 되신 예수님을 쫓아서 살아간다면, 우리는 자유롭게 이 땅 가운데서 온전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갈 수 있는 줄 믿습니다.
구원받는 자는 진리 안에 사는 사람입니다. 저와 여러분 안에 있는 그 진리가 나를 통해서 확증되어 갈 때, 우리는 오늘도 구원받은 자로 살아가게 되는 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코로나로 인하여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 땅에 다시 한 번 중요한 질문을 내 자신에게 던져 보아야 합니다. ‘너 자신을 시험하고, 너 자신을 스스로 확증할 수 있는가?’ 정말 구원 받은 자녀로 확신으로 사는가? 여러분, 나 스스로를 질문하고, 그 확증가운데 서 있어야 될 줄 믿습니다.
우리는 예수를 만나야 합니다. 정말 예수를 만나야 합니다. 예수는 우리가 배워서 아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정말 만나야 합니다. 우리가 주님 앞에 섰을 때, 우리의 믿음을 반드시 증명할 날이 올 것입니다. 그 믿음으로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김기성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