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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이병천카페 [성령전인치유목회] 원문보기 글쓴이: 이병천목사
새로운 가족공동체, 차별 없는 사랑으로 하나 되라.
221023(주일오전)
갈 3:26-29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는 속담을 아십니까?
어떤 어렵고 힘든 상황이 주어져도 정신을 차리고 적극적으로 대처하면 잘 이겨나갈 수 있다는 말입니다.
지나간 2~3년 어간의 코로나 펜데믹 상황에서 없어지거나 힘들어진 교회들이 많다고 들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기억해야 할 분명한 진리는,
교회의 주인이신 하나님은 여전히 살아계시고,
성경에 기록된 언약의 말씀대로 행하시는 능력의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의 압제로부터 벗어나는 구원의 은혜를 입고,
젖과 꿀이 흐르는 풍성한 삶의 현장인 가나안 땅을 향한 힘찬 출발을 하였습니다.
구원받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이르기까지 걸어갔던 일련의 모든 과정을 가리켜 성경은 “광야교회”라고 합니다.
(행 7:36-40) 『[36] (하나님께서 보내신 모세) 이 사람이 백성을 인도하여 나오게 하고 애굽과 홍해와 광야에서 사십 년간 기사와 표적을 행하였느니라 [37] 이스라엘 자손에 대하여 하나님이 너희 형제 가운데서 나와 같은 선지자를 세우리라 하던 자가 곧 이 모세라 [38] 시내 산에서 말하던 그 천사와 우리 조상들과 함께 광야 교회에 있었고 또 살아 있는 말씀을 받아 우리에게 주던 자가 이 사람이라』
가나안을 향하여 가는 광야교회의 현장에는 먹을 물도 양식도 그들을 치료할 병원도 그들을 지켜줄 무기도 그들의 필요를 채워줄 공장도 없었지만, 하나님께서 그 모든 것들의 해결자가 되어 주셨습니다. 그 하나님을 믿고 그 언약의 말씀을 따랐던 사람들은 다 살았고 가나안에 들어가는 복을 받았지만, 광야교회의 현장이 좀 불편하다고 그들이 나온 애굽을 동경하며, 불평과 원망을 쏟아내던 사람들은 광야에서 다 죽었습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는 하나님의 자녀들이고 천국시민이며, 주님의 몸된 교회의 지체들이고, 우리들에게는 생명과 풍성한 삶이 약속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요 10:10)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하지만 우리들의 삶의 현장이 광야교회의 현장처럼 그리 녹록치는 않습니다.
하지만 기억해야 할 것은 광야교회와 함께 하신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우리의 신앙은 애굽과 같은 이 세상에 머물러서도 안 되고, 불평과 원망을 쏟아내는 자리에 서도 안 되며,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가나안, 예수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신 풍성한 삶의 현장을 믿고 그곳에 이르기까지 믿음으로 전진해가야 합니다. 모든 위기는 다 지나갈 것입니다. 할렐루야!!!
(고전 10:1-12) 『[1] 형제들아 나는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우리 조상들이 다 구름 아래에 있고 바다 가운데로 지나며 [2] 모세에게 속하여 다 구름과 바다에서 침례를 받고 [3] 다 같은 신령한 음식을 먹으며 [4] 다 같은 신령한 음료를 마셨으니 이는 그들을 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매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 [5] 그러나 그들의 다수를 하나님이 기뻐하지 아니하셨으므로 그들이 광야에서 멸망을 받았느니라 [6] 이러한 일은 우리의 본보기가 되어 우리로 하여금 그들이 악을 즐겨 한 것 같이 즐겨 하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 함이니 [7] 그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과 같이 너희는 우상 숭배하는 자가 되지 말라 기록된 바 백성이 앉아서 먹고 마시며 일어나서 뛰논다 함과 같으니라 [8] 그들 중의 어떤 사람들이 음행하다가 하루에 이만 삼천 명이 죽었나니 우리는 그들과 같이 음행하지 말자 [9] 그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이 주를 시험하다가 뱀에게 멸망하였나니 우리는 그들과 같이 시험하지 말자 [10] 그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이 원망하다가 멸망시키는 자에게 멸망하였나니 너희는 그들과 같이 원망하지 말라 [11] 그들에게 일어난 이런 일은 본보기가 되고 또한 말세를 만난 우리를 깨우치기 위하여 기록되었느니라 [12]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
편견을 넘어 하나로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 위에 세워진 초대 예루살렘교회 공동체는 하나님이 주신 성령의 능력으로 큰 기사와 능력이 나타나고 그 결과 큰 부흥을 경험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넘기 힘들어 보이는 커다란 장벽이 존재했습니다.
바로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의 오랜 역사적 갈등입니다. 이것은 신구 세력 간 화합의 문제로, 예루살렘교회의 DNA는 유대인에게 있었습니다. 예루살렘교회는 본래 유대인들만 모이는 유대인들을 위한 교회였습니다. 유대인이었던 사도 베드로의 한 번의 설교로 3천명이 회개하고 예수님을 영접하는, 엄청난 성령의 역사로 시작했지만, 최초의 예루살렘교회공동체는 동질성으로 뭉쳐져 있기에 깨지기 힘든 유대인들의 공동체였습니다. 그러나 예루살렘교회에 큰 핍박이 일어나자 그들은 곳곳으로 흩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런 상황 가운데 하나님은 다양한 사람들을 불러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고 그곳을 변화시키셨습니다.
이방인들을 위한 전도자, 빌립
흩어진 예루살렘교회 성도들 중에는 사마리아에서 예수님을 증거하는 빌립집사라는 제자가 있었습니다. 사마리아 성은 주전 722년에 앗시리아에 의해 멸망당한 지역입니다. 그 후 이 지역은 앗시리아의 식민지 정책으로 인해 여러 민족과 혼합되어야 했습니다. 유대인들은 사마리아인들이 유대 민족의 순혈이 아닌 혼혈인이라는 이유로 그들을 멸시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편견으로 가득한 사마리아 성으로 빌립집사님을 보내 전도하게 하셨고 놀라운 성령님의 역사로 많은 이들이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행 8:4-13) 『[4] 그 흩어진 사람들이 두루 다니며 복음의 말씀을 전할새 [5] 빌립이 사마리아 성에 내려가 그리스도를 백성에게 전파하니 [6] 무리가 빌립의 말도 듣고 행하는 표적도 보고 한마음으로 그가 하는 말을 따르더라 [7] 많은 사람에게 붙었던 더러운 귀신들이 크게 소리를 지르며 나가고 또 많은 중풍병자와 못 걷는 사람이 나으니 [8] 그 성에 큰 기쁨이 있더라 [9] 그 성에 시몬이라 하는 사람이 전부터 있어 마술을 행하여 사마리아 백성을 놀라게 하며 자칭 큰 자라 하니 [10] 낮은 사람부터 높은 사람까지 다 따르며 이르되 이 사람은 크다 일컫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하더라 [11] 오랫동안 그 마술에 놀랐으므로 그들이 따르더니 [12] 빌립이 하나님 나라와 및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에 관하여 전도함을 그들이 믿고 남녀가 다 침례를 받으니 [13] 시몬도 믿고 침례를 받은 후에 전심으로 빌립을 따라다니며 그 나타나는 표적과 큰 능력을 보고 놀라니라』
예루살렘에 있던 사도들이 이 상황에 대하여 전하여 들었고, 사도들은 이를 “사마리아도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다.”는 것으로 이해하였습니다(행 8:14). “사마리아도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다.”는 이 표현에는 양면성이 존재합니다. 복음이 들어갔다는 긍정의 의미와 어떻게 혼혈족인 사마리아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을 수가 있는가 하는 부정의 의미입니다. 그래서 예루살렘교회는 베드로와 요한을 그 상황에 대한 조사단으로 파송합니다. ‘이방인들과의 혼혈족으로, 실제 이방인들이었던 사마리아 사람들이 어떻게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수 있겠는가?’라는 의심을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베드로와 요한 두 사도가 사마리아에 내려가 그들에게 안수하며 성령받기를 기도하니 그들이 성령을 받게 됩니다. 그들은 그들에게 주님의 말씀을 증언하여 말한 후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면서 사마리아인의 여러 마을에서 복음을 전하게 됩니다. 빌립집사님이 증거한 복음을 다시 확증하여 주었던 것입니다.
그 후 하나님은 빌립을 남쪽으로 내려 보내십니다. 그 여정에서 빌립은 예루살렘에 들렀다가 자신의 고국인 에티오피아로 돌아가는 에티오피아의 국무장관을 만나게 됩니다. 그는 하나님을 믿고 싶었지만 내시였고 이방인이었습니다. 그는 높은 신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방인과 내시는 성전에 들어갈 수 없다는, 유대교의 원칙에 따라 예루살렘 성전에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그런 그에게 하나님은 빌립을 보내어 복음을 증거 하게 하셨고, 그 결과 그가 예수님을 주님으로 믿고 침례를 받았습니다. 이것이 모든 민족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이었습니다.
편견에 사로잡혔던 베드로
그 즈음 사도 베드로는 예루살렘교회의 핍박받음으로 인해 사방으로 흩어진 성도들을 심방하고 있었고, 룻다에서 중풍병으로 침상에 누운 지 8년이 되는 애니아를 행해 “애니아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를 낫게 하시니 일어나 네 자리를 정돈하라.”는 말로 그를 일으켜 세웁니다. 이 모습을 본 룻다와 사론에 사는 사람들이 다 주께로 돌아오는 기쁨이 있었습니다. 그 때 욥바에서 다비다(도르가)라 하는 여제자가 병들어 죽었다는 소식과 함께 베드로에게 심방을 요청합니다. 베드로가 시체가 된 다비다를 놓고 무릎을 꿇고 기도하고 돌이켜 그 시체를 향하여 이르되, “다비다야 일어나라.”하니 그녀가 눈을 떠 베드로를 보고 일어나 앉았고, 욥바 사람들이 그것을 보고 많은 사람이 주님을 믿었습니다(행9:32-43).
그 두 가지 사건에 이어 사도행전 10장에 또 하나의 사건이 등장합니다. 이때만 해도 베드로는 전 민족에게 복음을 전하고자 하는 하나님의 마음을 알지 못했습니다. 여전히 주 여호와 하나님을 유대인들의 하나님으로만 알고 있었습니다. 그것이 잘못된 것임을 깨우치시고자 하나님은 낮 12시 지붕에 올라가 기도하는 베드로에게 “하나님께서 깨끗하게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 하지 말라”(행 10:15)는 음성을 3번씩이나 반복하여 들려주십니다. 그 음성을 들은 후, 베드로는 이방인 로마 백부장 고넬료가 보낸 사람들의 안내를 따라 가이사랴 고넬료의 집을 방문하게 됩니다. 그때 거기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행 10:28-29) 『[28] 이르되 유대인으로서 이방인과 교제하며 가까이 하는 것이 위법인 줄은 너희도 알거니와 하나님께서 내게 지시하사 아무도 속되다 하거나 깨끗하지 않다 하지 말라 하시기로 [29] 부름을 사양하지 아니하고 왔노라 묻노니 무슨 일로 나를 불렀느냐』
베드로는 “무슨 일로 나를 불렀느냐?”고 묻고 있습니다. 만남의 이유를 깨닫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고넬료가 말합니다.
(행 10:30-33) 『[30] 고넬료가 이르되 내가 나흘 전 이맘때까지 내 집에서 제 구 시 기도를 하는데 갑자기 한 사람이 빛난 옷을 입고 내 앞에 서서 [31] 말하되 고넬료야 하나님이 네 기도를 들으시고 네 구제를 기억하셨으니 [32] 사람을 욥바에 보내어 베드로라 하는 시몬을 청하라 그가 바닷가 무두장이 시몬의 집에 유숙하느니라 -그가 너와 네 온 집이 구원 받을 말씀을 네게 이르리라 함을 보았다(행11:4) -하시기로 [33] 내가 곧 당신에게 사람을 보내었는데 오셨으니 잘하였나이다 이제 우리는 주께서 당신에게 명하신 모든 것을 듣고자 하여 다 하나님 앞에 있나이다』
이 말을 들은 베드로가 그들에게 구원의 말씀인 예수 그리스도를 전합니다. 그 때 참으로 놀라운 역사가 일어납니다.
(행 10:44-48) 『[44] 베드로가 이 말을 할 때에 성령이 말씀 듣는 모든 사람에게 내려오시니 [45] 베드로와 함께 온 할례 받은 신자들이 이방인들에게도 성령 부어 주심으로 말미암아 놀라니 [46] 이는 방언을 말하며 하나님 높임을 들음이러라 [47] 이에 베드로가 이르되 이 사람들이 우리와 같이 성령을 받았으니 누가 능히 물로 침례 베풂을 금하리요 하고 [48] 명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베풀라 하니라 그들이 베드로에게 며칠 더 머물기를 청하니라』
베드로는 그제야 하나님께서 유대인뿐만 아니라 이방인도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이 진리를 깨닫는 것이 그렇게나 어려웠습니다. 나와는 질적으로 다르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하나님은 사랑하십니다. 다만 그것을 깨닫는 과정이 어려울 뿐입니다.
다양성을 하나로, 바나바와 사울
이방인을 향한 하나님의 열망은 수리아 안디옥 교회에서도 일어납니다. 핍박으로 인해 흩어진 유대인들은 예루살렘에서 무려 800km나 떨어진 지금의 터키 지역에 안디옥 교회를 세웁니다. 아프리카 출신의 흑인들을 포함해 다양한 신분의 인종들이 모인 이방인 교회였습니다. 이 소식을 접한 예루살렘의 유대 기독교 지도자들은 바나바를 조사단으로 파송해 이방인 교회의 정체성을 확인하고 싶어 합니다(행 11:22).
(행 11:19-22) 『[19] 그 때에 스데반의 일로 일어난 환난으로 말미암아 흩어진 자들이 베니게와 구브로와 안디옥까지 이르러 유대인에게만 말씀을 전하는데 [20] 그 중에 구브로와 구레네 몇 사람이 안디옥에 이르러 헬라인에게도 말하여 주 예수를 전파하니 [21] 주의 손이 그들과 함께 하시매 수많은 사람들이 믿고 주께 돌아오더라 [22] 예루살렘 교회가 이 사람들의 소문을 듣고 바나바를 안디옥까지 보내니』
이때 파견된 바나바는 이 이방인 지역에 세워진 교회에도 함께하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를 경험합니다. 그리고 바나바는 다소로 가서 사울을 찾아 안디옥 교회로 데리고 옵니다. 안디옥 교회를 돕는 조력자로 사울을 세운 것입니다. 사울은 교회를 핍박하는 데 앞장서던 사람이었으나 바나바는 그를 안디옥 교회로 데려와 훈련시킵니다. 안디옥 교회는 이처럼 사울과 같이 교회를 핍박하던 자, 노예 출신, 분봉 왕 헤롯의 가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모인 교회였습니다. 그런데 이 공동체가 안디옥에서 처음으로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릴 만큼 진실되게 하나님 앞에서 하나가 되었습니다(행 11:26).
새로운 가정의 탄생
성령님의 역사로 충만했던 이방인 지역에 세워진 교회에도 역시 문제들이 발생합니다. 사도 바울이 복음을 전하고 개척했던 대부분의 교회는 디아스포라 즉, 흩어진 유대인들이 세우고 헌신한 교회였습니다. 거기에 이방인들이 몰려들었던 것입니다.
갈라디아 교회에도 문제가 있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의 사랑과 십자가의 은혜를 잊어버리고 과거의 유대인 전통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움직임이 있었습니다. 율법의 행위로 거룩해지고 그 행위로 인해 성화된다고 회유하는 외부의 압력과 이단이 끊임없이 갈라디아교회를 흔들었습니다. 그러자 유대인과 이방인을 갈라놓는 분열이 곳곳에서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은 이 같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 갈라디아교회를 향해 바울을 통하여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갈 3:26-29) 『[26] 너희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으니 [27]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기 위하여 침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 [28]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 [29] 너희가 그리스도의 것이면 곧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니라』
분열의 조짐을 보이는 갈라디아교회에 전한 이 권면의 말씀이 시사하는 바가 무엇입니까? 조금 더 깊이 알아보기 위해 이 구절들을 현대인의 성경으로 보겠습니다.
(갈 3:28, 현대인의성경) 『여러분은 다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하나가 되었으므로 유대인이나 그리이스 사람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차별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상속자 단체인 교회공동체에서는 그 어떤 차별도 없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 아버지와 성령 하나님, 아들이신 예수님이 죄인이던 우리를 용서하시고, 한 분이신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게 하셨는데, 겉모습이 다르고 생각이 좀 다르며 인종이 다르고 신분이 다르다고 서로를 차별할 수 있느냐, 결코 그럴 수 없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믿음으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고 그리스도라는 옷, 즉 새 옷을 입은 자들로서 이미 하나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만약에 하나님이 우리를 차별하셨으면 우리가 공동체로 모일 수 있었을까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가 되었다면 서로에 대한 차별이 없어야 합니다. 세상의 법칙으로나 역사적으로는 유대인과 헬라인이 하나가 될 수 없습니다. 당시에는 종과 주인은 하나가 될 수 없었습니다. 남자나 여자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말은 유대인과 헬라인, 종과 주인, 남자와 여자는 함께 밥을 먹고, 함께 목장 모임을 하고, 함께 예배를 드리는, 즉 함께 하는 교회활동을 할 수 없었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엄청난 선포를 합니다.
(갈 3:29, 현대인의 성경) 『여러분이 만일 그리스도에게 속한 사람이라면 여러분은 아브라함의 후손이며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을 받을 상속자들입니다.』
정말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라면 그가 누구든지 모든 외적 조건을 넘어서 영적으로 유대인들이 중요시하는 아브라함의 후손이라는 것입니다. 게다가 하나님이 주시는 모든 유산들도 다 함께 받는다고 합니다. 이 선언은 유대인들과 당시 종교적 기득권자들에게는 사회적 혁명의 소리로 들렸습니다. 그러나 반대로 소외된 자들, 죄인 됨을 인정하는 자들에게는 복된 소식, 곧 복음이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모두 다 아브라함의 후손이요 하나님의 상속자들이 되었다는 바울의 이 선언은 하나님이 만드신 교회에 새로운 가족의 탄생을 예고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가족의 구성원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께서 만들어 주신 새 옷을 입고 성령 안에서 마음이 변화된 사람이라면 “누구든지”입니다.
현대 교회 공동체에는 여러 형태의 가족들이 존재합니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평범한 가정에서부터 사별 가정, 재혼 가정, 이혼가정, 불임 부부 가정, 소년소녀 가정, 한 부모 가정, 탈시설 청소년가정, 가출 청소년가정, 독거노인 가정, 조손 가정, 노인 부부 가정, 미혼모 가정, 싱글 가정 등등 너무나 다양한 가정의 형태가 공동체를 이루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동성성애와 수많은 사회적인 성을 주장하는 젠더이즘(genderism) 같은 하나님의 창조질서에 반항하는 가정이 아닌 한, 어떤 형태의 가정도 들어 사용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가 세상과 달리 자랑할 것이 있다면 그가 어떤 사람이고 어떤 가족형태이고 상관없이, 하나님의 창조질서에 반하지 않는 한, 예수님 안에서 하나로 어우러져 한 가족 공동체로 살아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나라도 유대 사회만큼이나 동질성을 강조하는데, 이렇게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공동체성을 형성하고 예배를 드린다는 것은 참으로 엄청난 기쁨이요 복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 공동체를 하나 되게 하는 영적 DNA는 헌신, 돌봄, 나눔, 책임, 서로를 위한 기도입니다.
그리스도의 피로 섞인 뉴 패밀리
초대 예루살렘교회가 생길 때, 사람들은 자신의 전통으로 정죄하고 편을 갈랐지만, 하나님은 그 모든 것을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랑으로 하나로 만들어 버리셨습니다. 그리고 유대인 중심의 예루살렘교회를 흩으셔서 그들로 하여금 곳곳에 이방인 교회를 세우게 하셨습니다. 유대인 중에 유대인이고, 예수쟁이들을 핍박하고 잡아 죽이던 사울을 세계 선교의 리더인 사도 바울로 삼으시고, 곳곳에 색다른 교회들을 세우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누구든지 과거를 뉘우치고, 그리스도 예수를 주님으로 영접하기만 하면 새로운 교회공동체의 한 가족으로 인정하게 하셨습니다. 바울은 로마서에서 다음과 같은 고백을 합니다.
(롬 8:14-17, 현대인의성경) 『[14] 성령님의 인도를 받는 사람은 다 하나님의 아들들입니다. [15] 여러분은 다시 두려워해야 할 종의 영을 받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이 되게 하는 성령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령님을 통해 하나님을 `나의 아버지' 라고 부릅니다. [16] 바로 그 성령님이 우리 영과 함께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실을 증거하십니다. [17]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면 하나님의 상속자로서 그리스도와 공동 상속인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을 받으려면 그분과 함께 고난도 받아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모두는 죄의 자녀였고 종의 영을 가진 자였습니다. 그런 우리를 하나님께서 그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를 그분의 자녀들로 입양해 주셨습니다. 당신의 한 가족을 삼으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모두를 하나님께서 세우신 교회로 부르셨습니다. 이로써 우리는 하나님 안에서 새로운 형태의 가족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한 가족인 교회공동체로 말이죠. 이 공동체는 그리스도의 피로 하나 된 공동체이며 그로 인해 그 구성원들은 서로를 형제, 자매라고 부릅니다.
(엡 2:19, 현대인의성경) 『그러므로 이제부터는 여러분이 외국인이나 나그네가 아니라 성도들과 똑같은 시민이며 하나님의 가족입니다.』
이처럼 아름다운 공동체가 또 있을까요? 이것이 바로 에베소서가 말한 교회의 비밀이고 신비이며, 아름다움입니다(엡3:9). 성경은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한 지체, 즉 한 몸이 되었다고 말씀합니다. 이것은 우리가 서로를 존중하고 인정하며 주안에서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롬 12:5).
(롬 12:5) 『이와 같이 우리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어 서로 지체가 되었느니라』
아빠의 빈자리가 필요한 가정에 아빠가 되어 주고, 엄마가 그리운 아이에게 엄마가 되어 주는 곳이 교회입니다. 스스로 일어날 힘이 없어 자포자기한 이들을 향해 손 내밀어 응원의 메시지를 전하는 곳! 기도하며 함께 걷고 함께함으로 사랑을 전하는 곳! 바로 교회 공동체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에는 차별이 없으며 그 차별 없는 사랑으로 우리를 하나 되게 하셨음을 기억하십시오. 그 형태는 전혀 새로운 하나님의 가족공동체이며 교회로서 존재하는 것임을 명심하십시오. 하나님의 한 가족공동체로서의 책임의식을 가지고 교회내의 모든 성도들을 형제, 자매들로 대하며 사랑으로 돌보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살아가는 사람들은 하나님이 주신 가나안의 삶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약속하신 풍성한 삶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공동체를 위한 기도
살아 계신 하나님, 죄 가운데 있던 저희를 주님의 피로 사신 하나님의 가족공동체로 불러 주신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그 부르심에는 차별이 없으며 우리를 하나 되게 하시려는 아버지 하나님의 계획임을 믿습니다. 그렇게 우리들을 아들이라 선포하시고 새로운 가족공동체를 허락하시어 그 안에서 사랑과 돌봄, 나눔과 헌신을 경험하게 하심을 감사드립니다. 교회 안에서 아버지 하나님을 중심으로 형제자매 된 저희가 땅 끝까지 이르는 하나님의 증인이 되게 하시고, 우리를 교회로 부르신 사명을 끝까지 잘 감당하며 하나님의 한 가족 됨을 확인해가는 복된 삶을 살아가기 원합니다. 이 모든 간구를 들으시는 살아 계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