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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교산(光敎山)은 수원의 북쪽에서 오는 찬바람을 막아주며 시가지를 품에 안고 있는 수원의 주산으로
원래 이름은 광악산이었으나 고려 태조 왕건에 의해 광교산으로 개명되었다고 전해진다.
광교산은 경부고속도로와 서울-수원간 도로 사이에서 남북으로 약 2㎞정도에 걸쳐 뻗어있는 산으로
수원시 상광교동에 속해 있다. 산의 능선이 매우 한적하면서도 완만하고 사이에 수목이 우거져있어
산림욕을 하거나 당일코스로 오붓하게 산행을 즐길 수 있는 곳이다. 옛부터 광교산은 수원 8경의
하나로 불렸는데 광교적설(光敎積雪)이라 하여 광교산에 눈이 내려 나무에 수북히 쌓여 있는 경치의
아름다움은 8경중에서도 첫 번째로 손꼽혔다.
1994년까지만 하여도 가을(1개월)과 봄(3개월)에는 산불 우려로 전면 입산 통제하였으나, 1995년
가을부터는 주민 휴식 공간 제공과 여가선용 기회 확대를 위해 연중 개방하고 있으며, 훼손된 등산
노변과 자연경관을 산림자연환경 스스로가 회복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2003. 2.1 부터 3년 단위
단계적으로 광교산 휴식년제를 실시 중이다.
광교산은 경기대학 정문에서 올라가므로 후문에 모인 5명, 즉 이 3명과 윤영진(배가 고프다고 먼저 사 먹으로 감), 신동천은 캠퍼스를 가로질러 정문으로 향해 갔다. 왼쪽 하얀 건물이 제1강의동(진리관)이며 오른쪽 붉은 건물은 도서관.
제4강의동(예지관)과 육상 트랙이자 축구장.
우측의 두 건물은 박물관과 복지관.
텔리컨벤션 센타.
중앙의 백색 건믈은 제9강의동(호연관).
천막 뒤는 홍보관이며 봉오리 모양의 금속 장식물의 우측 뒤로는 예학관이 살짝 보인다.
27 후문으로 들어와 4 주차장에서 기다리다가 연락을 받고 8 도서관과 12 텔리컨벤션 센타를 거쳐 26 정문으로 이동해 그 곳에서 8명이 합류했다.
경기대 정문에서 좌측으로 잘 정비된 들머리 등산로를 따라 시원한 바람을 받으면서 또 아름다운 새소리와 우렁찬 매미 소리를 들으면서 남쪽에서 북쪽을 향해 가는 산행이 시작되었다. 첫번째 쉼터까지 거의 30분 간을 쉬지 않고 올라오니 땀이 송글 송글 나고 숨이 찬다.
정문에서 1.3km. 다시 형제봉(448 m)까지는 2 km 를 가야 한다.
수목이 무성해서 햇살을 받지 않고 오를 수 있을 정도로 소나무가 울창하다. 토요일인데 무엇이 바쁜지 서둘러 올라가는 山님들이 많다. 1995년 11월부터 연중 개방된 광교산은 주말 하루 3만~5만명, 연간 600만명의 등산객이 찾아 온다.
이상규는 광교산에서 극기 훈련을 했다고 한다.
선두 4명의 속도가 어찌나 빠른지 따라 잡지를 못하겠다. 형제봉을 100 m 남겨 놓고 잠시 휴식을 취함.
형제봉은 광교산에서 가장 멋있는 바위봉우리인데 양면이 벼랑이라 바위면에 밧줄을 설치해 놓았다. 형제봉이란 이름은 봉우리 동쪽에 좀 낮은 바위봉인 아우봉이 있기 때문이다.
줄을 잡고 올라가려다가 대수롭지 않을 것 같아 단념하고 왼쪽 길을 따라 토끼재를 거쳐 정상인 시루봉으로 향한다.
형제봉에서 내려가는 등산로에는 354개의 목재계단(길이 212m,폭 2.4m)이 설치되어있다.
또 계단 중간에 전망대와 쉼터 2곳이 설치되어 있고 계단 아래에는 풀씨가 부착된 그물망을 만들어 주변 경관과 어울리게 해 놓는 등 공원당국이 조형물 설치와 등산로 정비에 많은 손질 을 하고 있어 통로를 따라 안전하게 오르내릴 수 있다. 산림도 침엽수는 별로 없고 활엽수가 주축.
잠시 계단에서 이탈해 바위 전망대로 가 담배 일발을 장전(裝塡)해 발사하고 나서는 유유히 조망과 풍광을 즐겼다.
멀리 수원의 아파트 단지가 하얗게 보인다. 바로 뒤는 낭떠러지.
하루에 두끼를 먹고 적당히 운동을 해도 뱃살이 안빠지니 웬일인가?
윤영진이 V 가지 사이에 앉아 무엇인가를 보고 있다. 단애절벽이지만 노송이 주위를 감싸고 있어 안전 하고 풍광이 빼어 나다.
오늘 목표인 시루봉이 봉긋 솟아 있다. 또 오목한 골짜기의 두 송신탑에서 산등성이를 타고 가면 통신대를 거쳐 백운산으로 나아가게 된다.
그러다 보니 선두에 뒤떨어져 비로봉(종루봉)을 오르지 않고 우회길로 여기까지 와서는 먼저 올라간 최용, 홍성호, 김범규+1 이 내려 오기를 기다리며 시간을 보냈다. 아까부터 이상규가 안 보이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이미 일행이 시루봉까지 다 올라간 줄 알고 부리나케 뒤를 밟았다고 한다.
너덜바위 지대. 기울어진 소나무에서 갈라져 나온 브랜치가 뱀처럼 꿈틀거리고 있다. 그리고 가끔씩 보는 광경이지만 이 산에도 맨발로 걷는 사람들이 있다. 오늘도 다섯 명을 봤는데 그 중 세 명은 중년 아주머니이다. 맨발로 걷는게 몸에 좋아서 그러겠지만 군데군데 험한 바윗길과 뾰족한 자갈들도 있어 맨발로 걷기에는 아무래도 힘들어 보이는 산길인데 그들 발은 어디에도 상처 같은 건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등산화를 신고 걷는 다른 일행과 다름없는 걸음걸이를 보니 맨발등산에 상당한 이력이 있는 모습이다.
12시 30분경 광교산 정상에 도착. 암반위에 설치해둔 커다란 자연석에 光敎山, 582m 라고 기록된 서향 의 표시석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나서 시원한 막걸리를 마시려했으나 판매소가 없어 아이스케익으로 대체했다. 이제부터는 이 시루봉에서 노루목 대피소(528m)를 지나 억새밭 - 절터약수터 - 사방댐 - 상황교 버스 종점 순으로 하산하게 된다.
시루봉에서 노루목 대피소(528m)을 지나자 엄청나게 큰 OBS 경인방송의 TV송신 안테나가 나타난다. 그리고 물을 다 마셔버려 대피소에 물이 있을까 찾아봤지만 보이지 않는다. 1시 경에는 억새밭을 지나게 되는데 억새는 한 포기도 없고 돌무지 옆에 억새밭이란 표시물 하나가 세워져 있다. 옛날에는 억새가 많았으나 주변의 시설물 공사로 억새가 없어졌다고 한다. 이 억새밭에서는 길이 두 갈래로 나뉜다. 곧장 가면 통신대와 白雲山(567 m)으로 이어지나 그까지 갈 마음은 없어 왼쪽으로 90도를 틀어 절터약수터 와 사방댐을 거쳐 상황버스종점으로 본격 하산하기로 했다. 우측으로 가면 통신대와 헬기장을 거쳐 자동차 도로로 들어서서 내려가니 결국 두 길이 만나게 되긴 하겠지만 30분을 더 소요하게 된다. (아래 지도 참조) 또 억새와 갈대의 차이는 억새는 꽃이 흰색이고 산이나 들에서 자라나, 갈대는 갈색이고 습지성이어서 바다나 냇가에서 자란다. 이름과 달리 억새는 약하고 갈대가 세다. 여자의 마음이 약해서 갈대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억새라고 해야 옳겠다.
여러 가지 색갈의 코스모스를 배경으로 찍었는데 채색 효과가 제대로 나타나지 않는다. 계단을 내려 가다가 적당한 곳에 들어가 김밥, 과일, 과자, 게란, 오징어포로 간단히 점심을 했다. 이상규가 가져온 스카치위스키를 2잔 마시니 조금 취기가 돈다.
절터약수터에서 약숫물을 마시고 나서는 1.7 km 떨어진 사방댐으로. 이 약수터는 고려시대 고승인 진각국사(眞覺國師)가 말년을 보낸 창성사(彰聖寺)가 있었던 자리인데 이제 절의 흔적은 없고 주춧돌만 남아 있다.
디카로 움직이는 또는 이동하는 인물/물체를 찍을 때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완벽한 구도나 각도가 나오지 않는다는 점이다. 고정된 피사체가 아니니까 당연히 그렇겠지만...
여자가 더 빠르다.
사방 댐의 저수지, 아니 연못이라고 해야 할까? 보리밭 부지 5,300 평을 올해 자연생태 학습장과 시민의 휴식 공간으로 탈바꿈 시킨 곳이다. 자연경관을 살리고 조화를 이루도록 해, 인위적이 아닌 자연 친화적인 시설로 조성했다.
가족 단위로 나들이 나온 행락객들이 많다. 서양인도 있고. 멀리 빨간 모자를 쓴 김진순도 이 수변 산책로를 따라 오는 게 보인다.
한가로이 유영(遊泳)하는 잉어떼들.
상당히 큰 잉어도 있다.
여러 비단잉어 중 흰 바탕에 검은 무늬를 띈 왼쪽 게 제일 예쁘다. 상광교 13번 버스정류장까지는 앞으로 500 m.
광교산 입구의 간판 지도. 시루봉에서 억새밭을 거쳐 6 - 4 를 타고 2.2 km 를 내려 왔다.
또 다른 지도.
하산 완료 후엔 수원갈비집으로 가려 했으나 이상규의 권유로 광교헌(光敎軒)이라는 돼지고기 바베큐집 으로 향했다.
장작불에 굽는 돼지바베큐.
철판 한 접시에 1만2천 원이라니 인심도 후(厚)하다.
그래서 세 접시를 시켰다.
그리고 도토리묵, 생두부, 시래기 선지해장국, 감자전, 냉채묵밥, 보리밥 등으로 하산식을 즐겼다.
홍성호는 닭도리탕이나 한방백숙도 시켜 먹자고 하나 삶는 시간이 많이 걸리고 경기대 앞에서 이병무와 만날 약속도 있어 그만 뒀다. 식후는 13번 버스를 타고 경기대 정문 앞에 내려 기다리던 이병무와 함께 OB Camp 라는 생맥주집을
갔는데 그 내용은 최용의 산행보고서에 나와 있어 여기서 생략한다.
그 후 분당파 5명은 김범규의 차를 타고 가다가 와인을 한 잔 하자는 홍성호의 제안으로 정자동으로향했다. 홍은 어제 친구들과 갔던 정자동 카페 골목의 유럽식과 한국식을 혼합한 고상한 분위기에 흠뻑 젖은 모양이다. 분당 정자동에는 100 여 미터의 크지 않은 카페거리가 있고 비슷비슷한 카페들이 서로 닮은 형태로 길가에 나 있어 차나 간단한 식사를 할 수 있게 배열되어있다. 우리가 갔을 때도 엇비슷하지만 조금씩 디자인이 다른 깔끔한 가게들이 十자 도로를 따라 이어져 누가 더 세련되고 예쁜지를 뽐내듯이 저마다의 매력과 자태를 발산하고 있다. 또한 테라스를 겸비한 노천 카페들은 조그만 정원을 연상케 하는데 꽤 세련된 젊은 남녀들이 황혼이 물드는 색갈 조명 속에서 음주와 식사를 즐기고 있었다. 그 중 한 곳에 들어가서 자리를 잡고 메뉴를 보니 와인이 7만원부터 28만원까지 있다. 5명은 레드(Red)하고 드라이한 것으로 캘리포니아산 로버트 몬다비(Robert Mondavi, 13도) 라는 붉은 와인을 주문해서 다섯 잔의 커다란 와인그라스에 나눠 마시면서 무드를 돋구었다. 대화 중엔 5년 후에 계획한 크루즈 여행 이야기도 나왔다. 7박8일에 1인당 1천만원은 장난이 아닌데 홍의 말로는 크루즈가 너무나도 재미있어 돈이 하나도 안 아깝다고 한다. 끝으로 계산은 홍성호가 했는데 골프 회사에 취직도 되고 해서 한턱 쓴 모양이다. 다음에는 펀드(fund)에서 재미 본 내가 살 차례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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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2009년 본격적으로 시작된 동천이의 산행기 글 쏨씨는 매 주 감탄의 연발이다!! 다른 친구들도 모두 같은 생각일 것이다.!!! 앞으로도 계속 쭈~~욱 육산회를 위하여 수고를 해 주길 기대한다. 조선시대 태어났으면 집현전 자리 하나 쯤은충분 할 텐데.... .
맞는 말이다. 덕분에 산행 못지않게 후기가 기다려지고 다시 한번 복기해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아마도 시간이 지난 후 에는 더 귀한 사진과 글로 다가 오지 않을까..^L^
사진도 골고루 잘찍었군요. 어느새 신동천이 욕산회의 최고 보배가 되었군요. 혼자 계속 고분군투 고생해가며 산행기를 써주는 신동천에게 감사. 또감사. 번역한 책은 여러권이라 들은 기억이 있는데, 나중에 잘 다듬어서, 산행기로 책한권 내시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