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대화회의’ 개막식이 16일 스페인 파르도궁(宮)에서 열리고 있다. 회의를 주선한 압둘라 사우디 국왕은 극단주의를 피하고 화해의 정신을 수용하자고 호소했다. 마드리드AP=연합뉴스 |
마드리드 회의를 구상하고 성사시킨 것은 사우디아라비아의 압둘라 국왕이다. 이슬람 종주국인 사우디의 국왕이 주도했다는 사실 자체가 상징성이 크다. 2005년 즉위한 그는 종교 간 화해와 대화를 강조해 왔다.
압둘라 국왕은 회의 개최를 위해 차근차근 사전 정지작업을 했다. 지난해 11월 그는 교황과 만났다. 두 지도자는 이슬람과 가톨릭의 대화 상설화에 합의했다. 지난달 4~6일에는 이슬람의 내부 갈등을 봉합하고 마드리드 회의를 위한 이슬람 성직자들의 지지를 이끌어 내기 위해 메카에서 수니·시아파 지도자들이 참석한 국제이슬람회의를 개최했다. 50개 이슬람 국가에서 500여 명의 대표가 참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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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의 결과에 대해 각 종교의 ‘중도파’와 ‘좌파’는 긍정적이다.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는 비판도 나왔다. 그러나 이번 회의는 이슬람권이 사우디 주도로 세계를 향해 보다 공세적으로 나서고 있는 현실을 상징한다.
‘한 손에는 칼, 다른 손에는 코란’. 오사마 빈라덴이 ‘칼’이라면 압둘라 국왕은 ‘코란’이다. 마드리드 회의는 전 세계 종교를 향한 이슬람식(式) ‘햇볕정책’의 출발점인지 모른다. 회의가 열린 스페인은 이슬람이 스페인을 통치한 8~13세기에 기독교·유대교·이슬람교 신자들이 평화적으로 공존했다는 상징성을 갖고 있다.
사우디의 ‘평화 공세’와 이에 대한 유대교·기독교의 반응을 이해하려면 아브라함에 대한 3대 유일신교의 견해를 알아야 한다. 교집합(交集合)의 중심에 아브라함이 있기 때문이다.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이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일곱 명의 아들이 있었는데요, 그중 하나는 키가 크고요 나머지는 작대요….” 주일학교에서 어린이들이 부르는 동요에 나오는 바로 그 아브라함이다.
이슬람교·기독교·유대교를 지칭하는 ‘아브라함의 종교들(Abrahamic religions)’이라는 표현은 이슬람에서 맨 먼저 사용했다. 종교 간 대화(interfaith dialogue)를 주창하는 기독교인·유대인도 채용하고 있다. 이슬람은 초기부터 기독교인과 유대인을 ‘경전의 백성들(People of the Book)’로 인정해 다른 종교를 믿는 사람들보다 우대하는 정책을 썼다.
이슬람은 ‘양날을 가진 칼’과 같은 신학적 입장을 구사했다. 이슬람은 “유대교·이슬람·기독교는 모두 ‘아브라함의 종교’이기 때문에 믿는 신 역시 같다”고 본다. 동시에 유대교와 기독교의 신앙과 경전은 코란과 달리 왜곡됐다고 주장한다.
16일 회의 개막식에서 압둘라 국왕은 “역사상 종교가 연루된 분쟁은 종교 그 자체가 아니라 종교에 대한 잘못된 해석 때문에 발생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해석의 대상이 되는 종교적 진리 자체에는 공통점도 많지만 차이점도 많다. 일치와 화해의 바탕이 될 수 있는 3대 유일신 종교의 공통점에도 미묘한 차이가 있다. 그것이 더 큰 분란을 일으킬 수 있다. 기독교계 일각에서 “속지 말자”는 반응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기독교는 ‘아브라함의 종교’이기 이전에 ‘예수의 종교’다.
사회 현상에는 ‘분열 단계’와 ‘통합 단계’가 있다. 분열할 때는 비슷할수록 증오심이 오히려 격렬하다. 그러나 통합 단계에서는 비슷하다는 게 통합의 밑천이 돼 상당한 차이도 극복할 수 있다. 기독교·이슬람교·유대교 앞에는 물질주의·세속주의·무신론·가정 해체라는 공동의 적이 있다. 이들이 화해와 일치를 위해 나설 때 아브라함이 공동의 조상이라는 게 큰 보탬이 될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