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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지지난 달 4월 잠시 LA에 가 있었던 때다. 4월 2일, 그 날은 캘리포니아 주 팜 스프링에 있는 란초미라지의 미션힐스CC(파72)에서 시즌 첫 메이저 여자골프대회인 나비스코 챔피언십 마지막 라운드가 열리고 있었고 그 대회에서 박세리 선수가 전날까지 공동선두에 나섰다.
어쩌면 우리 한국 선수가 ‘커리어 그랜드슬램(4대 메이저대회 석권)’의 꿈을 이룰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에 전 날 밤부터 가슴이 설랬고 꼭 그 현장을 가봐야겠다는 의욕이 꿈틀거렸다. 그 날은 일요일이었으므로 아침 일찍 예배를 드린 다음 딸아이와 함께 팜스프링으로 향했다.
사막 허허 벌판을 가로 질러 난 서울에서 대전 보다 먼 길을 달려서 팜스프링에 도착했다. 골프장 상공에 떠있는 비행선을 따라 찾아간 미션 힐스CC 정문에 다다르니 갤러리 차량은 골프장 인근에 자리한 월드 마트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셔틀버스편으로 입장을 하란다.
박세리 경기가 궁금하여 마음은 조급한데 입장이 안 된다니 초초하기 이를 데 없었다. 하는 수 없이 다시 마트 주차장을 찾아 가는데 30분을 허비하고나서야 셔틀버스를 타고 골프장에 도착했다. 시간은 벌써 점심때가 지났다. 벌써 우승조가 전반 나인은 끝났을 시간이었다.
입장료는 1인당 30불. 두 사람 몫으로 거금 60불을 주고 티켓을 샀다. 햇빛도 가릴 겸 기념으로 나비스코 엠블렘이 새겨진 모자도 샀다. 그리고 한 홀이라도 놓칠세라 마지막 홀인 18번 홀을 찾았다.
마침 강수연 선수가 홀아웃을 하고 나갔다. 기대에 못 미친 성적 탓인지 고개를 숙이고 힘없이 걸어 나가는 강 선수의 모습을 보니 마음이 짠하다. 그런데 마지막 홀에 갤러리가 너무 없다는 생각이 들어 확인해 보니 그 홀은 18홀이 아니라 아홉 번째 홀이었다.
우리는 허겁지겁 18번 홀을 찾아 나섰다. 그리고 박세리를 보기 위해 홀을 거슬러 나갔다. 목이 마르고 다리도 퍽퍽하다. 마음이 앞서고 몸이 미처 마음을 따라가지 못한 탓이다.
15홀에 이르러서야 박세리의 모습이 보였다. 리더 보드에는 박세리가 10홀까지 2타차 선두였음을 말해주고 있었다. 그 뒤로부터는 게임이 잘 풀리지 않은 듯 했다.
우리선수의 그랜드 슬램 현장을 목격하고 싶어 불원천리하고 달려 온 기대가 한꺼번에 무너지는 것 같았다. 그래도 아직 포기하기에는 몇 홀이 남았으니 우승의 기대를 버리지 않았다. 그러나 행운의 여신은 끝내 우리의 기대를 외면했다.
공동 선두를 달리던 박세리가 막판 줄 보기로 무너지는 바람에 10대 소녀 모건 프레셀(미국)이 우승컵을 안았다. ‘커리어 그랜드슬램(4대 메이저대회 석권)’의 꿈에 너무 긴장한 탓이었을까? 박세리는 15∼17번 홀에서 연속 보기를 했고 마지막 18번 롱홀에서 이글 역전을 노린 두 번째 샷마저 그린 오버로 워터해저드에 빠지는 바람에 꿈을 접어야 했다.
마치 나의 꿈이 무너진 것처럼 씁쓸하고 허전했던 4월의 나비스코는 잔인했다. 그러나 평소 골프를 좋아하는 사람의 하나로 두어 번의 국내 대회 갤러리 참관 경험이 전부인 내가 메이져 대회 현장을 가 봤다는 자랑거리(?) 하나가 생겼다는 사실외에도 그곳에서 새로 보고 느끼고 알게된 사실도 없지 않았다. -대회 후원사 <나비스코>가 과자 만드는 회사라는 것. 그리고 입장 할 때 공짜 과자를 듬뿍 나누어 준다는 것. -우승자는 연못에 풍덩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둘이 끌고 가서 물속에 던져진다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새롭게 깨달은 사실은 외롭고 험한 자신과의 싸움 끝에 우승은 멀고 좌절은 가깝다는 냉엄한 프로 세계를 목격한 일이었다.
조선.com 사진
2. 위 성미를 위한 변명을 한다면서 위성미 아닌 박 세리 선수 이야기를 장황하게 늘어놓은 것은 프로 세계의 냉엄함을 부각시키고자 하는 의도였다. 위 성미를 한 때 천재소녀라고 찬사를 아끼지 않았던 언론도 최근의 부진한 성적에는 냉담한 반응을 보이고 있으니 나이 어린 선수의 압박감이 얼마나 클런지 하는 생각을 하게된다.
지금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 서던파인스의 파인니들스골프장(파71.6천616야드)에서는 여자프로골프 세계 최고 권위의 대회 US여자오픈이 열리고 있다. 가장 오랜 역사를 자랑 하고 있고 가장 많은 상금을 내건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시즌 세 번째 메이저대회로 치러질 이 대회에 출전하는 한국 선수 또는 한국계는 무려 45명에 이른다고 한다. 밟은 것 자체가 선수에게는 얼마나 큰 영광일 것인가?
이번 대회에서도 10대 후반과 20대 초반의 신예들의 반란 가능성이 적지 않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LPGA의 떠오르는 샛별로 칭송받았지만 어느새 언론의 까싶거리로 전락한 위성미는 이번 대회에서도 여전히 관심의 대상이다.
2라운드 진행중 기상악화로 연기된 가운데 1라운드 결과 무려 11오버파 82타로 공동 130위에 머무르고 있다. 손목 부상 여파로 장기인 드라이버가 크게 흔들린 모습을 보인 위성 미가 한달도 채 되지 않은 채 나서는 이 대회에서 예전의 장타를 거침없이 날리는 모습을 보기 어렵다. 기에 놓여있다. 게다가 위성미는 킴벌리 김(17), 그리고 US여자오픈 사상 최연소 출전 기 록을 세운 알렉시스 톰슨(12)를 비롯한 '천재소녀'들의 도전도 부담스럽다. 그래서 그의 우승을 안타깝게 기다리고 있다.
힘내라 위성미! 실패를 두려워 하지 마라! 실패는 더 큰 성공을 위한 밑거름이 아니더냐?
프로면서도 아직 공부와 운동을 병행해야 하는 네가 당장 우승을 못한다 해서 그리 잘못된 건 아니다. 실수의 게임이라는 골프에서 지금의 실패가 탄탄한 실력을 갖춘 큰 그릇으로 거듭나는 계기가 될줄로 믿어 의심치 않는다.
위성미!
머지 않아 그린 재킷을 걸친 너의 환한 모습을 그려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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