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희문의 초안을 받아 내가 가필하고 몇 관심을 표해 준 친구들의 퇴고를 거쳐 채희문이 다시 최종 마무리 했다.
바쁜 와중에 원고마감을 보류시키고 일필휘지 작성하느라 혹 거명되지 않았다 하여 서운하게 생각하지는 않아 주길 바란다.
이렇게라도 써보다 보니 우리 13회에 의외로 훌륭한 친구들이 많았구나 하고 깨닫게 되었다. 더욱 발전하는 13회가 되기를 소원하며...
13회 중 유명인, 화제의 인물(50년사에 인물정보 수록할)
1. 박성택-국내 레미콘 업계의 입지전적인 실업인. 몽골의 경제발전에 크게 이바지하여, 울란바토르에 ‘남양주 스트리트’라는 도로명이 생길 정도
2. 채희문-1988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중편소설부문에 당선되어 소설가로 나선 이후 왕성한 작품 활동으로 문학의 지평을 넓혀가고 있슴
3. 김철-1978년 제1회 해변가요제에 입상하여 ‘바람과 구름’이라는 불세출의 작품을 남긴 김철(그룹사운드 ‘장남들’의 기타와 보칼)
4. 설정선-1979년 행정고시로 입문하여 한국의 정보통신을 세계 1류의 수준으로 견인한 정보통신부 차관보
5. 한석훈-오랜 기간 검사로서의 소임을 완수하고 로스쿨에서 후학을 가르치는 변호사
6. 이영하-우리나라 스피드스케이팅의 1세대 스타
7. 최영규-차세대 리더를 위한 고급 경영정보 메거진 에콘브레인 발행인
경희고등학교 13회 소개글(50년사에 수록할)
유유히 흐르는 강물처럼
무려 11:1이라는 미증유의 입시경쟁률을 뚫고 경희고등학교에 입학한 우리 동기생들은 필연적으로 성공할 수밖에 없는 자질과 특성을 이미 품고 있었습니다. 계란은 남이 껍질을 깨어주면 프라이가 되고 말지만, 스스로 깨면 병아리가 되듯이 우리 동기생들은 1972학년도 전국 최고의 입시경쟁이란 껍질을 스스로 깨고나온 단단한 부리의 소유자들이었습니다.
그 후 3년, 대학입시에 매달려 어질 머리를 앓긴 했지만 그동안 우리들은 불꽃처럼 타오르고, 갈망하고, 진지하게 사유했습니다. 사상에 굶주리고 지식에 목말라 하면서도 점점 부드러워지는 심장을 저마다 가슴 속에 품고 지내왔습니다.
철이 없어서 고추장, 곶감으로 통칭했던 김병운 교장선생님, 그리고 김원세 교감선생님의 가르침이야말로 이제 생각하니 홀로 창공에 이를 수 있도록 날개를 펴게 한 자양분이었습니다. 그뿐인가요? 안재중, 유홍식, 전용일, 김일기, 조진래, 백원기, 이종권, 조이준, 홍화식, 김기순, 한용근, 임문규, 윤병두, 송용직, 김명빈, 박종현, 유창열, 정달몽, 박규하, 장병길, 박종순, 박만규, 김동현, 홍종인, 안석중, 최병인, 박영준, 강욱, 전상국, 김창진, 오만녕 선생님… 우리 철부지들을 위해 함께 웃고, 함께 고민하며 암흑 속에서 등잔의 심지를 높여주신 여러 은사님들을 우리는 일일이 그리고 영원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레바논의 시인 ‘칼릴 지브란’이 말했듯이 목소리란 자기를 날려 보내는 혀와 입술까지 끌고 갈 수는 없기에 스스로 깨달으라는 묵시의 교훈을 주신 분들이건만, 이제야 우리는 고개 숙여 깊은 뜻을 헤아리고 있습니다.
물론 소림사의 무술 스님이 연상될 만큼, 엄한 스승님들로부터 사랑의 매도 많이 맞았습니다. 하지만 무술(?)이 겸비된 도량이기에 소림사가 신비로운 것 아닐까요? 따지고 보면 열혈 청년들을 담금질해주시던 편달이야말로 비밀스럽게 가려져 있던 신비로운 사랑이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그 사랑은 우리들의 굳건한 날개로서 훈장처럼 빛나고 있습니다.
전국을 제패한 자유교양경시대회, 꿈과 용기를 심어주었던 아이스하키부, 이영하라는 불후의 선수를 키워낸 빙상부, 대통령배를 안아 들던 축구부, 체조부… 당시에는 가늠할 수 없었던 그 응집력이 지금은 13회 졸업생들의 자긍심이 되어 숨 쉬고 있습니다.
돌이켜보면 경희고등학교라는 울타리 안에서 우리는 공부하고, 일하고, 삶을 사랑하고, 남들과 함께 발맞추어 나가는 방법을 배웠습니다. 견고하게 지어진 집, 우리들 마음속에 단단히 자리 잡은 집이 있기에 우리 13회 동기생은 세상이라는 드넓은 강을 헤엄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강물의 흐름에 막연히 떠내려가지 않고 때론 강물을 거스르며, 혹은 앞을 가로막은 댐을 뛰어넘으며 나아가는 것은 우리들 마음속에 경희고등학교라는 초당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미 강물을 빠져나와 이제 바다에 닿은 13회 동기들을 꼽아보겠습니다. 1975년 2월 졸업 이후 조홍건과 변경호가 회장과 총무를 교차로 맡으며 산재한 동기들의 구심점이 되어 준 때를 1기로 친다면, 2기 홍준영(회장) 양기환(총무), 3기 변경호(회장) 방진우(총무), 4기 민경희(회장), 5기 김진수(회장), 6기 방진우(회장) 등이 뒤를 이어 동기 모임의 터전을 마련했습니다. 현재 7기 회장 박성택과 4기부터 연임해오는 총무 유치열의 선도 하에 포항‧경남지부(회장 서정만)가 운용되고 있으며, 골프동호회(회장 박영준, 총무 김영덕)를 비롯하여 등산동호회, 싸이클동호회, 일송회 등의 모임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2007년에는 카나다와 미주지역에 거주하는 동기들 10 여명이 LA에 모여 소규모 동창회를 주도한 바 있고, 지난 2005년 홈커밍데이 때에는 회모임 명의로 거금을 찬조한 일례(일송회)도 있습니다.
13회 동기생들의 활약은 어느 분야에서건 두드러지고 있습니다. 2011년 총동창회 회장으로 선임된 박성택은 국내 레미콘 업계의 입지전적 인물로서 몽골의 경제발전에 크게 이바지한 바 있습니다. 그의 노력에 부응하여 울란바토르에 ‘남양주 스트리트’라는 도로가 생겨난 사실은 매우 고무적입니다. 또한 강희경 교수 등 학계 인사 10여명, 스피드스케이팅의 1세대 스타 이영하를 비롯한 체육인 10여명, 1988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중편소설부문에 당선되어 소설가로 나선 이후 왕성한 작품 활동으로 문학의 지평을 넓혀가고 있는 채희문, 아동문학계의 권위자 김용희, 제천에서 향토화가로 자리 잡은 이종원, 클라리넷 주자로 출발하여 현재 위튜티 윈드오케스트라 지휘자로 활동하는 유동휘 등 문화예술인 10여명, 1978년 제1회 해변가요제에 입상하여 ‘바람과 구름’이라는 불세출의 작품을 남긴 김철(그룹사운드 ‘장남들’의 기타와 보칼)등 연예인, 삼성그룹 부사장 성인희를 위시한 대기업 임직원 20여명, 한국의 정보통신 인프라를 세계 1류로 견인한 정보통신부 차관보 설정선 등 공직자 20여명, 최근 부각되는 희토류를 재료로 삼아 미세진동소자를 생산하여 글로벌기업체의 반열에 들어선 김유철 등 중소기업인 30여명, 제일은행 상무 신설호 등 금융계인사 10여명, 미얀마에서 사업을 하며 그 나라에 큰 홍수가 났을 때 제일 먼저 구제활동에 나섰던 김정한, 폴포트정권에 의해 암흑의 킬링필드로 전락한 캄보디아에서 교수들을 대상으로 지식을 전수하는 김수봉 등 국위선양 중인 해외거주자 30여명, 차세대 리더를 위한 고급 경영정보매거진 '에콘브레인' 발행인 최영규 등 언론인, 세계 공용의학용어인 화병(hwabyung)의 이론가 조홍건, 모발 생성제를 개발한 이해민을 비롯한 최두균, 박대혁, 장경훈, 김형준, 김경진 등의 한의사, 양평 국수리 국수교회의 김일현 목사, 동래온천교회 정동준 목사 등 종교인, 오랜 기간 검사로서의 소임을 완수하고 로스쿨에서 후학을 가르치는 한석훈 변호사, 김영덕 세무사, 동기생들의 정신적인 법률고문 유치열 법무사 등 자격사, 어느덧 지천명을 넘어서서 세컨드 라이프를 기획해야 할 연륜이지만 베풂으로서 사회에 기여하는 차원으로 '한국 인체조직 기증지원본부' 사무국장에 취임한 송윤호 등 13회 동기들은 여러 분야에서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개교 50주년을 기해 무려 146명이 모교 장학기금조성에 기꺼이 참여할 만큼 돈독하게 결집되어 있는 우리 13회 동기들은 같은 날, 함께 경희고등학교에 입학했으므로 앞으로도 영원히 함께 있을 것입니다. 동기들의 사랑을 마음속에 품고, 서로의 온기를 느끼며 우정을 잃지 않을 것입니다. 아울러 우리 13회의 영원한 발전을 기원하는 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