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계에서 하루 일정을 마무리한 후, 강릉으로 넘어와 저녁을 먹고 숙박을 했다.
처음엔 당일치기로 계획했지만 하루로 마치기엔 욕심을 채우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강릉에서 하룻밤을 자고 난 뒤 어디로 갈지 고민하다가,
아직 기록을 남기지 않았던 미지의 땅으로 향하기로 결심했다.
다음 날, 미지의 땅으로 가기 전에 영동고속도로 부근의 몇몇 지점을 들리기로 했다.
가본 지 오랜 시간이 흐르기도 했고, 평창올림픽을 하면서 분위기가 많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올림픽이 끝난 뒤의 이 지역 분위기가 어떻게 달라졌을까 궁금하여,
잠시 짬을 내 구경을 해보기로 했다. 첫 타자는 횡계터미널이다.
횡계에 온 것은 2015년 삼양목장 방문 이후 약 3년 6개월 만이었다.
강릉시내에 있을 땐 구름 한 점 없이 맑았던 하늘이 대관령에 오자마자 뿌옇게 흐려졌다.
안개인지 구름인지 애매한 그것이 대관령을 뒤덮은 것이다.
3년의 시간이 흘렀음에도 동네 분위기는 많이 바뀌어 있었다.
분명 옛 기억에는 밑에는 불법 주정차 차량들, 위에는 전선이 뒤덮었던 것 같은데,
불법 주정차 차량과 전선이 사라지고 안 보였던 인도가 생겼다.
버스터미널 디자인 역시 획기적으로 바뀌었다.
http://cafe.daum.net/busmania/3Cbp/110
10년 가까이 지난 과거에도 한차례 방문한 적이 있었지만,
대충 보면은 같은 곳이 맞나 싶을 정도로 분위기가 확 바뀌었다.
이렇게 평창올림픽이 동네 전체를 뒤집어엎을 정도로 엄청난 변화를 몰고 왔다.
특히 이곳은 알펜시아 리조트와 올림픽 슬라이딩 센터가 있어,
평창에서도 가장 중요시 여겼던 지역으로 알고 있었기 때문에 개조되다시피 변했다.
이를 보면서 느낀 점은, 굳이 건물을 부수고 다시 짓지 않아도 충분히 발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올림픽이 끝났다고 변화가 멈추지는 않는다. 횡계는 계속 발전하고 있다.
올림픽은 한순간 반짝 이벤트에 불과하지만 거주하는 주민들에게는 삶의 터전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터미널 맞은편에 '현대 힐스 700'이라는 고층 아파트가 지어지고 있다.
이미 횡계에 고층 아파트만 몇 동이 있지만, 그래도 뭔가 낯설게만 느껴진다.
버스터미널, 주유소 너머로도 알 수 없는 공사가 진행되고 있었다.
지도를 보니 고등학교가 있는 자리인데, 새 건물을 짓는 모양인지 뚝딱뚝딱 소리가 분주하게 들린다.
올림픽이 끝나도 끝없이 변화를 위해 달려가는 마을의 모습처럼 버스터미널도 바뀔 것이다.
다만 지금은 올림픽이 끝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탓에 일상으로 되돌아온 상황이다.
올림픽 기간에는 서울에서 출발하는 임시 고속버스까지 투입되었을 정도로 분주했던,
창업 이래 반짝 리즈시절을 다시 되돌리기는 사실상 불가능할 테니 말이다.
건물과 승차장을 잇는 쪽문에는 천장이 사라진 대신 의자가 하나 늘었다.
나무로 만든 교회의자는 디자인만 조금 바뀌어 여전히 승객을 맞이할 채비를 하고 있다.
건물을 다시 짓지 않고 리모델링 수준에서 그치다보니 예전 모습과 비교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터미널 부지 경계선에 있어 눈에 잘 띄지 않는 위치이지만,
언젠가 평창 관광안내도 및 방향 표지판이 생겨 관광객들을 안내하고 있다.
갓 대관령에 도착한 관광객 입장에서 뜻하지 않은 호기심을 발동시킬 수 있는 좋은 물건이다.
겉으로 보이는 변화 이상으로 건물 내부는 엄청난 변화가 있었다.
전형적인 70년대 시골 버스정류장 느낌의 소소한 매력이 있었던 곳이었는데,
같은 공간이 맞나 싶을 정도로 완전한 현대화가 이루어졌다.
시골 터미널로서의 매력은 반감된 반면 이용하기는 다소 편리해진 느낌이다.
석유난로, 화이트보드, 철제 창틀은 간데없이 사라지고,
따뜻한 느낌의 우드 디자인과 매표소를 뒤덮은 시간표가 눈에 띤다.
여기뿐만 영동고속도로 상에 있는 평창 버스터미널들은 다 이렇게 바뀌었다.
진부, 장평도 많은 변화를 겪었지만 유독 올림픽 전후로 횡계가 극적으로 바뀌었다.
가장 큰 이유는 물론 평창올림픽 핵심 시설이 여기에 지어졌기 때문이겠지만,
영동 지방 교통망의 핵폭풍을 몰고 온 경강선의 영향이 여기까지 미치지 못한 이유도 있을 것이다.
여기는 영동고속도로 선상 마을 중 유일하게 철도 역이 없다.
궤도교통 특성상 급경사를 굴리기 어렵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횡계를 지나쳐야 해서,
마을에서 지하 300m 지점을 터널로 통과하기 때문에 역을 만들 수가 없었던 까닭이다.
덕분에 경강선으로 위기를 맞은 영동고속도로 버스 노선들은 횡계에서 한숨을 돌리게 되었다.
횡계버스터미널 입장에서도 다행일 것이다.
주변 관광지로 향하는 시내버스를 제외하면 강릉, 서울, 원주방면 시외버스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10여 년 전에는 춘천, 이천, 성남, 상봉으로 가는 노선이 있었지만 죄다 폐지되고 장거리 노선은 서울(남부, 동서울)행만 남았다. 때문에 경강선이 만약 뚫렸더라면 존립을 위협받았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철도의 구조적인 문제로 횡계를 피해감에 따라,
올림픽의 반짝 특수효과를 제대로 누릴 수가 있었고 끝난 후에도 현상유지는 가능하게 되었다.
하지만 이전에 비해 노선이 급격히 줄어든 것은 사실이기 때문에 언제까지 유지될런지는 잘 모르겠다.
이런저런 소회를 떠올릴 무렵 부릉부릉 버스 소리가 들린다.
대기실에 있던 사람들은 우루루 버스를 타기 위해 밖으로 나간다.
서울로 가는 완행 버스가 들어오고 문이 열린다.
사람들은 각자의 목적지를 향해 하나 둘 줄을 서고, 나 역시도 저 버스를 타기 위해 한발짝 걷는다.
첫댓글 아하, 이번 여행기는 동해안의 지역일줄 예상했는데, 정확히 빗나갔네요^^.
횡계는 대관령과 가까운곳으로 바람도 많이 불고 겨울철이 무척 춥다고 들었습니다.
동계올림픽 개최 영향인지 산골지역이지만, 그래도 분주해 보입니다..
동서울과 서울서초행, 원주행, 강릉행이 타지로 이동하는 고마운 교통수단이 되고 있네요.
제천행도 많이 감회 되었을텐데 노선도가 부착된걸 보면 1일 몇회정도는 유지를 하는가 봅니다.
강원도 고랭지 지역인 횡계버스터미널 여행기 잘 봤습니다^^
삼척을 포함한 동해안도 가고 싶었지만 아쉽게도 일정상 가지 못했네요. ^^
제천행은 평창-영월 경유로 안내되어 있고, 하루에 한 대 저녁 7시에만 운행됩니다.
10여 년 전 시간표에는 하루 9대로 명시되어 있었는데 거의 폐지되다시피 감차되었네요.
재밌게 봐주셔서 고맙습니다 :)
@Maximum 예전엔 강릉-제천에 횡계경유도 많이 다녔지만 원주경유로 원주-제천 구간영업까지 했었다던데 요즘은 횟수도 많이 줄고 이래저래 안좋은거같아서 마음이 아프네요. 근본적인 처방법이라고 하면 연선인구 증가라던지 이동패턴 등의 개선도 필요할것으로 보여집니다.
@Maximum 1일 1회로 감회 되었군요. 19시면 시골지역에서는 늦은 시간인데(승객이 끊기는 시간) 구간구간 이용승객이 있을까 의문입니다. 더구나 제천 숙박이 되는 배차인데 타지 숙박비용을 지출하면서
오래 유지될수 있을까 걱정이 앞섭니다.
부디 폐지나 단축이 아닌 운행계통 그대로 변함없이 유지 되기를 희망합니다.
(1950년대~1989년경까지 친선버스와 장평-대화-평창-주천/영월-제천간 경합을 벌였던 노선으로 당시에는 평창-제천 구간도 꽤 수익노선이었다고 합니다.
"메밀꽃 필 무렵"의 봉평-대화-평창-제천-충주로 이어지는 그 "아름다운" 이동경로와 겹치게 되죠. 친선 운행:제천-주천/영월-평창-대화-장평-봉평 면온리와 덕거리)
@직장인 2016년 시간표 기준으로 평창행 5회, 영월행 3회, 제천행 2회, 이천/성남행 2회, 춘천행 1회가 남아있었습니다. 이를 보면 최근에 운행 횟수가 급격하게 줄어든 것을 확인할 수 있는데요, 주 52시간 단축과 수요 감소가 겹쳐서 칼질을 당한 게 아닌가 싶습니다. 운행 횟수가 너무 줄어서 충격을 많이
먹었었는데, 이는 다다음 게시글에 올릴 예정입니다.
삭제된 댓글 입니다.
올림픽 덕분에 말끔히 정비되어 쾌적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광장 같은 곳도 가보고 싶었는데 살짝 아쉽네요.
늘 재밌는 글 잘 보고 있습니다. 예전에 그 근처를 지났을때는 전형적인 시골 동네 분위기였고 좀 어수선하다 싶을 정도였는데 올림픽이 무섭긴 무섭습니다. 올림픽 이후에 특수가 사라지면서 지역 분위기가 어떨지 궁금해지기도 합니다. 태백, 도계 지역에서 횡계로 가시느라 강릉을 경유하신 모양이네요. 예전에 청량리발 강릉행 무궁화를 타고 강릉까지 가면서 태백, 도계도 지나갔는데 이전 글을 통해서 그 기억을 다시 떠올립니다. 그때 6시간 30분인가 걸렸던 것도 기억납니다. 고생 많으셨습니다.
당일 기차여행에서 1박 2일로 급변경하면서 일정이 조금 널뛰기를 하게 되었습니다. / 올림픽이 정말 무섭긴 무섭더군요. 올림픽이 끝났어도 대회를 위해 만든 인프라는 그대로 남기 때문에 전보다 분위기는 좋지 않을까 싶습니다. 강릉 가는 무궁화가 정말 오래 걸리죠. 도계에서 강릉 넘어갈 땐 버스를 탔는데, 버스도 두 시간 정도 걸렸던 것 같습니다. 덕분에 경치 구경은 실컷 하고 갔네요 ㅎㅎ
저도 위에 분처럼 강릉 찍고 남쪽으로 울진, 죽변, 평해 - 포항 쪽 라인을 타실 것으로 예상했는데 예상외의 코스네요. 시간이 많으셨다면 남쪽으로 찍으셨을거란 기대가 있습니다만.. ㅎ 횡계역이 안 생긴 이유를 오늘 처음 알았네요 . 코레일에서 굉장히 고민했을듯 합니다. 항상 좋은 정보와 여행을 부르는 감성의 글 잘 보고 갑니다!
울진, 영덕... 군생활하면서 숨겨진 보석을 발견한 곳입니다. 그래서 제대하고 언젠가는 꼭 가보자는 마음이었는데 아직까지 실천을 못했네요. 만약 간다면 버스로는 못 갈 것 같습니다. 차가 있어야만 갈 수 있는 곳이 많아서요 ㅎㅎ 경강선이 진부에서 바로 터널에 진입하여 쭉 내리막길을 타기 때문에, 횡계에 역을 지으면 지하로 300~400m 내려가야 열차 이용이 가능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역이 없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