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야인사는 군사독재정권이 민주주의에 기본인 국민에 의하여 선출된 정권을 총칼로 무너뜨리고 탈취한 후 그 정당성을 유지 보존하기 위하여 불가피한 장기집권 과정에서 정치적자유와 정당성을 주장하는 반대세력을 탄압하여 반국가적인 죄인으로 몰아 전과자를 양산하는 시대적 오류로 말미암아 생겨난 다수의 정치성향이 많은 이들로 정치권에 진입하지 아니하거나 못한 이들을 일러 재야인사라 부르게 된 것으로 이는 군사독재가 낳은 신종정치명사가 아닌가 생각한다. 이제 그들 중 대부분은 정치적 해빙기가 오면서 바로 정치권으로 들어가서 현실정치에 참여하게 되었다. 이렇게 재야인사들의 제도권 진입은 과거 독재자들에 의한 무고한 핍박과 희생에 대한 보상적 차원으로 시대적 명분과 함께 문민정부와 정권교체이후 노무현정부에 이르면서 광범위하게 이루어졌으며 벌써 그들의 역할과 책임을 논할 때가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 군사독재가 낳은 신조어 가운데 하나인 재야인사라는 용어가 대중에 널리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박정희유신이후 언론의 보도제한이 극심할 때 김대중씨 김영삼씨에 관한 기사를 쓸 때 그들의 실명을 못 쓰고 재야인사라고 쓰면서 부터 일반적 언어로서 널리 소통되기 시작했다. 그 후에 군사독재가 연장되면서 재야인사들이 계속해서 늘어났는데 권력자의 미움을 더 받거나 징역형이 길어지고 정치적 해금 복권이 안 되어 정치권에 들어가지 못하거나 스스로 정치권의 진입을 거부한 인사들을 가리켜 재야인사들이라는 복수형단어로 사용될 만큼 그 수효는 상당수에 이르렀다. 마침내 군사독재와 그 연장수단인 유신이 종말을 고하면서 재야인사들도 속속 제도권으로 들어가기 시작했고 재야의 대부 격인 김영삼 김대중씨가 차례로 대통령이 되고 그와 노선을 같이하는 재야인사들 대부분이 정치권으로 들어왔다 양김이후 재야의 핵심인물로 평가받았던 이부영 김근태 이재오 장기표 중 장기표 대표를 제외한 세분은 정치권의 핵심적 역할을 했거나 하고 있으며 어쩌면 더 큰 일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 세월이 지나다 보니 이제 재야인사는 용어와 함께 사라져가고 더 이상 재야인사가 필요 없는 사회가 되어가고 있는 것은 참으로 바람직하고 다행스러운 일이다. 사실 나는 수년전에 장기표 대표를 만나보고 싶어 신문광고를 보고 용산역에 있는 사무실을 찾아간 적이 있었다. 정치를 시작하면서부터 나는 유명정치인을 찾아가지 않는다는 것이 나의 신조이고 이것은 지금까지 지켜오고 있다. 세 번이나 총선에 출마했지만 변변한 국회의원과 악수한번 한 적이 없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나는 장기표 대표는 괜찮겠지 하는 생각으로 당시 용산에 있던 사무실 문 앞까지 찾아갔지만 문 앞에서 나는 다시 생각하고 발길을 옮겨 돌아오고 만적이 있었다. 여러 가지 관행상 초면인 나를 유명재야인사의 대부인 장기표 대표가 나를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 한참이나 망설이다가 언젠가는 장기표 대표가 나를 부를 때가오겠지 그때 만나면 되지 하고 돌아오고 말았던 것이 수년전에 일이다. 이만하면 내 소신 하나만은 알아주지 않을까. 하지만 정치는 나에게 있어 항상 꿈과 이상이다. 그렇게 꿈이 있어 나는 정치를 좋아한다. 꿈은 갖는 것이지 다 이루어진다고 생각지는 않는다. 그 후에도 정치적으로 간접적으로 인연은 있었지만 내가 장기표 대표를 만난 것은 장기표 대표의 부름을 받고서였다. 수년전에 그때의 소망대로 장기표 대표님으로부터 전화를 받고서야 역사적인? 만남을 갖게 된 것이다. 당시 나는 고향에서 총선에 출마하면서 이모후보의 허위경력을 발견하여 고발하게 되었는데 내용은 공무원이 아니면서 공무원이라고 주장한내용(4급별정직 국회최연소 보좌관역임 주장)이상하게도 검사가 공문서외 이의원 측근들과 이의원에 진술을 인정하여 검사가 무협의 처분한 것에 대한 항소로 내가 고등법원의 재정신청을 내게 되었는데 고등법원은 나의 신청을 받아들여 영월지원에 고등법원 직권으로 재판에 회부하는 인용결정을 내리게 되었다. 이 사건은 당시 변호사출신의 한나라당 후보 등 책임 있는 사람들에 의하여 묵인되는 등 여러 의혹 속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허위경력은 맞지만 권력에 핵심인사라서 안 된다는 것을 나 혼자 결단으로 변호사 없이 받아낸 결정이라 총선당시 당대표를 지내셨기 때문에 관심을 가지시고 전화를 하셔서 공식적으로 보고를 드리게 된 것이다. 그때 장기표 대표님은 당의 지원도 없이 선거재판에서 그것도 이모후보를 상대로 인용결정을 받아낸 것은 기적에 가까운 일이라면서 많은 칭찬과 격려와 함께 기대를 표시했는데(아직 미완으로 남아 있음)이 인연으로 인하여 나는 비로서장기표대표님의 매니아가 되었으니 여기까지 오는데도 나는 88년 13대 총선부터 시작해도 20여년이 걸린 것이다. 민주화시대를 자임하는 현재에 있어 정치가 정의보다는 세가 있거나 세를 만들 수 있는 능력이나 방법을 지녀야 속된말로 행세나 대우를 받을 수 있는 세상이 되었으니 어느덧 마지막 재야인사가 되어버린 장기표 대표에 처한 입장이 오죽 하겠는가 장기표 대표 역시 재야인사라는 인식이나 평가를 받기를 더 이상 원하지도 않는 것 같다. 사실 이제 홀로 남아 있는 재야인사에 대하여. 어떤 지인은 장기표 대표를 장외에 대통령이라고 명명했다. 그러나 마지막 재야인사 장기표 대표에게는 분명히 많은 재야인사와는 다른 것이 있다. 그것이 어쩌면 마지막 재야인사로 남아있는 이유 중에 하나인지도 모른다. 분명한 것은 다른 재야인사와 같은 목표나 목적이었다면 양김이 성취한 대권 외에 그는 성취 못할 것이 없었을 것이라는데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이 최소한 장기표 대표를 아는 사람이라면 동의할 것이다. 다른 재야인사들이 군사독재에 저항한 시대적 희생에 대한 일반적인 보상을 받았다 면은 장대표는 그런 희망에 집착하지 아니하고 자칭 민주화시대에 일어나는 사회적 갈등과 모순에 대하여 미리 문제점을 예측하고 보수와 진보 독재와 민주화의 이분법적 갈등 구조 속에서 일어나는 오늘의 현상 즉 복잡하게 얽혀있는 문제에 대하여 원인을 진단하고 그 해법을 제시하는 유일한 장외의 정치인이라는 사실이다. 장기표 대표는 자본과 노동이 생산의 원동력에 중심이 되던 산업문명시대 구조에서 지식과 정보가 생산에 원동력에 중심이 되는 정보문명시대 즉 신문명시대에 맞는 정치와 경제 사회복지제도가 유일에 대안이라는 기치를 주창하고 있다. 한마디로 이 시대 정부와 정치권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신문명국가 비전이라는 제목아래 주장하고 있는 비록 장외지만 참여정치의 정책을 제시하는 재야인사라는 것이다. 오늘날 정치에 있어 전문가를 자처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이것을 경제적 논리로 승화시키는 데는 누구도 자신 있는 해법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내가 장기표 대표의 마니아가 된 것은 정치인에게 필수덕목인 시대적대안과 정책을 얻고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와 대통령은 경제문제를 논할 때마다. 수출의 증가와 무역수지의 흑자를 일차적인 기준과 치적으로 우매한 정치권과 국민의 기를 제압한다. 그 점에 있어서도 장기표 대표는 수출이 증가되는 만큼 실업자가 증가되고 빈부의 격차가 심화되는 사회적 갈등의 구조를 정확히 예측 진단하여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대안을 제시하는데 국가정책에 관심 있는 나로서는 매료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의 저서 한국경제 이렇게 해야 산다. 로 이제 국민에게 호소하고 저 하는 것 같다.) 장기표 대표의 장점은 침묵하는 재야가 아니라 새로운 행복한 이상세계를 향한 정책의 제시와 이에 실현을 위한 정치적 도전을 끊임없이 해왔다는 것이다. 불가능하다는 신생정당창당이나 정당의 참여를 측근들의 만류를 뿌리치고 항상 약자나 약세의 길을 마다하지 아니하고 불가능에 도전하는 개척자의 험난한 길을 걸어 왔다. 흑자들은 정치나 정책을 실현하려면 기존 정당을 선택해야 된다고 조언한다. 그것은 최선의 차선책이 될지는 모르지만 박세일교수의 탈당에서 보듯이 그건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마지막 재야인사도 그냥 된 것이 아니다. 수없는 현실에 대한 유혹과 측근들의 만류와 내외에 환경을 이겨내고 측근들과 많은 지인들을 떠나보내고 서야 얻어진 귀하고 명예로운 이름이다. 이제 재야인사는 장기표 대표를 마지막으로 사라질지 모른다. 참으로 다행한 일이지만 그가 주장하는 신문명정보화 시대는 바로 세가 없고 측근이 없고 과거와 달리 이상만 가지고는 정당도 만들 수 없는 자본주의 암벽에 부딪친 현실에서 그의 이상 즉 시대적 유일한 대안이라 믿고 있는 신앙과 같은 그의 정책이 세상에 널리 알려지고 이 땅에 재야인사라는 말도 사라지게 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신문명 정보화시대의 강점이며 희망이다. 그런 날이 실현되기를 우리는 고대하며 기다리는 것인데 결코 불가능 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어느 대학 노교수의 말이 생각난다. 이 나이에 한나라당이나 열린당에 기웃거리지 않고 장기표라는 역사에 대한 시대적 고민을 평생 동안 몸으로 실천해온 도덕적이고 양심적인 장기표 대표와 교제하고 정치를 하게 된 것이 친구들에 당당하다는 그의 말에서 명예로운 자부심을 느낀다. 어두운 시대에 묵묵히 일하여 부나 명예를 얻은 사람이 그것을 누리는 것에 대하여 이의를 달지 않고 존경하지만 그것으로 정치를 좌지우지하거나 정치적 환경에서 우위를 점하고 오늘의 장기표 대표나 그를 따르는 인사들을 폄하하는 것은 참기 어려운 모욕이다. 그가 영원한 재야인사로 남아있는 한이 있더라도 역사는 결코 그를 실패한 정치인으로 보지 않을 것이다. 보다 많은 사람들을 위하여 행복한 사회를 만들기 위한 노력으로 불가능에 도전한 사람으로 평가를 하리라 믿는다. 그러므로 영원한 재야인사가 되든 아니든 장기표 대표는 영원히 남을 것이다. 그게 아나 라면은 시대가 마지막 재야인사를 필요로 하여 부를지 누가 알겠는가. 그것이 역사의 부름을 위한 준비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
출처: 신 망 예(전제웅) 원문보기 글쓴이: 信 望 禮