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불하고 절하는 이유
몸으로[身], 말로[口], 생각으로[意] 지은 세 가지 업[三業]을 한꺼번에 녹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일상을 통해서 짓는 모든 업은 이 세 가지를 통해서 이루어지게 됩니다.
몸으로는 살생과 도둑질과 음행을 하고,
입으로는 거짓된 말, 이간질하는 말, 험한 욕지거리, 교묘하게 꾸미는 말을 하며,
마음으로는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으로 인해 헤아릴 수 없는 업을 짓게 됩니다.
이른바 열 가지 나쁜 일[十惡業]이라고 하는 것이 다 몸과 말과 생각을 통해서 이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 악업을 제거하지 않고는 우리의 삶이 건강하고 행복해질 수가 없습니다.
본래 부처인 우리가 중생으로 전락해버린 것도 몸과 말과 생각으로 지은 악업 때문입니다.
이 악업을 소멸시키는 것이 수행이고 정진이며,
이 수행 정진을 통해서 우리는 본래 부처를 회복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 가장 빠르고도 확실한 방법이 절하며 염불하는 염불과 절 수행입니다.
염불은 입으로 지은 업장을 녹이는 데 가장 좋고,
절은 몸으로 지은 업장을 녹이는데 가장 뛰어나며,
절하는 몸과 염불하는 마음이 하나가 되면 마음으로 지은 업장이 왕창 녹아내리게 됩니다.
시간이 많다면 이 세 가지 업을 하나씩 따로따로 녹여도 되겠지만
그럴 수 있을 만큼 우리 인생에 주어진 시간이 많지 않을 뿐만 아니라.
설령 시간이 많다고 해도 굳이 따로따로 녹일 필요도 없습니다.
한꺼번에 녹이는 것이 여러모로 유리하고 또 좋습니다.
그래서 절하며 염불하는 것이 좋다는 것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마음으로 하는 것이지만,
모양 없는 마음은 모양 있는 몸을 통하지 않고는 표현할 수 없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몸을 통하지 않고 악업을 소멸시킨다는 것은 이치로만 가능할 뿐 실제로는 불가능합니다.
몸은 물과[水] 불과[火] 바람[風]과 흙[地]의 성분으로 구성된 물질적인 집합체인 동시에
지각하고 판단하고 행동하는 온갖 마음이 함께 깃들어 사는 번뇌의 곳간이기 때문입니다.
몸의 수고로움이 없는 수행은 대부분 헛된 수행이 되기 쉽습니다.
몸과 마음은 둘로 분리될 수 없는 하나임을 확인하기 위해서라도 절하고 염불해야 합니다.
몸이 곧 마음이고 마음이 곧 몸이기에 절하며,
염불할 때 업장 소멸은 물론 부처님의 한량없는 위신력(威神力)을 내 몸과 마음에 갖출 수 있습니다.
[ 법보신문 853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