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장성군 북일면 금곡영화마을 | | ⓒ2004 김규환 | | 지난 주말 예정에 없던 여행을 떠났다. 몇 달째 고향 인근을 밟아보지 못해 좀이 쑤시던 차 마침, 아내가 주5일제로 주말에 근무를 하지 않아 집에서 푹 쉰다고 한다. 남들이 쉬면 같이 쉬고 싶은 게 수많은 자영업자 또는 자가발전을 해야 하는 나 같은 사람이다. 전날 밤 늦게까지 술잔을 기울였음에도 평소처럼 일어나자마자 눈을 비비고 일어났다.
“여보 오늘 뭐할 거요?”
“그냥 쉬려구요.”
떡본 김에 제사 지낸다고 난 느닷없이,
"서울에서만 너무 있었더니 안 되겠수. 우리 밑에 좀 갔다 옵시다."
“싫어요. 몸이 좋지 않아 아이들 어린이집 보내고 잠이나 푹 잘라고 하는데….”
“그러지 말고 갑시다. 이번에 갔다 오면 오히려 몸도 좋아질 걸. 거기다 온천에도 갔다 옵시다.”
아내는 온천욕을 꽤 좋아한다. 나는 몇 번이고 가자고 졸랐다. 갔다 오면 신혼 초처럼 더 열심히 잘하겠노라고 했다. 갔다 온 다음에 치러야 할 약조가 부담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지만 몇 가지 조건을 걸고 고향 쪽을 향해 떠났다.
아직 술과 잠에서 완전히 깨지 않았으면서도 이것저것 챙기고 보니까 아침 9시쯤이었다. 경부고속도로에 접어들었다. 조금 일찍 출발했더니 막힘없이 잘 빠져나간다. 서울을 갑자기 뜨려고 한 건 두 가지 이유가 있었다.
| | ▲ 금곡마을 작년 가을걷이에 함께하면서 | | ⓒ2004 김규환 | | 한 가지는 그냥 서울을 뜨고 싶은 거고 또 한 가지는 어릴 적 이 때쯤 겪었던 일들이 지금은 어떻게 펼쳐져 있을까 궁금해서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가능한 체험하고자 하는 생각 때문이다. 일모작 하느라 분주한 들녘, 그것도 산골짜기 작은 마을에 가고 싶었다. 재충전을 하지 않으면 <김규환의 고향이야기>는 더 이상 없을 것 같은 절박감 때문이었다.
하지만 요새는 농사일이 대체로 빨라져 그걸 볼 수 있을까 걱정이었다. 행여 새참 시간을 놓칠까봐 서둘러 갔다. 중간에 잠시 쉬는 것 빼고 마구 달렸다. 천안-논산 간 고속도로를 거쳐 호남에 접어들어 여산을 거쳐 전주, 정읍을 넘으니 전라남도다. 백양사 나들목으로 나가려다 잘 아는 장성으로 빠져 나갔다.
| | ▲ 먹음직스런 뱀딸기-먹어도 상관없지만 하얀 거품, 개미 침 때문에 잘 먹지 않습니다. | | ⓒ2004 김규환 | | 장성 출신 거장 임권택 감독이 만들다시피 하여 마을엔 전봇대가 보이지 않고 70년대나 보았던 시골마을 정취를 간직하고 있는 금곡영화마을이 있다. 그곳에선 영화 <태백산맥>과 <내 마음의 풍금> 그리고 드라마 <왕초> 따위를 찍었다. 아직도 그 마을은 경지정리를 하지 않아 십여 평짜리 논이 있다.
봄에는 못줄을 띄워 손으로 모내기를 하고 가을걷이는 낫으로 베어 낟가리를 지게에 져다 옮기고 오래된 탈곡기에 추수를 하는 우리 나라에서 몇 안 되는 농경문화를 간직한 내 마음의 고향과도 같은 곳이다.
장성에 접어들자 고려시멘트 공장이 보이고 자그마한 읍내를 지나 고창으로 향하는 길을 따라가니 들 절반은 모내기를 해놓았다. 경작지 중 2할은 보리가 누렇게 익어간다.
“해강아 솔강아 저게 뭐 게?”
해강이는 말귀를 잘 알아듣는 네 살이라 곧 말을 받는다.
“아빠, 뭐?”
“응, 저기 노란 것 말야. 보리밭이야.”
“응?”
“보리밭! 우리 지난 번에 보리밥 먹었지? 저기서 보리가 나오고 밥을 하면 보리밥이 되는 거야.”
| | ▲ <태백산맥>과 <내마음의 풍금> 그리고 <왕초> 촬영지 | | ⓒ2004 김규환 | |
| | ▲ 물고기가 보이나요? 예전 천렵하던 일이 생각이 났습니다. | | ⓒ2004 김규환 | | 차를 서서히 몰면서 거기까지 이야기를 하자 해강이와 솔강이가 “야-”를 동시에 내뱉었다. 좌회전을 받으려고 대기하던 중 호남선에 화물 열차가 지나갔다.
“야 저기 기차 지나간다! 엄마, 아빠한테 노래 불러줄래?”
말이 떨어지기도 전에 네 살, 세 살 아이 둘이서 노래를 부른다. 평소 지저귀던 아이들 목소리가 갑자기 세 배는 커졌다. 가족 넷이서 함께 차창을 열고 목청껏 노래를 불렀다.
“기찻길 옆 오막살이 아기아기 잘도 잔다. 칙 폭 칙 폭 칙칙폭폭 칙칙폭폭 칙칙폭폭 기차소리 요난(?)해도 아기 아기 잘도 잔다.”
“야 우리 해강이 솔강이 잘 한다. 2절~”
“기찻길 옆 옥수수 밭 옥수수는 잘도 큰다. 칙 폭 칙 폭 칙칙폭폭 칙칙폭폭 칙칙폭폭 기차소리 요난(?)해도 옥수수는 잘도 큰다.”
“정말 잘 하죠 아빠!”
“그럼요. 우리 해강이 솔강이가 얼마나 잘 하는데요.”
이번 여행을 떠난 뒤로 솔강이는 <나비야>와 <기찻길>을 혼자서도 곧잘 부른다. 거기다 “솔강이는 누구 아들이야?” 하면 또렷하게 “엄마 아들”, “아빠 아들” 하고 말해 즐거움을 주었다.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게 아이들이라고는 하지만 오랜만엔 가족 여행을 떠난 수확이기도 했다.
| | ▲ 논마다 자운영이 활짝 피어 지려합니다. | | ⓒ2004 김규환 | | 산만 넘으면 전북 고창군이다. 국립과학수사연구소를 지나 산을 넘기 전 작은 길로 접어들자 주변은 40년 가까이 된 삼나무와 편백나무 숲으로 둘러싸여 있다. 소로로 접어들어 주위에 펼쳐진 풍경을 두고 더 달리자 금곡마을이 눈앞에 펼쳐진다.
몇 해 전, 산일할 때 가보고 지난해에 두 번이나 이곳을 찾았다. 영화마을 입구엔 오래된 느티나무와 그 그늘아래에 꽤 큰 정자가 만들어져 있다. 우릴 반기는 건 뱀딸기였다. 아이들에게 하나씩 손에 들려줬다. 멀리서 보아도 마을은 60~70년대 분위기다. 전깃줄 하나 보이지 않고 초가집이다. 주변 논은 구불구불. 이제 막 논갈이를 끝내고 모내기 할 준비에 바쁘다.
아내와 나는 각자 아이들을 하나씩 업고 지난해 가을에 벼 베기를 잠시 도왔던 다락 논으로 향했다. 논두렁길을 걷자 개구리가 몇 마리 튀어가고 이제야 그곳엔 때죽나무가 하얗게 피었다. 계속 위로 오르는데도 아랫녘과 달리 논갈이도 해 놓지 않았다.
“이상하네, 여긴 올해 농사를 짓지 않으려나 보네요. 여기서 나락 베었는데.”
“정말 논이 작아요.”
“이런 좁은 땅에서도 자식들 뒷바라지 다 했다고 그럽디다.”
| | ▲ 모판을 경운기에 실어 나릅니다. | | ⓒ2004 김규환 | |
| | ▲ 산비탈 다락논을 이앙기로 어르신 혼자 모를 내고 있더군요. 도울 일이 없어 아쉬웠습니다. | | ⓒ2004 김규환 | | 자운영이 지기 직전인지라 까만 씨를 덕지덕지 매달고 있다. 도랑엔 오랜만에 본 무척 큰 물고기가 인기척에 놀라 숨기 바쁘다. 아이들과 구경을 하고 다시 내려와 마을을 잠시 구경했다.
세시 즈음 마을 주변엔 못자리가 아직 즐비하고 논갈이가 한창이다. 통통통 경운기 소리 요란하고 이앙기를 차로 실어내느라 분주하다. 아주머니는 논바닥을 평평하게 고르고 아저씨는 모판을 나른다.
그런데 기대했던 손모는 보지 못할까 걱정이었다.
“어르신 오늘 모내기 하는 곳 없나 봅니다.”
“쩌기 안 보이요?”
“어디요? 잘 안 보이는데요.”
“이 농로를 따라가다 보면 보일 것이요. 근디 차는 못 돌린께 여기다 두고 가세요.”
“감사합니다.”
푹푹 찌는 날이라 아내는 차에 솔강이와 남아있겠다고 한다. 해강이를 데리고 냇가를 따라 내려가니 노란 꽃창포가 지천이었다. 아이에게 꽃을 하나 꺾어주니 두말 않고 잘도 따른다. 이삼백 미터 걸으니 머리가 하얀 어르신 혼자서 다랭이 논에 이앙기로 모를 심고 있었다.
지나가는 객이 꼬마아이 손잡고 인사를 하니 어르신은 잠시 아는 체를 해주고는 하던 일을 계속한다. 다시 길 따라 올라오니 솔강이와 아내가 터벅터벅 걸어오고 있다. 저 멀리서 본 솔강이는 즐거운 표정이다. 나비가 보이자 팔을 양쪽으로 펴서 어깨를 나란히 하며 나비 주위를 맴돈다.
허나 손 모내기를 보러 온 첫 목적이 이뤄지지 않아 아쉬움을 뒤로하고 서둘러 마을을 빠져 나왔다.
| | ▲ 해강이 솔강이는 마을 입구 정자에 가지런히 신발을 벗어놓고 내려올 줄을 몰랐답니다. | | ⓒ2004 김규환 | |
| | ▲ 마을을 빠져 나오는 길에 본 풍경-바삐 이앙기를 옮기고 있습니다. | | ⓒ2004 김규환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