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크라테스가 “너 자신을 알라”고 말하기 100년 전, 동양에는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는 것이 진정한 앎이다”라는 진리를 펼친 사상가 공자가 있었다. 한비자는 마키아벨리가 <군주론>보다 1천 년 전에 법가사상을 집대성했다. 유럽의 영웅 알렉산드로스 대왕과 나폴레옹이 점령한 나라를 모두 합쳐도 칭기즈 칸의 대제국에 미치지 못한다. 우리는 어쩌면 서양의 프레임으로 동양을 바라보고 있는 것 아닐까.
동양 사상의 뿌리가 된 대표 사상가 공자·노자·한비자의 이야기를 부모와 자녀가 함께 읽기 쉽도록 대화체로 풀어봤다.
취재 김한나 리포터 ybbnni@naeil.com 도움말 박남희 교수 (연세대학교 철학연구소)·유순덕 관장(대치도서관)
‘동양 철학’ 하면 여러분은 무엇을 떠올리나요?
혹시 “도를 아십니까?”라며 다가오는 사람이나 점쟁이를 떠올리지 않나요? 동양 철학의 이미지가 이리 실추된 것은 ‘ 자연(自然)’에서 발원했기 때문 닐까 해요, 서양 철학의 발원이 호‘ 기심’에 기반한 실용주의라면 동양 철학은 자신을 돌아보고 성찰해 마음가짐을 가지런히 하는 명상적 요소가 큽니다. 실용성을 우선하는 현대에 외면당하게 된 것이지요. 얼마나 많이 가졌는가를 두고 서로 비교하고 승패를 가르는 지금, 동양 철학을 제대로 알아야 하는 이유가 여기 있어요. 사람을 귀하게 여기고 자연 속에서 행복을 추구하는 법을 일깨워주는 동양 철학은 치열한 삶에서 자신을 지키는 힘을 줄 겁니다.
_박남희 교수
끊임없이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자, 공자
평생 성공과는 거리가 멀었으며 본인이 꿈꾸는 이상을 정치에 적용해볼 기회를 잡는 데 실패했던 공자. 가난한 삶 속에서도 세속적 가치에 물들지 않고 사람이 어떻게 하면 더 가치 있는 삶을 살 수 있을지에 대해 평생 고민했다. 백성의 삶이 존중받으려면 군주는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하는지를 탐구하며 현재의 삶과 사람을 중심에 둔 철학을 태동시켰다.
‘공짱구’로 태어나 ‘동양의 스승’이 되다
먼저 제 소개를 하지요. 제 성은 공, 이름은 구(언덕 丘)라고 하지요. 무슨 이름이 언덕이냐고요? 제 이마를 좀 보세요. 엄청 튀어나와 있죠? 제가 태어나자 부모님께서 제 이마를 보시고는 ‘공짱구’라고 붙여주셨답니다. ‘공자’라는 이름은 훗날 큰 스승(자 子)이라는 뜻으로 붙여진 것이지요. 저는 춘추시대 노나라에서 73살의 아버지와 16살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답니다. 아버지는 제가 3살 무렵 돌아가셨고 어머니와 저는 말할 수 없이 힘든 삶을 살았지요. 30살이 될 때까지 안 해본 일이 없었어요. 춘추시대는 먹고살기가 말도 못하게 힘든 시기였죠. 전쟁이 난무하고 백성들은 당장 먹을 식량마저 부족했어요. 저는 그 혼란 중에도 출세나 재물과 같은 세속적 가치에 물들지 않고 저와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이 어떻게 하면 더 가치 있는 삶을 살 수 있을지 고민했어요. 백성들의 삶이 존중받기 위해서 군주는 어떠한 자세를 가져야 하는지도 탐구했죠. 그러나 당장 권력에 눈이 먼 제후들이나 굶주린 백성들은 저의 큰 뜻을 받아들이지 않았답니다. 현실성이 없다나요?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멈추지 않고 제자들을 가르치며 일생을 보냈더니 제가 죽고 난 후에는 저의 사상이 동양에서 가장 널리 퍼진 사상이 돼 있더군요.
인(仁)·예(禮)를 말하는 유가 사상을 만들다
춘추전국시대는 각국이 패권을 차지하기 위해 전쟁이 멈추지 않던 시기였죠. 여러분이 도덕책에서 배우는 동양의 거의 모든 사상이 이때 나왔다고 보면 됩니다. 부국강병을 위해 끊임없이 사유했고 혼란 속에서 인간다움을 잃지 않기 위해 자신을 지켜내는 것을 치열하게 고민했던 시기지요. 제가 찾은 답은 ‘사랑(인 仁)’이었습니다. 하늘은 인간의 마음속에 사랑을 심어 줬어요. 또한 사람과 사람 사이에 지켜야 할 ‘예의(예 禮)’가 있어야 평화가 온다고 주장했죠. 한마디로 모두가 도덕적 인간이 돼야 한다는 것입니다.
치열하게 싸우는 전쟁터에서 사랑과 예의를 부르짖다니,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요? 곰곰이 생각해보세요. 제 가르침이 틀렸다면 2천500년이나 살아남아 동양에서 가장 강력한 사상이 되진 않았을 겁니다. 당시 군주들은 자신의 생각이 곧 국가의 생각이었고, 자신들이 일으킨 전쟁에 당연히 백성들을 동원해야 한다고 여겼어요. 저는 거기에 정면으로 반박한 겁니다.
‘백성의 말에 귀를 기울여라!’ 지금이야 너무 당연한 말이지만 백성을 사람으로 보지 않던 그 시대에는 혁명적인 발언이었어요. 이 민본주의 사상이 동양 철학의 모든 흐름이 됐답니다. 이런 제 가르침에 가장 큰 영향을 받은 나라가 바로 조선입니다. 유가의 한 갈래인 성리학으로 500년을 지탱했으니까요. 그래서인지 모르겠지만, 지금도 그 땅의 사람들은 그릇된 지도자를 물러나게 하고, 정의를 추구하는 데 열심인 것 같아요. ‘동방예의지국’인 대한민국에서 꿈을 향해 달리고 있는 여러분을 응원합니다.
대치도서관장 추천 도서
논어
지은이 공자 펴낸곳 휴머니스트
난세를 살아내며 바른 정치의 이상을 추구했던 공자의 지혜를 들어보자. <논어>는 세계인의 고전이라 불린다. 청소년도 읽기 편하도록 한자와 사자성어의 독음을 달고 해석을 수록했다. 매끄러운 번역으로 가독성을 높인 것도 장점이다.
“벼슬자리 하나 차지하지 못했는데 세대가 열 번이 바뀌어도 학자들이 따르니, 공자는 참으로 최고의 성인이라고 말할 수 있다.” - 사마천
세상에 휩쓸리지 않고 흐르는 물처럼 살다, 노자
노자의 삶에 대해서는 잘 알려져 있지 않으나 그는 전국시대 초나라 사람이라 전해진다. 주나라 황실의 도서관장을 지냈는데 나라가 무너지는 것을 보고 은거(은둔)를 결심하고 떠났다. 떠나는 도중 국경을 수비하던 윤회가 가르침을 구하니 그 자리에서 대나무로 엮은 죽간에 5천 자를 써 줬는데 그것이 바로 <도덕경>이다. ‘무위자연’ 도가 사상의 창시자이다.
자연을 발견하다
전란에 휩싸인 춘추전국시대, 사람들은 하루하루 먹고살기 바쁘고 전쟁에 끌려나가기 일쑤였죠. 저도 이러한 혼란기에 공자 선생처럼 일시적이지 않은 ‘영원한 가치란 무엇인가’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했답니다. 그때 ‘자연’을 발견했습니다. 아침이 되면 해가 뜨고, 해가 지면 저녁이 오고, 봄이 가면 여름이 오고 또 가을과 겨울이 어김없이 찾아오죠. 사람이 태어나면 자라고 늙고 병들어 죽는 것, 자연의 ‘저절로 그러한’ 모습이야말로 어떤 흐름이나 원리가 담겨 있다고 본 저는 그것을 ‘도(道)’라고 이름 지었습니다.
뜬구름 잡는 말 같다고요? 제 도가 사상은 당시 사상가들에게 큰 충격을 줬답니다. 특히 공자 선생의 유가에 말이죠. 도가는 유가 철학에서 신성시한 하늘을 그저 자연법칙으로 봤거든요. 하늘은 인간에게 특별한 관심이 없어요. ‘자연은 그저 자연일 뿐’이죠. 여러분이 지금 사용하는 단어 ‘자연(自然)’이라는 말도 제가 쓴 <도덕경>에서 나온 것이랍니다. 자연의 진정한 뜻은 ‘아무런 꾸밈이 없는 상태’를 말해요. 도가에서는 인간의 의지나 욕구와는 관계없이 존재하는 자연의 가치와 아름다움을 인정하고 귀하게 여기죠. 마치 그리스 신화 속에 격식 없이 즐겁게 사는 신, 디오니소스가 떠오르지 않나요?
도가도 비상도, 명가명 비상명(道可道 非常道 名可名 非常名)
무슨 주술 같다고요? 혹시 낯선 사람이 다가와 은밀한 목소리로 “도를 아십니까?”라고 묻던 경험, 한 번쯤 있으시죠? 앞으로는 그 사람들에게 위의 주술을 들려주세요. 조용히 물러날 겁니다. 윗 구절은 ‘도를 말로 표현하면 그것은 항상 그러한 도가 아니며, 이름을 이름 하면 그것은 항상 그러한 이름이 아니다’라는 뜻이랍니다.
어렵게 느껴진다면 풀어서 설명해볼게요. 유가에서 도(道)는 하늘의 이치, 인간의 도리지만, 도가에서 도(道)는 우주의 근본 원리이이며 인간의 감각이나 인식을 초월한 것으로 만물의 근원이자 한 단어로 이름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인위적이지 않은 저절로 그러한 상태, 있는 그대로 아무 꾸밈없는 상태 즉 자연이 바로 도인 것이죠.
제 생각에 세상이 어지러운 이유는 그릇된 인식과 가치관,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사회제도 때문이에요. 이러한 문제의 해결을 고민해보니 있는 그대로의 자연 즉 ‘무위자연’이라는 답을 얻었죠. 유가가 이상적 인간상을 완벽한 도덕적 인격체로 보고 인간의 자연적 본성을 무시했다면, 도가는 인간의 자연적 본성을 중시하며 가장 이상적인 인간상을 ‘순진무구한 어린아이’로 봅니다. 아주 어릴 적 기억을 한 번 떠올려보세요. 성적이나 외모를 신경 쓰지 않고, 마냥 행복하지 않았나요? 인간이라면 그렇게 살아야죠! 그게 자연적인 것입니다. 교육 정책이 바뀔 때마다 혼란스럽죠? 인위적으로 무언가를 하려 하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저는 사람은 악하니 옛 성현의 가르침을 강제로 주입해야 한다는 순자, 인의(仁義)를 강조한 맹자, 그리고 인(仁)을 소리 높여 외친 공자에 모두 반대합니다.
대치도서관장 추천 도서
노자, 비기를 전수하다
지은이 윤지산 펴낸곳 탐
도기, 담혜, 지상이 스승 노자가 고통 받는 백성들을 위해 써내려간 ‘비기’와도 같은 <도덕경>을 세상에 전하기 위해 애쓰는 모습을 담았다. 그 과정 자체가 노자의 가르침을 몸으로 겪고 마음에 새기는 수련임을 주목하자.
“용의 이름은 아나, 어찌 바람과 구름을 타고 하늘로 오르는지 알지 못한다.
오늘 만난 노자는 마치 용과 같구나!” - 공자
시대를 앞서간 비운의 사상가, 한비자
전국시대 말기, 약육강식이 공공연하게 펼쳐졌다. 한비자는 유가의 인의(仁義)의 정치, 덕에 의한 통치는 이러한 시대에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한비자가 강조한 법치는 ‘법에 의한 통치’다. 오늘날 민주사회의 ‘법치’를 2천500년 전에 주장한 것이다. 한비자의 주장을 받아들여 적용한 사람이 중국 최초의 통일국가 ‘진’을 세운 진시황이다.
영원히 부정당하는 이름, ‘한비자’
제 이름은 진시황 덕분에 더 널리 알려졌어요. 춘추전국시대를 끝내고 중국 최초의 통일 국가를 만든 황제, 진시황은 저를 높이 평가했거든요. 그래서 진시황을 만났냐고요? 물론이죠. 대단한 황제가 제게 엄청난 권세를 줬을 것 같나요? 아쉽게도 저는 그를 만나고 더 이상 이 세상 사람이 아니게 됐답니다. 진시황의 신하이자 제 동문이었던 이사가 제가 진시황의 사랑을 독차지할까 두려워 모함하는 바람에 억울한 죽음을 맞았죠.
저는 당시 약소국이었던 한(韓)나라에서 태어났어요. 다들 ‘한자(韓子)’라고 불러, 진짜 이름은 잊어버렸어요. 그런데 왜 한비자(韓非子)로 개명했냐고요? 저를 싫어한 사람들이 그렇게 부르기 시작했고 어쩌다 보니 지금은 그게 제 이름처럼 불리고 있네요. 유교를 비판한 저를 공자와 같이 ‘자’로 부를 수는 없다며 훗날 유학자들이 한비자(한자가 아닌 자)로 불렀거든요.
<사기>의 작가 사마천도 저를 미워했다죠. 제가 피도 눈물도 없는 강력한 법을 주장해 본인이 궁형(남성의 생식기를 잘라내는 형벌)에 처했다는 생각이 들었나 봐요. 그래서 책 속에서 저를 말더듬이에 자비심 없는 냉혈한으로 표현해 아직도 오해를 받고 있어요. 펜은 칼보다 강하다는 말이 딱 맞네요. 사실 저는 약소국이었던 제 나라를 지켜내고 당시 사람들의 안녕과 평화를 지킬 방법을 밤낮으로 고민한 인정 많은 사람이랍니다.
명명백백하고 공평한 법(法)이 필요
제가 왜 이렇게 공명정대한 법치를 주장했는지 들려줄게요. 저의 스승인 유가의 순자(성악설)는 인간의 본성은 악하기에 예(禮)를 강제로 주입하면 선하게 바뀔 수 있다고 하셨어요. 저도 스승의 성악설에는 동의합니다만, 인간이 달라질 수 있다고는 믿지 않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태어날 때부터 이기심을 갖고 있어요. 선악을 떠나 강하지 않은 인간이 생존하려면 어느 정도의 이기심은 필요하다고 봐요.
문제는 이기심으로 다른 사람을 해롭게 하는 데 있어요. 생각해보세요. 부모가 아이를 학교도 보내지 않고 돈벌이를 시키면 어떻게 될까요? 지금은 말도 안 돼는 일이지만 제가 살던 때엔 자녀를 혹사시키는 부모를 말릴 수 있는 방법이 없었어요. 또한 귀족이 일반 시민을 함부로 대해도 처벌을 제대로 못했죠. 이렇듯 이기심이 잘못 쓰일 때를 대비해 저는 누구에게나 공평하고 엄정한 법을 주장한 겁니다. 이래도 제가 냉혈한인가요?
위대한 스승, 공자의 유가를 비판한 것도 접니다. 군주는 훌륭한 인격으로 신하들을 감화시켜 마음을 다해 따르게 해야 하며, 그 신하들 역시 훌륭한 인품으로 백성의 마음을 움직여 스스로 따르게 해야 한다는 말씀, 옳습니다. 하지만 어느 세월에? 안타깝게도 저의 법가는 통일 이후에 외면을 받게 되요. 나라가 하나가 되면 유가에서 말한 대로 신분질서를 유지하는 게 더 중요한 일이 되니까요. 그래도 어느 정도는 저에 대한 오해가 풀리셨지요?
대치도서관장 추천 도서
한비자가 들려주는 상과 벌 이야기
지은이 임옥균 펴낸곳 자음과 모음
법에 의해 공정하게 원칙이 지켜지고 상과 벌로 다스려지는 나라, 구시대적 유산을 청산하되 관용의 정신을 수반한 법치주의의 적용을 꿈꾼 한비자. 현실 정치의 개혁을 추구하며 올바른 법으로 강하고 아름다운 나라를 꿈꿨던 그를 만나보자.
“한비자야말로 내가 오랫동안 찾아 헤매던 자다. 그와 교류할 수 있다면 여한이 없겠다!” - 진시황
미즈내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