法師品(법사품) 第十
2. 범인(凡人)이 경전을 수지(受持)한 공덕 (1)
‘수지受持’ 받아 지니다 라고 하는 말입니다.
종이와 먹으로 된 이 경전을 수지라고 생각해야 됩니다.
이 경전을 가지고 다니는 것도 수지라고 이해해야 됩니다.
여기에 수지라고 하는 것은 경전을 가지고 다니는 것을 뜻합니다.
가지고 다녀야 보게 되고, 보게 되면 읽게 되고, 읽게 되면 외우게 되고,
그러다 보면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도 해줄 수도 있지요.
그래서 휴대용 경전이 얼마나 많습니까?
만약 어떤 사람이 묘법연화경을 받아 지니고,
이것이 ‘수지’입니다. 오종 법사 소개입니다.
읽고 외우고 해설하고 쓰되 내지 한 구절이라도 그렇게 하며,
읽고 ‘독讀’, 두 번째 외우고 ’송送’, 세 번째 ‘해설’하고,
네 번째 쓰되, 다섯 번째 ‘사경’이지요.
‘쓰되’라는 말 속에는 출판하고 쓰고, 염화실에서 ‘경전 한 구절 쓰기’
여기에도 모두 오종 법사에 의미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또 이 경전을 공경하기를 부처님과 같이하여
갖가지 꽃·향·영락·가루 향·바르는 향·사르는 향·일산·당기·번기·의복·
풍악으로 공양하거나,
여기 돈이라고 하는 말은 없는데 돈도 좋아요.
이 당시는 그렇게 화폐가 일반화 되지 않아서 아마 그랬는지 모르겠습니다마는,
여기에 향이라든지 가루 향·바르는 향·사루는 향,
그 쪽 인도 지방에 향이 얼마나 발달했습니까?
향 그것은 어떤 돈보다 가치 더 있는 거지요.
이런 값있는 것으로 공양 하거나,
내지 합장하고 공경하면,
약왕이여, 마땅히 알아라.
이 사람들은 이미 십만 억 부처님께 공양한 것이니라.
이 경전을 공경하기를 부처님과 같이하여
경전에 꽃·향·영락·가루 향·바르는 향 이런 것들을 공양한다.
이렇게 법화경에 공양 하는 것이 십만 억 부처님께 공양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법화경과 인연을 맺어서
법화경을 공부하는 여러 법우님 들은, 사실은
여러 부처님계신 데서 큰 서원을 성취하고
중생들을 어여삐 여기어서, 이 인간에 태어난 줄을 알아야 하느니라.
그런 나도 모르는 과거의 원력이 있었기에
오늘 우리가 이렇게 이런 시간을 갖고 법화경 공부를 하는 것입니다.
법화경 잘 위해야 되요.
그래서 경중의 왕이라고 합니다.
약왕이여, 만약 어떤 사람이 묻기를,
‘어떠한 중생이 오는 세상에 부처님이 되겠느냐?’ 고 하면,
‘이러한 사람들이 오는 세상에 반드시 성불하리라.’ 고 대답하라.
왜냐하면, 만일 선남자·선여인이 이 묘법연화경에서
내지 한 구절이라도 받아 지니고 읽고 외우고 해설하고 쓰며
갖가지로 이 경에 공양하되, 꽃·향·영락·바르는 향·사르는 향·일산·당기·번기·
의복·풍악으로 하거나 합장하고 공경하면,
이러한 사람은 일체 세간 사람들이
응당히 우러러 받드는 바가 되느니라.
이러한 사람에게는 응당히 여래에게 공양하듯이 공양해야 하느니라.
이러한 사람이라면 법화경을 수지 독송하고 외우고 해설하고 쓰는 사람
법화경을 일차적으로 가지고 다니는 이런 사람들이 성불하지,
그 외 사람이 성불한다는 사람 못 들었다.
좀 강하게 표현하면 그렇다는 뜻입니다.
마땅히 알아라.
이 사람은 대보살로서 최상의 깨달음을 성취하였느니라.
중생들을 가엾게 여기어 이 세상에 태어나기를 원하여
묘법연화경을 널리 펴서 연설하고 분별하는 것이니라.
그런데 하물며 경전을 전부 받아 지니며 갖가지로 공양하는 사람이겠는가.
한 구절만 해도 부처님께 공양 하듯이 해야 하는데,
경전 전체를 우리가 공부한다고 하면 더 말 할 나위가 없지요.
그런데 요는 우리가 정말 부처님의 마음, 법화경의 마음
이것을 잘 읽고 거기에 우리가 마음이 개합이 되어야 합니다.
딱 맞아 떨어져야 되는 것입니다.
지금도 여법한 법당에 가보면 부처님을 정면에 모시고
좌우에 경전을 반드시 모셨어요.
한쪽에는 화엄경을, 또 한쪽에는 법화경을 모셔 놓았으면,
제대로 갖추어서 모셨다 이렇게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부처님을 조성해서 복장이라고 그러지요.
부처님 조성한 속은 비었으니까요.
나무로 하든, 철로 하든, 돌로 하든, 속은 대개 비게 마련입니다.
그렇게 비면은 그 속에 정말 부처님 다웁게 하기 위해서는
부처님의 가르침이 있어야 됩니다.
가르침은 무엇을 대신할 것인가? 경전을 대신 합니다.
반드시 부처님을 조성하고 거기에는 법화경을 제일 많이 모시게 됩니다.
왜냐하면 법화경은 7권이니까 어지간한 불상 복장에는 들어가게 돼 있어요.
그렇게 해서 부처님 복장에 경전이 들어 있어야 가르침이 있는 부처님이다.
진짜 부처님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철칙입니다.
가르침이 있는 부처님이니까 살아있는 부처님이다 이 뜻이지요.
탑에도 사리가 없으면 경을 넣어라고 그렇게 되어 있고,
어떤 탑에는 지금도 경전이 사리 대신에 모셔져 있습니다.
사실 진짜 사리는 경전이지요.
부처님 가르침이 진짜 사리입니다.
그것이 우리에게 실지로 참 부처님의 역할을 하는 것이지,
유골이야 무슨 부처님 역할을 합니까?
사실 이 시대에 부처님 역할을 하는 것은 부처님 가르침이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경전을 법화경에서 이렇게까지 높이 받들어서 표현하는 것이
절대 무리가 아닙니다.
경전에 공양하는 것이 십만 억 부처님께 공양한 것과 똑 같다고 했으니,
이것도 내용을 잘 알고 보면 결코, 과장된 표현이 아니라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것을 이해하셔야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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