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y의 비극 - 유씨 부녀의 슬픈 사랑 이야기
(딴지일보 / 남가좌동 / 2010-09-06)
y의 비극
물적 증거를 중시하는 논리적 구조와 기발한 트릭으로 명성을 얻은 미쿡의 추리작가 엘러리 퀸은 세 편의 비극 시리즈를 남겼다. x의 비극, y의 비극, z의 비극. 이 중 오늘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y의 비극’이다.
<환상의 여인>,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와 함께 ‘세계 3대 추리소설’ - 이라는 출처불명의 리스트 - 로 칭송받는 작품이, 외려 엘러리 퀸의 적대자들로부터 가장 비난받는 작품인 것은 놀랍지만은 않은 일이다. 귀머거리 탐정 드루리 레인은 극의 종반에 이르러 사건의 진상을 파악하고 홀로 망연자실 하는데, 범인의 정체가 밝혀지면 독자 역시 (어이가 없어)망연자실할 참이다. 트릭과 반전의 골격을 먼저 세워놓고 비극의 옷을 억지로 입혀놓은 탓이리라. 비극이 달리 비극이랴.
듣자 하니 세간에 새로운 버전의 ‘y의 비극’이 풍문으로 떠돌고 있는 모양이다. 정신 나간 상류층 가족 패거리의 정신병적 작태를 그리고 있다는 점이 특히 유사하다. 원전에 비해 세월이 흐른 탓인지 가일층 한심하고 혐오스러운 서사로 무장한 채 국민들의 평화로운 정신생활을 유린하고 있다 한다. 게다가 이니셜만 대면 누구나 알 수 있는 자들이 주연을 맡아 고전적 비극의 풍모를 충실히 재현하고 있다니, 가히 고대 그리스 비극의 재림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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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무것도 뉘우치지 않을란다… (중략)… 병든 수캐마냥 헐떡거리며 나는 왔다. - 서정주 <자화상> 中, 본문과 관계없음. |
엘렉트라와 오이디푸스
소포클레스와 에우리피데스의 그리스 비극이 카타르시스를 이끌어내는 것은 운명에 대립하는 영웅적 인물들의 윤리적 몰락에서다. 안티고네와 오이디푸스를 비극적 결말로 한데 묶는 심리적 추동, 영웅을 운명에 대립하도록 만드는 것은 인간적 의지와 사랑이다. 이 둘은 욕망과 금기의 접점을 확인하는 윤리의 리트머스 시험지다.
원인이 있으면 결과가 있다. 한두 마디로 정의하기 어려운 저 ‘원인’, 자신은 움직이지 않으면서 세계를 비극의 격랑으로 몰아가는 부동(不動)의 동자(動者). 그것이 맑스에겐 물질적 이윤 동기였고 프로이트에겐 성욕, 그리스 비극의 세계에선 의지와 사랑이었던 것이다.
사랑은 어지간한 금기는 뛰어넘는다. 사랑이 비극으로 귀결되려면 넘을 수 없는 금기와 인간적 의지에 배반하는 신적인 의지가 존재해야 한다. 그렇기에, 사랑도 넘을 수 없다면 그것은 그 시대 윤리의 중핵일 터. <쌍화점> 연출의 변을 금기의 모색이라 못 박은 유하 감독은 이제 사랑이 넘을 수 없는 금기는 거의 사라졌다고 단언했다. 그래서 찾은 것이 동성애라는 금기였다고.
그러나 정말 그런가? 아니다. 다음을 보라.
다음날 출근한 현선 씨에게 “직접 전화하지 번거롭게 어머님이 전화를 하게 했느냐”고 타이르자, 현선 씨는 “아빠한테 전화해 달라고 했는데 엄마가 대신 한 것”이라고 대답했다고 함.
나는 저 짧은 문장에서 비극의 전조를 본다. 정상적으로 유치원을 졸업한 이라면 회사에 무단결근 해놓고 애비에게 대신 전화하라고 요구하지는 않는다. 서른이 넘은 과년한 딸의 이상행동에는 다 이유가 있다. 무단결근 사실을 ‘아빠’를 통해 통보하려 했던 딸은 가족 내의 성적 경쟁 구도에서 밀려난 두려움을 회사 동료들에게 털어놓음으로써 극복하려 하는 것이다. 자기 동일시에 실패한 딸에게 모친은 애비를 차지하기 위한 경쟁자에 불과하다.
관료적 위계가 갖는 선정적인 매혹은 딸이 나이를 먹을수록, 애비가 승진할수록 보다 깊어지고 노골적이 된다. 애비의 직장과 직함이 가진 매력은 애비 그 자신의 매력이 되고, 결국 직장에서까지 함께 있고자 하는 변태적 도착 증세를 낳는다. 보라, 당신은 당신의 연로한 부친 앞에서 근무 시간에 딴지질이나 하고 있는 따위의 모습을 보이고 싶은가?
가부장의 권위가 해체된 것은 산업사회의 윤리, 자본주의의 원리가 그것을 용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중세적인 가부장제는 지리적으로 분절된 공간 안에서 순차적으로 이어지는 위계질서였다. 그러나 자본주의 사회의 임노동자에게 가부장의 권위 따위는 거추장스러운 위세일 뿐. 따라서 거세 콤플렉스를 극복하지 못한 딸에게, 애비의 관료적 권위는 거부하기 힘든 매혹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아직 해체되지 않은 관료 국가의 질서. 이 질서의 정점에 오른 남자는 가부장제 이데올로기의 관점으로 보면 가장 섹시한 남자가 아닐 수 없다. 하물며 그 조직 말단 중의 말단, ‘비정규직’으로 일했던 딸의 마음에야.
애비는 이를 거부하지 않는다. 출가한 딸이 직장까지 찾아와 응석을 부리겠다는데, 엄히 꾸짖고 돌려보내기는커녕 여봐란 듯 당당하다.
‘장관 딸이니 더 엄격하게 심사했을 것’
아아, 환장할 정도로 섹시하다. 쾌락과 욕망 앞에 당당한 이 남자. 자신의 이드(id) 앞에 한 줌의 방어기제도 없는 이 남자. 통일 그런 거 모르겠고 북한 가서 살라 하는 이 남자. 전 법무부 장관에게 태연히 ‘미친놈’이라 말하는 이 남자. 이런 거(국회)는 없어져야 한다던 이 남자. 오로지 세 치 혀로 근대 입헌주의 기구를 제압하는 폭풍 같은 기백의 이 남자. 마초적 영웅의 귀환. 공직 윤리를 거스르는 운명적인 의지. 남근중심주의의 망령.
누가 저 등신 같은 뻔뻔스러움을 이길 것인가? 그러나 여기서 변수가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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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어보이지만 아마 이랬을 거란다. |
데우스 엑스 마키나 (deus ex machina)
애비와 딸년의 파멸적인 애정행각을 보다 못한 관객들이 이따위 극도 극이라고 세금 받아 처먹고 있느냐며 무대에 난입한다. 오물이 날아들고 배우들은 개처럼 얻어맞는다. 당장 무대가 무너질 것 같다. 이 와중에 애비는 당당하고 의연히 처맞고 있다.
자, 이쯤 되면 그가 등장할 차례. 데우스 엑스 마키나 (deus ex machina)! 모든 갈등을 불도저로 밀어버리는 고대 그리스의 무릎팍 도사. 기계장치의 신. 덜덜거리는 쓰레기차를 타고 근엄하게 가부좌를 튼 데우스. 괜히 복잡하게 얽힌 이 비극을 쾌도단마로 끝낼 때가 왔다.
(최양락 목소리로) “넌 임마 공정하지가 못해. 마누라도 공정하게 사랑해 줘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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왠지 이런 느낌? |
관객들에게 얻어맞아 턱주가리가 돌아가도 한 치의 흐트러짐이 없던 애비도 그제사 오금이 저린다. 자신보다 강한 수컷을 알아보는 수컷들끼리의 본능. 쪼인트와 쪼인트로 맺어진 피의 연대. 비로소 이것이 비극임을 자각하기 시작한 남자가 되묻는다. 벌써 끝난다고? 우리 사랑이?
그렇다. 니네 년놈들의 사랑은 그렇게 막을 내린다. 우연(우연히 모든 1차 응시자가 자격 미달)과 우연(우연히 모집요강 변경)이 반복되며 고전적인 감정의 승강(昇降)을 그리던 저 미친 비극은 데우스의 냄새 나는 한 마디로 끝장나는 것이다. 그것이 그리스 비극의 후진 결말 아니더냐. 엘렉트라의 거세 콤플렉스와 오이디푸스의 근친혼 욕망 사이의 그랜드 크로스. 글로벌 막장 사우스 코리아의 화룡점정. 염병질의 랑데뷰.
관객들은 분이 덜 풀렸지만 그래도 꼴 보기 싫은 놈 하나 사라졌으니 나름 만족하는 눈치다. 식식거리며 말한다. 다음에도 이딴 식이면 죽을 줄 알아. 다음에 또 이거 보러 올 모양이다.
데우스는 다시 무대 밑 지하 벙커로 어기적거리며 기어들어간다. ‘다음엔 더 멋있게 나타나야지. 어휴, 일했더니 피곤해. 못생긴 애 불러서 마사지 받아야겠어.’
비극의 탄생
이 뭔가 했더니, 늘상 보던 그거다. 지난 추석에도 봤고 지지난 설에도 봤던, 맥컬리 컬킨 수준의 익숙함이다. 재탕 삼탕 십팔탕 까지 해 처먹더니 이것들이 아주 강철도 우려낼 기세다.
진정한 비극은 이렇다. y의 쪼다 같은 비극은 여기서 끝이지만, 우리는 저 꼴을 앞으로도 지겹도록 다시 봐야 한다는 것. 이렇게 참고 또 참으며 살아가는 우리 삶이 더 비극적이지 않은가? 이 고전적 비극의 서사라면, 우리의 비극은 유사한 경험과 망각이 무한히 반복되는 <메멘토>의 서사, 시작과 끝이 정해지지 않은 탈근대적 서사다.
이제 본 백수를 포함, 전국의 일백만 청년 백수는 결연히 말한다. ‘비극적 사랑 하려면 집구석에서 해 이 새끼야. 공개적으로 깝죽거리지 말고.’
덧붙여 이 나라의 앞날을 짊어질 20대 청년 백수 친구들에게 고한다. 참으면 병 생긴다. 열 받으면 돌 던져라. 그깟 서명 나부랭이 백날 해봤자 저것들은 눈도 깜짝 안 하느니라. 세상에는 맞아야 정신 차리는 놈이 딱 하나 있는데, 평소에는 쥐의 형상을 하고 있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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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호! 가자! - 이말년 <불타는 버스> 中 역시 본문과 크게 관계는 없지 않음 |
얼마 전부터 연락이 끊긴
외무고시 준비하는 친구가 생각나서 며칠째 빡치고 있는
분노한 룸펜 프롤레타리아 남가좌동
출처 : http://www.ddanzi.com/news/317
첫댓글 으흐흐흐흐흐...
무섭소 잉
^^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