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나의 집 하늘나라 이야기
시설장/사회복지사 최홍균 목사
경기도 고양시 일산서구에 속해 있지만 흔히 우리나라사람들이 인식하고 있는 일산 신도시라는 개념과는 거리가 먼 고봉산의 북쪽줄기 끝자락에 위치한 설문동골짜기에 안나의 집이라는 중풍치매노인들의 복지시설이 있다.
안나의 집은 외형적으로는 현대적 최신시설과는 거리가 먼 세멘부록으로 지은 창고를 개조해서 교회당과 방들을 만들어 중풍치매노인들을 20명 모시는 교회부설 노인복지시설이다.
외형적으로는 이렇게 초라하기까지 한 부록건물의 시설이지만, 내면으로 들어가면 여기가 하늘나라이다.
그래서 나는 이 안나의 집 하늘나라 이야기를 하려 한다. 안나의 집은 설립된지 이제 만 사 년이 되어간다.
그동안 스물네분의 할머니 할아버지가 이곳 안나의 집에서 지상에 있는 하늘나라 생활을 하시다가 저 천상에 있는 하늘나라에 올라 가셨다.
혹자는 무슨 하늘나라가 있느냐 의문을 제기하는 분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는 목사라서가 아니라 나는 이곳 안나의 집에서 소천하신 스물네분의 할머니 할아버지께서 이생에서 마지막 숨을 거두시는 과정에서 하늘나라를 모두 보여주시고 가셨기에 하늘나라가 있음을 확신한다.
오늘은 스물네분 중 지난 5월21일 주일 아침7시에 하늘나라를 보여주시고 가신 고 임복순 할머니 하늘나라 이야기를 쓰려 한다.
고 임복순 할머니는 1937년생이니 이제 우리나라 나이로 칠십이시다. 그런데도 누구보다는 힘든 인생 역경의 삶을 사셨다.
이 시대분들은 다 일제 36년 침략과 남북분단과 6.25전쟁을 겪으면서 힘든 인생 역경을 공통적으로 겪은 외에, 할머니는 힘들게 자수성가해서 하나밖에 없는 아들에게 물려주었던 철물점을 아들이 보도를 내고 자취를 감추고 행방불명인 가운데...
그 여파로 며느리는 아들과 법적으로 이혼소송 해서 집을 떠나고, 할아버지마저도 그 충격으로 세상을 떠났는데다가, 할머니 자신도 그 충격의 여파로 몸의 지병인 당뇨가 더 악화되어 일주일에 세 번씩 신장내과에 가서 투석을 해야 생명을 부지할 수 있을 뿐이었다.
그런 가운데 다니던 병원의사 소개로 우리 <안나의 집>으로 2004. 8.14일에 입소했고, 불행 중 다행히 국민기초생활수급자가 되어서 병원투석도 무료로 하시게 되어 만 2년가까이 이곳에서 생활하시면서 일부일에 세 번 신장내과에 투석하러 다니셨던 할머니이시다.
할머니는 그래도 미션스쿨인 이화여학교를 다녔던 분이셔서 당뇨의 후유증으로 눈이 잘 보이지 않지만 놀라운 기억력으로 흥얼 흥얼 찬송을 잘 부르시면서 믿음으로 밀려드는 외로움과 질병의 고통을 이겨 나가셨다.
그러다가 지난 2006. 5.21. 주일날 새벽예배를 마치고 안수기도하러 할머니의 머리에 손을 얹으니 숨은 쉬고 있지만 몸의 열기가 식어지는 것이 느껴져 간절히 하나님께 영혼을 맡기는 기도를 드렸다. 그리고 한 시간가량 나의 기도시간을 갖고 다시 할머니방으로 들어가보니 숨을 조용히 거두시는 중이셨다. 성경대로 가장 평안하게 잠자는 모습으로 하늘나라에 가셨다.
그 시간은 우리 안나의 집의 아침식사시간이라 같은 방에 계신 할머니를 비롯해서 모든 나머지 19분의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맛있게 아침식사 하시는 중 할머니는 조용히 하늘나라 천군천사들 손에 이끌려 하늘나라로 가신 것이다.
우리 안나의 집에서 24번째로 하늘나라 가신 할머니이시다. 나는 1977년부터 신학을 하고 30년 가까이 목회길을 오면서 이곳에서의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마지막 임종하는 모습에서 천국이 있음을, 그리고 성경이 하나님 말씀임을 더욱 실감한다.
그리고 다시 한번 다짐한다. 이 남은 여생 혼신을 다해 이 어르신들올 모시다가 나도 저들과 같은 모습으로 하늘나라 가리라고...
고 임복순 할머니 영혼은 이렇게 하늘나라에 잘 가셨다. 그런데 흙으로 돌아가야 할 시신을 처리하려하니 아무도 연락할 자손이 없다.
하는 수 없이 서울 적십자병원 장례식장에 계시는 잘 아는 집사님과 상의한 후 서대문에 있는 적십자병원 장례식장 안치실에 할머니의 시신을 안치한 후,
고 할머니가 다니던 병원에서 사망진단서를 떼어 동사무소에 가서 시설장 자격으로 사망신고후 국민기초생활수습자 장제비 50만원을 받아 우리 사모와 함께 할머니 시신을 벽제화장터에 모시고 가서 화장을 해 주고, 그곳 망향의 동산에 한줌의 재로 변한 할머니의 분골을 뿌려주고 왔다.
지금까지 목회 30년에 이런 장례는 처음 치러 보았다. 이곳에서 먼저 하늘나라 가신 23분의 어르신들도 아무도 연고자 없이 이렇게 장례를 치러 보지는 않았다. 인간적으로는 측은하기 그지 없는 장례식이었다.
그러나 나는 믿는다. 이 할머니는 가장 미련없이 홀가분하게 하늘나라 가신 분이라고...혼자 독백을 하면서 나는 다시 벽제화장터를 지나서 다른 할머니할아버지들을 섬기기 위해 <안나의 집>으로 차를 몰아 달려 왔다.
그리고 차안에서 눈을 뜨고 기도드렸다. “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