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산일지 [화순 용암산]
2022. 4. 2.(토) 초등 향산회
작년 봄에는 초등 향산회를 자주 했는데, 금년 들어 무기력해서인지 친구들에게 연락하지 못했다. 마침 한가한 토요일에 향산회 제안하니 또 친구들이 뭉쳐진다. 산꾼 찔레향이 화순 용암산을 못 갔다기에 어젯밤 다급하게 용암산으로 일정을 잡는다. 용암산은 2003. 12. 14.에 5쌍의 부부가 다녀온 곳이다. 벌써 19년이나 되었다. <향산일지>(전남대학교 출판부, 2011.11.10. 발행) 17면에 다녀온 기록이 있다. 19년 전의 산행 사진이 없어서 그때의 생생한 모습을 반추할 수가 없어 아쉽다.
10:30. 학동 삼거리 지하철 증심사입구역에서 일행 3명을 태우고 가장 운전이 서툰 내가 차를 운행하여 화순 한천면 소재 용암사로 달린다. 광주 시내도 그렇지만 교외로 들어서니 천지가 벚꽃 세상이다.
11:10. 용암사 절에 도착한다. 일주문이 따로 없는 조그만 사찰인데, 경내에 있는 커다란 벚나무 고목에 화사한 벚꽃이 하늘을 덮고 있다. 절터로 보아 오래된 듯한데, 건물은 고풍스럽지 않다.
11;15. 절 경내를 지나면 바로 산행 초입이다. 길옆 우측에서 대웅전 뒤편으로 잎이 싱싱한 동백나무 숲이 조성되어 초봄이지만 황량하지 않다. 용암사에서 산 정상까지 2.1km라는 안내 표지가 있다. 19년 전에 갔었지만 정상 부근이 힘들었던 것 외에는 별로 기억이 없다. 지공선사 노인들 발걸음이니 그때와 비교가 안 되겠지만, 일단 거리가 짧다는 것에 마음이 가볍다.
산에 들어서니 시내에서 보지 못한 진달래꽃이 여기저기 눈에 띈다.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드리오리다 ~’는 진달래꽃. 수줍은 듯 얇실한 듯 순종하는 듯 애처롭게 보이는 진달래꽃이 여기저기 피어있다.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 ~’는 노래 가사가 입가에 흥얼거려진다.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
오늘도 옷고름 씹어가며 산 제비 넘나들던 성황당길에
꽃이 피면 같이 웃고, 꽃이 지면 같이 울던
알뜰한 그 맹세에 봄날은 간다~
11:35. 능선삼거리(1)에 도착한다. 나무 의자가 있어 쉬어가는 곳인가 보다. 여기서부터는 능선 산행이다. 아직 초봄이라 앙상한 활엽수 사이로 저 멀리 들판과 저수지까지 시야가 넓다. 오늘 날씨도 청명하고.
도심에는 매화꽃이 벌써 지고, 대신에 벚꽃, 목련꽃, 개나리꽃들이 한창인데, 이곳 산중에도 진달래꽃을 시작으로 샛노란 싹 들이 새봄맞이 단장을 하고 있다. 연두 노랑 꽃잎이 개화하는 생강나무도 여기저기 눈길을 끈다. 생강나무는 암수딴그루란다.
[생강나무]
능선삼거리(1)에서 정상으로 가는 길에는 크고 작은 암석들이 많은데, 평범하지 않다. 어렸을 적 시골에서 ‘산돌’이라고 불렀던 번들거리는 돌이 이곳저곳 한 눈요깃거리로 충분하다.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흰색을 띠고 반짝거리는 저 암석은 규암이란다. 포장용 벽돌, 사석, 도로포장용 자갈 등으로 사용된다.
[고생대 초기 지질인 규암 덩어리가 기암괴석을 이루고 있다. 왼쪽 나무는 굴참나무인데, 수령이 오래되어 수피에 두터운 코르크가 발달하여 마치 갑옷 같다]
12:20. 능선삼거리(2)가 나온다. 정상이 0.7km이니 거의 다 온 셈이다.
바로 옆에 전망대 0.1km라고 안내판에 쓰여 있다. 실제로는 10m밖에 안 되는 거리에 전망 좋은 바위가 있다. 오늘 화창한 날씨에 북쪽으로 무등산 정상이 선명하게 보이고, 동쪽으로 화순 모후산도 보인다. 작년까지 잘 다니던 정 선생이 오늘은 힘이 들어 한다. 10여 m 거리의 전망대도 오지 않고 능선삼거리(2) 이정표 아래 쪼그려 앉아 쉬고 있다.
[능선삼거리(2) 옆 전망대에서 바라본 산야. 왼쪽에 금전 저수지, 북쪽 멀리 무등산 정상이 선명하다]
잠시 쉬어간다. 산고수장의 배낭에서 바나나가 나온다. 산에서 먹는 바나나는 먹기도 편하지만 달콤한 열량이 금새 원기를 회복시켜 준다.
12:25 금오산성터에 도착한다. 산성의 흔적이 선명하다. 오르기도 힘든 이런 험산에 산성을 축조한 당시의 백성들이 얼마나 고생했을꼬! 또 무슨 전쟁에서 저 쪼고만한 산성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도 궁금하다.
오늘따라 찔레향도 몸이 무거워 보인다. 70이 넘더니 기운이 좀 떨어졌는지 산길 돌길이 편치 않은 눈치이다. 네 명 중 나만 발걸음이 가벼움은 그나마 가장 젊기 때문인가 보다.
바위 재질이 마치 장식용 건축 석재(石材) 같다고 칭찬하며 가는데, 우측으로 월출산에서 보았던 기암인지, 장흥 천관산의 괴석인지 보성 오봉의 칼바위인 듯, 서울 도봉산의 오봉인 듯 기세등등한 첩첩 봉오리가 보인다. ‘7형제 바위’라는 곳인데, 아무리 세어보아도 6개의 봉오리이다. 우리끼리 ‘용암산 육봉’이라고 작명을 하였다.
정상으로 가는 암벽길이 험하다. 전에 없었던 철 사다리가 있어 쉽게 오른다. 사다리를 지나면 절벽에 밧줄과 철책을 설치해 위험하지 않다. 정상을 가는데, 이 정도는 감수해야지
13:00. 용암산 정상에 도착한다. 용암산, 해발 544m.
[정상 표지석 뒷면으로 (북쪽) 광주 무등산이 선명하다]
아직 봄기운이 덜 해서인가? 산행 중 우리 이외의 등산객을 만나지 못했다. 덕분에 정상 표지석에서 여유롭게 기념사진도 찍고 주위를 감상한다. 사방으로 모두 산악 지대이다.
하산은 경사와 바위 절벽 길이어서 정신 집중을 요한다.
13:30~14:00 점심, 완만한 곳에 자리 잡고 우리는 점심을 먹는다. 기껏해야 김밥이다. 점심 후에 달짝지근한 커피 한 잔은 꿀맛이다.
14:30 능선삼거리(1) 도착한다. 이제 다 왔다고 반긴다. 오늘 산행이 모두에게 힘들었나 보다. 무등산 날다람쥐 찔레향조차 이곳이 힘들다고 하니, 아무래도 내가 오늘 오버하는가 보다.^^
씩씩한 친구들이 변해가는 모습이다. 내 모습이기도 하다. 아쉽지만 어쩔 수 없는 자연의 이치이다. 그러려니, 이만큼 즐거움에도 모두 감사해야지 ~
하산길에는 누가 쉬자고 하는 사람도 없다. 이곳은 절까지 완만한 내리막이다.
절 뒤편의 동백나무 숲이 단정하다. 이제 꽃을 피우기 시작하는지 동백꽃 떨어진 흔적이 없고 막 피어난 듯 새빨간 꽃 몇 송이가 잎사귀 사이로 살짝 보인다. 여기는 동백(冬柏)이 아니고 춘백(春栢)인가 보다.
길가에 흔치 않은 조그만 꽃이 보이는데, 찔레향이 ‘산자고’라고 알려 준다. 인터넷에서 보니 백합과에 속하는 약 20cm 크기의 꽃으로 4~5월이 개화기라고 한다.
[산자고]
14:50 절에 도착하여, 대웅전 주위를 둘러본다. 앞마당이 훤하니 깨끗하다. 조그마한 화단에 수선화 꽃이 피어있다.
동백나무도 약수 음용수대도 정갈하다. 다녀온 용암산 정상이 대웅전 지붕 뒤로 보인다.
아침에 지나친 벚꽃 고목(古木)을 가까이서 본다. 이렇게 큰 고목은 흔치 않을 터, 두 사람이 팔을 벌리니 겨우 안긴다. 한쪽 고목은 밑동이 썩고 새순이 난 듯 복잡하다. (초고 2022.4.2.)
* 19년 전의 향산일지
겨울 산, 용암산
○ 일시 : 2003. 12. 14.(일)
장소 : 화순군 한천면 용암산(聳巖山)
참석 : 손만수, 이갑영, 이용남, 이철환, 정병윤 각 부부 10명.
○ 산행
겨울날인데, 아직도 낙엽이 바람에 구르고, 정상엔 눈발도 날린다. 용암사에서 오르는 산행길은 등산객도 없어 호젓하다. 정상(544m) 부근의 암벽은 이 산의 이름을 실감케 한다. 용암산(聳巖山), 바위가 솟구쳐 오른 산이란 뜻인데.
용남이 누나는 오르막길이 어렵다고 하고, 갑영이 누나는 절벽 길을 무서워하고, 만수 누나는 내리막이 더 어렵다고 한다. 병윤이 누나는 다 어려운 것 같다. 우리 각시는 아직 젊어서이겠지 용감하게 잘도 간다.
해미 엄마(병윤이 누나)가 사진을 열심히 찍어 댔는데, 아직도 안 나왔다.
첫댓글 언제나 맛 갈스런 산행 후기 상세히 수록돼요
보는 위 돌머리 속에도 용암산에서
움직이던 행동수칙 팍팍 들어오네요
요산요수 오랜만에 카페 방문 환영합니다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