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을 거부한 부대
치욕의 참패
심야에 은밀히 험준한 산악을 타고 내려와 아군의 배후를 차단한 후 맹공을 가하는 특유의 전법은 중공군이 참전한 이후 1951년 중반까지 즐겨 써먹던 전술이었습니다. 따라서 미 2사단이 군우리 협곡에서 불현듯 포위당하였지만 사실 이번이 아군에게 첫 경험은 아니었습니다. 이미 중공군이 처음 출몰하여 전세를 급속히 역전시킨 제1차 공세 당시부터 이런 식으로 당했습니다.
[ 중공군의 포위 전술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습니다 ]
이런 전술은 북진 당시부터 많은 문제점을 야기한 아군 예하부대간의 단절과 맞물려 후퇴시기에 더욱 많은 혼란을 촉진시켰습니다. 지난 중공군의 1차 공세에서 국군 2군단이 붕괴되고 미 1군단이 밀려났음에도 아군은 교훈을 얻지 못하였습니다. 미 2사단이 무너지는 전선을 도우려고 올라왔지만 지금까지 당한 중공군의 전술에 대한 특별한 정보를 얻지 못하였고 순식간 부대가 포위당하는 똑같은 위험에 빠진 것이었습니다.
[ 아군은 계속 같은 전술에 당하였습니다 ]
퇴로가 차단당하고 출구는 아직도 저 멀리에 있던 평안도 심심유곡의 협곡 속에 갇힌 미 2사단은 사방에서 쏟아져 내려오는 총탄에 녹아내리기 시작하였습니다. 카이저 사단장은 가장 후위에 있어서 그나마 전력이 보존되어 있던 23연대에게 앞으로 나와 돌파구를 열라고 명령하였으나 무전 내용이 와전되면서 23연대가 신안주로 우회하는 도로로 안전하게 철수해 버리는 황당한 사건까지 발생하였습니다.
[ 예하 부대에 명령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 황당함도 연출되었습니다 ]
결국 11월 30일, 전투가 끝났을 때 순천에 살아서 집결한 사단 병력은 겨우 20퍼센트에 불과하였고 모든 중장비는 망실당한 상태였습니다. 이때 미 2사단이 전멸과 다름없는 피해를 입었던 군우리-순천 간 협곡을 흔히 미 전사에서는 '인디언 태형장'으로 부르는데, 그 이유는 마치 인디언들이 계곡 양측에 늘어서서 공격을 가하였던 옛 전법과 비슷하였고 더욱이 미 2사단의 부대마크가 '인디언 헤드(Indian Head)'라서 붙여진 불명예였습니다.
[ 미 2사단은 역사에 길이 남을 최악의 참패를 당하였습니다 ]
이러한 치욕스런 대가로 미 8군 주력이 안전하게 철수하여 다음 단계 작전으로 이행할 수 있는 여유를 가질 수 있게 되었다고 전사에 기록되었지만, 이것은 변명의 여지없이 한국전쟁 당시 미군의 사단 급 부대가 당한 최악의 전과였습니다. 군우리 전투 후 12월에 개최된 미 육군 최고회의에서 사단을 해체하여 사령부와 사단기를 본국으로 송환하기로 결정하였을 만큼 미 2사단이 당한 최초의 포위는 그야말로 씻기 힘든 굴욕이었습니다.
[ 포로수용소에 수용 된 미군 포로들 ]
그런데 한국전쟁에서의 패배로 해체된 첫 번째 사단이 될 수도 있는 불명예로부터 미 2사단이 기적적으로 살아나게 되었는데, 당시 미 2군사령관 밴 플리트(James Alward Van Fleet)의 강력한 주장 때문이었습니다. 이듬해 미 8군 사령관으로 영전하여 한국전쟁에 참전하게 되는 그는 심각한 패배를 입었다고 단대 번호 2의 유구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부대를 함부로 해체할 수는 없다고 항변하였습니다.
[ 이듬 해 미 8군 사령관으로 영전되는 밴플리트가 부대 해체를 막았습니다 ]
참고로 미 2사단은 제1차 대전 당시인 1917년 10월 26일 프랑스 브르몽(Bourmont)에서 창설되어 6차례의 주요 전투에 참전하였고 제2차 대전 당시에는 노르망디로 상륙하여 서유럽에서 맹활약한 전통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결국 밴 플리트의 주장대로 부대는 해체대신 재건이 결정되었습니다. 참패 후 중부전선 후방으로 빠져있던 미 2사단은 12월 7일 신임 사단장 맥클루어(Robert McClure)의 부임과 동시에 신속히 재건되었습니다.
[ 미 2사단은 신속히 재건되기 시작하였습니다 ]
최악의 패배와 연이어 부대 해체 결정이라는 초유의 위기를 간신히 극복하고 재탄생의 계기를 잡은 미 2사단에게 요구된 것은 단 하나 뿐이었습니다. 유구한 부대의 역사와 그와 관련 된 명예 그리고 전통을 당당히 입증할 수 있는 승리였습니다. 만일 다시 한 번 적의 공세나 포위가 있다하더라도 단지 몰라서 당했다는 이유는 더 이상 통할 수 없었습니다. 인디언 헤드들은 복수심에 불타올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