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9월 18일 주일 묵상
<1:17> 「다윗이 이 슬픈 노래로 사울과 그의 아들 요나단을 조상하고」
<1:18> 「명령하여 그것을 유다 족속에게 가르치라 하였으니 곧 활 노래라 야살의 책에 기록되었으되」
<1:19> 「이스라엘아 네 영광이 산 위에서 죽임을 당하였도다 오호라 두 용사가 엎드러졌도다」
<1:20> 「이 일을 가드에도 알리지 말며 아스글론 거리에도 전파하지 말지어다 블레셋 사람들의 딸들이 즐거워할까, 할례 받지 못한 자의 딸들이 개가를 부를까 염려로다」
<1:21> 「길보아 산들아 너희 위에 이슬과 비가 내리지 아니하며 제물 낼 밭도 없을지어다 거기서 두 용사의 방패가 버린 바 됨이니라 곧 사울의 방패가 기름 부음을 받지 아니함 같이 됨이로다」
<1:22> 「죽은 자의 피에서, 용사의 기름에서 요나단의 활이 뒤로 물러가지 아니하였으며 사울의 칼이 헛되이 돌아오지 아니하였도다」
<1:23> 「사울과 요나단이 생전에 사랑스럽고 아름다운 자이러니 죽을 때에도 서로 떠나지 아니하였도다 그들은 독수리보다 빠르고 사자보다 강하였도다」
<1:24> 「이스라엘 딸들아 사울을 슬퍼하여 울지어다 그가 붉은 옷으로 너희에게 화려하게 입혔고 금 노리개를 너희 옷에 채웠도다」
<1:25> 「오호라 두 용사가 전쟁 중에 엎드러졌도다 요나단이 네 산 위에서 죽임을 당하였도다」
<1:26> 「내 형 요나단이여 내가 그대를 애통함은 그대는 내게 심히 아름다움이라 그대가 나를 사랑함이 기이하여 여인의 사랑보다 더하였도다」
<1:27> 「오호라 두 용사가 엎드러졌으며 싸우는 무기가 망하였도다 하였더라」
(본문 해석)
9월 18일 주일 사무엘하 1:17~27
17~18절
17절 본문은 사울과 요나단의 죽음을 애도하는 노래에 해당한다. 슬픈 노래는 장례식에서 부르는 애가를 뜻한다. 애가의 저자는 다윗이고, 추도 대상은 사울과 요나단이다. 애가의 제목과 출처를 밝히고 있다. 18절 애가의 제목은 활의 노래라고 번역하였지만, 원문에서는 활이며, 이 활은 요나단을 가리킨다. 이 노래 제목이 활이라는 것은 사울과 요나단 중에서 요나단을 좀 더 중심적인 인물로 본 것인데, 애가에서 특별히 요나단만을 위해 한 절 반이 할애되었다는 사실을 통해 더 잘 드러난다. 다윗은 이 애가를 백성들에게 가르쳐 유다 백성 모두가 사울과 요나단을 추도하도록 명령한다. 그 이유는 이들은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 싸우다 죽은 그들의 왕과 왕자이기 때문이다. ‘야살의 책’은 여호수아의 전쟁이 기록된 책이다.
19~24절
19절 다윗은 온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너희 영광이 산 위에서 죽임을 당했다고 알리면서 애곡을 시작한다. 여기서 영광은 은유법으로 사울과 요나단을 가리킨다. 고대 사회에서 왕은 흔히 아름답고 영광스러운 존재로 묘사된다. 시는 ‘어떻게’라는 탄식을 통하여 용사이며 이스라엘의 영광인 사울과 요나단의 죽음에 대한 슬픔을 표현한다. 20절 온 이스라엘을 불러 두 용사의 죽음을 알리는 19절과 대조적으로 이 사실을 알리 지 말라고 한다. 가드와 아스글론은 블레셋의 대표적인 성읍으로 블레셋을 상징한다. 사울과 요나단이 블레셋과의 전투 중에 죽었기에 이들의 죽음이 이스라엘에게는 슬픔이지만, 블레셋에게는 적의 왕이 죽은 축하 할 일이 된다. 이렇게 입장이 따른 슬픔과 기쁨의 대조를 통해 두 용사의 죽음에 대한 이스라엘과 다윗의 애통을 더욱 강하게 표현하고 있다. 할례받지 못한 딸은 블레셋 사람의 딸을 표현한 것이다. 아들이 아니라 딸을 언급한 이유는 이들은 대외 활동이 적어 주변 소식에 가장 어두운 집단이었기 때문이다. 그들조차 사울의 죽음을 알고 기뻐한다면, 모든 블레셋 사람이 기뻐하는 것이다. 할례받지 못한 딸들이 사울과 요나단의 죽음을 기뻐해서는 안 되는 근본적인 이유는 그것이 언약 백성의 실패를 암시하기 때문이다. 즉 다윗은 사울의 죽음을 언약 백성의 치욕으로 보고 있다. 21절 사울과 요나단이 죽은 장소인 길보아 산에 대한 저주로 생명과 축복의 상징인 비와 이슬이 그치고 곡식과 열매가 자랄 수 없는 황무지처럼 되라고 한다. 그것은 그곳에서 사울과 요나단이 죽었기 때문이다. 두 사람의 죽음을 방패가 버려진 것으로 묘사하였는데, 방패가 주인을 지키지 못하였기에 이제 더는 기름으로 닦이고 손질되지 못하고 버려지고 방치되었다는 것이다. 즉 길보아 산에서 하나님의 백성인 영웅 두 명의 피를 흘렸기 때문에 이 땅은 저주를 받아 마땅하다는 것이다. 사울이 죽은 장소에 대한 저주를 통해 다윗의 애통함을 가장 강하게 표현하고 있다. 22절 요나단의 활은 뒤로 튕겨 나간 적이 없이 백발백중이었으며, 사울의 칼은 정확히 사람들을 공격하였다는 것이다. 피와 기름은 칼과 활로 사람을 찌를 때 나오는 것으로 전쟁터에서 사람을 죽이는 상황을 말한다. 23절 사울과 요나단의 일반적인 인물평으로 사울과 요나단이 생전에 사랑스럽고 아름다운 자이러니 죽을 때에도 서로 떠나지 아니하였도다라고 한다. 비록 다윗 때문에 요나단은 아버지 사울과 갈등을 겪었지만 한 번도 사울을 떠난 적이 없었고, 최후의 전쟁에도 동행하였다. 그러므로 둘을 아름답다고 하며, 평생 동안 같이 있었다는 말이 거짓은 아니다. 또한 다윗은 둘을 가장 강하고 빠르고 용맹한 독수리와 사자로 비유하며 용사로서의 그들의 모습을 칭송한다. 24절 이스라엘의 딸들을 부르면서 사울이 그녀들에게 붉은 옷을 입히고 금 장신구를 채워주었다고 한다. 여기서 금 장신구와 붉은 곳은 가장 좋은 보석과 옷으로 호화롭고 사치스럽게 치장한 모습을 나타낸다. 사울이 전쟁에서 이기고 많은 전리품을 가져와서 이스라엘 사람들이 풍부하게 먹고살도록 해주었다는 의미다. 사울이 백성들에게 좋은 왕이었다고 찬양하는 것이다.
25~27절
25절 전쟁의 패배를 탄식하는 문장 ‘오호라 용사들이 엎드러졌도다’라는 표현을 19절에 이어 다시 사용되면서 새로운 단락이 시작됨을 알린다. 이스라엘의 영광이 산 위에서 죽은 것처럼 요나단 역시 산 위에서 죽었다. 26절 요나단만을 위한 추모사이다. 다윗은 요나단을 나의 형제라고 부른다. 이는 다윗이 존경하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요나단을 따랐음을 보여 준다. 애통함이라는 표현은 요나단의 죽음에 대해 가슴이 쥐어 짜지듯이 괴롭다며 가슴 아파하였다. 그대는 내게 심히 아름다움이라는 말은 ‘그대는 나의 기쁨입니다’라는 말이다. 이것은 다윗이 요나단을 매우 좋아하였고 소중히 여겼다고 고백하는 것이다. 또 다윗은 요나단과의 관계를 ‘너의 사랑이 나에게는 여자들의 사랑보다 놀랍다’라는 말로 표현한다. 여기서 사랑은 정치적 언약적 의미를 가진다. 고로 다윗은 요나단의 충성의 영광스러움을 강조하고 있다. 27절 다윗은 용사들의 죽음을 세 번째 언급함으로써 자신의 시를 끝맺는다. 망하다라는 표현은 사람의 죽음을 표현하기 위해 사용된 것이다. 용사들이 엎드러지는 것과 전쟁 무기가 망한 것은 같은 의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