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광객이 몰리는 작은 제주도 금오도
금오도를 찾는 관광객이 많다. 금오도는 어쩌면 작은 제주도와 같은 느낌이
난다. 제주도에 ‘올레길’이 있다면 금오도에는 ‘비렁길’이 있다. ‘비렁길’을 찾아오는 관광객은 성수기와 비수기가 따로 없다. 당일치기로
망망대해를 보면서 절벽 위를 걷는 아찔함을 느낄 수 있는 ‘비렁길’은 바닷가에 살지 않는 사람들에게 안성맞춤이다.
금오도 ‘비렁길’ 가는 방법은 ‘백야도항’과 ‘여수여객선터미널’, 돌산
‘신기항’으로 3가지이다. 이동 차편이 마련된 관광객은 ‘백야도항’과 ‘신기항’이고, 그렇지 않으면 시내에서 탈 수 있는 ‘여객선터미널’이다.
자동차로 이동하는 관광객은 남해고속국도와 이순신대교를 건너는 영남권은 ‘신기항’, 그 밖의 지역은 ‘백야도항’을 많이 이용한다.
금오도에 ‘비렁길’이 생기기 전에도 많은 등산객들이 금오도를 찾았다. 특히
금오도는 추운 겨울철과 무더운 여름철에도 등산을 할 수 있다. 동서로 뻗은 금오도 대부산(매봉산)은 등산하는 동안 남, 북쪽 바다를 보면서
걷는다. 겨울답지 않은 따사로운 햇볕은 계절을 잊게 하고, 여름철은 산 능선을 따라 걸으면서도 곳곳에 나무 터널을 걷듯 숲이 있어서 그늘 속을
걷는다.
여수풀꽃사랑 금오도 ‘육해공 여행’
이런 금오도 등산로가 비렁길 때문에 그 가치를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금오도
‘비렁길’을 1코스에서부터 5코스까지 한꺼번에 아니면 나눠서 완주를 한 분들, 손님들 덕분에 몇 번이고 금오도 ‘비렁길’을 다녀온 여수시민들이
많다. 이들은 금오도의 맛과 멋을 다 알았다고 생각한다.
‘여수풀꽃사랑’에서는 ‘비렁길’의 장점과 ‘등산로’의 장점을 융합한 금오도
즐기기 답사를 다녀왔다. ‘금오도 육해공 여행’이라고나 할까? 하늘과 맞닿아서 걷는 ‘대부산등산로’, 기암절벽 바위 끝을 걷는 ‘비렁길’, 배를
타고서 바다에서 올려다보는 ‘비렁길’을 절묘하게 조합한 길이다.
‘백야도항’에 차를 주차하고서 아침 7시 50분 함구미행 차도선을 탔다.
35분 정도 타는 거리이지만 객실에서 아침 식사를 한다. 새로 담근 김치에다 김이 아직도 모락모락 나는 돼지 앞다리살을 삶아서 만든 수육을 걸쳐
먹는 맛은 오래오래 기억될 것이다. 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먹는 것이다.
함구미와 용두
함구미항에 도착을 했다. 전날 바람이 거세고, 파도가 세다고 해서 그런지
첫배는 그리 사람이 많지 않았다. 금오도 대부산 등산로의 시작이고, 금오도 ‘비렁길’의 시작인 함구미 마을이다. 구미는 기미, 곶을 뜻하는
우리말로 바닷가에서 뾰족하게 뻗어 나온 곳을 말한다.
함구미는 옆 용두마을과 관련이 많다. 대부산 끝자락이 용의 머리와 같이
생겼다고 해서 용두마을이 되었다. 함구미 마을 이름은 바닷가 기암절벽이 아홉 개의 골짜기를 만들어서 ‘함구미’, 열매와 산채들이 많이 생산되어서
‘항금미’라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함구미항에서 이미 많은 집들이 폐가가 되어버린 중터 쪽으로 올라갔다. 집에는
사람이 살지 않아도 감나무에 주렁주렁 매달린 똘감과 유자나무 노오란 유자는 푸른 숲에서 크게 돋보인다. 여기저기 때가 되어서 떨어진 유자 열매가
보는 이의 마음을 시리게 한다. 사람은 살지 않아도 매서운 북풍 찬바람과 야생동물 침입을 막기 위해 지붕까지 촘촘히 쌓아 올린 돌담,
누구나 집안을 들여다보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한다.
사람이 떠난 마을 돌담과 돌길
건너 개도 섬의 잘 빠진 매끈한 엉덩이를 보면서 오르다 보면 가쁜 숨을 쉬기
시작한다. 시누대 숲을 지나 고샅길을 걸으면 마당재를 만난다. 우뚝 솟은 비자나무는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안고 있었다. 찬바람에도 굴하지 않고
튼튼히 자란 나무는 간혹 오르내리는 등산객들에게 세월의 무상함을 가르치고 있다.
수 천년동안 빗물에 젖지 말고 걸어 다니라고 돌을 박아서 만든 골목길,
세상의 변화를 이겨내지 못하였다. 동네 아이들이 뛰어놀던 길, 땔감나무를 져나르고, 산기슭에서 소를 먹이다가 “이랴! 이랴!”하면서 종종걸음으로
내려오던 그 돌길이다. 지금은 등산객들이 무성한 잡초를 피해서 다닐 수 있게 해주었다.
지금부터는 대부산(매봉산)을 향해 숨을 깔딱거리며 힘겹게 올라야 한다.
열병식을 하듯 비탈에 하얀색 제복을 입고서 줄지어서 있는 백소사나무가 반겨준다. “힘내라 힘”하면서 내미는 손을 끌어당겨 잡고서 오른다. 하늘이
보이면 한시름 놓아도 된다. 대부산 등산에서 제일 힘든 곳을 오른다. 대부산 등산로 안내도가 있는 이곳이 대부산 등산로에서 가장 높은
389.1m이다.
다도해 전망대, 대부산 정상
조금만 내려가면 힘들게 올라온 것이 헛되지 않다는 것을 알려주는 전망대가
있다. 땀을 식혀주기 위해 만들어진 자연 전망대 바위 위에 왜 쓸데없이 정자를 만들까? 그래도 함께 계단에 서서 사진을 찍었다. 발
아래 함구미와 용두마을이 보인다. 금방이라도 용의 머리가 동쪽으로 틀려는 모양새이다.
용을 보고 움츠려들고 있는 금오열도 섬들이 한데 모여 있다. 마치
회의를 시작하면서 아직 오지 않은 섬들을 빨리 오라고 손짓하는 것 같다. 화태대교가 놓여진 화태도, 월호도, 두라도, 나발도, 뒤늦게 사태를
파악한 횡간도, 소횡간도, 소두라도, 개도, 자봉도, 송도가 서둘러 달려 들고 있다. 이러한 시도 때도 없는 용두마을 용의 습격에 섬들이 어떻게
대응하는지 구경하는 송고마을이 신나해 하는 모습이 내려다보인다.
금오도 대부산 등산은 바다 위 하늘을 걷는 것과 같다. 북쪽은 섬들과 육지가
만들어내는 아기자기한 멋의 바다가 있다면, 남쪽은 거친 섬이 없이 확 뚫린 통쾌한 바다의 멋을 느낄 수 있다. 북풍과 남풍에 시달린 대부산
능선은 양쪽으로 칼날처럼 솟아있으면서 중간 중간에 미처 다 깎지 못한 바위들이 있다. 이름들이 있었을 텐데 아쉽지만 그 생김새의 아름다움만
간직하면서 바위 위에 올라 사방을 둘러본다.
문
닫기 전에 서둘러 가야하는 ‘문바위’
함구미에서 381.2m 대부산 정상까지는 1.6km이다. 정상에서
‘문바위’까지는 2.1km로 걸어다니기에 크게 어렵지 않다. 숲길을 지나고, 오르락 내리락을 몇 번 되풀이하면 도착을 한다. 육중한 두 돌기둥에
젖혀진 대문짝을 언제쯤 닫을 것인지가 궁금하다. 시베리아를 건너온 북풍 된바람이, 남쪽 태평양을 건너온 남풍 마파람 가운데 센쪽이 있어야 가능할
것 같다. 지금은 북풍과 남풍이 휴전 상태인지 젖혀져 있어서 드나들기 쉽다.
대부산에서 만난 바위에는 어김없이 바위손이 푸르름을 자랑하면서 더덕더덕 붙어
있다. 그만큼 코를 수시로 드나드는 바람이 깨끗하다는 증거이다. 맑은 바람을 마음껏 들이쉬면 하늘을 날 것 같은 가벼움을 느낀다. 석유화학산단이
있는 여수 시민은 새삼스럽게 맑은 공기의 중요성을 느끼면서 걷는다.
절로 콧노래를 부르면서 걷는 우리는 신기항이 있는 여천으로 내려가는
‘삼거리’에서 목을 축인다. 문바위에서 0.9km 떨어진 삼거리는 대부산이 뻗어 내리면서 2개의 작은 봉우리를 만든다. 그 모양이 여자의
젖가슴처럼 생겼고, 그 사이로 흐르는 물이 맑고 깨끗해 여자의 샘, 여천(女泉)으로 불렀다. 지금은 한자가 여천(汝泉)으로 바뀌었다.
‘느진목’에서 내려간 ‘석문동’
‘삼거리’에서 ‘칼이봉’까지는 540m, 다시 ‘칼이봉’에서
‘느진목’까지는 1.2km이다. ‘칼이봉’을 거쳐 ‘느진목’까지 걷는 길은 지루한 숲길의 연속이다. 드문드문 핀 동백꽃이 벌써 통째로 떨어져
길에 나뒹군다. 바람에 견디기 어려웠는지 나무에 매달려있는 꽃도 붉은 꽃잎이 바래져 있다. 금오도 겨울 등산로에서 보는 풍경화는 푸른색으로
일색이다. 가까이 보면 소사나무 흰색에 동백꽃 붉은색 꽃잎과 노란꽃술, 참빗과 같이 성긴 비자나무 푸른 잎이 수를 놓았다. 금오도에 비자나무가
이렇게 늘어나면 머지않아 제주도 비자나무숲과 같이 될 것이다.
우리는 ‘느진목’에서 ‘두모마을’쪽으로 내려간다. 안어등미골짜기를 따라 가면
몇 채의 집들이 다소곳이 앉아있는 ‘석문동마을’을 만난다. 섬인데도 바다가 보이지 않는 이곳은 바다 바람도 피할 수 있고, 외적의 침입도 피할
수 있어서 좋았을 것 같은 산간오지 마을이다. 이곳에서 실컷 책이나 보았으면 좋겠다느 일행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다.
배는 부르지만 여기서 맛있는 간식을 꺼내놓고 먹었다. 석문동에 여러 집들이
보이지만 남쪽 햇살이 많은 골짜기 건너에만 사람들이 사는 것 같다. 시멘트 포장길을 따라 내려가면 금오도 주민들의 상수원인 두모저수지가 있다.
그 삼거리에서 우리는 옛 두모초등학교 쪽으로 걸어갔다. 아이들이 뛰어놀았던 운동장은 그대로이지만 교실은 창고로 바뀌었다. 슬라브집 관사 두채도
덩그라니 있는데 아이들 뛰어노는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1949년 두포분교로 시작해서 1960년 두모국민학교로 승격되었던 학교가 1997년에
폐교가 되었다.
두포에서 시작하는 비렁길 2코스
이제부터 대부산 등산을 마치고, 금오도 ‘비렁길’을 시작한다. 금오도
‘비렁길’은 모두 5개 코스 18.5km로 걸으면 6시간 정도 걸린다. 1코스는 함구미에서 두포까지 5km 1시간 30분, 2코스는 두포에서
직포까지 3.5km 1시간, 3코스는 직포에서 학동까지 3.5km 1시간, 4코스는 학동에서 심포까지 3.2km 1시간, 5코스는 심포에서
장지까지 3.3km 1시간 걸린다.
우리는 두포에서 직포까지 2코스만 걷는다. '두포'는 금오도가 처음으로 열린
곳이어서 '첫개', '초포'라고 불렀다. 금오도가 왕실에서 직접 관리하던 봉산이었을 때 사슴을 사냥하러 온 관포수들이 처음으로 도착한곳이라고
해서 그렇게 부른 것을 나중에 '두포'로 바꾸었다. 금오도는 ‘황장봉산’으로 지정되어 사람들이 살 수 없도록 봉해버린 '봉산'이었다. 포수들이
사냥을 하던 도구를 만들던 풀무간이 있었던 불무골과 달군 쇠를 식히던 샘이 아직도 남아 있다. 두포마을에는 이를 기념하여 금오도 100주년
기념비가 있다.
행정구역상으로 두포(斗浦)라고 하는 것은 옥녀봉의 옥녀가 누에를 치던 곳이기
때문이다. 옥녀가 키우던 누에고치와 가까이에 있는 곡창지대 모하마을의 곡식은 말 두(斗)로 양을 재야하므로 두포라고 하였다. 비렁길은 두포에서
굴등마을로 올라간다. 조그마한 굴들이 많아서 굴등마을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혈의 누’ 영화를 찍었던 곳으로 서너 채 밖에 집이 없었는데
‘비렁길’이 열리면서 펜션과 가게가 들어섰다.
아슬아슬한 절벽 아래로 내려가는 계단을 따라 가면 전망대가 있다. 건너
동쪽으로 튀어나온 막개와 서쪽 신선대를 함께 볼 수 있다. 굳게 잠긴 집에 외로이 감나무에 다닥다닥 옹기종기 모여있는 감들만 소곤거리는
굴등마을이다. 산 모퉁이를 돌면 모두가 실컷 웃으면서 가던 길을 멈출 수 있는 ‘촛대바위 전망대’가 있다. ‘촛’자에서 한 획만 지우면 영락없는
글자 그대로의 바위가 우뚝 서있다. 언제나 들어도 좋아하는 이야기이다.
듬직한 해송이 반겨주는 직포마을
계단을 따라 내려가면 직포마을이 한 눈에 들어온다. 이제 시누대 터널을 뚫고
내려오면 금오도의 자랑 ‘황장목’ 해송 소나무들을 만날 수 있다. 갯가로 불어오는 남풍을 수백년 동안 견디고 우뚝 자란 낙락장송(落落長松)이다.
쓰러진 소나무를 부둥켜 세우고 있는 지주를 마다하지 않고 쑥쑥 자라고 있다. 한데 모여있는 직포마을의 해송은 한 때 콘크리트로 바닥 숨구멍을
막아서 보는 사람의 마음을 갑갑하게 만들었던 견디기 힘든 시절이 있다. 중간중간 옹이가 툭 불거진 것만으로 험난한 세월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마을의 동쪽 옥녀봉의 선녀인 옥녀가 주변 모하, 두포 마을에서 목화와
누에고치를 가져와 이곳에서 베를 짰다고 하여 베틀의 바디(보대)의 이름을 따서 '보대'라고도 부른다. 한자식으로 이름이 바뀌면서 직포(織浦)라고
한다. 금오도 ‘비렁길’이 생기면서 직포는 여객선이 닿는 항구가 되었고, ‘비렁길’의 중심지가 되어 횟집과 민박이 많이 생겼다. 옛날 고았던
직포해수욕장은 한 귀퉁이에만 모래가 몰려있어서 아쉽다.
늦은 점심을 직포에서 전북해물칼국수와 해물파전으로 먹었다. 오후 3시 50분
출발하는 백야도행 배를 탔다. 아침에는 안 보이던 사람들이 언제 왔는지 ‘비렁길’을 걸었던 관광객들이 배를 타기 위해 몰려들었다. 금오도를
관광객이 얼마나 많이 찾는가를 배에 타고 있는 사들을 보면 알 수 있다.
바다에서 쳐다본 비렁길
방금 우리가 걸었던 두포에서 직포까지 비렁길을 이제는 거꾸로 바다에서 눈을
치켜 올려다 본다. 바다에서 깊숙이 들어선 직포는 풍랑으로부터 보호해줄 수 있는 포구였다. 사연도 많은 촛대바위와 굴등마을이 보인다. 굴이
많아서 굴등마을이라는 말에 어울리게 절벽 아래에는 틈바구니마다 해식동굴이 들어섰다. 파도가 밀려올 때마다 하모니커처럼 굴속을 드나들면서 음악
연주를 할 것 같다. 각기 다른 깊이의 굴과 바위를 부딪치면서 내는 소리는 천상의 소리이지 않을까 한다.
배에서 바라본 초포마을은 포수들이 첫발을 내딛을 수밖에 없을 정도로 알맞은
주거지로 보인다. 배위에서 쳐다본 비렁길 1코스 신선대는 그리 높게 보이지 않는다. 최근 그곳에서 여대생이 실족사 하였다. 비렁길의 재미는
아찔함이지만 잘못하면 목숨을 잃는다는 점에서 누구나 조심히 걸어야 한다. 감탄을 하면서 걷던 비렁길이 배를 타면서 볼 때는 가리키기도 전에
빠르게 지나간다.
뱃길 비렁길에서 누구나 확인해 보고싶은 곳이 아마도 송광사 터를 지나서
미역널방일 것이다. 깎아지른 90도 직벽, 그 곳으로 절벽에 매달린 길을 걸을 때는 멋진 미역널방 감상에 어지러움을 잊었던 생각이 난다.
용두마을 사람들이 어떻게 저런 절벽을 내려와서 미역을 뜯고, 다시 갖고 올라가 널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는다. 금오도 절벽을 내달음질치는
염소무리를 보면서 발바닥이 바위에 착 달라붙는 장치가 된 것 아닌 가 생각한다.
여의주가 빠져나간 여의주암을 지나서 함구미항에 도착하였다. 여기에서도
관광객들이 타고 내린다. 지금부터는 백야도항을 향해 개도와 자봉도 사이를 신나게 빠져나간다. 백야도항에 타고온 버스와 승용차가 즐비하다. 승객과
여객선, 승용차 등으로 분주한 백야도항이 '서여수 여객항'으로 자리를 잡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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