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으로 들어가 사고·어휘력을 캐내라"
-'독서 박사'들이 말하는 진짜 공부 잘하는 법'
방학이 오면 우리 학생들은 휴식은커녕 더 바쁜 나날을 보내야 한다. 국·영·수 등 전략 과목에서 우수한 성적을 받기 위해 도서관과 학원에서 땀을 흘린다. 그러나 그것이 정말로 공부 잘하는 것일까?
조선일보와 교보문고가 공동 기획한 ‘여름, 책의 향연’ 3회 행사로 24일 출판평론가 표정훈씨와 ‘10대의 책읽기’ 독서 대담을 나눈 김재준 국민대 경제학부 교수는 “풍부한 독서를 바탕으로 언어감각을 키우면 수학 과학도 잘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한편, 최근 초등학교 어휘력 진단서를 개발한 남미영 한국독서교육개발원 원장은 “학습 능력이 떨어지는 것은 사고력과 이해력의 바탕인 어휘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두 독서박사 모두 책을 통해 튼튼한 바탕을 쌓을 것을 요구하고 있다. / 편집자
김재준 국민대 교수 - “꼼꼼히 볼 책은 씹듯이 천천히”
김 교수는 “국어와 영어는 당연히 언어 영역이지만 수학에서 배우는 논리적 사고능력도 결국 생각의 수단은 언어라는 점에서 언어의 학문”이라며 “공부의 기초는 언어감각”이라고 강조했다. 언어감각을 키우려면 책을 읽어야 한다.
“사람들은 책을 지식 습득의 수단으로만 생각합니다. 그런데 독서는 그 책에 쓰인 표현이라든가 생각의 흐름 등을 함께 익히는 행위이기도 합니다.” 그는 교과서와 참고서에서 얻는 지식을, ‘소고기와 닭고기의 맛의 차이를 모른 채 단백질만 섭취하는 것’에 비유했다.
무작정 많이 읽는다고 좋은 것은 아니다. 독서에도 효율적인 방법이 있다. 김 교수는 “생각을 요구하는 책은 독서 시간보다 독서 후 생각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해야 하지만 단순한 정보성 책은 책의 왼쪽 위에서 오른쪽 아래로 대각선으로 훑어가며 대충 읽어도 된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인터넷은 창의적인 학습을 방해한다”며 ‘인터넷 유해론’을 펴기도 했다. 단편적 지식으로 가득찬 인터넷은 정보를 많이 주긴 하지만 생각하는 습관을 앗아가 버리기 때문이란 것이다.
김 교수의 강연에 참석한 학부모들은 자녀와 학생들에 관한 질문에는 교육현장의 생생한 고민이 그대로 담겨 있었다. “선행학습 시키느라 엄청나게 돈이 들어가는데 기초학력은 오히려 낮아지고 있다니 걱정된다”는 한 학부모의 토로에 대해 김 교수는 “대학생들을 보면 스스로 생각하는 힘이 없으면서도 공부 잘한다고 착각하는 학생들이 많다”며 “광범위한 독서보다는 좁은 범위의 과정만 잘해서 대학에 갔기 때문에 학생들의 기본이 약하다”고 말했다. “글을 잘 쓰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는 “매끄럽게 쓴 글보다는 거칠어도 창의적이고 새로운 생각을 담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 학부모는 “우리 부모들도 자녀에게만 책 읽으라 하고 스스로는 읽지 않는 것을 반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이에 대해 “교양 있고 지적인 대화를 하는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들은 언어도 훌륭해진다”며 “아이에게 책을 읽히려면 부모가 먼저 읽고 그 내용을 어느 정도는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기사 작성에는 인턴기자 한보람(한세대 신문방송학과 4년)·김지예(고려대 사회학과 3년)씨가 참여했습니다.
남미영 독서교육개발원장 - “다 읽은 다음엔 퀴즈나 토론을”
책을 5분 이상 읽지 못하는 아이, 만화책만 좋아하는 아이, 오랫동안 공부해도 성적이 오르지 않는 아이…. 원인은 뭘까. 청소년문학박사이자 한국독서교육개발원 원장인 남미영 박사는 “사고력·이해력의 기본 바탕인 어휘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그렇다면 우리 아이는 얼마나 많은 어휘를 알고 있을까? 남 박사가 제7차 교육과정 교과서 어휘, 국립국어연구원의 기초어휘, 베스트셀러 도서의 어휘를 종합해 만든 ‘초등학생 독서능력진단 평가’에 따르면 초등학생의 어휘력은 100점 만점에 평균 50~60점 수준밖에 안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런 점에서 여름방학은 아이들의 어휘를 늘리는 데 최고의 기회다. 요점은 책을 많이 읽는다고 어휘력이 향상되는 건 아니라는 점이다. “오히려 건성건성 빨리빨리 읽는 독서 행태가 문제지요. 책을 꼼꼼히 정독하는 아이가 많은 어휘를 자연스럽게 익힙니다.”
만화책 역시 고급 어휘를 익힐 기회를 차단한다. “‘칭기즈칸은 적진을 향해서 쏜살같이 달려갔다’는 문장이 있다면 만화는 ‘씽~’ 하면 끝이지요. ‘적장은 둔탁한 소리를 내며 거목처럼 넘어졌다’ 역시 ‘쿵!’ 하면 그만입니다. 상상력을 저하시키는 것도 문제예요. 그림으로 다 보여주니까. 역사·과학처럼 지식을 쌓는 데 어려운 분야라면 모르지만 문학서를 만화로 읽는 것은 피해야 합니다.”
초등학교 4학년을 고비로 아이들의 어휘력 차이가 가장 크게 벌어진다고 말하는 그는 일단 자녀의 어휘력을 진단해보라고 조언한다. 남 박사가 개발한 어휘력 진단서는 그가 교육개발 이사로 있는 ‘클애들교육(www.kredi.co.kr)’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무료로 활용할 수 있다.
아이의 어휘력을 테스트했다면 기존의 독서법을 바꿀 필요가 있다. “책을 읽고 그 내용을 이해하는 것은 독서교육의 10분의1만 실천한 겁니다. 토론을 해보세요. ‘장발장’을 읽었다면 ‘장발장을 위해 미리암 신부가 한 거짓말이 정당한가?’ 물어보고, ‘너라면 어떻게 했겠니?’ 하고 다시 질문하면서 사고를 더 깊게 하는 거지요.”책에 등장하는 단어들을 주제별로 묶어보는 것도 효과적이다. 놀이·여행·자연 등등 테마를 정해 단어를 분류하면 이해가 쉽고 더 오랫동안 머릿속에 저장된다. 독서 퀴즈를 아이가 직접 만들어 가족들에게 맞혀보게 하는 것도 효과가 크다. “퀴즈 문제를 만들기 위해 책을 더 꼼꼼히 정독하게 되니까요. 창의력·판단력·추리력을 배양시키는 독서교육의 ‘칼끝’은 어휘이고, 어휘가 무뎌서는 말하고 생각하고 쓰는 능력 역시 향상되지 않습니다.”
● 독서력을 높이려면
1. 인터넷은 가급적 피한다. 단순한 지식의 바다일 뿐, 창의적으로 생각하는 것을 방해하는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2. 모든 책을 열심히 읽기보다는 정독할 책은 천천히 생각하며 읽고, 가벼운 책은 왼쪽 위에서 오른쪽 아래로 훑듯이 읽는다.
3. 글을 쓸 때는 매끈하고 유려하게 쓰기보다 독창적인 자기만의 생각을 담도록 한다.
4. 영어소설을 읽을 때는 사전을 너무 자주 찾지 않고 문맥만으로 읽는 훈련을 한다.
5. 아이들이 읽을 책을 부모가 먼저 읽어본다. 독서가 끝나면 책 내용에 대해 토론한다.
● 어휘력을 높이려면
1. 어휘력 진단서를 이용해 자녀의 어휘량, 어휘 이해도를 체크한다.
2. 한권의 책을 골라 정독한 뒤 주제별로 관련된 단어를 써보게 한다. 시장에서 쓰는 말, 사람의 됨됨이를 이르는 말, 우주과학에 관련된 말 등등.
3. 만화 형식의 도서는 가능한 피한다. 어휘력 향상을 저해하는 것은 물론 상상력도 떨어뜨린다.
4. 독서 퀴즈대회도 열어보자. 단, 아이가 직접 문제를 만들게 한다.
5. 평상시 부모의 언어습관도 중요하다. 아이를 위해 고급 어휘, 구체어를 자주 활용한다.
[책의 향연] 김재준 교수와 평론가 표정훈씨 대담 전문
조선일보·교보문고 공동기획 책의 향연
‘언어사중주’(박영사)의 저자인 김재준 국민대 교수와 출판평론가 표정훈씨의 대담으로 24일 오후 서울 교보문고 강남점에서 열린 행사에서 두 사람은 “광범위한 독서가 바탕이 된 풍성한 말살이가 국어는 물론 수학과 과학도 잘하게 하는 ‘진짜 공부’의 비결”임을 강조했다. 책 많이 읽기로 유명한 두 사람의 대담을 중계한다.
― 표 : 언어 감각이 뛰어나야 수학을 잘한다는 김 교수의 주장이 참신하다.
― 김 : 중고생들이 다양한 분야를 배우는 것 같지만 크게 나누면 언어 과목과 예체능 과목으로 나눌 수 있다. 국어와 영어는 당연히 언어 영역이고, 수학을 통해 기르는 논리적 사고능력도 생각의 수단이 언어라는 점에서 결국 언어의 학문이다. 우리 부모들은 자녀들 영어연수 보내는데, 언어감각이란 측면에서는 별 효과가 없다. 공부의 기초는 언어감각이다.
― 표 : 그렇다면 언어 감각은 어떻게 키울 수 있는가?
― 김 : 독서를 통해서다. 책을 읽는 것은 지식을 얻기 위한 행동인 동시에 그 책에 쓰인 표현이라든가 사고의 흐름 등을 함께 경험하고 익히는 행위이다. 지식은 교과서와 참고서로 얻을 수 있지만 언어감각은 광범위한 독서가 아니면 불가능하다. 우리 학부모들은 독서를 공부의 적으로까지 생각하는데, 요즘 수능시험 문제를 보면 독서의 바탕 없이는 풀 수 없는 문제가 많다.
― 표 : 선행학습의 문제도 심각한 것 같다.
― 김 : 고등학교까지 시험은 주어진 질문에 답만 잘하면 된다. 그런데 대학원에 가면 답보다 질문이 더 중요해진다. 주어진 질문에 답하는 것이 아니라 문제의식을 갖고 스스로 질문해야 한다. 공부의 목적은 문제의식을 가진 창조적 인간을 만드는 데 있지만 선행학습은 생각 없이 공부하는 기계를 만들 뿐이다.
― 표 : 인터넷의 확산 덕에 지식 자체는 얼마든지 손쉽게 얻을 수 있게 됐다. 답은 인터넷에서 찾을 수 있으니 중요한 것은 “얼마나 창의적인 질문을 하느냐, 어떤 문제 의식을 갖느냐”가 될 것이다. 미국 대학 교양 과정의 핵심은 독서와 글쓰기이다. 우리는 그 두 가지를 따로 가르치지 않는다.
― 김 : 우리는 대학에서 책을 많이 읽지 않는다. 교과서가 있기 때문이다. 유학시절 보니 한 과목당 수십 권씩 책을 읽게 하더라. 그것이 쌓여 큰 차이를 만드는 것이다. 나는 초등학교 때 60명 가운데 30등쯤 하는 보통학생이었다. 그런데 내가 남들과 다른 점은 책을 많이 읽었다는 것이다. 위인전, 동화, 역사책을 밤새 읽고 늦잠 자다 지각하기도 했다. 조선시대에 무슨 사건이 있었다는 것을 남보다 미리 배우는 것이 뭐가 중요한가. 그 지식을 얻는 전 과정에서 책을 통해 언어적 감수성을 키우는 것이 진짜 중요한 것이다. 교과서와 참고서에서 지식을 얻는 것은, 비유하자면 소고기와 닭고기의 맛의 차이를 모른 채 단백질을 섭취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 표 : 책을 읽고 공부하고 생각하는 것만이 아니라 그 생각을 표현하고 현실에 적용해 새로운 지식을 만들어내는 것이 진짜 지식인데 우리는 책상머리에 앉아서 집어넣기만 한다.
― 김 : 미국 고교생의 평균학력은 우리보다 낮다. 우리나라 중3, 고1의 평균 성적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그런데 상위권을 비교하면 역전된다. 왜? 우리 학생들은 주어진 것을 배우고, 선진국 학생들은 알고 싶은 것을 공부하기 때문이다. 공부를 잘하고 싶은 학생에게 한 가지 방법을 권하자면, 죽어라 하고 열심히 외우기보다 친구끼리 문제를 내서 풀어보는 것이다. 맹목적인 암기보다는 문제를 만드는 과정에서 창의적인 사고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공부 잘하는 법’을 가르쳐주는 책이 많던데 그건 저자의 공부법일 뿐, 독자의 창의적 사고와는 거리가 멀다.
표 : 그냥 많이 읽으면 되는가? 독서에도 효율적인 방법이 있을 것 같다.
김 : 모든 책이 평등하지는 않다. 자세히 여러 번 읽을 책이 있고, 1시간 안에 읽고 던져버릴 책도 있다. 모든 책을 똑같은 열성으로 읽는 것은 낭비이다. 축구 90분을 내내 죽도록 뛰면 어떻게 되겠는가? 본프레레 국가대표 축구팀 감독이 “생각하고 뛰어라. 생각하지 않으면 몸이 고달프다”고 했는데 독서에서도 적용되는 말이다. “열심히 할 필요가 있을까? 열심히 하면 어떤 결과가 있을까”를 생각해야 한다. 나는 이를 ‘몰입하기와 거리두기의 병행’이라고 말하겠다. 인터넷도 문제다. 선진국에 가면 의외로 아날로그형 인간이 많다. 단편적 지식으로 가득 찬 인터넷은 생각하는 습관을 앗아가 버린다.
― 표 : 수능 시험 경향을 보면 단순히 교과서 지식을 쌓거나 수능자체만 공부하면 안 되는 쪽으로 간다. 그렇다면 공부를 어떻게 하면 잘할 수 있을까?
― 김 : 공부 잘하는 것도 습관이다. 한번 잘하기 시작하면 자신감을 갖게 된다. 처음에는 모든 과목 잘하려 하지 말고, 한 과목만 집중하는 것도 좋다. 그래서 그 과목의 성적이 올라가면 “나도 열심히 하면 잘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게 되고 점차 나머지 과목도 잘할 수 있게 된다.
두 사람의 대담에 이어 행사에 참석한 학부모와 김 교수 사이의 질의응답이 있었다. 학부모와 학생들의 질문에는 교육현장의 생생한 고민이 그대로 담겨 있었다.
―우리 아이는 컴퓨터에 빠져 책을 싫어하는데….
“나는 수업 중에 학생들이 질문을 안 하면 출석부에서 이름을 찾아 강제로 질문을 시킨다. 스스로 창의력을 발휘하지 못하면 이를 유발하기 위해 부모의 통제가 필요할 때도 있다. 창의성을 풀어놓기와 혼돈하지 말라.”
―영어소설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가?
사전을 많이 찾는 것은 좋지 않다. 기초 어휘와 문법만 있다면 모르는 단어가 있어도 앞·뒤 문맥으로 파악하며 읽어야 한다. 많이 읽기만 하는 것으로는 부족하다는 지적도 있지만, 그런 걱정을 할 만큼 많은 영어책을 읽어보기나 했는가. 쉬운 책부터 시작해 많이 읽어라.”
―시험이 코앞인데 책만 읽을 수는 없지 않은가?
“한국에서는 대부분의 학생과 학부모가 고통을 받으며 공부에 떠밀려간다. 현실이 그렇다면 관점을 바꿔보라. 허덕허덕하는 마음으로 경쟁에 마지못해 끼어든다고 생각하기보다 공부를 적극적으로 즐겨보면 어떨까.”
―선행학습 시키느라 엄청나게 돈이 들어가는데 기초학력은 오히려 낮아지니 왜 그런가?
“스스로 생각하는 힘이 없으면서도 공부 잘한다고 착각하는 학생들이 많다. 광범위한 독서보다는 좁은 범위의 과정만 잘해서 대학에 갔기 때문에 학생들의 밑천이 금방 드러난다.”
―어떤 글이 좋은 글인가?
“매끄럽게 쓰기만 한 글을 잘 쓴 글이 아니다. 얼마나 창의적이고 새로운 생각을 담았느냐가 중요하다.”
―우리 부모들도 자녀에게만 읽으라 하고 스스로는 읽지 않는 것을 반성해야 한다.
“부모가 하는 한마디 한마디가 다 아이들에게 영향을 준다. 부모의 말이 아이의 언어감각을 형성하기 때문이다. 교양 있고 지적인 대화를 하는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들은 언어능력도 훌륭해진다. 아이에게 책을 읽히려면 부모가 먼저 읽고 그 내용을 어느 정도는 알아야 한다. 그래야 서로 대화라도 할 것 아닌가.”
―모든 부모가 다 지적이고 공부 잘하는 것은 아니잖은가?
“맞는 말이다. 그런데 부모가 지식인이 아니어도 부모보다 뛰어나게 성장하는 아이들도 많다. 부모가 지적이지 못해도 지적인 것을 존중할 줄 안다면 자식들도 훌륭하게 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