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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2월 23일 살아나서 살리는 교회 주일 설교
제목 : 에베소 교회를 향한 편지에서 찾은 ‘주의’ 교회 이야기 - 반드시 사수해야 할, 사랑!
본문 : 요한계시록 2장 4절(1~7절)
그러나 너에게 나무랄 것이 있다. 그것은 네가 처음 사랑을 버린 것이다. <새번역>
요한계시록은 문을 열자마자 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에 쓰는 편지로 시작합니다. 분명하고 명확하게 전달해야 할 메시지가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일곱 교회 중 가장 첫 번째 교회가 ‘에베소’ 교회였습니다. 일곱 교회 중에서 가장 먼저 에베소에 편지를 보낸 내용이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큰 상징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분명히 에베소 교회를 필두로 가장 강력하게 전달해야 할 교회를 위한 메시지가 있을 것이라 예상할 수가 있습니다.
당시 에베소는 소아시아에서 제일 큰 항구 도시였습니다. 정치적으로는 로마의 자유 도시였고, 종교적으로는 여신 아데미를 숭상하며 이방 신전을 세웠던 도시입니다. 도덕적으로 음란과 죄악이 관영한 곳이기도 했습니다. 예수님의 복음과는 상관없이 지냈던 이 도시에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이 전파된 것입니다. 사도행전 19장에 의하면,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가 이곳에서 헌신적으로 복음을 증언했으며, 에베소 교회는 아볼로의 수고로 설립된 교회였습니다. 사도 바울도 이 교회에서 무려 3년 동안 복음을 증거했는데, 그들과 헤어질 때 눈물을 흘리며 아쉬워하는 모습도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처럼 성령의 능력과 주의 영광이 드러났던 교회, 초대교회의 부흥의 불길이 일어난 교회가 에베소 교회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성경 말씀을 듣고 연구하는 데도 열심을 다하고 후원했던 교회였습니다.
바울은 회당에 들어가서, 석 달 동안 하나님 나라의 일을 강론하고 권면하면서, 담대하게 말하였다. 그러나 몇몇 사람은, 마음이 완고하게 되어서 믿으려 하지 않고, 온 회중 앞에서 이 '도'를 비난하므로, 바울은 그들을 떠나, 제자들을 따로 데리고 나가서, 날마다 두란노 학당에서 강론하였다. 이런 일을 이태 동안 하였다. 아시아에 사는 사람들은, 유대 사람이나 그리스 사람이나, 모두 주님의 말씀을 듣게 되었다. <사도행전 19장 8~10절, 새번역>
당시의 에베소 교회를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하여 주님의 말씀이 능력 있게 퍼져 나가고, 점점 힘을 떨쳤다. <사도행전 19장 20절, 새번역>
그리고 의미가 있는 구절이 바로 에베소 교회를 향한 바울의 유언과도 같은 당부 2가지입니다. 첫 번째는 사도행전 20장 32절에 등장합니다.
나는 이제 하나님과 그의 은혜로운 말씀에 여러분을 맡깁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여러분을 튼튼히 세울 수 있고, 거룩하게 된 모든 사람들 가운데서 여러분으로 하여금 유업을 차지하게 할 수 있습니다. <새번역>
바울은 에베소 장로들에게 반드시 먼저 가장 중요한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야 할 것을 당부합니다. 그리고 이어 두 번째 당부입니다.
나는 모든 일에서 여러분에게 본을 보였습니다. 이렇게 힘써 일해서 약한 사람을 도와주는 것이 마땅합니다. 그리고 주 예수께서 친히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더 복이 있다' 하신 말씀을 반드시 명심해야 합니다." <사도행전 20장 35절, 새번역>
바울은 에베소 교회가 약한 사람을 위해 베풀고 섬기는 교회가 되기를 요청했습니다. 이 두 가지는 바울이 오늘날 우리 교회들을 향해 당부한 말이라고 해도 조금도 틀림이 없을 것입니다. 바울의 당부 두 가지를 쉽게 이야기하면 이 말씀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가 대답하였다.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힘을 다하고 네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여라' 하였고, 또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여라' 하였습니다." <누가복음 10장 27절, 새번역>
바울은 결코 새로운 것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신명기 6장 5절과 레위기 19장 18절에서 이미 이야기하고 있었고, 예수님이 증언하신 그 말씀을 다시 한 번 에베소 교회에 당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첫 번째 사랑이 되어야 하고, 언제나 돌아가야 할 처음 사랑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 바울의 당부 때문이었을까요? 에베소 교회는 수많은 칭찬을 받는 교회로 든든히 서 가는 교회가 되었습니다. 요한계시록이 기록된 당시에도 에베소 교회는 최고 전성기를 누리고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부흥의 정점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되기까지 행위와 수고와 인내를 주님께서 다 아신다고 할 정도로 인정해 주시는 교회였습니다.
주님이 친히 인정하신 에베소 교회입니다. 주님이 에베소 교회의 수고와 인내를 알고 계신다고 합니다. 이처럼 멋진 칭찬이 어디 있습니까? 이방 도시에서 복음을 증거하고 신앙을 지키는 모습이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얼마나 많은 고초와 고난이 있었겠습니까? 그럼에도 수고하고 인내하며 복음을 증언하고, 이웃을 사랑하며,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려 했던 교회임이 분명한 곳이 에베소 교회입니다.
또한 당시 교회 공동체에 여러 지도자가 있었는데, 그 가운데 못된 지도자들도 있었다는 것입니다. 주님의 이름을 빙자해 하나님께 영광 돌린다고 하면서 실상은 자기 영광을 취하며 야욕에 사로잡힌 거짓 지도자들이 있었다는 뜻입니다. 바로 그 거짓 지도자들을 분별하며 가려낼 수 있는 교회이기도 했습니다. 충분히 자정능력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아마도 말씀에 대한 연구가 활발히 이루어졌기에 진리에 대해서 분별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을 것이라 예상할 수 있습니다.
너무도 부럽게도 칭찬은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또한 에베소 교회는 열정과 성실, 부지런함도 가지고 있었던 교회라고 소개합니다. 주님의 이름을 위해 견디며 부지런히 일한 교회라고 합니다. 개인의 영광이 아니라 주님의 이름을 드러내기 원하며, 역경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충성스럽게 주님을 섬긴 교회라는 것입니다.
이쯤 되면 거의 완벽한 교회라고 해도 틀림이 없을 것입니다. 이 시대의 교회가 본받아야 하는 교회라고 해도 무방할 것입니다. 그런데 이 수많은 칭찬 뒤에 이 편지를 쓴 진짜 이유가 시작됩니다. 그 진짜 이유를 나누기 전에 먼저 이 성경 구절을 우리는 살펴보아야 할 것입니다.
내가 사람의 모든 말과 천사의 말을 할 수 있을지라도, 내게 ▢▢이 없으면, 울리는 징이나 요란한 꽹과리가 될 뿐입니다. 내가 예언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을지라도, 또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가지고 있을지라도,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을 가지고 있을지라도, ▢▢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내가 내 모든 소유를 나누어줄지라도, 내가 자랑삼아 내 몸을 넘겨줄지라도, ▢▢이 없으면, 내게는 아무런 이로움이 없습니다. <고린도전서 13장 1~3절, 새번역>
네모 안에 들어가야 할 말은 우리가 너무 잘 알고 있는 말씀입니다. 바로, ‘사랑’입니다. 이 3절의 말씀을 쉽게 요약하면 ‘사랑이 없으면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아무리 멋진 예배를 드리고 있어도!
아무리 탁월한 행정력을 가지고 있어도!
아무리 수고하고, 아무리 인내하고, 아무리 분별력이 대단하다고 해도!
아무리 고난을 잘 견디어 냈고, 낙심한 적이 없더라도!
누가 봐도 좋은 교회 같고!
누가 봐도 칭찬거리 밖에 없는 교회 같고!
누가 봐도 아무 문제없는 교회 같아 보여도!
대단히 오랜 시간 이름을 유지해 오고 있는 교회라도!
전통적으로 놀라운 신앙인들을 너무도 많이 배출해 낸 교회라도!
소위 소문난 교회라도! 누구나 아는 교회라도! 교회 출석 인원이 많더라도!
놀라운 축복을 받았던 교회라도! 엄청난 건물과 부와 재산을 소유한 교회라도!
처음 사랑을 버렸다면, 그 처음 사랑이 오늘 현재의 소유가 아니라면 얼마든지 그 교회를 향한 촛대는 옮겨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너에게 나무랄 것이 있다. 그것은 네가 처음 사랑을 버린 것이다. 그러므로 네가 어디에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해 내서 회개하고, 처음에 하던 일을 하여라. 네가 그렇게 하지 않고, 회개하지 않으면, 내가 가서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겠다. <요한계시록 2장 4~5절, 새번역>
역사적으로도 이 일은 정말 사실이었습니다. 아무리 크고 놀랍고 대단했던 교회들도, 그런 교회들로만 가득했던 시대도, ‘처음 사랑’을 잃어버리고 나면, 그리고 다시 찾으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던 교회는, 어김없이 그들에게 있었던 촛대가 옮겨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교회는 사랑의 연합으로 이루어진 ‘페리코레시스(상호내주 - 헬라어 : περιχορησις, 영어 : Perichoresis)’의 관계에 있는 삼위일체 하나님으로부터 본질적으로 시작된 공동체입니다. 즉, 사랑이 없으면 조금도 유지될 수 없는 공동체라는 것입니다. 사랑이 교회 공동체를 움직이는 유일한 동력이라는 것입니다. 예배, 봉사, 섬김, 교제 등 사역이라고 불리는 것보다도 더 본질적으로 중요한 것이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려고 발버둥치는 교회, 사랑이라는 가치를 실현하려고 오늘도 땀 흘리는 교회, 사랑이 왜 중요한지 언제나 묵상함으로 오늘도 사랑에 대해서 더 배우려는 교회, 그 교회야말로 ‘주의’ 교회라고 말씀하시고 계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네가 제단에 제물을 드리려고 하다가, 네 형제나 자매가 네게 어떤 원한을 품고 있다는 생각이 나거든, 너는 그 제물을 제단 앞에 놓아두고, 먼저 가서 네 형제나 자매와 화해하여라. 그런 다음에 돌아와서 제물을 드려라. <마태복음 5장 23~24절, 새번역>
지금 시대에는 예수님의 이 말씀을 정확하게 반대로 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이 있는지 모릅니다. 공동체에서, 주 안에서 한 가족 된 형제와 자매와의 사랑이 예배보다 더 중요하다는 말씀입니다. 구약에서는 가능했습니다. 그냥 제단에 재물을 드리고, 나만 용서받으면 됐고, 나만 회복하면 됐습니다. 나로인해 누가 괴롭든, 힘들든, 원한을 품든, 제물을 제단에 드렸기에 다 괜찮은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주의’ 교회는 그렇지 않습니다. 사랑의 공동체가 되어야 할 ‘주의’ 교회는 형제와 자매와의 사랑이야말로 진짜 예배의 시작이라고 예수님이 친히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너무도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여전히 구약의 모습으로 신약을 살고 있습니다. 예배를 드리고 나면, 왠지 용서받은 마음으로, 다 괜찮아 질 거라 착각하면서, 혼자만 홀가분해 진 마음에, 더 이상 그 형제와 자매와의 간극을 좁히지 못한 채, 공동체라는 모임을 유지해 나가고 있는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언제 터질지 모를 폭탄을 안고 있는 것처럼 불안한 관계로 유지될 수밖에 없습니다. 조금이라도 내가 기분 나빠지면, 내가 속상해지면, 억울해지면, 그 폭탄은 언제든 터질 준비를 하고 있는 공동체이기 때문입니다.
에베소 교회는 그 ‘처음’ 사랑을 버렸습니다. 놀랍게 버려진 것이 아니라 자기의 의지로 버린 것입니다. 더 이상 필요 없다고 생각해서 알고도 버린 것입니다. 이제는 형식만 남았고, 행위만 남았던 것입니다. 이름만, 명예만, 전통만, 그랬던 기억만 남아 버린 것입니다. 더 이상 하나님을 향한, 말씀을 향한, 서로가 서로를 향한, 이웃을 향한 사랑에 힘을 쏟지 않기로 결정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가장 강력하게 하나님께서 경고하는 메시지인 것입니다. 알고도 버린 것! 사랑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알고도 버린 것! 저는 그래서 쉬운 성경의 번역이 아주 적절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너를 책망할 일이 한 가지 있다. 그것은 네가 나를 처음만큼 사랑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다. <요한계시록 2장 4절, 쉬운성경>
‘사랑’은, 진짜 ‘사랑’이라면, 언제나 성장하고, 자랄 수 있습니다. 사랑이라고 하는 영원을 추구하는 가치는 그 끝이 없습니다. 그러니 언제나 처음보다 성장할 수 있고, 커질 수 있고, 넓어질 수 있는 것이 사랑입니다. 결코 사랑은 하락할 수 없고, 작아질 수 없고, 좁아질 수 없습니다. 그건 사랑이 아닙니다. 진짜 ‘사랑’은 언제나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오기에 하나님 아버지가 우리를 사랑하는 그 사랑과 같이 끝이 없고, 무한한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사랑은 언제나 처음보다 그 깊이와 넓이를 더 해가는 것이 마땅하고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하지만 처음만큼 사랑하지 않고 있다는 것은 하나님 외에, 이웃 사랑 외에, 공동체를 사랑하는 것 외에, 다른 사랑하는 것이 생겼다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책망하고 계신 것입니다.
하지만 사실 오늘 본문을 통하여 글자 그대로 책망이라기보다는 오히려 다시 돌아올 수 있는 회복의 길을 열어주고 계시는 사랑의 하나님을 발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만큼 사랑이 중요합니다. 사랑은 언제나 돌아올 길을 마련해 줍니다. 탕자를 둔 아버지의 마음입니다. 자기를 죽인 사람까지 용서하는 사랑입니다. 잃어버린 양 한 마리를 향한 간절한 목자의 중심입니다. 사랑하는 우리에게 들려주시는 음성입니다.
“어디에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하라!”
분명히 기점이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 기점을 통해 버리기로 결정했기에, 그 기점으로 다시 돌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회개하고, 처음에 하던 일을 하여라!”
그 기점으로 돌아가, 지금과 같은 길을 가는 것이 아니라 가던 길을 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건 교회가 교회로의 길을 걸어가야 함을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에베소 교회가 너무도 잘하던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 공동체 안의 사랑, 그 처음부터 계속 해오던 일을 다시 시작하면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지 않고, 회개하지 않으면, 내가 가서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겠다”
너무도 강력한 경고입니다. 직접 오셔서 교회가 교회가 아니라고 말씀하신다는 것입니다. 말씀을 듣고도 의도적으로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듣고도 회개 하지 않으면, 이미 교회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방법에 순종하는 것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주의’ 교회는 ‘사랑’을 빼고서는 아무 말도 할 수 없는 공동체여야 합니다. 사랑이 없으면 아무 것도 아닙니다. 그저 울리는 종과 시끄러운 꽹과리에 불과합니다. 모든 비밀을 알고 지식을 아는 교회라고 해도, 산을 옮길 믿음이 있어도, 사랑이 없다면, 교회도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즉 아무것도 아닙니다. 재산을 나누어 주고, 몸을 나누어 주더라도, 사랑이 없다면 교회가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주의’ 교회는 사랑으로 충만하여, 그 사랑이 날마다 흘러 나가야 하는 곳입니다. 마치 요한계시록 22장에서처럼 하나님의 보좌와 어린 양의 보좌로부터 생명수의 강이 흘러 나와서, 도성의 넓은 거리 한 가운데로 흘러가듯이, ‘주의’ 교회의 사랑이 흘러 나와서, 흘러가야 하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하나님 사랑이 날마다 더 깊어지고 넓어지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하여 방법은 한 가지입니다. 말씀으로의 복귀입니다.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 사랑을 회복해야 합니다.
그리고 주는 사람이 받는 사람보다 복이 있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실천하도록 이웃 사랑을 위하여 나누고 베풀고 섬기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내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생각하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어찌 보면 그래서 공동체 안에서 형제자매간 서로의 사랑이 이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의 중요한 다리가 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나님 사랑을 받은 공동체가 사랑의 공동체가 되어 이웃 사랑을 실천하는 데까지 나아가는 자연스러운 발걸음을 가진 교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사랑하고 존경하고 축복하는 동역자 여러분, 예배자 여러분! 오늘 에베소 교회뿐만 아니라 우리에게도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보지 않으시겠습니까? ‘주의’ 교회에 대한 가장 강력한 정의를 말씀하고 계십니다. 지금 시대를 살고 있는 모든 교회들이 들어야 할 말씀이 아닐까요? 지금 일부러라도 사랑을 버리고 있는 공동체가 교회는 아닙니까? 마치 사랑보다 더 고귀한 가치가 있다고 말하고 있는 곳이 교회는 아닙니까? 예배에 밀려 사랑 없는 예배가 되지 않아야 할 것입니다. 가능하면 제물을 제단 앞에 두고, 용서를 구하고, 화해를 구하고 다시 와서 제물을 제단에 드릴 수 있는 사랑의 용기를 가진 그리스도인이 되어, 또한 개인주의를 오히려 부추기는 공동체 사랑 무용론을 경계해야 하는 교회가 되어, 처음 사랑을 버린 교회가 아니라 처음 사랑을 유지하는 교회요, 더욱 더 발전시켜 나가는 교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다시 교회가 교회로 존중받는 시대가 올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보여주신 사랑으로 사랑을 실천하는 교회들을 통해서 말입니다.
다시 교회가 ‘가족 공동체’라는 말이 어색하지 않을 때가 올 것입니다. 서로 사랑함이 기초가 되어 함께 지어져 갈 동역자들의 모임을 통해서 말입니다.
다시 교회가 ‘주의’ 교회라 불리게 될 유일한 방법은 ‘사랑’ 회복임을 우리 모두 잊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에베소 교회에 들려온 많은 칭찬들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하나님의 다른 어떤 칭찬보다 듣고 싶은 칭찬이 있습니다.
“살아나서 살리는 교회, 나의 사랑하는 교회야! 너는 처음 사랑을 버리지 않고 잘 지키고 성장시키고 있구나! 고맙다! 칭찬한다! 앞으로도 그 사랑 변치 않기를 축복한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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